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고 수시로 엄살을 부리는 제 머리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이 이번 이석기 사건에 대한 판결입니다.

이것으로 저를 닝구로 만든 김희철 사건 이래로 제가 오랫동안 증오해온 통진당 세력은 거의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사실 김희철 사건은 너무나도 부당한 일이었고, 모두가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며 어디에도 우리편이 없었던, 약간의 문제만 제기해도 전라도 구태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했던,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에 대해 일말의 기대도 남지 않게 할 만했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제 마음속에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처음 이석기의 내란 음모 소식을 들었을때 들었던 생각, 그토록 국회의원 자리를 원하던 이석기와 통진당의 구성원들이 국회의원을 만들어 내고 합법적인 권력을 쥐자마자 수십여명의 패거리를 모아서 내란을 일으키려 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통진당 분열 사태때 나타났듯이 만약 세간에 주사파로 인식되어 미움을 받는 이들이 누명을 쓴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보니 이 재판에 쉽게 수긍하기 힘들고, 사람들과 더불어 이들에게 돌을 던질 생각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음은 이번에 징역4년을 선고받았다는 인물의 아내가 (이들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녹취록을 최초 보도하고 상을 탄)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http://gongjak.org/nis/index.php?document_srl=4286&mid=manifesto


저는 이번에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구속된 구속자의 가족입니다. 이 황당하면서도 가혹하고 무서운 얘기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요.

지난 20일 ≪한국일보≫ 기사에 난 두 분의 사진을 봤습니다. 대한언론인상을 수상하셨더군요. 그 상이 어떤 상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지만 두 분이 자랑스레 웃고 있는 사진을 보니 영광스런 상인 것 같더군요. 그러나 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날부터 매일 잠도 오지 않더군요. 어쩌면 지난 8월 28일 영문도 모른 채 국정원에 의해 남편이 끌려간 바로 그때의 고통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는 것 같았습니다.

 

두 분에게도 가족이 있으십니까?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십니까… 내란음모 조작으로 구속된 제 남편은 좋은 사람입니다. 아니 훌륭한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잘 살 수 있는 길을 일찌감치 버리고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을이 건강해야 개인도 건강할 수 있다며 지역에서 의료 협동조합을 만들고 주말도 없이 헌신해오며 주민건강과 건강약자를 돕기 위해 힘써왔습니다. 또한 집에서는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 바보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날때면 아들과 함께 블럭놀이를 하고 자전거를 태워주고 일부러 비 맞으며 동네산책도 하는 자상하고 다정한 아빠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맛있는 걸 대하면 가족들을 먼저 떠올리고 해마다 여름이면 꼭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여행을 가는 듬직하고 다정한 아들이기도 합니다. 어린 아들에게 단 한번 큰소리로 혼내는 법도 없고 그 흔한 무기장난감 하나 쥐어주지 않는 평화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남편을 어느 여름날 국정원은 내란음모를 했다며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은 채 데려갔습니다. 그들이 두고 간 영장에는 내란이니 총기무장이니 인명살상이니 하는 영화 속 얘기같은 현실감없는 내용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아무죄도 없는 사람을 데려갔으니 금방 나오겠지 하던 생각은 곧바로 쏟아지던 무지막지한 언론 보도에 의해 공포스러운 현실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마녀사냥식 언론공세… 그 시작은 ≪한국일보≫ 였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녹취록… ≪한국일보≫도 국정원도 서로 출처를 밝히지 못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상한 상황.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낸 공포는 대한민국을 마녀사냥의 광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도의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죄인처럼 살아가야 했으니까요.

