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은 엉터리 과학이다

 

그 이유는 현재 가장 널리 퍼진 지적 신화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우리가 느끼는 것에 도전하려는 공통된 목표를 품은, 다양한 분과의 저자들의 집단을 이 책이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다.

Because it brings together a multidisciplinary group of authors with the shared aim of challenging what we fell has become one of the most pervasive present-day intellectual myth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1)

 

그리하여 진화 심리학의 좀 더 환상적인 일부 주장들에 짜증이 났을 때 행태학자 Pat Bateson은 진화 심리학이 진화 이론을 10년은 정체하게 만들었다고 불평을 했다.

Thus in a moment of exasperation with some of EPs more fantastic claims, the ethologist Pat Bateson complained that it had set back evolutionary theory by ten year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8)

 

첫 번째 장에서 사회학자 Dorothy Nelkin은 진화 심리학, 특히 그 미국판 중 아주 많은 부분이 물씬 드러내고 있는 종교적 어법과 비유를 고찰한다. 진화 심리학이 일종의 과학적 기독교 안에 그리고 그 옆에 위치를 잡으려고 시도한다는 점을 그녀는 보여준다.

In the first chapter, the sociologist Dorothy Nelkin reflects on the religious language and metaphor with which so much evolutionary psychology, particularly in its US variant, is suffused. EP, she shows, seeks to take its place within and alongside a form of scientific Christianity.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9)

 

이 책의 저자들은 진화 심리학이 엉터리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진화 심리학은 제대로 된 과학이 아니라 지적 신화 또는 종교일 뿐이며 진화 이론을 10년은 정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진화 심리학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과학적인 주장을 하는지는 앞으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진화 심리학은 악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물론 남자의 바람기와 여자의 수줍음, 사취자(cheater)를 적발하고, 우리의 유전적 친족을 편애하고, 공격적으로 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정당화하는 것과 같은 좀 더 심각한 주장들도 있다.

And of course there are more serious claims, such as those legitimizing mens philandering and womens coyness, our capacity to detect cheaters, to favour our genetic kin, to be aggressive.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2)

 

진화 심리학의 주장들은 거의 대부분 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문화 연구 그리고 철학의 영역에서 오류일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해롭기도 하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들의 주장이다.

It is the argument of the authors of this book that the claims of EP in the fields of biology, psychology, anthropology, sociology, cultural studies and philosophy are for the most part not merely mistaken, but culturally perniciou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3)

 

우리가 1980년대에 공동 논문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은 사회생물학이 어떻게 복지 국가에 대한 쌔처주의적(Thatcherite) 공격을 문화적으로 뒷받침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Critical Social Policy』라는 학술지에 기고했을 때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There was only one occasion, during the 1980s, when we felt it necessary to write a joint essay, in the journal Critical Social Policy, showing how sociobiology was culturally underpinning the Thatcherite attack on the welfare state.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8)

 

다른 방면에서 진화 심리학의 정치적 의제가 공동체성(collectivity), 특히 복지 국가에 대한 우익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 공격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은 뻔하다. 따라서, Hilary Rose가 쓴 장에서 설명하듯이, 진화 심리학은 인간 종의 통일성에 대한 고집 때문에 제외되는 인종주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정치적 의제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Elsewhere the political agenda of EP is transparently part of a right-wing libertarian attack on collectivity, above all the welfare state. Thus, as Hilary Roses chapter explains, it shows itself to be recruitable around almost any political agenda except that of racism, which is ruled out by its insistence on the unity of the human specie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8)

 

여자들을 돕고 싶은 것이라는 그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Thornhill Palmer가 제시한 진화 심리학 버전은 여자에게도 강간을 거부하는 문화를 만들려는 기획에도 모욕적이다.

Despite their protestations that they want to help women, the version of evolutionary psychology offered by Thornhill and Palmer is offensive both to women and also to the project of build a culture which rejects rape.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3)

 

그들에 따르면 진화 심리학은 엉터리 과학일 뿐 아니라 악을 정당화한다. 진화 심리학은 남자의 바람기를 정당화하고, 복지 국가에 대한 쌔처주의적 공격을 문화적으로 뒷받침하며, 강간 없는 사회를 위한 노력에 찬 물을 끼얹는다.

