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참패 그리고 민주당의 승리 나아가 친노 세력의 승리라고 한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의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한나라당의 참패? 맞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명박의 참패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무엇보다 이명박의 정치 역정이 이제 종말점에 이르렀다는 신호이다. 물론 대통령으로서 임기는 마치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정치적 시도를 해볼 가능성은 사라졌다. 새로운 시도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4대강 사업의 계속 추진, 세종시 수정, 내각제/이원집정부제 개헌, 의보 개혁 등이 포함된다. 실상 이명박이 집권 이후 자신의 정치적 구상으로 추진하던 내용들이 모두 미완성인 상태로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번에 승리하면 제대로 한번 밀어봐야지... 이게 이명박의 속셈이었겠지만 이제 이명박이 마음속에 품었던 그 꿈들을 펼칠 기회는 거의 사라졌다.

무리해서 저 사업들을 추진하려고 들면 이명박은 아마 어마어마한 반작용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임기 마칠 때까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반발들을 수습하는 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게 될 것이다. 생기는 것 없이 고생만 직살나게 한다는 얘기이다. 이명박에게 남은 선택은 욕심을 버리고, 겸허하게 남은 임기 잘 관리해서 넘어가는 것밖에 없다.

이명박에게 뼈아픈 것은 단순히 지방선거의 실패가 아니다. 그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명박과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한나라당이 판세를 전혀 읽지 못했고, 자신들의 국정 구상과 관련해 유권자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메커니즘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사실이 이번 선거를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점이 더욱 뼈아프다고 봐야 한다. 촛불 사태 이후 서민정책을 표방하기도 했고, 시장통 찾아다니며 목도리 매주고 오뎅 쳐먹는 생쑈를 했지만 그런 이벤트에 감동한 것은 서민들이 아니라 조중동 기자애들 뿐이었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명박에게 유일하게 남은 정치적 과제가 있다. 그것은 박근혜를 주저앉히고 차기 한나라당 대권후보를 자신이 원하는 인물로 앉히는 것이다. 지방선거 패배로 그 가능성이 물건너갔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것은 이명박의 퇴임 이후를 결정하는 핵심 이슈이기 때문에 이명박으로서도 결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은 아무리 힘이 약해진다 해도 차기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특정인이 잘되게 하기는 어려워도, 그 사람이 못되게 하는 것은 쉽다. 하물며 대통령의 힘이라면야...

또 하나 변수가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지각변동을 의미하는 사건이다. 이명박도 이 변수에 의해 기사회생, 정치권을 자신의 의도대로 완전히 재편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북한의 동향이다.

미국이 천안함을 처리하는 자세를 보면 아무래도 단기간 내에 북한이 붕괴한다는 가정 아래, 그런 상황에서 중국과 일정하게 대립하고 협상하는 데 필요한 카드를 확보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이 북한을 순순히 중국의 관할로 넘겨줄지, 그렇게 넘겨주고 어떠한 댓가를 챙길 것인지, 일본에게는 어떤 몫을 넘겨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미국이 북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확보하려는 즉, 남한의 손에 넘겨줄 가능성은 좀 희박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확실한 것은 북한의 현체제가 붕괴할 경우 북한의 영토와 인민이 누구의 관할에 넘어가건, 이것은 남한의 진보진영에게는 재앙으로, 보수세력에게는 엄청난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붕괴와 대규모 난민의 발생,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세력의 대립 갈등은 남한 내에서 필연적으로 엄청난 공포 분위기의 조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과 남한의 보수세력은 이미 그런 프로세스를 가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말해 보수세력이 '빨갱이 사냥'의 라이센스를 얻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다지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1년 안에 벌어질 수도 있고, 이명박 임기 안에 저런 일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낮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저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주 머나먼 미래의 일이 될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 진보세력의 나이브한 성향이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은 그렇게 만만하게 권력을 내주고 물러날 인간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 패배는 오히려 이명박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더 높일 수도 있다. 북한 변수는 이명박이 주도적으로 판을 짤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이명박으로서는 이 문제를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일단 이런 변수가 발생한다면 이명박으로서는 일거에 모든 난관을 뚫고 자신이 원하는 정치지형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다 엄중하게 준비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승리다? 맞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것은 민주당이 잘한 결과가 아니라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의 반사효과일 뿐이다. 아무리 봐도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이 잘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다시 한나라당의 대안세력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은 민주당이 지난 50여년 이상 쌓아온 유산 때문이다. 잘할 때도 있고, 마음에 안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민주당이 기나간 세월 동안 비교적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점에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 더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승만의 자유당은 4.19로 인해 소멸됐고, 현재의 한나라당은 아무리 그 조직적 연원을 멀리 거슬러 올라가도 5.16 이후 만들어진 공화당 이전으로 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주당은 해방 이후 비록 친일지주 세력을 기반으로 하기는 했어도 한민당이라는 역사적 기원에서 출발하여 정치적 정체성을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그리고 1998년 이후에는 10년에 걸친 집권과 국정 운영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감히 누구도 쉽게 무너뜨리기 어려운 자산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민주당은 보다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의 자산으로 삼아 대외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항상 불안정한 세력, 대안이 못 되는 세력으로 인식되는 것도 민주당이 이렇게 자신의 자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한 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자산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은 민주당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난 50여년 동안 민주당이 수고하고 피흘리고 싸워온 댓가일 뿐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유권자들도 그런 계산은 정확하고 냉정하다. 현재의 민주당은 과거 몇십년 동안 선배들이 쌓아온 자산을 하나둘씩 까먹으며 살고 있다는 분명한 자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역시,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호남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영남의 공격과 포위에 의해 현실적인 호남은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호남 농촌에는 이미 동남아 혼혈이 늘어나고 있다. 몇십년 지나지 않아 호남땅은 한국땅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치른 희생과 기울인 노력, 그를 통해 얻은 성과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지워질 수 없다. 아니, 영남 애들이 주도해서 쓰는 역사책에서조차 말살될지라도 호남이 한 일이 사라질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얘기가 남았다. 이번 선거가 친노세력의 승리인가? 아니다. 정반대다. 이번 선거는 사실 유시민의 패배, 친노세력의 패배, 노무현의 역사적 패배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인천의 송영길, 강원의 이광재, 충남의 안희정, 경남의 무소속 김두관까지 친노들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한명숙과 경기의 유시민도 '나름' 선전했다. 하지만 한꺼풀만 더 벗기고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선거결과를 보자. 구청장 25개 가운데 한나라당이 강남3구와 중랑 등 4개를 가져갔을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민주당이 휩쓸었다. 분명히 얘기해둘 것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구청장 차원에서도 '지역(개발 등) 이슈'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오직 이명박 심판이냐, 지난 정권 심판이냐... 이 이슈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압도적으로 많은 민주당 구청장 후보들이 당선됐다. 이것은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광역단체장인 서울 시장과 경기도 지사에서는 둘 다 패배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분명히 해두자. 유시민과 한명숙... 모두가 대표적인 친노 정치인이다. 유시민은 자의건 타의건 노무현의 후계자로 인정받는 인물이고, 한명숙은 뇌물사건 재판에서부터 의도적으로 '노짱'을 내세웠다. 기초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드러난 서울과 경기의 표심이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제대로 반영됐다면 그 결과는 필승이었을 텐데, 이들은 주어진 밥상조차 챙겨먹지 못했다. 그 결과가 이들의 '친노 성향'과 무관한 것일까?

