1. 민주당의 승리
지방선거 후 한나라당은 패배로 인한 상처를 추스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승리한 민주당은 오랜만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3무정당이라고 불려왔는데 일단 차세대 리더군이 등장했고, 그 리더들이 각기 자신의 지역에서 이슈를 선점하고 당선됐다는 점에서 약간은 그러한 오명을 덜수도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야권재편에 대한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큰 선거 이후에는 민주개혁세력에 대해서는 '야권재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호남을 주된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숙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 이유가 어찌됐든간에, 민주당은 수도권(인천), 충청권(충북,충남), 호남권, 강원, 즉 거의 전 지역에서 당선자를 냈으며, 민주당출신 김두관은 경남도지사가 됐고, 심지어 제주에서도 민주당 출신 성추행범이 한나라당 출신 비리동생의 형을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이정도로 민주개혁세력이 전국정당이 된 적은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최약야당이라는 민주당이 그것을 mb정부하에서 이루어냈습니다.


2. 또 흘러나오는 야권재편이야기
그러나 또 야권재편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진보언론에서 야권재편을 많이 다룹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민주당은 노쇠화됐고 지역주의적이다, 김두관은 그런 민주당의 한계 때문에 독자출마했다, 민주당 조직이 경기도에서 유시민을 많이 못도왔다, 민주당은 야권연대과정에서 맏형답지 못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이긴것은 야권연대와 mb실정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제대로 안하면 망할거다" 라는 내용의 사설을 썼습니다. 프레시안은 아예 "야권재편"에 대해서 좌담을 가졌습니다.
심지어 선거 전에 사퇴한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에 대해서는  "심 후보는 민주당 패배를 전제로 민주당 이탈세력을 포함한 큰 판을 구상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선거결과가 달라지자 장고에 들어갔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23911.html)
이런 보도도 있을 정도입니다.

진보언론의 민주당에 대한 시각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전국단위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당선자를 배출해도, 전국적으로 유권자들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줘도, 그것은 민주당에 대한 표가 아니라, 야권연대 혹은 반사적 이익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야권은 재편되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노골적으로 풀자면, 민주당이 전국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민주당은 호남당이기 때문에 야권재편이 필요하다입니다.


아주 잘못된 시각은 아니지만, 노대통령 서거 이후 진보언론의 주류적인 의견이 일반적인 민심을 왜곡한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습니다. 진보언론은 너무 기계적으로 민주당과 노무현을 분리시키고, 민주당과 김대중을 분리시킵니다. 그리고 더 극단적으로 민주당과 친노세력을 구분합니다. 즉 지금의 민주당은 호남당이기 때문에, 전국정당화를 꿈꾼 노무현과 분리되고, 지금의 민주당은 김대중의 통일,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을 갖지 못했기에 또 분리되고, 인적구성에서도 민주당은 친노세력을 품지 못해서 국민참여당이 그것을 담당한다는 식으로 민주당을 바라봅니다.

이런 시각에서 민주당을 바라보면, 민주당은 정말 최악입니다. 정책도 없고, 인물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정체성도 없고 따라서 지역에 안주하는 당장 없어져도 시원찮은 정당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민주당이 전국단위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인 당선자를 배출하면서 승리를 해버렸으니, 그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자기들의 관점을 바꾸기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초로 실험해본 야권연대를 나름대로 충실히 이행한 민주당에 대한 평가보다는, 통크게 양보하지 않은 민주당을 꼬집게 되고, 유시민에게 경기도지사를 내준 후 박지원, 손학규, 그밖에 민주당 내 경기도 국회의원들, 심지어 동교동계가 나서서 유시민을 응원한 것에 대한 평가보다는, 민주당 내 지역조직이 자당 후보 밀듯 열심히 안했다고 꼬집고, 민주당 후보 김정길의 부산 선전보다는 민주당을 이탈한 김두관에게만 주목하게 됩니다.