 

이런 인간들에게 아무리 설명과 정당화는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봐도 소용이 없다. 이들은 바람을 피우도록 진화했다라는 사실 명제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은 정당하다라는 당위 명제가 도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식으로 사실 명제에서 당위 명제를 무턱대고 도출하는 것을 보통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부른다.

 

진화 심리학이 복지 제도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한다고? 이것은 좀 더 그럴 듯한 비판으로 보인다. 게으른 사람이 옆에서 놀고 먹는 것을 보면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도 일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 만약 복지 제도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노동으로 게으른 사람이 공짜를 누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열심히 일하던 사람의 노동 의욕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노동 의욕과 관련된 진화한 심리적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또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게으름을 부리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공짜가 많아질수록 게으름을 부릴 가능성도 커질 것 같다.

 

하지만 복지 제도와 관련하여 이런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복지 제도로 병 든 사람이나 장애인이 혜택을 받는다.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공짜로 주는 데에는 인색하지만 아픈 사람은 기꺼이 돕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진화한 심리적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또한 빈부격차가 적은 곳은 빈부격차가 큰 곳에 비해 범죄가 적게 일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진화 심리학 가설 중 하나에 따르면 인간은 지위가 아주 낮아져서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방법으로 번식할 길이 막막해지면 강간과 같은 범죄에 의존하도록 진화했다. 만약 그렇다면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복지 예산을 늘려서 빈부격차를 줄여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만 보면 진화 심리학이 복지 제도를 정당화한다.

 

진화 심리학의 가설들과 복지 제도 사이에는 온갖 요인들과 쟁점들이 골치 아프게 얽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측면만 부각해서 진화 심리학이 복지 제도를 공격하는 데 이용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격동의 시기여서 진화 심리학이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의 등장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분과를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은 거의 유래가 없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격동의 시기였다. 오랜 기간 확실해 보였던 것들 중 많은 것이 그리고 사회적으로 더 정의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너졌다. 공산주의의 붕괴, 냉전의 종말과 그 때문에 고삐 풀린 여러 지역의 유혈 낭자한 민족주의적이며 종족적인(nationalist and ethnic) 투쟁, 복지 국가의 약화와 생태적 재앙에 대한 점점 더 커지는 공포가 진보의 불가피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과 대응했다. 과학적, 기술적 합리성이 의문의 여지 없이 자비로운 결과로 이어지리라고 더 이상 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풍토 속에서 확실해 보이는 것을,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을 새로 찾아내려는 노력이 긴박하면서도 아주 가지각색으로 이루어졌다.

But to understand the appearance and significance of EP, it is necessary to set this new discipline in a historical and social context. The last decades of the twentieth century have been a period of almost unprecedented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turbulence. Many of the old seeming certainties and indeed hopes for a more socially just future have crumbled. The collapse of communism, the end of the Cold War and the bloody regional nationalist and ethnic struggles that it has unleashed, the weakening of the welfare state and growing fears of ecological catastrophe have been matched by a shaken belief in the inevitability of progress. The unquestioned benevolence of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rationality can no longer be assumed.

In this climate the search for new apparent certainties, something to cling on to, has become urgent but extraordinarily diverse.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3)

 

