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을 원래 잘 가지 않고, 심지어 "담벼락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어차피 담벼락이 없어질 가능성도 보이지 않으니, 뭐 슬슬 놀러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담벼락에 제 글을 비판해주신 분(437호)도 있고 해서... 간단하게 답변해볼까 합니다.

먼저, 437님의 오해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까지 민중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을 비판해왔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이 후보를 사퇴하고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진보신당 후보가 사퇴하고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면 도움이 되겠지" 이 정도 생각했을 가능성조차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입밖에 내서(온라인 발언까지 포함해) 그런 의사 표현을 한 적은, 적어도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마음속에 생각을 품는 것과, 그것을 드러내서 발언하는 것과의 차이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요구를 꺼내지 않았던 것은,

우선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명분이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진보신당의 정치적 명분에 내가 동의하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의 정치적 명분과 입장, 노선이 분명히 있는데, 그리고 그것이 민주당의 그것과 분명히 다른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들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가 써온 글을 읽어보셨다면 아마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심지어 유시민이나 국민참여당에게도 "사퇴하고(또는 당을 해산하고) 민주당과 합쳐라"고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진보신당과 비교해보면 국민참여당(유시민)은 정책이나 노선, 지지세력 등에서 민주당과 겹치는 부분 또는 유사성이 훨씬 더 많습니다. 당연히 후보사퇴 또는 민주당과의 조직적 통합을 요구하기도 더 쉽고, 그만큼 명분도 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크로에도 국참과 민주당이 결국 하나로 뭉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저는 거기에 반대하는 입장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저런 명분 떠나서 나는 그런 식의 접근 자체를 싫어합니다. 제 못된 성질 때문이겠지만, 저는 노선이 다른 놈끼리는 갈라져서 싸우고 결국 현장 즉 대중의 선택에 의해 더 옳은 방향이 결정되어야지, 궁극적으로 선택권을 쥔 대중을 무시하고 지들끼리 두리뭉실하게 타협해서 대중을 속이는 그런 접근 방식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진보신당(민주노동당 포함)이 중도사퇴 전문정당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진보신당이 사라져주기를 원하겠지요. 물론, 실제로 진보신당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번 심상정의 선택은 유시민의 득표율을 올려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더욱 불쾌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민주당 지지자로서 또는 유시민을 혐오하는 정치 소비자로서 당연히 드러내서 표현할 수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진표를 싫어하기 때문에 심상정이 사퇴하고 김진표 지지해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만일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고, 심상정이 그 정치인을 지지하기 위해 사퇴했을지라도 저는 속으로 기뻐할망정 드러내놓고 "그래, 심상정 잘했다"고는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정말 진보와 민주진영의 절대절명의 요구가 걸린 상황이라면 문제가 다르겠지요. 그럴 때 대승적인 차원에서 양보와 희생을 선택한 정치인이 있다면 드러내놓고 "정말 훌륭하다"고 칭찬 발언을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뭐 잘못된 것인가요?

님의 발언도 그렇고, 옐로우피버 님도 비슷한 발언을 하시는 것 같던데요... "진보신당에 애정도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은 이번 심상정 사퇴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말이 안되는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런 논리를 뒤집어 적용하자면 심상정이나 노회찬 등 진보신당 정치인들도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거나 접근해서는 안 되지요.

정치란 것은 기본적으로 오픈마켓입니다. 누구든 선택할 수 있고, 선택당할 수 있지요. 어제 진보신당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이 당장 내일이라도 진보신당 후보에게 표 줄 수 있는 겁니다. 이게 무슨 중세시대 봉건영지 경계표시 정하는 것도 아니고... 진보신당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은 진보신당의 정책이나 행동에 대해 발언도 하지 말라?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 심상정의 사퇴 발언을 읽어봤는데... 아니, 무엇 때문에 사퇴한다는 것인지 아무 것도 밝힌 게 없더군요. 밝힌 게 있습니까? 제 독해력이 후진 탓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사퇴의 명분이라고 할 만한 것은 단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좀 엄격하게 말하면 이건 사기에 가까운 겁니다. 정치인, 합법 정당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지방선거 후보로 선출된 정치인이 분명한 근거도 밝히지 않고 다른 당의 후보를 지지한다며 사퇴한다? 이건 자신을 후보로 선출해준 진보신당에 대한 사기일뿐만 아니라, 지지를 호소했던 경기도민 나아가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로 관심을 갖고 지켜봤던 대한민국 모든 유권자에 대한 사기행위가 되는 겁니다. 아닌가요?

사기행위에 대해서는 그 사기행위의 의도와 음모, 계획에 대해서 밝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그 사기행위의 배경이 되는 또다른 사기행위 전력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지요. 제가 서울대 배경론을 제기한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서울대 출신 운동권들... 이런 의혹을 제기당하고도 남을만한 행동을 과거에 충분히 보여왔습니다.

노회찬이 소속됐던 인민노련 친구들... 당시 제헌의회(CA) 그룹과는 극렬하게 대립하던 입장이었죠. 하지만 두 정파의 지도부에는 서울대 출신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고, 서로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었습니다. CA 그룹의 핵심 동향이나 결정사항 등이 CA 하부 조직원보다 정적이었던 인민노력 지도부에 먼저 알려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이거 운동권 전반의 현상이었습니다. 이게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제도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제도권 밖의 운동권 조직에서도 서울대 출신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만큼 서울대 출신들이 저런 행동에 익숙해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더 높았습니다.

