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선거는 끝났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잡담이나-_-계속할까 한다. 유시민을 위한 변명 한두마디 해줄까 하긴 했는데 별로 할 말도 없는데다가 역효과만 날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담벼락에서 박하고래 형 생각이 나와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긴 하다)

그건 그렇고… 어떤 기억 시리즈는 이제 끝낼까 했었는데 자게에서 “한나라당에는 김문수 이재오 오세훈 박근혜 원희룡 등등 차기 주자들이 즐비한데 민주당에서는 아무도 없으니 이거 참 큰일이다”라는 글을 보고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 글을 올린다.

92년 대선 이후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고 김대중은 정계 은퇴… 그리고 김영삼은 정권 초기 갖가지 개혁 조치와 깜짝쇼들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올렸다. 김대중을 지지한 사람들마저 그가 이렇게 화끈한 개혁을 할 줄은 몰랐다며 이를 반겼다. 물론 수구파들의 반발이 약간은 있었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고 국민들의 엄청난 지지 앞에서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김영삼은 어디까지나 저들이 스스로 선택한 자기들의 편. 약간 비위에 거슬린다고 죽자사자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보수파를 기반으로 한 정치인이 더 개혁을 잘 할 수 있다는 말도 있는 거겠지) 자, 이를 바탕으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선 무려 아홉 명의 후보들이 차기 대선을 노리고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물론 언론에서는 이를 ‘9룡’이라는 식으로 잔뜩 부풀려서 포장을 해 주었지) 당시 이 가운데 다음 대통령이 나올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 이회창: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2. 박찬종: 역시 유명한 인물이다...만은 당시에 이미 어느 정도는 철새 독불장군 이미지가 박혀 버려서 그다지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어쨌건 그때 거기에서만 가만히 있었더라도 그 이후처럼 처절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 본성이야 어떻게 하겠냐만은…

3. 이인제: 당시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이었고 그 후로도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내 생각으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말이다. 김영삼이 차기 후보로 “깜짝 놀랄만한 젊은 후보”를 언급하는 바람에 일약 스타가 된 경향이 있는데 이게 그를 놓고 한 말인지에 대해서 솔직히 나는 좀 회의적이다. 당시나 그 이후나 그가 김영삼과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으며 이건 YS의 정치 스타일도 아니다. 아무튼 이인제가 노동부 장관으로 있었을 때만 해도 노조 편을 드는 언행으로 개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만큼 당시 좌우를 떠나 그의 인기는 일시적인 게 아니었다.

4. 이홍구: 6공 이후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정부에 입각한 사람 중에 노재봉, 이홍구, 김학준 3인이 잘 알려져 있었다. (물론 더 많이 있었을 텐데 이들이 제일 성공한 케이스였나 보다) 그런데 노재봉은 너무 강성 발언을 자주 해서 (뭐 김대중이 광주사태를 유도했다는 발언이야 말할 필요가 없겠지) 꼴통 이미지가 좀 강했고 김학준은  또 지나치게 얌전한 학자 이미지라서 (실제로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지야 내가 알 바 아니다) 대중적으로 어필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가장 중도적인 입장에서 그의 장래가 주목받고 있었는데…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김대중 정부 밑에서도 활동을 어느 정도 했고 지금은 중앙일보에서 일하고 있지, 아마?

5. 이수성: 전국에 형이 5만 동생이 10만이라는 말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 사이에 시간이 좀 흘렀으니 아무래도 형보다는 동생이 좀 더 많아졌겠지. ^^) 서울대 있는 동안 단 한편의 논문도 없었다지만 뭐 정운찬 때처럼 눈에 불켜고 찾아내면 몇 편 발굴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가 본격 정치판에 뛰어들어 그렇게 죽을 쑨 걸로 볼 때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아마추어가 프로와 맞붙으면 그 결과는 뻔하다는 것이다.