전제부터 문제가 있다. 20세기의 마지막 몇 십 년은 거의 유래가 없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격동의 시기였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 의심스럽다. 도대체 언제부터 따져서 거의 유래가 없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20세기 말이 1차 세계 대전의 시기, 대공황의 시기, 2차 세계 대전의 시기,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일어난 공산화(스탈린주의화)의 시기, 베트남 전쟁과 미국과 프랑스에서 일어난 거대한 투쟁의 시기보다 더 큰 격동의 시기였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20세기 말에 선진 산업국에서 복지 제도가 흔들리고 일부 국가들의 경제가 붕괴하기는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은 계속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세계는 더 풍요로워졌다. 따라서 과학적, 기술적 합리성이 의문의 여지 없이 자비로운 결과로 이어지리라고 더 이상 가정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사회적으로 더 정의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너졌다고 했는데 이것은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 중 일면만 본 것이다. 예컨대 그 시기 동안 한국에서는 수십 년 간 지속되던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것은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확실해 보이는 것을,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을 새로 찾아내려는 노력 때문에 무언가 확실해 보이는 것을 제시하는 진화 심리학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이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일은 별로 없다. 이런 면에서 진화 심리학은 종교와도 다르고 물리학과도 다르다. 한편으로, 진화 심리학자들은 종교인과는 달리 증거도 없이 무턱대고 믿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진화 심리학은 아직 유아기이기 때문에 물리학만큼 강력한 증거를 모으지 못했다. 진화 심리학 문헌을 조금만 뒤져보면 might(일지도 모른다), perhaps(아마), plausible(그럴 듯하다)와 같은 단어들을 짜증나게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확실해 보이는 것을 무턱대고 추구한다는 것도 글쓴이의 가정일 뿐이다. 글쓴이는 그것이 선천적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을 진화 심리학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아니면 뭔가? 문화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이 문화적 상대성을 강조한다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불확실해 보이는 것을 무턱대고 추구한다고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글쓴이는 이런 문제를 아예 생각해 보지도 않은 듯하다.

 

 

 

 

 

진화 심리학은 지난 1 동안 일어난 진화를 무시한다

 

우리 종의 유아기인 약 10만 년 전에서 60만 년 전 사이 동안에 최종적 진화적 형태를 갖춘 인간 본성의 보편적 특성들의 기초 위에서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 따라서 문화와 사회를 설명한다고 진화 심리학은 주장한다. 따라서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홍적세 동안 진화했으며 그 주창자들이 인간 마음의 구조(architecture)라고 기술하는 것은 고정되어 있으며 그 이후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겪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이 구조에서 어떤 주요한 수선도, 확장도, 개장(refurbishment, 改裝), 실로 선사 시대 이후에 진화적 적응에 수반되었던 미시적이거나 거시적인 맥락적 변화(contextual change)를 암시하는 어떤 것도 없었다. 가축화된 동물들 , , 심지어 다윈이 좋아했던 비둘기 이 단 몇 세대 만에 인간의 인위 선택에 의해 크게 변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런 주장의 극단적인 성격을 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 실제로, 다윈이 예로 들었던 갈라파고스 군도의 되새(finch)의 경우, Grants가 수십 년 동안 연구한 바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새의 부리와 먹는 습관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기에는 [인위 선택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자연 선택만으로도 충분했다. 새와 짐승이 된다면 왜 인간은 안 되는가?

It claims to explain all aspects of human behaviour, and thence culture and society, on the basis of universal features of human nature that found their final evolutionary form during the infancy of our species some 100-600,000 years ago. Thus, for EP, what its protagonists describe as the architecture of the human mind which evolved during the Pleistocene is fixed, and insufficient time has elapsed for any significant subsequent change. In this architecture there have been no major repairs, no extensions, no refurbishments, indeed nothing to suggest that micro or macro contextual changes since prehistory have been accompanied by evolutionary adaptation. The extreme nature of this claim, granted the huge changes produced by artificial selection by humans among domesticated animals cattle, dogs and even Darwins own favourites, pigeons in only a few generations, is worth pondering. Indeed, unaided natural selection amongst the finches in Darwins own islands, the Galapagos, studied over several decades by the Grants is enough to produce significant changes in the birds beaks and feeding habits in response to climate change. If for birds and beasts, why not human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1~2)

 

진화 심리학자들이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30년을 한 세대라고 보면 1만 년은 300 세대 정도 밖에 안 된다. 진화에서는 절대적 시간보다 세대 수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300 세대는 복잡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짧은 기간으로 보인다.

 

진화의 양상은 다양하다. 복잡한 구조가 새로 진화하는 것은 그런 양상들 중 하나일 뿐이다. 복잡한 구조가 퇴화할 수도 있다. 예컨대 깊은 동굴에서 진화해서 빛을 볼 일이 거의 없는 동물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눈이 있다가도 세대가 거듭될수록 퇴화하기 마련이다. 눈에 들어가는 자원을 아끼는 것이 적응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포유류의 눈처럼 고도로 복잡한 구조가 새로 생기도록 진화하는 시간에 비하면 훨씬 짧은 시간 동안에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퇴화할 수 있다. 이것은 정밀한 시계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망가뜨리는 것은 금방인 것과 같은 이치다.

