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바둑을 두면 인생을 알 수 있다고도 한다.

그만큼 변화무쌍하면서도,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 닮았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하는 것일 게다. 한번 바둑에서 졌다고 영원히 지는 것은 아니다. 그 누가 말했듯 승패는 병가지상사요, 인생도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그대로 쓰러지라는 법은 없다. 이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어려서 시골 동네에 갑자기 바둑바람이 불었다. 어른들 청년에서 결혼한 중.장년까지 있었으니까 - 틈에 꼽사리 껴서 열심히 바둑을 두었다. 국민학교 5학년, 6학년짜리가 마침내 동네 바둑계를 평정했다. 그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머리, 인내력, 실전 경험?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의 도움일는지도 모른다.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바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웅장한 세력 바둑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실리를 추구하며 세밀한 바둑을 둔다. 어떻게 두든 한판 승부를 겨루는 것이지만 바둑을 바라보는 눈은 다를 수 있고, 제각각 다르고 수준마다 다르기도 하다. 그간의 바둑계만 돌아보아도, 당시에는, 한번 승자는 영원한 승자일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세계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던 사람들도 어느덧 세월에 밀려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고야 만다. 이것이 인간사의 흐름인 것 같다. 영원한 것은 없다.

 

어떤 사물이든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어렵고, 또한 한 때의 주류가 영원한 주류는 아닌 것이다. 정치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둑을 두는 원칙만큼은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번 갈아가며 둔다든가, 호선일 경우 선수로 둘 때 공제하는 집의 수라든가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변하더라도 지극히 합리적으로 과정을 거쳐 변하게 된다.

 

실력에 따라서 판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다르다. 일정 수준에 머무를 때는 모르지만, 잘 두려면 상수에게 배우든가 정석 책을 보며 배우든가 해야만 한다. 따로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아 그판이 그판이다. 초등학교 때 7~8급을 두고는 한동안 그 실력 그대로였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바둑 책을 두면서 배워서 겨우 2~3급 두게 되었다. 조금 더 배워서 아마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바둑이 시답잖아져서 그만 두었다.

 

바둑을 두다 보면 본인이 둘 때는 잘 보이지 않는데 옆에서 보면 잘 보인다.

그래서 훈수를 두게 되고, 훈수를 두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게 된다. 수가 빤히 보이는데도 고민을 하고 엉뚱한 수를 두는 것을 보면 답답하니깐 말이다. 훈수를 하다가 비난도 받고, 또 잘못 훈수하여 욕도 먹기도 한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정치 혹은 선거를 보면 훈수가 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누가 있어 정치를 제대로 보고, 훈수를 잘 둘 수 있겠는가.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은 한판 바둑과 훈수 두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제 생각대로만 정치를 해석하고, 훈수 두는 것도 자신의 실력만큼만 하는 것이다. 정치판에 뛰어들어보지도 않고, 정치를 제대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그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마다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세태와 세월에 따라 변하고 바뀌는 정치판이다. 

어떤 한 상황이 절대적으로 옳다 혹은 그르다 가릴 수는 없다. 지난 시절의 정치적 상황에 따른 판단을 기준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할 수는 없다. 역사라는 게 바라보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이랄까 시각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둑을 두는 원칙과 같이 시대를 관통하여 변하지 않는 원리 원칙을 찾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가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같은 것이다.

 

정치는 바로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절대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제인 것이다. 정치가 어떤 특정 계층이나 정당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를 위한 아니 전부를 위한 정치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도 마땅히 그랬어야만 하는 것이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 시대적 상황이 그렇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이를 기준으로 그 시대의 정치를 비판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정치는 이점에서 분명 올바른 정치상을 갖지 못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지배와 통치적 수단으로 정치를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국민들을 탄압하고 통제하고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것이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해도 비판 받아 마땅하고 단죄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이 우리가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한 과거에도 그랬어야 마땅했고, 앞으로도 계속 변함없이 추구해야만 하는 대전제인 것이다. 비록 과거에 우리가 생각이 짧아 이런 정치관을 갖지 못했더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국민을 통치하고 규제하고 다스릴 대상으로 인식하는 무리들이 있다.

