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올림픽 여자 피겨에서 김연아 선수가 러시아 선수에 밀려 금메달을 따지 못하자 국내 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민들이 분노와 울분을 아직까지 토해내고 있습니다. 정작 김연아는 의연하고 판정에 대해 심판의 몫이라고 쿨하게 대하고 있는데 말이죠.

먼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번 논란과 관련해 잘 정리한 글을 소개하오니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rvtbznum.blog.me/90190031629

이 글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기사들이 주를 이루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이번 논란에서 꼭 알아야할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끄러워 해야 할 일들, 앞으로 우리에게 거꾸로 화가 될 수 있는 우리의 모습들을 되돌아 보기에 좋은 글입니다. 이 문제(광기에 휩싸이는 사회)는 진보/보수, 좌/우를 막론한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내재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번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앞으로 내 평생에 있어 저런 연기를 한국인이 하는 것을 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 점수는 김연아 금메달“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전문가나 심판이 아니고 채점의 룰(스코어링 시스템)을 모르는 일반인 관점에서 본 것이기에 심판이나 채점 기준에 의한 판정은 당연히 다를 것입니다. 김연아의 연기가 그냥 제 눈에 유려하고 아름답고, 음악과 연기가 잘 매칭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눈에 금메달>인 것이죠. 심판은 피겨를 스포츠로 보고 그 기준에 따라 채점을 한 것이고, 저는 그냥 예술의 관점에서 감상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그 결과에 별 연연하지 않았고 제 눈과 귀가 호강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죠. 김연아는 예술을 한 것이고, 러시아 선수(소트니코바)는 스포츠를 한 것이라 생각해 심판의 판정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언론이나 SNS에서 너무 수선을 떨고 심지어는 선동한다는 기분이 들어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하더군요.

저는 김연아나 러시아(소트니코바) 모두 승자이며, 현명하게 경기에 임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연아는 발에 실금이 갈 정도의 부상을 안고 있어 기술적 난이도가 높거나 새로운 기술을 구사할 형편이 되지 못했고, 굳이 김연아 개인 입장에서는 금메달에 연연할 이유도 없어 바뀐 스코어링 시스템에 맞춰 점수를 따는 프로그램으로 출전할 이유가 없었다고 봅니다. 팬들을 위한 보답, 피겨 여제로서의 면모, 선수생활을 끝내는 마지막 무대에서 감동을 연출하는 것이 김연아가 선택한 것이라면 저는 그것이 현명했다고 보고, 또 김연아는 그에 걸맞는  연기와 음악을 선택해 스케이팅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팬들에게 아름다운 연기로 보답해 김연아는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번엔 러시아(소트니코바) 입장에서 볼까요? 러시아는 주최국으로서 성적에 대한 중압감도 있고, 메달 경쟁은 자국 응원을 끌어낼 수 있어 올림픽의 흥행(성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아 금메달 전략에 초점을 맞춰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또 러시아는 아직 올림픽을 서방이나 미국과의 경쟁 관점에서 바라보고, 실제 서방이나 미국은 은근히 러시아를 아래로 보고 있어 이번 올림픽에서 이들 나라보다 앞서고 싶은 욕구가 강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빙상연맹이나 피겨팀(소트니코바)은 철저히 금메달을 따기 위한 맞춤 전략으로 임했을 것으로 보아야지요. 바뀐 스코어링 시스템에 맞춰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준비했을 것이고, 결국 그 전략은 맞아 떨어져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연기를 수행한 소트니코바가 김연아보다 점수를 많이 받았다고 보아야지요. 실제 소트니코바가 김연아보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김연아는 무난한 프로그램 구성이었던 반면, 소트니코바는 김연아에게 역전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 구성으로 도박을 한 것이고, 그것을 프리에서 대체적으로 잘 소화해 내었습니다. 소트니코바 입장에서는 신인임으로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땀으로써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낼 절호의 기회가 되기에 금메달 전략에 맞춰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죠.

러시아(빙상연맹, 피겨팀)와 소트니코바도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그 방향대로 잘 준비했고 실제 결과도 목적한 바대로 나온 것이죠.


김연아는 예술에 방점을, 소트니코바는 스포츠에 맞춰 소치를 준비했고, 김연아나 소트니코바(러시아)는 각자가 준비한 대로 잘 수행했으며 결과도 목적한 대로 나와 만족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은 스포츠 제전이며, 여자 피겨스케이팅도 스포츠의 일종으로 스포츠의 채점 기준에 따라 이번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들이 각자 승자로서 자격이 있고,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격려하고 그들의 연기에 감사하며 모두 승자로 축하해 주면 됩니다.