 

복잡한 구조는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크기가 변할 수도 있다. 인류의 신체 구조는 서로 거의 비슷하지만 약 10만 년 동안 키는 인종마다 서로 상당히 다르게 진화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끔 조심성 없이 표현하는 것은 사실이다. 몇몇 구절만 떼어 놓고 보면 진화 심리학자들이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미시적 진화도 없었다고 우기는 진화 심리학자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게, UNESCO [선언문]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결정론적 생각들은 살아남았다. 1960년대에 그것은 (이전에 나치였던 행태학자 Konrad Lorenz나 미국 과학 작가 Robert Ardrey의 저술과 같이) 인간 공격성의 진화적으로 결정된 선천성을 강조하는 통속 행태학(pop-ethology) 책들의 형태를 취했다. 흑인/백인 사이에 지능의 인종적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미국에서는 Arthur Jensen, 영국에서는 Hans Eysenck의 저술과 함께 1969년에 재등장했다. 이는 1990년대에 나온 Richard Herrnstein Charles Murray의 『The Bell Curve』의 전조였다.

Thus, despite UNESCO, biologically determinist ideas lived on. During the 1960s they took the form of pop-ethology books stressing the evolutionarily determined innateness of human aggression (as in the writings of the ex-Nazi ethologist Konrad Lorenz or the American science writer Robert Ardrey). The claim of black/white racial differences in intelligence resurfaced in 1969 with the writings of Arthur Jensen in the USA and Hans Eysenck in the UK forerunners of Richard Herrnstein and Charles Murrays The Bell Curve in the 1990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6)

 

흑인과 백인 사이에 선천적 지능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한 지능 연구자들은 인종주의자로 몰려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비판자들에 따르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위에 인용된 구절은 그런 비판자들의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럼 이것을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대조해 보자. 인종이 정확히 언제 갈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일치를 본 것 같지 않다. 인종이 갈라진 것이 5만 년 전이든, 10만 년 전이든, 20만 년 전이든 1만 년 보다는 훨씬 긴 기간이 지났다. 만약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면 5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는 더더욱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각 인종의 키가 다르게 진화했듯이 지능도 다르게 진화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럴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지난 1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를 무시한다면서 진화 심리학을 성토하던 사람이 지난 수만 년 동안 지능과 관련해서는 전혀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다. 지능은 통뼈인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신이 있어서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의 경우에는 지난 10만 년 동안 돌연변이도 일어나지 않고 자연 선택도 일어나지 않도록 인도했나보다.

 

 

 

 

 

진화 심리학은 생물학 결정론이다

 

이런 틀에서 새로운 형태의 생물학 결정론이 등장했다. 물론 빅토리아 사회를 지배했던 사회적 위계를 생물학적으로 방어했던 이전의 사회적 다윈주의가 아니라 이런 생물학적, 특히 유전학적 지식과 기술이 엄청나게 확장된 것에 힘 입은 현대적이며 더 정교해 보이는 형태다. 이 새로운 결정론은 서로 대립하는 것 같아 보이는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한편으로, 자연 선택과 무작위적 돌연변이를 통한 인간 진화를 모양 짓는 힘들에 의해 우리의 유전자에 쓰인 우리의 생물학적인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그것은 주장한다. 이런 생물학 운명론은 유전 공학이라는 생물 공학이 최악의 운명으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다는 프로메테우스적 주장과 대립한다.