그들이 바른 정치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자들이 있다면 당시의 특별한 시대적 상황을 떠나서 그들에게 죄과를 물어야만 한다.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한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는 시대나 정치체제를 따지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국민들을 잘 섬기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먼 과거 역사로 돌아가서 살펴본다고 해도, 군주제하에서일망정 백성 혹은 국민들을 잘 모셔야만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즉 백성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할 의무를 지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백성 혹은 국민을 다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어떤 정치제도하에서 모든 백성이 다 인간의 존엄한 권리를 누리면 살 수 있을까? 어떤 정치제도가 가장 바람직한 제도일까? 그것은 바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장일치제로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제제가 가장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체제를 만장일치제 직접 민주정치라고 하자.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참여하지 않아서 겪게 되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제안이 있었다고 하자. 그런 안이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어 통과가 될 수 있을까? 모두가 한 표를 행사할 권리가 있다면 만장일치제 하에서는 절대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제안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다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흐른다고 해도 충분한 토의와 타협과 양보를 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이 진정 모든 국민을 위한 정치행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렇게 할 수가 있을까? 빠른 결정과 신속한 합의를 위해서는 이렇듯 완전한 정치행위를 점점 약화시켜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정치 규범이랄까 원칙은 바로 이런 정신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라도 잊지 말아야만 하는 것이다. , 이런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대전제를 생각하면서 오늘날의 정치상황을 비판하고 판단해보자.

 

 

 

1.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어떤 정치 세력인가?

 

우리는 지금 불행한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이 정부 들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자유민주정치제도가 말살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한 개인의 관점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때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저들은 결코 바른 정치를 펼치는 것이 아니다. 저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지 않다. 아무리 정당이 정권 창출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켜야 할 테두리 혹은 토대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권력이 국민들에게서 나오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국가의 존립과 유지라는 기본적 토대 하에만 정당한 것이다. 국민을 억압하고 탄압하고 통제하려는 세력은 절대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땅히 탄핵받거나, 구축되어야만 한다. 그런 권력에 대해서 국민은 새로운 선거에서 투표에 의해서 위임했던 권력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자들은 이런 저들의 반민주적인 행위를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한다. 그런 주제에 여론을 호도하려 하고 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철에서 우연이 젊은 남녀가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들이 크게 떠들며 주고 받은 대화니까 엿들었다기 보단 차라리 소음처럼 들렸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젊은 남자가 그보다 약간 더 젊은 여성분에게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서 어느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이 이명박씨를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젊은 사람이 참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듣고 있기가 거북할 정도였다. 내 후배나 아는 사람이라면 정신차리라고 욕해주고 싶었다. 젊은 사람이 참 일찍부터 너무나 성공욕, 출세욕에 물들어 있다 싶었다. 그 때 혹시나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었다. 만일 그 사람의 생각이 젊은이들의 보편적인 정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르지 않아 정말 끔찍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었다.

이명박씨가 온갖 어려움을 물리치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나라는 끔직한 난국에 처하게 되고 말았다. 어렵게 어렵게 자유 민주 투사 선배들이 세워놓은 민주주의 토대가 뿌리 채 흔들리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타이틀을 뒤집어 쓸 수가 없다. 절대.

수구 꼴통이라는 말만이 어울릴 뿐이다. 극악무도한 자들일 뿐이다. 저들은 힘이 세어지자 숨은 발톱을 드러내고 대다수 국민들을 인정사정 두지 않고 할퀴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감추고 있던 숨은 마각이 마침내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는 무뢰배들이다. 그들은 원리원칙과 상식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불법.무법.탈법자들이다. 당리당략 혹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과감하게 넘어 꼭 지켜야 할 경계마저 넘어버린 자들이다. 국민들의 자유와 민주를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깡패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합리, 이성, 논리가 전무하다. 개념이 전혀 없다. 민주라는, 정치라는 것에 대해 전혀 개념이 없는 무뇌아들이다. 우리가 폐기해야 할 모든 구시대의 모든 더러운 모습을 한 괴물의 모습이다. 이 대한민국 땅에서 영원히 추방시켜야 할 타락한 인간들이다. 그런 그들은 모습을 젊은이들이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진면목을 알았다 해도, 과연 그렇게 입술이 닳도록 칭찬할 수 있었을까.

 

이번에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저들이 계속 국민의 뜻을 거스른다면 모든 권력을 되찾아오겠다는 엄중한 경고인 것이다. 본래 국민들의 것이었으므로. 만일 한나라당이 계속 이명박 대통령에게 끌려다녀서 계속 삼권분립의 원칙이 훼손당하고 끝끝내 다수당의 횡포를 부리며 국민들을 탄압하고 자유와 민주를 억압한다면 당 자체의 존립기반을 잃을 지도 모른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깊이 깊이 반성을 해야만 한다.

