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에서 인기 있는 학과로 경영학을 들수 있다. 웬만한 기업은 경제학, 경영학등 상경계열에서만 문과 졸업생을 뽑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가끔씩 "대학에서 배워온게 쓸모가 없다"고 심통을 부리며 대학에 쫑코를 먹일때 가장 뜨끔할 학과가 경영학일 가능성이 크다는것이 내 생각이다. 경영학의 학문적 지식을 가지고 실상 기업 현장에서 써먹을게 별로 없을 공산이 있다(특히 막 실무에 투입된 중하위 사무관리직의 경우). 기업 운영을 연구하는 경영학이 정작 기업 실무에서 필요하지 않을수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건 행정학과 행정 실무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회과학의 영역중 소위 "관리학"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경제학, 인류학, 사회학과 같이 인간 사회의 현상과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본격 학문, 어려운 말로 하면 에피스테메적 학문과 달리, 기업이나 행정부 운용에 필요한 실용적 지식을 탐구하고 응용하는 것이 목적인 학문체계, 이른바 테크네적 학문이 바로 행정학과 경영학과 같은 이른바 '관리학"이다. 이런 관리학은 행정학의 경우 19세기 후반, 경영학의 경우 20세기 초중반에 생겨나, 현대의 복잡한 조직기구를 운영하는데 일익을 담당해 왔다.

그런데 이런 관리학적 지식이 실무에 요긴하게 쓰이기 힘든것은 관리학이 처한 이중적 상황에 기인한다. 학부에서의 관리학은 예비 관료, 예비 기업인의 훈련에 활용될것을 기대받지만, 정작 관리학의 현재 모습은 테크네 적인것보다는 오히려 에피스테메적인것에 한참 기울어져 있다. 행정 실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나 경영이라는 하나의 사회 현상의 패턴과 그 본질을 규명하는 데 관리학의 연구와 교육이 촛점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행정이나 경영 현상을 사회과학적인 에피스테메의 시각으로 규명하는데 촛점을 맞춘 결과, 이러한 관리 현상 전반을 아우르는 추상적 패턴이나 원칙을 발견하고 분석하는 것이 주가 되고, 따라서 연구와 교육은 극히 추상적인 조직론적 이슈 혹은 필요이상으로 난해한 통계학적/수학적 기법 단련, 그리고 터무니 없이 거시적인 차원의 정책 혹은 전략 연구(그것도 과도하게 수학적, 통계학적인)에 맞추어지게 된다. 그것이 사회과학으로서의 관리학이 학문의 축적에 따라 자연스럽게 걷게 되는 궤적일련지 몰라도, 학부에서의 관리학이 기대받는 역할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학문적 훈련을 통한 제너럴한 분석 능력의 배양이, 어차피 다양한 업무를 아우를수 밖에 없는 기업이나 행정 현장에서의 잠재적 실무 능력 배양에 도움 될수 있지 않냐는 반론이 있을수 있다. 하지만 행정이나 경영 실무를 위해 요구되는 수준의 전문성 조차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데서 현재의 관리학 교육의 문제점이 존재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경영학을 배우나 국문학이나 철학을 배우나 기업 현장에서 전문성이 결여되는 수준은 거의 비슷한것이 현실이다.

기업이나 행정은 결국 재화를 생산하는 조직이다. 기업이나 행정 전문성의 근본을 소급해 들어가면 결국 재화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공학적, 과학적 지식 체계가 존재한다. 행정학, 경영학 졸업생이 담당할 사무직 관리의 경우, 이런 자연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생산된 재화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관리라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사무 관리의 본질은 결국, "무엇이 어디에 있다" 로 얘기될수 있는, 외부의 물리적 변동에 관한 표면적인 정보를 다루는 것이다. 물리적 변동과 관련된 정보가 복잡해져서 관리가 힘든 경우는 있겠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1차 방정식과 같은 것이다. 정보 처리의 속도나 용량의 대소가 사무 관리 능력을 결정짓는 것이지, 무슨 자연과학과 같은 수준의 깊고 심오한 지적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예술적이고 인문학적인 지적 비약, 도약이 필요치도 않다. 일머리와 공부 머리가 따로 있다고 하는데는 이런 이유가 어느정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무 관리의 전문성은 두가지로 소급할수 있다. 하나는 관리의 대상인 재화와 관련된 일정 수준 이상의 자연과학적 지식이다. 예를 들어 수도물과 관련된 행정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행정학이 아니라 수도물 공학이 필요할것이다. 중간 관리자로서는 일단 수도물의 생산에 관련된 기술적 지식을 안 뒤에야 좀더 한가로운(?) 주제인 행정학적 이슈에 촛점을 맞출수 있게 될것이다. 또 하나는 재화의 관리와 관련된 업무 분장에 관련된 전문성이다. 식품 공장의 창고를 담당하는 관리자라면 경영학 보다는 생산된 제품을 창고에 보관하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지식과 노하우를 익히는게 중요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일반적인 지적 능력이 강하게 요구된다. 기억력, 논리력, 추리력과 같은 것들이다.

에피스테메적 교육에 치중한 현재의 관리학 교육이 졸업생들이 실무에서 부딪히는 이러한 도전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예비 행정가, 예비 기업인 양성을 목표로 한다면 현재의 커리큘럼은 크게 바뀔 필요가 있다. 우선 재화 생산과 관련된 자연과학적 지식을 교양 수준에서라도 폭넓게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경영학의 생산관리와 같이 뜬구름 잡는 소리를 가르칠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재화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산업사회의 모든 기업인은 공장장으로서의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다. 행정학의 경우는 현대 행정 국가가 생산하는 다양한 재화들(치안, 국방, 복지, 도로, 수도, 토목등)의 생산에 대해 배워야 한다. 교도 행정의 메커니즘을 배워두는게 뜬구름 잡는 행정학 조직론을 백번 파는 것보다 실제 행정 실무를 대비하는데 백번 도움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