Within this framework new forms of biological determinism have arisen. Not of course the old Social Darwinism, which provided a biologised defence of the prevailing social hierarchies of Victorian society, but modern and seemingly more sophisticated forms, powered by this vast expansion of biological, and particularly genetic, knowledge and technology. This new determinism takes two apparently antithetical forms. On the one hand, it claims, our biology is our destiny, written in our genes by the shaping forces of human evolution through natural selection and random mutation. This biological fatalism is opposed by Promethean claims that biotechnology, in the form of genetic engineering, can manipulate our genes in such a way as to rescue us from the worst of our fate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4)

 

나는 진화 심리학이 생물학 결정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운명론은 아니다. 심리적 메커니즘이 결정된다고 해서 생각, 행동, 제도 등이 운명처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심리적 메커니즘에 입력되는 값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언어 학습 메커니즘이 선천적 인간 본성이라 하더라도 를 배우느냐 dog를 배우느냐는 입력 값에 달려 있다. 그리고 사회 제도는 수 많은 인간들의 상호 작용의 결과다. 일부 심리적 메커니즘이 선천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행동과 제도까지 선천적으로 몽땅 결정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 메커니즘의 수준과 행동의 수준을 구분해야 하며 제도의 수준을 또 구분해야 한다.

 

 

 

 

 

궁극 원인이 아니라 근접 원인을 따져야 한다

 

그들은 근접적(proximate) 설명이 훨씬 더 훌륭한 설명일 때에 먼distal(그들이 쓰는 약간 고풍적인 표현으로는 궁극적ultimate) 설명을 고집한다(Steve Rose가 쓴 장을 보라).

They insist on distal(in their slightly archaic language, ultimate) explanations when proximate ones are so much more explanatory(see Steven Roses chapter).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3)

 

궁극 원인(ultimate cause)에 대한 설명과 근접 메커니즘(proximate mechanism, proximate cause)에 대한 설명 중 하나만 옳다는 생각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인간이 먹는 이유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궁극 원인) 배가 고파서이기도 하다(근접 메커니즘).

 

글쓴이는 아마 적응 가설보다 부산물 가설이 옳을 때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자들은 적응 가설만 옳다고 우기지 않는다.

 

 

 

 

 

마음은 정보가 아니라 의미를 다룬다

 

마음은 정보가 아니라 의미를 다루며, 살아 있는 유기체는 유전자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선(lifeline) 궤적을 따르는 것으로, 동시에 산물이면서 과정인 것으로, 존재이면서 되어감(becoming)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Minds, he argues, deal not with information but with meaning and living organisms must be understood not as reducible to their genes but as following a lifeline trajectory, simultaneously product and process, being and becoming.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12)

 

not only ~ but also가 아니라 not ~ but이라고 썼다는 점에 주목하자. 마음이 정보를 아예 다루지 않는다고?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not only ~ but also라고 쓰려고 했는데 실수한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워낙 헛소리를 많이 하는 인간들이 쓴 글이라 그 헛소리를 진짜로 믿고 쓴 것인지 단순한 실수인지 여부를 가리기가 힘들다.

 

 

 

 

 

문화가 걷기에 영향을 끼친다

 

걷기를 개인이 학습하는 맥락과는 독립적인, 선천적으로 발달하는, 진화한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나? Ingold는 힘주어 아니라고 답한다: 우리는 추상적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환경, 우리의 생물학적인 것과 문화적 환경에 의해 동시에 모양지어진 갖가지 구체적인 방식들로만 걷는다.

Can walking be considered as an evolved, innately developing skill independent of the context in which individuals learn? Ingolds answer is emphatically no: we do not walk in the abstract, but only in a myriad concrete ways shaped simultaneously by our physical environment, our biology and our cultural milieu.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12)

 

걷기와 관련된 선천적 메커니즘이 있다고 생각하는 진화 심리학자들 중 누가 걷기가 발달의 맥락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할까? 걷기와 관련된 선천적 메커니즘이 있다걷기와 관련된 것은 몽땅 선천적이다는 서로 다른 명제인데 이들이 이 차이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강간

 

아마 진화 심리학의 사변적인 환상들 중 최악은 올해에 Randy Thornhill Craig Palmer가 쓴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is of Sexual Coercion』가 출간되면서 달성된 것 같다. 진화 심리학 특유 방식으로 Thornhill Palmer는 강간이 다른 방식으로는 성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남자가 임신 가능한 여자와 짝짓기를 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적응적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Perhaps the nadir of evolutionary psychologys speculative fantasies was reached earlier this year with the publication of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is of Sexual Coercion, by Randy Thornhill and Craig Palmer. In characteristic EP style, Thornhill and Palmer argue that rape is an adaptive strategy by which otherwise sexually unsuccessful men propagate their genes by mating with fertile women.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2)

 

Thornhill은 강간의 적응 가설을 지지하지만 Palmer는 강간의 부산물 가설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 입장 차이에 대해 『A Natural History of Rape』에 분명히 써 놓았다.