 

 

<버릴 수 밖에 없는 한나라당 카드 > 

 

 

2. 무현의 정신의 부활인가, 민주당의 약진인가.

 

많은 사람들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잘 모르고 있었다.

다 같이 잘 사는 사람 사는 세상이란 지극히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자는 그의 제안을 우리는 거부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지만 구태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 경험의 한계 내에서만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일 뿐이다.

원칙과 상식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추구했던 것은 이렇게 간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그는 최고 권력의 자리에 있을 때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했다. 모든 권력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왜냐하면 원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에 통제받고, 자유를 속박당하는 것에 익숙했던 국민들은 그것을 받기를 거부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두려웠던 것이다.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와 진정으로 함께 했던 가까운 이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런 노무현 정신을,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만 보고 판단했다.

자유와 민주라는 기준으로 보지 않고 각자 자신들의 잣대로만 보았을 뿐이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대통령 노무현을 판단할 때조차 자신들의 작은 눈으로만 바라 보았을 뿐이다. 함께 했던 민주당조차도 그를 잘 몰랐다. 진보.개혁 세력들도 자신들의 관점으로만 노무현을 바라보았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을 노무현을 달리 볼 수 없었다. 동일한 잣대로만 보았던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일개 당수의 신분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의 역할은 하나의 사상과 대의명분만을 가지고는 그 역할을 담당할 수가 없는 자리이다. 나도 그의 FTA 추진과 이라크 파병을 절대 반대했다. 그런데 그것은 일개 국민으로서의 관점에서 가질 수 있는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내 생각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점만을 고수하면서 노무현은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 우리는 어떤 사물을 다른 대상과 (혹은 조건이나 상황과) 비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가 없다. 자유라는 개념을 다른 개념과 대비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는 구속이나 억압과 대비하여 경험할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독재를 경험하지 않고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정상 상태는 비정상 상태를 경험하지 않고는 제 가치를 알 수가 없다. 거품 경제를 경험해 보지 않고 튼튼한 안정된 경제의 가치를 알 수가 없다. 부동산 가격거품을 통해 고통을 경험해보아야만 안정적인 적절한 가격을 가진 부동산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이라는 가치는 이명박이라는 경험을 통해서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진정한 가치는 터무니 없는 한나라당과 대비하여 경험하지 않고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라 똑 같은 보수당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이다. 민주당 쪽 인사들은 한나라당 패거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적어도 보편 인간 존재를 인정하고, 인간의 존귀함을 아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들이다. 반면 한나라당 쪽 인간들은 저희들끼리는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비뚤어진 인간들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가 인간 존재로서 추구해야 할 당연한 나아가 숭고한 가치는 한나라당 쪽 인간들에게는 전혀 없다. 그들은 우리가 버리고 포기해야 할 모든 악한 것들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용도폐기 처분해야 할 패악의 전형일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국민들이 민주당을 선택한 것은 민주당이 그만큼 훌륭해서였을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민주당이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비로소 노무현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했기 때문에 대안으로 민주당을 찾은 것이다. 이명박의 독재를 경험하고 나니 노무현이 지향했던 참민주주의의 가치를 이제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생명까지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민주당을 선택한 것이다. 극악무도한 언론의 세뇌와 사주로 노무현을 잘못 알고 그 반동적인 심리에 의해 이명박을 선택했듯, 그 동안 이명박 정권의 독재에 시달리고 보니 반사적으로 민주당에 기대게 된 것이다. 이제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그것은 아무렇게나 방치할 경우 독재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 국민이 이제야말로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이제 민주당은 그런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가열차게 제대로 대오를 정렬해야만 한다.

 

 

<노무현이 추구한 것은 바로 참 자유민주주의  그것이었다!>

 

 

 

<역사의 거인마저 쓰러뜨린 역류의 민주주의 역사>

 

 

 

3. 누구의 승리인가? 국민들의 승리인가, 민주당의 승리인가?

 

그 동안 국민도, 민주당도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잘 몰랐다.