한 낮에도 구속자 가족의 차에 커다랗게 페인트로 간첩차라고 낙서테러가 가해지고, 사람들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방적인 얘기만 해대는 뉴스를 보며 이성은 마비되고 당장이라도 공개사형을 시킬 것처럼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매일 퇴근 후 저녁이면 아이와 함께 나가던 산책도 더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밤에라도 혹시나 또다시 국정원이 쳐들어오지 않을까… 누군가 테러를 하지 않을까… 어린 아들을 누가 해치지 않을까, 현관문을 아무리 잠궈도 공포가 쉬 가시질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시던 연로하신 시어머니는 아예 전화기를 꺼놓으셨고 바깥나들이를 아예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음 먹고 가신 미용실에서 사람들이 뉴스에 나온 아들을 보며 “저것들 다 사형시켜 버려야 되” 하는 말을 들으시고는 참았던 눈물을 밤새 토해내셨습니다. 사건 후 큰 충격으로 버티기가 힘들던 저와 아이는 함께 병원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부담스럽다며 거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얼마전 추운 겨울밤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다가 집 앞에서 서성이는 낯선 그림자를 보고 후미진 곳으로 숨었다가, 추워서 집에 가고 싶다고 우는 어린 것의 입을 틀어막으며 꼭 안고 있어야 했던 공포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어쩌면 기자로서의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로의 할 일… 먼저 묻고 싶습니다. 지금 들고 있는 게 펜입니까 칼입니까….36년전 인혁당사건을 아십니까? 그 억울하고 한 맺힌 죽음 앞에 언론의 할 일은 뭐였을까요. 한순간에 독재권력에 의해 가장을 잃은 가족들이 학대와 공포를 당할 때 언론은 어디에 있었나요? 독재자를 위시한 학살자들과 함께 칼을 휘두르고 있었던 게 언론 아니었나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요. 달라야죠. 어린아이 목에 새끼줄로 간첩이라 달아놓고 총살 놀이를 하던 그 무자비한 야만의 시대와는 달라야죠. 제 눈엔 언론이 지금 들고 있는 건 칼입니다. 36년전 그때 묻은 피가 아직도 낭자한 권력의 칼입니다.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한국일보≫가 제일 먼저 칼을 휘두른 마녀사냥은 무자비하게 벌어졌습니다. 누구든 마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그 칼로 내리칠 기세였지요. 아무도 진보당의 편에 서길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들은 피하거나 부정하거나 아예 입을 다물거나…그 중의 하나였지요. 그러나 이정희 대표가 말한 대로 3개월이면 밝혀질 진실이었습니다. 재판이 열리자 그 과정에서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녹취록은 272여 곳 심하게 왜곡돼 있어 검찰 스스로가 수정했고 녹취록 원본 파일은 어이없게도 국정원이 지웠다고 했습니다.

 

또한 국정원이 조작한 이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이성윤은 남편의 27년지기 친구입니다.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시간…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중세 마녀사냥이 이루어지던 시절, 자신이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를 마녀로 만들어야만 하던 시절을 보는 듯 했습니다. 이성윤의 “내 생각에는 내란이다” “내가 추측하기에는 이석기 의원이 총책이다” “20년 넘게 운동판에 있어 본 나의 감으로 저 사람은 RO다”라는 거짓 증언만이 난무하였습니다.

오락가락하는 그 사람을 보며 부정한 권력 앞에 일개 개인은 그게 누구든 언제든 도구처럼 부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겠지요. 바로 ≪한국일보≫ 기자, 바로 당신들 같은 언론 말입니다.

 

≪한국일보≫ ‘강철원’ ‘정재호’ 기자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그 녹취록 기사는 상을 받을 만한 것이었습니까? 그 녹취록 기사를 근거로 한 여론재판은 정당한 것입니까? 그 녹취록 기사를 근거로 한 정당해산은 정당한 것입니까? 만일 정당하다면 계속 칼을 들고 휘두르십시오. 그러나 정당하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펜을 들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 세우는 데 힘을 보태세요.

지금 다시 한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당신들이 휘두르는 건 …. 펜입니까…. 칼입니까.



의혹을 떨치기 위해서 이들의 주장을 찾아볼수록 제 마음은 무거워집니다. 이들이 누명을 쓴 것이라면 저는 정말이지 이들에게 누명을 씌운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