경기도 선거 결과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한 표 가운데 10여만 표가 광역단체장으로 유시민을 지지하지 않고 '무효표'를 선택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유시민은 거부한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이다. 보다 다른 형식 즉 유시민에 대한 반발심으로 김문수를 찍은 표나 아예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유권자들까지 계산하면 유시민에 대한 비토층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경기도 지사 선거는 '유시민이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분석해야 한다. 김진표가 후보로 나왔다면, 설혹 유시민과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승리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광재나 송영길, 안희정이나 김두관의 승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권자들은 민주당에게 기회를 주었다. 민주당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민주당 간판을 걸고 나온 후보들을 그들이 노빠의 전력이 있다고 해서 모두 거부할 만큼 유권자들이 순결주의자라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 유권자들은 이들 친노 정치인들이 '친노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이기 때문에 표를 준 것이지, '친노이기 때문에' 표를 준 것이 아니다.

안희정은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지난 대선 이후 '폐족'을 자처했고, 무엇보다 참여정부에서 실제로 혜택을 누린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정치적 행보를 한 적도 없다. 상대적으로 참여정부 공과 논란에서 자유로운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안희정의 당선을 '친노 지지'로 해석할 여지는 상대적으로 적다. 게다가 충남 도지사는 세종시 문제 때문에 적어도 한나라당 지지의 가능성은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송영길은 열린우리당 가운데 비교적 일찍 친노와 선을 그은 경우이고, 이광재 역시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을 내세우는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친노를 '탈피'한 정치인의 부류에 포함시켜야 한다. 심지어 김두관조차도 이번 선거에서는 노무현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이들이 아닌 민주당 후보가 나오는 게 더 합리적이지만, 유권자들은 이명박 심판이라는 대의 앞에서 이들의 '전력'을 일단 용서했다. 이들의 승리를 친노의 승리, 친노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라고 착각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노무현의 역사적인 패배이다. 노무현은 민주당을 '호남당'으로 규정하고 민주당을 분해시켰으며 호남과 결별한 개혁세력을 만들어 개혁 진영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한나라당 집권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무현의 자식'들은 노무현을 부인하고, 민주당 안에서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는 민주 개혁세력의 승리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위기요인을 떠안은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 선거의 결과를 '친노세력의 승리/부활'로 해석하는 시각이 그것이다. 친노 세력들은 자신들이 유권자에 의해, 역사적으로 사면받고 정당화됐다고 착각하기 쉬우며 이미 그런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이들이 또다시 주도권을 장악할 경우 민주당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다. 파멸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한 것은 민주당이 여전히 과거 선배들이 물려준 유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산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그동안 민주당이 친노들에게 보여준 유화적인 태도는 그 유산을 펑펑 물쓰듯 낭비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친노들의 패륜 행각을 방치하거나 조장할 경우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은 마이너스를 기록한 정치자산 계좌를 들고 선거에 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엄중히 경고해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