우리는 지역 이기주의가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선거가 국가와 국민을 망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할 부모의 품과 같은 것이다. 참 민주주의는 자기들만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 토론과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인내하면서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정치적 결정이든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지시와 무조건적인 복종은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는 유리한 반면 다른 쪽엔 피해와 손해를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공존 공생이 불가능한 것이다. 사회의 존립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원 합의에 이르는 정신을 배우고 지키는 것이 이 중요하다. 비록 대통령을 집적 선출한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제하에 독재 가능성과 국민의 대리인을 뽑는 대의민주주의 단점을 깊이깊이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이 제도들은 본래 차선이고 하나의 대안 일뿐이지 절대선이라거나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삼권분립으로 견제 받고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제는 독재로 흐를 수 있는 무척이나 위험한 정치제도인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 선출된 국회의원에 의해 입법권을 갖게 되는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대통령에게 복종할 때 견제기능은 무력화되고 자유민주주의제도는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목격하고 있다. 거대여당 한나라당이 대통령을 적절하게 견제하기는커녕 시녀로 전락하여 불법, 탈법을 일삼고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무시하고 힘으로 대화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비록 민주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일당 독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국민들이 자기 보호 본능에서 민주당 품속으로 뛰어들어갔지만 우리는 아직 자유민주주의제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워야만 한다. 지금의 선거 상황은 국민들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지만 상황이 진정한 승리자일 뿐이다.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를 경험케 한 상황이 우리가 다시 자유민주주의라는 본질 가치를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국민도 더욱 통렬하게 반성을 하고, 민주당도 이제야말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실현과 제도의 발전을 위해 깊이 반성하고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황소가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격이다.

 

 

 

 <민주당은 차선의 대안이었을 뿐이다!>

 

 

 

4.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만 하는가.

 

혹자들은 이번 선거로 민주당이 승리한 줄 착각하고 있다.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만 한다. 민주당은 전략적으로 싸우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폭력에 온 힘으로 맞서 싸워야 했는데 슬금슬금 도망만 쳤다. 한나라당의 터무니 없는 정치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렸고, 그렇다고 대안 정책을 제대로 개발하지도 못했다. 마치 남일인 양 수수방관만 했다. 부자감세, 각종 성장 일변도 정책, 변칙적인 4대강 공사, 불법적인 세종시 법 수정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막지 못했고, 하다못해 제대로 된 방어 혹은 공격 논리하나 만들지 못했다. 한마디로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태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국민들의 힘을 얻었으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저들의 비민주적, 폭력적인 정치행위를 강력히 제지해야만 한다.

 

분배 없는 성장은 착취다.

소득 불평등을 낳는 분배 없는 성장은 소수 부자에겐 과잉이며, 과욕인 반면 대다수 서민에겐 크나큰 고통이다. 한쪽이 생존을 위협받아선 공존을 할 수가 없다. 분배 없는 성장은 한마디로 국민들을 착취하는 것이며 국가자원의 낭비이며, 국력의 손실이다. 절대 다수 국민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절대 막아야만 한다.

 

 

도정일 교수,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

http://blog.daum.net/myinglife/15966523 

 

 

행복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분배 vs 성장

http://blog.yes24.com/document/2303069

 

 

혼자만 잘살면 무슨 소용인겨?

http://blog.yes24.com/document/2326198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정당이 정권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당리당략을 추구하더라고 국민이라는 권력과 국가라는 경계는 반드시 존중하고 지켜야만 할 기본이자 원칙인 것이다. 국민에게 진정으로 봉사해야만 힘을 얻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만 한다. 이번에 국민의 뜻을 받들지 않는다면 헌신짝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만일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면 크나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마땅히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만 한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정치인들 또한 국민이라는 점이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가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이다.

 

혹자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친노의 부활이다, 아니다 민주당의 부활이다 갑론을박하고 있다. 분명히 형식에 있어서는 친노 인사가 부활한 것이지만, 그 변화의 내용은 노무현 정신의 되살림이다. 그들이 비록 민주당의 탈을 쓰고 있을지언정 민주당이 부활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친노 세력 자체의 부활도 아니다. 그것은 노무현 정신이 다시금 살아숨쉬게 된 것이다. 참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고취이자,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 삶을 눌릴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진보인 것이다.

 

부활한 것은 친노 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노무현이 뿌린 민주의 씨앗일 뿐이다.