6. 김윤환: 전에도 말했지만 5공 때부터 킹메이커로 이름이 난 사람으로 “정치판이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거기서 자기 이익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데 있어 김영삼 다음가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까지 결국에는 팽 당했다는 점에서 이회창의 뭔가 특이한 점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암에 걸려 비교적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어떤 식으로 활동을 했을지 궁금하긴 한데…

7. 이한동: 정통 민정당 세력이긴 한데 뭐 그렇다고 특별히 강경파는 아니었다. 그래서 스스로는 국민들에게 미움을 받는 입장이 아님을 자부하고 있었을지 모르나 문제는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주는 국민 역시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은 탈당해서 무소속 생활을 좀 한 후 정계에서 사라졌다. 여기서 교훈… 무관심보다는 미움이라도 받는 편이 나으며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는 점이다. (사실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

8. 최형우:  야당 때부터 쭉 따라다니던 김영삼의 심복으로 김동영과 최형우 두 사람이 있었다. 이 가운데 김동영이 암으로 일찍 죽자 (간혹 그 사실 때문에 이사람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글도 보이는데 뭐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맡긴 일은 열심히 하는 심부름꾼 정도…?) YS의 직계로는 바로 이사람만 남았다. 한때는 진반농반으로 이사람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라는 소리도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이승만부터 시작해서 김영삼까지 계속 머리가 나쁜 사람으로 이어지는데 대권주자 가운데 김영삼보다 더 머리가 나쁜 사람은 뇌 수술로 두뇌 절반을 들어낸 최형우밖에 없었다던가…  ^^ 그거야 우스개고 뇌출혈 전부터 이사람은 생긴 것도 좀 험상궂고 싸움 잘 하게 생겨서 지적인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 당내 세력은 꽤 컸는데도 결국 YS의 강요에 의해 주저앉게 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9. 김덕룡: 이사람도 따지자면 김영삼의 심복이지만 어느 정도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솔직히 난 이사람이 다소 맘에 드는 것이 외모도 어느 정도는 되는 데다가 정치력이나 말빨, 협상능력 모두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무리하다가 일을 망친 경험이 거의 한번도 없다는 것만 해도 그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호남 출신이다… ^^) 지금까지 한나라당 내부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대체로 기대만큼의 정치활동을 했다. 아마 아직도 그곳에서 버티고 있지?

가만 있자… 최병렬도 있었는데 이 사람은 9룡 가운데 끼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는 비교적 무명이었던 걸로 알고 있으니… 그런데 어떤 때는 김윤환 대신에 이 사람을 넣기도 하나 보더군.

자, 이상이 쟁쟁한 신한국당 9룡(10룡?)들의 면면들이다. 그런데… 야당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과연 김대중이 정계은퇴 약속을 번복할 것인지 아닌지 모두들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민주당 총재였던 이기택이야 당근 자신이 야권의 대표주자가 되기를 바랬겠지만 그를 그렇게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에게는 통합야당 당수의 직책부터 난장이가 거인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그 외에 구 야당 출신이나 운동권출신 정치인들을 전부 합해도 이 여당 대선주자들의 존재감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김대중 정계복귀 후 새로운 당을 차려나가면서 그나마 인지도가 있다는 정치인들은 죄다 남겨놓고 갔다는 점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당시 민주당이 인물난을 겪은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김대중이 자신보다 젊은 차기주자의 성장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분명 있었다. 그가 새로운 인물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였고 그때는 이미 시기적으로 뒤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노무현의 경우 자기 편 인물들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 대부분 별 생각없이 이루어졌던 반면 김대중이 김상현 김원기 등 자기 계파에서 치고 나오는 정치인에 대해 가혹한 대접을 한 것은 뚜렷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이해할 것인지 안 좋게 볼 것인지는 각자의 자유다.)

아무튼… 그러니까 이렇게 쟁쟁한 면모의 대권주자들을 가진 신한국당에서 이회창이 대권주자가 된 후 IMF 때문이건 179cm, 45kg의 젓가락 체형 아들 때문이건 아무튼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에 패배를 당했다. 그 후 신한국당 -> 한나라당은 내분이 크게 일어나 한바탕 홍역을 치뤘으며 그 쟁쟁하던 9룡은 김덕룡 하나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탈당하거나 정계를 떠났다. 이 당이 다시 정권을 잡기 위해선 10년의 세월이 필요했으며 그 후 이명박이라는 억세게 재수좋은 인간이 현재 집권을 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이자의 삽질 여하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결론: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