 

인간 강간의 진화적 원인에 대한 결정적이며 의미 있는(legitimate, 정당한) 과학적 논쟁은 강간이 강간에 전문화된(rape-specific) 적응의 결과인지 다른 적응들의 부산물인지 여부와 관련되어 있다. , 강간은 강간을 위한 선택(selection for rape)에 의해 설계된, 남자의 특수화된(special-purpose, 특수목적용) 심리 그리고 그 심리와 연관되어 존재할지도 모르는 비심리적 해부학적 특성의 결과인가, 아니면 강간이 아닌 상황들에 대한 특수화된 적응의 부수적 효과인가? 우리 두 저자는 이 문제를 두고 10 년 넘게 논쟁을 해 왔는데(Palmer 1991, 1992a,b; Thornhill and Thornhill 1992a,b) 강간이 강간 자체를 추구하도록 남자를 추동하거나 조율하는 특수화된 심리적 메커니즘들의 결과인지 여부를 확정함으로써 그 문제에 결국 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The crucial legitimate scientific debate about the evolutionary cause of human rape concerns whether rape is a result of rape-specific adaptation or a by-product of other adaptations. That is, does rape result from mens special-purpose psychology, and perhaps from associated non-psychological anatomy, designed by selection for rape, or is rape an incidental effect of special-purpose adaptation to circumstances other than rape? We two authors, having debated this question for more than a decade (Palmer 1991, 1992a,b; Thornhill and Thornhill 1992a,b), agree that it may eventually be answered by determining whether or not rape is the result of special-purpose psychological mechanisms that motivate and regulate mens pursuit of rape in itself.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is of Sexual Coercion,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모두 적응 가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책을 읽지도 않은 것일까? 아니면 머리가 너무 나빠서 이 중요한 차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성이 더러워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내 추측으로는 어떤 사람이 그렇게 잘못 쓴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책도 읽어 보지 않고 그냥 그대로 베껴서 썼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미 1980년대에 동물 행동 분야를 주도하는 여러 학술지에서 동물 행동을 의인화하는 이런 종류의 사회생물학적 전략을 거부했다. 특히 강간(rape)이라는 용어를 청둥오리(mallard duck)나 밑들이scopionfly(Thornhill이 연구하는 동물)의 강제 성교(forced sex)를 가리키기 위해 쓰는 것이 배제되었는데 이 용어가 인간과 다른 동물의 강제 성교 행태 사이의 눈에 띄는 차이를 덮어두기에 인간이 아닌 맥락에서는 도움이 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동물 사이의 모든 강제 성교는 항상 임신 가능한 암컷을 두고 일어나기 때문에 번식 잠재력이 있다. 지난 30년 넘게 강간을 다루었던 여성 단체들, 법률가들, 그리고 페미니즘적 범죄학자들이 기록했듯이 강간 피해자들 중 임신하기에는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가 많은 경우가 종종 있다.

Yet as long ago as the 1980s the leading journals in the field of animal behaviour rejected this type of sociobiological strategy which anthropomorphises animal behaviour. Specifically, using the term rape to refer to forced sex by mallard ducks or scorpionflies(Thornhills animal of study) was ruled out, as it is not a helpful concept in the non-human context because it conflates conspicuous differences between human and other animals practices of forced sex. Above all forced sex among animals always takes place with fertile females hence the reproductive potential. As those womens groups, lawyers and feminist criminologists who have confronted rape over the last three decades have documented, victims of rape are often either too young or too old to be fertile.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2)

 