한번 일어난 일은 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현상이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서울대 문제는 우리나라의 (운동권까지 포함해)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당연히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지요. 유시민과 심상정이 서울대 동문 운동권이고, 게다가 이번 심상정 사퇴의 배경에 대해 심상정 본인이 납득할만한 근거를 명쾌히 밝히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시선을 돌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영남패권 차원에서 이번 심상정 사퇴의 배경을 해석하는 것도 완전히 무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영남패권은 가시적인 측면에서도 작용하지만, 직접 인과관계를 드러내기 어려운 비정형적인 프로세스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유시민과 동향인, 그래서 호남출신 정치인들보다는 아무래도 친분관계가 있고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는 어떤 인물이 심상정과도 통하는 관계여서 심상정에게 "유시민에게 한번 양보해줘라. 차기의 가능성이 있는 유력한 정치인을 키우는 것도 전체 진보진영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일 아니건나?" 이렇게 설득한다고 치죠. 그런 대화에서 단 한마디라도 '영남패권을 위해서'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죠. 하지만  그런 경우에 영남패권의 영향력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봅니다.
 
참고로, 영남 출신들은 이런 행동에 나설 개연성이 적어도 다른 지역 출신에 비해서는 훨씬 높습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뭐, 조선 인재의 7할은 영남에서 나온다지 않습니까? ㅎㅎㅎ).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은 영향력이 있다는 거고, 영향력이란 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을 의미하거든요. 힘이라는 것은 스스로 드러내고 발휘되기를 원하지요. 이건 상식입니다.



기타... 진보신당과 관련해서는 할 얘기가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요. 다음에 한번 정리해서 얘기해보도록 하죠. 다만, 이것만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과거 진보정당에 몸 담은 적이 있습니다. 1988년 총선에 참가했다가 실패하고 총선 후 해산된 '민중의당' 출신입니다. 저랑 같이 활동하던 친구 중에 여전히 진보신당에 남아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번 총선 때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꽤 앞순위였다고 하던데... 아마 분당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금뱃지를 달고 있을지도...^^ 좀, 아쉽더군요. 이 친구 만나서도 진보정당 욕을 많이 하는데, 성품이 좋은 친구라서 그런지 주로 듣기만 하고 별로 반박은 하지 않더군요.

저도 진보정당이 좀 잘해주면 좋겠습니다. 제대로 했다면, 지금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의 최소한 70% 정도는 진보정당 지지자가 됐을 겁니다. 변명인지도 모르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지금까지 제대로 못했고(제가 기대하는 것과는 달랐고) 그래서 지금 현재의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이고 조직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댓가를 치르는 겁니다. 지금 제 반응도 그동안 진보정당 사람들이 했던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특별히 잘하는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특별히 못 보일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참고로, 한명숙이 사퇴하면 저는 박수를 칠 겁니다. 애초에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한명숙이 다른 잘못(제가 보기에)을 저질렀다 해도 "집에 가서 살림이나 해라"라는 식의 비아냥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럴만한 사안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 심상정의 사퇴는 저런 소리를 들을만한 사안입니다. 정당인으로서, 조직인으로서, 진보활동가로서... 도무지 공인의 자격이 안 되는 행동을 했으니까요. 공인으로서 자격미달인 여성에게 "집에 가서 살림이나 해라"라고 말하는 게 여성비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런 행동을 한 것이 남성일 경우 "시캬, 집에 가서 애나 보든지, 셔터맨을 하든지..." 이렇게 얘기했겠지요. 둘 사이에 차이가 있나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이하, 437님이 담벼락에 남기신 글]


저 역시 진보신당 좋아하지 않고, 소위 진보 성향의 친구들이 과거에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 씹기에 주력한, 범 영패진영의 한 갈래라고 보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이라는 간판 자체가 이렇게 싸구려로 취급되는 것이 합당한가... 그런 의문입니다.


진보진영... 그동안 비판적 지지 요구에 시달릴만큼 시달렸습니다.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 중도사퇴 전문 정당입니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건강한 모습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민주당은 누가 봐도 제대로 자신의 포지션을 잡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과거 절박한 정권교체의 요구가 있을 때에도 진보진영이 이렇게 쉽게 비판적 지지를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쩐지 입맛이 씁니다.


아군이건 적군이건 또는 경쟁진영이건... 자식의 색깔을 잃고 타락한 모습은 일단 보기에 불쾌합니다. 그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죠.


그래서 저는 심상정의 사퇴가 불쾌합니다. 짜증이 납니다. 그동안 심상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만큼 비판할 기회도 없었지만... 이제는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그래, 니 그릇이 그 정도니 어쩌겠니? 이제 그만 하고 주제에 맞게 집에 가서 살림이나 해라."


출처(ref.) : The Acro - 메인게시판 - 심상정의 사퇴가 반갑지 않은 이유 - http://theacro.com/zbxe/main/187103
by 미투라고라


 참.. 제대로 아픈 델 건드리시네요. 단일화 안하면 안한다고 욕먹고 하면 한다고 욕먹고.. 진보신당은 정말 중도사퇴 전문이길 바라는게 진보신당 지지자겠습니까, 아니면 평소엔 진보신당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가 유시민의 득표율을 올려준 게 짜증난 미투라고라님이겠습니까? 뭐 둘 다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제에 맞게 집에 가서 살림이나 해라'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도 아닐뿐 아니라 편협하기까지 합니다. 한명숙씨가 (그럴리가 없겠지만) 사퇴해도 같은 표현을 쓰시겠죠?


자신의 색깔을 잃고 타락한 심상정의 사퇴가 도움을 준 게 유시민이 아니라 김진표였다면 어땠을까요.. 이만큼 오지랍 넓게 짜증 나셨을까요?


출처(ref.) : 담벼락 -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 http://theacro.com/zbxe/scribble/187560
by 지나가다4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