3. 진보언론이 말하는 야권재편이란?
민주당에 대한 저런 관점은 자연스레 '민주당 중심'의 야권재편이 아닌 다른 방식의 야권재편을 말하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30%가까이 나오고 있는데다가 90석에 가까운 의회의석을 지니고 있고 지금 막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인 승리를 거둔 민주당 중심이 아닌 야권재편은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0년동안 국가를 경영한 경험과 수십년에 이르는 정당역사를 지닌 야권에서는 유일무이한 정당이기에 민주당 중심이 아닌, 다른 논의는 현실적으로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도 참여연대 김기식 위원장은 "미국 민주당처럼 리버럴부터 사민주의까지 하나의 연합정당 구조 하에서 헤게모니 경쟁을 하는, 각자가 정치적 주장과 대중적 기반을 확장해 가며 새로움 창출하고 변화를 강제해 가는 구조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선거연합은 경쟁보다는 거래를 통한 분점의 게임으로 흐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별로 경쟁을 촉발시키지 않는다"  "연합이 혁신과 맞물리기 위해선 실질적 경쟁이 가능한 구조가 돼야 한다"  "2012년 대선이 미래를 놓고 다투는 자리이고 비전과 혁신의 동력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라면 현재의 선거연합은 답을 못 내고 있다"  "자기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자기 틀을 깨는 혁신 방식을 택해야 한다"  "집권 가능한 대안적 모델은 자유주의부터 사민주의까지 모여 각자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노회찬, 심상정도 업그레이드 되고, 유시민도 저항세력을 극복할 수 있고, 정동영 손학규도 '마의 30%'를 넘을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지금까지 진보언론, 시민사회에서 떠들던 것보다는 제법 그럴듯한 생각을 풀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런 주장은 '파격적인'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뿐, 대개의 시각은 민주당중심이 아닌 다른 방식의 야권재편을 뜬구름잡듯 말하다가, 결국 "민주당이 혁신해야 한다. 안그러면 심판받는다"는 식으로 끝나게 마련입니다.


4. 왜 진보언론, 시민사회는 뜬구름잡는 방식의 야권재편만 이야기하나
민주당이 이기고도 야권재편이야기, 민주당 중심이 아닌 연합정부, 연합정당같은 별로 현실적이지 않고, 소수정당에게 그에 걸맞지 않은 과도한 역할과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은, 민주당=호남당이라는 등식을 진보언론과 시민사회가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호남당이기 때문에 도대체 지금의 민주당가지고는 뭘 해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지역말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인물도 정책도 정체성도 없기 때문에 이런 정당은 사라져야 하는데, 관성적으로 2번찍는 유권자들 때문에 겨우겨우 연명하는 식물정당 민주당 중심으로는 야권재편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죠.

그렇기 때문에, 송영길, 이광재, 안희정이 당선되어도 이것은 오로지 야권연대의 힘이고, mb심판의 선거성격때문이지, 민주당은 별로 한 역할이 없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됩니다. 유시민이 완전한 야권연대를 이루고, 민주당중심이 아닌 유시민과 참여당 중심의 야권연대임에도 불구하고 낙선한 것에 대해서는 굳이 더 이야기하지 않거나, 민주당 탓을 해버립니다.


5. 선거에서 나타난 일반 국민들의 표심을 어떻게 봐야하나
관성적으로 2번찍는 유권자든, 이번에 한번 민주당 후보, 혹은 야권연대후보를 밀어본 유권자이든간에,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은 현실적으로 제1야당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금의 민주당을 "야당의 대표"로 생각한다고 보면 됩니다. 민주당 내부 혹은 민주개혁세력 내부의 권력투쟁과정에서의 이런저런 사정, 진보와 개혁세력간의 이런저런 내부노선차이, 개혁세력의 정치인들간의 정치적인 친소관계 등등에 대해서 이런저런 평가를 해서 어떤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여당인 한나라당과 mb정부가 너무 건방지고 막나간다, 견제가 필요하다, 야당인 민주당이 있다, 민주당에서 젊고 괜찮아보이는 후보가 나왔다, 쟤를 찍어야지"

이렇게 투표한 것입니다.

즉, 개혁세력 내부만 놓고 보면, 일반 국민들은 민주당과 친노를 구별하지 않고, 호남이고 영남이고 충청이고 이런 것은 부차적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친노세력이라는 것은 민주당 내에 있는 정치세력정도로 간주하고, 민주당과 친노후보에게 표를 던졌고, 진보개혁세력을 놓고 보면, mb정부에 대한 반대투표를 함에 있어서, 복잡한 노선차이,를 두고 갈등하기 보다는, 비슷비슷한 정책을 내놓는 야권후보중에 더 큰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입니다.

친노와 민주당을 구별짓고, 전통적인 야권세력이니 신진 야권세력이니 하면서 야권지지층을 구별짓고, 내놓는 정책은 거의 대동소이한데 내부의 철학적인 차이 운운하면서 개혁과 진보를 굳이 구분하면서 야권을 바라보는 좀 많이 공부했다는 진보언론, 시민사회의 시각과 일반국민들의 시각이 다른 것입니다.