안희정, 이광재, 김두관, 송영길, 한명숙, 유시민 등은 민주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자들이다. 한마디로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시민인 것이다. 그들은 토론하고 협의하고 타협하고 합의할 수 있는 민주적인 정신을 가진 자들이다. 친노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정신을 배운 자들이 민주사회의 정치주체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인간 노무현은 죽고, 노무현 정신이 싹튼 것이다. 이제 비로소 오랜 고통 속에서 그가 추구했던 정신이 꽃피어나게 된 것이다.

 

잊자, 아니 기억하자 노무현 정신을.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야 한다.

 

 

 

<우리가 지키고 배워야 하는 것은 그가 추구한 자유민주주의 정신이다!>

 

 

 

 

5. 서울시장과 경기도 지사를 놓쳤다고 안타까워 말자.

 

지난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큰 실수를 했다.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다.

무릇 대통령은 당리당략을 떠나서 국민을 생각하는 바른 대통령관을 가진 자여야만 한다. 국민들의 어려움을 측은히 여기고 아픔을 어루만질 줄 아는 진정 인간다운 인물이어야만 한다. 어떤 경우에도 국민을 무시하고 핍박하는 불의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야말로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하려고 고뇌하고 고민하고 노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독도 혹은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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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수를 통해 우리는 독재를 경험했고,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두 번의 실수를 저질렀다.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추구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선출한 데 이어 국민들은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거대여당으로 만들어주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견제할 수 없는 절대권력이 된 것이다. 비유하자면, 천리마를 주고, 청룡언월도까지 넘겨준 셈이다. 그 장수가 어떤 장수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용맹한 장군이 적군을 향해 돌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 칼을 휘두르게 된 것이다. 총선에서 견제 심리가 바로 작동해 거대 야당을 만들어 주었더라면 결코 오늘날과 같이 어려운 정치 상황은 처하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국민들은 참으로 현명했다.

만일 이번에 서울 시장과 경기도 지사까지 다 민주당에서 차지하게 되었다면 오히려 화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민주당이 지나치게 만족하고 안주하거나, 크게 착각하여 다음의 발전적 행보를 게을리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나라당:4, 민주당:9, 자유선진당:1, 무소속: 2>의 구조하에서는 민주당이 크게 자만할 수도 있고, 한나라당이 자포자기하여 큰 무리수를 두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나라당:6, 민주당:7, 자유선진당;1, 무소속:2>이라는 견제와 균형 구조 속에서 한나라당은 통렬하게 반성할 기회를 얻고, 민주당은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확실한 토대를 쌓을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된 것이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는 발목에 쇠고랑을 찬 장수 꼴에 지나지 않는다. 시의회와 도의회가 점령당해서야 무엇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겠는가. 한 마디로 포로와 다름이 없다. 국민은 저들에게 명분은 주고 실리를 챙긴 것이다. 오세훈김문수는 이빨 빠진 호랑이 혹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인질이다. 더 이상 무서워할 존재들이 아니다. 묘수도 이런 묘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힌 수를 생각해냈는지 도저히 추측이 불가하다.

 

서울 시장의 경우, 엄한 노회찬 탓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가만히 살펴보건데, 한명숙과 유시민은 2%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당선이 되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친노의 전체의 부활이라고 얼마나 기세등등하겠는가. 혹은 얼마나 자만에 빠지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패함으로써 통렬히 반성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더 준비해야만 하는가를 깊이 고민해 보아야만 한다. 만일 그들이 대권을 위해서 혹은 친노의 부활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일어설 힘을 키워야 한다. 그 정도로도 충분히 인정을 받은 것이다. 국민들이 인정을 해주고, 적과 우군에게도 싸울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한번에 이 정도를 얻었으면 됐지 더 바란다면 욕심이 아닐까? 셋이 부활했고, 둘은 인정을 받았다. 아주 좋은 결과이다.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의 단일화 협력과 노회찬의 완주도 다 대의명분이 있는 일이다.

심상정, 그녀는 아름다운 결정을 했다. 결과적으로 보아, 얼마나 잘된 일인가. 욕하는 사람들의 잘못이긴 하지만 노회찬이 얼마나 뭇매를 맞고 있는가. 노회찬은 자기 정치 소신을 갖고 바른 길을 가는데도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무릇 큰 정치지도자들은 대의명분을 중시해야만 한다. 야권 단일화, MB 전선을 만들기 위한 심상정의 양보, 얼마나 멋진 대의명분인가. 노회찬, 그 또한 자신들의 정당의 목적을 위해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딱 그 만큼씩이다. 모두 격려와 칭찬이 필요할 뿐이다.