문제는 금메달에 목매다는 우리 국민들이 아닌가 합니다. 김연아의 수준 높은 연기를 잘 즐긴 것으로 만족하고, 비록 심판 점수에 불만이 있더라도 홈 어드벤티지라 가볍게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기어코 심판과 러시아를 물고 늘어져 IOC에 청원을 하는 사태까지 몰고 갑니다. 차분히 객관적 입장에 서서 되돌아보고, 주변의 다른 입장이나 관점에서 다시 보기를 하는 여유가 없습니다. 나의 주관적 판단이 옳고 선하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에 반하는 결정이나 판정이 나올 경우 불만을 표출하는 것을 넘어 그 결과를 뒤바꾸려는 집단 행동을 하는 것이죠. 이런 행동들은 2002년 이후 나타난 집단 응원문화와 촛불집회에서 보여지기 시작하다 해를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 그 광기가 일상화 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까지 합니다. 지난 18대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이나 최근의 김용판, 이석기의 1심 판결에 대해 승복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자기 판단에 대한 오만과 독선, 자기 판단의 객관화 노력 부족, 주변의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의 이해하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판단에 반하는 결과에 대해 수용하지 못하는 태도는 급기야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결과나 스포츠 룰에 의한 판정결과를 물리력으로 혹은 대중선동으로 뒤집으려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김연아의 예술연기에 호감을 표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소트니코바의 기술적 난이도에 점수를 더 주기도 하는데, 저는 이 모두가 존중받고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을 따기 위한 집념과 전략을 과소평가하거나 그 의도를 폄하해서도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연아가 메달 경쟁에 연연하지 않고 예술적 연기를 펼친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까지는 좋은데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에 대한 집념이 으뜸 경쟁에만 매몰된 천박한 사고의 결과물인 양 비하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연아가 지금의 예술적 연기를 펼치고 금메달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지금의 소트니코바와 같이 도전정신과 열정으로 1등이, 최고가 되고자 하는 치열한 경쟁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김연아가 소트니코바와 같이 세계무대에서 금메달을 따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그런 김연아를 응원했습니다. 또 김연아가 금메달을 딸 때 대견해 하고 감격해 했었지요. 

우리는 김연아가 지난 수년간 지금의 소트니코바와 같이 노력한 결과로 인해 이젠 메달 경쟁의 초조함을 잊고 우아한 피겨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의 환호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것 같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당연한 환호였고 우리에게 힘을 주었듯이, 4년년 뱅쿠버 올림픽 피겨에서의 금메달에 대한 우리의 바램이 지금 러시아나 소트니코바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고, 김연아의 금메달이 피겨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면, 오늘의 김연아의 피겨는 우리가 예술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시대나 상황에 맞게 한 때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성숙한 시기에는 감상과 감동의 여유를 느끼면 되는 것이죠. 저는 김연아에게 고마웠던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피겨를 점수로 매기는 스포츠에서 배경음악이 귀에 들어오고 선율을 따라 흐르는 몸동작에서 유려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예술의 관점으로 나아가게 해 준 것에 감사합니다. 과거에는 김연아가 실수할까봐, 점수가 덜 나올까봐, 상대 선수가 더 잘할까봐 점수의 기준이 되는 부분에 온통 신경이 쓰여 피겨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습니다.

김연아는 예술의 경지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그와 함께 가지를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번 논란으로 선진국 중계방송의 김연아 연기에 대한 멘트들이 우리에게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김연아가 금메달감이고 소트니코바는 편파적인 점수를 받았다는 해외의 반응을 소개하려 해외중계방송내용이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많이 소개되었지요. 김연아의 유려한 몸동작에 원더풀을 외치고 스텝 시퀀스를 나비에 비유하며 점프와 착지의 동작도 시적으로 표현하는 그야말로 예술적 멘트들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우리 중계진의 해설은 악셀에서 롱 에지 여부, 착지에서의 방향 등 철저히 점수를 의식한 멘트들로 오히려 시청자가 몰입해서 선수의 연기를 전체적으로 감상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국민들도 우리 중계진의 해설과 같이 그런 관점에서, 또 금메달 경쟁을 의식해 피겨를 보지 않았을까요?

이젠 우리도 올림픽을, 스포츠를, 피겨를 여유있게 관전할 정도는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여유는 상대에게 관용을, 판정에 대한 이해를, 순위보다는 선수들의 열정이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에게 감동의 폭을 넓혀주게 될 것입니다.

김연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