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본성(nature)이냐 양육(nurture)이냐,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생물학적이냐 문화적이냐, 유전자냐 환경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된 이분법이라고 핀잔을 준다. 진화 심리학자들 중에도 그런 잘못된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엉터리 이분법으로 논쟁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위에서 언급한 이분법은 의미가 있다. 이 글에서는 어떤 이분법이 잘못된 것이고 어떤 이분법이 의미가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유전율(heritability)

 

유전율은 개체군(population) 내의 변이 중 어느 정도가 선천적인 차이로 설명되고 어느 정도가 후천적인 차이로 설명되는지를 따지는 개념이다. 이런 면에서 선천성/후천성 이분법이다. 유전율 개념은 의미가 있다.

 

문제는 통계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유전율 개념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형의 유전율이 60%라는 이야기는 유전자가 그 표현형의 60%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전율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바탕에 있는 통계학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유전율을 따지려면 우선 개체군을 먼저 정해야 한다. 유전율은 항상 어떤 개체군의 유전율이다. 즉 개체군에 따라 유전율이 다를 수도 있다. 예컨대 개체군 내 빈부격차가 극심해서 어떤 사람들은 잘 먹고 어떤 사람들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라면 키의 유전율이 다른 개체군보다 낮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환경의 차이가 키에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율은 어떤 개체군의 개체들 사이의 유전자 변이 때문에 생기는 표현형의 변이의 비율이다.

Heritability is the proportion of phenotypic variation in a population that is attributable to genetic variation among individuals.

http://en.wikipedia.org/wiki/Heritability

 

위의 정의에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비유전자 유전(non-genetic inheritance)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gene유전자, inheritance유전으로 번역해서 둘 사이의 차이가 흐려지는데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DNARNA를 통하지 않는 유전의 메커니즘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유전율 개념이 유전자/환경의 이분법을 그래도 반영한다고 보기 힘들다.

 

 

 

 

 

탄생이라는 기준

 

선천성/후천성 이분법에서 탄생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발달은 자궁 속에서나 밖에서나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탄생을 중시하는 것은 포유류의 편견일 뿐이다.

 

예컨대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것은 자궁 밖에서 벌어지지만 발달 프로그램에 정해진 대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차성징과 폐경의 경우도 그렇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선천성의 개념에 포함시켜도 될 것이다.

 

도덕성의 발달이 태어난 이후에 일어난다는 이유로 도덕성이 몽땅 후천적이며 문화적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이차성징도 후천적이며 문화적이라고 봐야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과 유전자를 동일시하는 경향

 

본성/양육 이분법을 유전자/환경 이분법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성은 오직 유전자만 결정하며 환경은 양육에만 관련된다는 것이다.

 

이런 동일시가 틀렸다는 점은 간단한 사고 실험으로 보여줄 수 있다. 인간 DNA를 진공 속에서 아무리 오래 놔 두어도 성인으로 발달하지 않는다. 인간 유전체(genome)가 인간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자궁 환경과 같은 온갖 환경적 요인들이 필요하다. 선천적 인간 본성에는 유전자와 환경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정보 이론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보자. 인간 본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정보는 어디에서 오나? 본성과 유전자를 동일시하는 사람은 그것이 모두 유전자에서 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유전체의 정보 저장 용량은 별로 크지 않으며 그나마 대부분은 junk DNA.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환경에서 오는 정보도 많이 필요해 보인다.

 

본성/양육 이분법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혼란 때문인 것 같다.

 

 

 

 

 

선천적 메커니즘과 후천적 메커니즘

 

인간의 뇌에는 온갖 회로들이 있다. 나는 그 회로들을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천적 메커니즘임이 확실한 것은 시각 처리 메커니즘이다. 인간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2차원 망막에 맺힌 정보에서 3차원 공간을 추론해낼 줄 안다. 또한 연속적인 스펙트럼에서 3차원 색감(명도, 채도, 색상; 프로그래밍을 배운 사람이라면 RGB를 떠올릴 것이다)을 만들어낼 줄 안다. 완전 색맹인 사람은 1차원 색감으로 보며, 색약인 사람은 2차원 색감으로 보는데 이것은 색상 공부 시간에 졸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인 듯하다. 시각학 교과서에 나오는 착시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한다. 심지어 시각학 전문가도 똑 같이 착시에 빠진다.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은 후천적 메커니즘임이 확실하다. 건반 악기가 없는 문화권에서 자라는 사람에게는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이 없다. 피아노를 따로 배워야 피아노 연주를 위한 회로가 뇌 속에 생긴다.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사람은 뇌의 구조가 바뀐다. 그리고 그들은 악보를 보고 자동적으로 피아노를 친다. 초보자일 때에는 악보와 손가락을 연결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숙달되면 자동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이 움직인다.

 

질투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본성인가 양육인가, 생물학적인 것인가 문화적인 것인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것은 질투 메커니즘이 시각 처리 메커니즘과 비슷하게 발달하는지 아니면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과 비슷하게 발달하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이분법이다.

 

시각 처리 메커니즘은 인간의 숙명이다. 오랜 기간 진화하거나 유전 공학으로 인간 유전자가 많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인간이 4차원 색감을 느끼도록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은 문화적 산물이다. 피아노가 없는 문화권에서는 발달하지 않는다. 만약 질투 메커니즘이 선천적이라면 이것은 숙명이다. 반면 후천적이라면 질투 메커니즘이 없는 문화권의 가능성이 활짝 열린다.

 

 

 

 

 

201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