강간이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어떤 학술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강간(rape)이라는 용어를 보통 강제 성교(forced sex)라는 의미로 쓴다. 둘을 굳이 구분해서 쓰겠다는 사람이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개념은 정의하기 나름이니까. 그런데 그 구분의 기준이라는 것이 정말 웃기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의 경우에는 항상 임신 가능한 암컷을 강간한단다. 어떤 새는 적당히 색칠해 놓은 헝겊으로 만든 모형과 성교를 시도해서 유명해졌다. 내가 보기에는 그 모형은 임신 가능한 암컷이 아니다. 이것은 남자의 음경이 모니터 속에 있는 벌거벗은 여자를 보고 발기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인간이든 다른 동물이든 100% 완벽하게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없다. 인간이 임신 가능한 여자를 100%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다면 다른 동물이 그것을 100%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신 그들은 예컨대 꼭 맞는 블라우스 자체가 성교에의 자동적 초대(automatic invitation to sex)라고 암시함으로써 강간 피해자든 아니든 여자를 모욕한다.

Instead they insult women, victims and non-victims alike, by suggesting, for example, that a tight blouse is in itself an automatic invitation to sex.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2~3)

 

이 구절에 덧붙인 후주에 따르면 A Natural History of Rape』의 179쪽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거기에 무슨 문장이 써 있는지 살펴보자.

 

왜 남자는 벌거벗은 여자의 사진만 보고도 발기를 하는지, 왜 그는 데이트 상대가 진짜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성교를 요구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기도 하는지, 왜 여자 쪽에서는 사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도 다정한 말과 꼭 맞는 블라우스를 성교에의 초대라고 오해하기도 하는지에 대한 진화적 이유를 따져보는 것이 좋은 출발점일 것이다.

A good starting point would be the evolutionary reasons why a young man can get an erection just by looking at a photo of a naked woman, why he may be tempted to demand sex even if he knows that his date truly doesnt want it, and why he may mistake a womans friendly comment or her tight blouse as an invitation to have sex when in fact sex is practically the last thing on her mind. (A Natural History of Rape: Biological Basis of Sexual Coercion, 179)

 

성교에의 초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그런 식으로 오해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누가 성교에의 자동적 초대라고 했나? 이해가 어려울 만큼 해당 문장이 그렇게 난해한가? 머리가 나쁜 것인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인가? 한두 번은 단순한 실수라고 봐 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한 권의 책에서 이런 식의 왜곡이 수도 없이 나온다.

 

 

 

 

 

유아 살해

 

사회 복지학과 학생들에게 가족학(family studies)을 가르치는 어떤 동료는 계부에 의한 유아 살해에 대한 진화 심리학의 이론의 그럴 듯함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쉬운 해답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매력적이라서 문제라고 했다.

A colleague teaching family studies to social work students saw the plausibility of the EP theory of stepfather infanticide as troublingly attractive to those students who wanted easy answers to complex problems. (Hilary Rose & Steven Rose, Introduction, Alas, Poor Darwin: Arguments Against Evolutionary Psychology, 8)

 

Martin Daly & Margo Wilson은 인간이 자신의 유전적 친족을 더 사랑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친자식을 의붓자식에 비해 더 사랑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의붓자식이 학대나 살해 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이다. 계모나 계부가 구박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진화 심리학이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대중의 상식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통계를 내 본 결과 의붓자식은 친자식에 비해 수십 배나 더 많이 학대당하거나 살해됐다.

 

Daly & Wilson은 의붓자식 학대나 살해와 관련된 한 가지 요인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들은 친족 선택이라는 이 요인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온갖 요인들이 아동 학대에 개입될 수 있다. 예컨대 멀쩡하던 사람도 술에 취하면 이상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다른 요인들이 같다면 술이 있는 문화권에서 아동학대가 더 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가 이런 것을 무턱대고 반대하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급이라는 요인을 이야기할 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다른 요인은 완전히 무시한다라고 비판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계급 요인이 중요하다계급 요인 외에는 어떤 요인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명백히 다른 명제다. 마찬가지도 유아살해에 친족 선택이라는 요인이 작동한다유아살해에 친족 선택이라는 요인 말고는 아무 것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명백히 다른 명제다. 물론 이 책의 글쓴이들과 같은 바보들(또는 사기꾼들)은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너무 힘들 것이다(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척 할 것이다).

 

 

 

 

 

201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