6. 앞으로 어떻게 야권재편이 논의되어야 하나
정치지도자 몇명이서 정치권을 재편하고 이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심지어 다수 정치인들과 시민사회와 언론이 주도했던 구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도 결국 도로 민주당으로 통합되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는 별로 관계없이, 진보언론과 시민사회 일부의 뜻대로 야권재편을 논의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현실 정치에서 어떠한 민주적인 정당성을 찾기 어려운 진보언론과 시민사회 일부가, 국민들의 한표 한표가 더해져서 건설되어 있는 현재의 야권정당체제를 재편하려는 시도는 굉장히 비민주적이고 유사 엘리트주의적인 행태입니다.

이번에 민주당의 어떤후보들에게 표를 던진 지지층을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 신진 야권 지지층, 진보정당 지지층, 호남지역주의자, 노빠'로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아니, 말을 바꿔서, 누가 누구한테 감히 "넌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군" 혹은 "넌 신진 야권 지지자구나", "넌 호남지역주의자야" "넌 노빠야" 라고 라벨링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얻어야하는 교훈은 별개 아닙니다.

야권연대? 단일화? 연합정부?

이런게 아닙니다. 정당은 정당답게,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자신이 표를 얻고자 하는 표밭에서 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시민은 "도지사 선거는 공중전"이라고 말하면서, 경기도지사후보로 나와놓고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서 경기도 이익만 생각할 수 없다"를 달고 다니다가 결국 떨어졌습니다. 지지자들에게는 간지나보이고, 소신있어 보였겠지만,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온 사람이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을 미디어에 뿌리고 다니면서 결국 졌습니다.

송영길, 이광재, 안희정은 모두 자신의 지역 내에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송영길은 서울시장, 당대표를 기웃거리다가 손학규 등 당 지도부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지역에서 터를 닦아서 더 큰 꿈을 꾸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송영길은 철저하고 안상수 8년 시정에 대한 비판과 나름의 대안제시를 하면서, 인천시장선거를 인천의 송영길의 선거로 만들었습니다. 이광재는 말할 것도 없고, 안희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무슨 대한민국, 정권심판같은 이야기보다는 강원도와 충청남도에 집중한 것입니다.

야권단일후보, 야권연대같은 것은, 저렇게 표밭에서 구르는 정치인들의 성장에 보충제같은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근육을 만들 때 아무리 보충제를 먹어도, 운동하지 않으면 근육이 붙지 않죠. 오히려 몸만 이상해집니다.


야권재편에 대해서 어떤 논의를 해야하나? 별로 논의할게 없습니다. <만들어진 현실>(박상훈 저)이라는 책에서도 이런 내용의 말을 합니다. "지역주의적인 투표행태가 힘을 못쓰는 경우는, 선거에서 이슈가 분명하고 인물이 뚜렷할 때이다, 즉 이슈를 분명하고 내세우고 좋은 인물을 내세우면 민주개혁세력은 승리할 수 있다"

일부 정치인 중심, 언론, 시민사회 중심의 야권재편 논의는, 그 논의가 더해질수록 일반 국민들에게는 염증만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왜냐면, 일반 국민들은 야권재편, 즉 야권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현명합니까,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국민들은 누가 친노고, 친노중에 누가 무슨 당을 만들었고, 무상급식을 함에 있어서 개혁정당과 진보정당의 철학적인 차이가 어떻게 되고, 누가 몇년도에 무슨 투쟁에서 뭘 했고, 야권 단일화 규칙이 어떻고, 연합정부 구성에 있어서 협의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등 부차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표를 행사할 때, 내가 준 이 표, 우리가 준 우리의 표로 당선이 가능한 후보가, 내가 사는 이 지역, 내가 사는 이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하고 투표할 뿐입니다. 정말 현명하죠.


야권재편의 방향, 이런 것은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글쓰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시간많고 할일없는 "인터넷 논객"들이나 좋아할 주제이고, 댓글달고 아고라에서 글쓰고 하는 "인터넷 논객"들을 위한 주제입니다.


진보언론, 시민사회는 이런 식으로 향후 야권에 대한 의제설정을 해서는 곤란합니다. 자신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안대는 이제 그만 풀고, 야권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은 국민들이 선택하도록 냅두고, 야권이 진보개혁적인 정책, 좀 더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는 정책, 그러면서 섬세하고 구체적인 정책, 좀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노선을 확립하도록 와치독 역할을 수행하면 될 일입니다. 그 누구도 진보언론과 시민사회에게는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나서서 국민들이 준 표로 형성된 야권을 재편할 권리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