 

아울러 이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정치권 주변의 권력은 제 본분에 충실할 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언론은 권력자들의 감시와 견제 기능에 충실해야만 한다. 언론이 제 분수를 잃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언론은 스스로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자마자 언론은 노예근성을 보였다. 스스로 독재권력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발바닥을 핥는 꼴이 되고 말았다. 형평성을 잃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쳤다. 언론은 정론직필의 사명만 있을 뿐이다. 정치권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되어서는 결국 독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말 것이다. 사실과 진실을 전달하지 않고 국민을 기만하고 욕보이는 언론기관들 역시 추방해야만 할 구태의 한 축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 또한 국민의 위해 봉사하는 국민의 머슴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검찰이 부패의 온상이 되고 정치권과 검은 커넥션을 유지하고 그들에게 봉사한다면 결코 존립을 인정받을 수 없다. 검찰은 민주주의 보호자가 되어야지 민주주의의 훼방꾼이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것은 너무나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비리 정치인과 부정부패한 관료들을 감시하는 충직한 사냥개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6. (민주주의) 사회는 공생을 전제로 한다.

 

사회를 이루는 대전제는 공생이고 상생이다.

서로 함께 살 수 있을 때에만 모든 구성원이 그 사회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힘이 약한 사람들도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이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라는 한 울타리를 가지고 있는 사회가 성립되는 대 전제조건인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 사회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인 것이다. 대통령의 가장 큰 임무가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

 

선거에 의해 정치대리인을 뽑는 선거제도의 한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자. 어떤 선거든 구성원 모두가 참석하는 선거는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율이 높았다고 해도 겨우 유권자의 54.5%밖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순화해 보면, 구성원 전체 중 반정도 밖에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그 투표 참여자들 중에서 다수표를 받은 것으로 큰 정치권력을 위임받게 되는 것이다. 반의반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지받았을 뿐이다. 100명의 구성원이 있다면 겨우 25명의 지지를 받은 것 뿐이다. 이렇게 미약한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겨우 그런 정도로 약간의 위임된 힘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아주 겸손되이 위임권력을 행사해야만 하는 것이다.

 

50명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들도 반 강제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투표권 행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런 권력의 행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혹시 불필요하게 자유를 제한하거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고 조심하고 최소한의 권한 내에서만 행사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최대 다수의 이익에 부합되는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손해를 보는 사람들의 양해를 구하거나, 적어도 양보를 받거나 또는 최소한의 손실을 보상해주고나서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합리적인 자유민주주의 정신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우리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권리를 침해 당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최소한의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울부짖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지 않았다. 특정 계층을 위한 정치를 하면서 국민들을 속여왔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마치 본래 제 것인 양 착각을 하고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 왔다. 권력을 위임 받은 이후 부자들과 기업들만 편드는 정치만을 해왔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알게 모르게 억압해왔다. 이런 명명백백한 사실을 짐짓 모른 채 한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민주주의는 이렇듯 불완전한 제도일 뿐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것을 어떻게 잘 활용할까를 연구하고 협력하고 합심할 때나 겨우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이점을 국민 모두가 잘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적절한 감시와 견제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다른 정치형태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 체제를 잘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제대로 살펴보고 원인을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지 무조건 다른 정치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저절로 제도가 잘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배우고 연습하고 훈련해야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제도이다. 그 취지와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현실사회에서 구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학교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가르치고 배워야만 한다.

 

 

한국은 직접민주주의 할 수 있는 유력한 국가 - , 얼마나 가슴벅차냐!

http://blog.daum.net/myinglife/15966535

 

 

국민 모두를 위해서

우리 모두가 정신 바짝 차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잘 지켜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늘 깨어있는 민주 시민의식을 갖고 살아야만 한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그가 추구했던 자유민주주의 정신인 것이다.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국민 모두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아름답게 꽃피어나길 간절히 기원한다.

 

 

 

 

2010. 6. 4.     17:20

 

 

 

 

깨어있는 민주시민의식을 고취하자고 외치는

고서 김선욱

 

 

 

 

 

[출처] :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42&mode=read&premode=list&page=1&ftype=&fval=&backdepth=&seq=801&num=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