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보다 이성의 외모에 더 집착한다. 즉 남자는 예쁜 여자라면 환장을 한다. 이것은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것이 선천적 성차(sex difference)라고 생각한다. 여자보다 남자가 이성의 외모에 더 집착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성차가 진화하도록 만든 선택압(selection pressure) 즉 궁극 원인(진화론적 원인)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아직 설득력이 있는 분석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꽤 그럴 듯하게 설명했다고 자부하는 진화 심리학계에 나는 불만이 있다.

 

 

 

여자가 예뻐 보이기 위한 화장에 남자보다 더 신경을 쓴다. 화장 비슷한 것을 남자도 열심히 하는 문화권이 있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것이 예뻐 보이기 위한 화장이 아니라 전쟁용 분장이라고 이야기한다.

 

20세기 들어서 성형 기술이 발달했는데 성형 수술을 받는 쪽도 주로 여자다. 물론 성형 수술의 핵심 목표는 젊고 예쁘게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예뻐 보이려는 것은 여자의 본능이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정말로 여자가 예뻐 보이려는 것이 진화 심리학적 의미의 본능일까? 여자는 남자에 비해 선천적으로 더 예뻐 보이려고 하는 것일까?

 

여자가 그렇게 진화했다는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기는 쉽다. 대략 이런 식일 것이다:

 

남자는 선천적으로 여자보다 이성의 외모에 더 집착한다. 따라서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예뻐 보임으로서 번식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예뻐 보이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심리 기제가 여자에게서 진화했다(상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남자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도록 진화했다).

 

 

 

하지만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는 효과적으로 예뻐 보이도록 하는 화장 기술과 성형 기술이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예뻐 보이도록 하는 본능이 여자한테 진화했다 하더라도 21세기의 선진 산업국에서처럼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사냥-채집 사회에서 예뻐 보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깨끗하게 닦고 헤어스타일을 정리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수십 만 년 전 또는 그 이전에 아프리카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이 홀딱 벗고 다녔다고 본다면 옷을 통해 예뻐 보일 수도 없었을 것 같다.

 

 

 

여자가 예뻐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은 선천적 본능 때문이라기보다는 후천적 경험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에게는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여자는 화장이나 성형을 통해 예뻐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이나 성형을 한다.

 

다른 식의 설명도 가능하다. 다른 여자들이 화장이나 성형을 하는 것을 본 여자는 그냥 모방한다. 인간에게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 또는 다수가 하는 일을 모방하도록 하는 심리 기제가 있는 것 같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그런 식의 모방이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 설명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두 설명 모두 옳을지도 모른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진화한 환경을 중시한다. 화장과 성형이 현대 사회에서 여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화장 본능이나 성형 본능이 진화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화장 본능의 진화를 이야기하려면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진화했던 환경에서 화장이 번식에 도움이 되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인간의 경우 과거의 환경과 현재의 환경이 어떤 측면에서는 극적으로 다르다. 이런 측면을 잘 고려해서 진화 심리학 가설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