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먼저,

유시민의 당선 가능성이 단 0.0001%라도 높아졌다는 사실이 기분 나쁩니다. 담벼락에 보니까 유시민은 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없고 또 심상정의 사퇴가 유시민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한나라당 지지층의 결집 등 역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더 높다면서 닝구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웃는 분도 있던데...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마타도어고 사기 수준입니다.

심상정 지지표가 직접 유시민에게 가지 않는다 해도 부동층 특히 잠재적으로 야당 지지성향의 유권자들이 유시민을 '야권의 유일후보'로 인지하는 효과는 적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비슷한 성향의 후보들이 단 한 명이라도 줄어드는 편이 후보자에게는 유리한 요인이죠. 이런 것 모르고 유시민이나 유빠들이 정치 하지는 않습니다. 괜히 자기 죽을 일에 시간, 돈, 노력을 투입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유시민 당선 가능성 없다, 오히려 한나라당 결집 등 반작용만 부른다"는 저 발언이야말로 유시민에 대한 닝구들의 거부반응 또는 조직적 반발표를 무산시키려는 저의가 있는 것 아닌가 싶군요.

원래대로 하면야 호남향우회가 반유시민 운동에 나서거나 침묵을 지키는 것이 정상일 텐데, 이번에 수도권 지역 호남향우회가 '중립'을 선언했다고 하더군요. 저거, 실은 기분은 나쁘지만 그렇다고 '야당 유일 단독후보 유시민'을 노골적으로 안티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간접적인 지지' 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도 나름 유시민으로 단일화해서 닝구들의 천형이나 마찬가지인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한 효과라고 봅니다.

결정적으로 심상정 사퇴가 기분 나쁜 것은...

현재 여론조사의 지표와 무관하게... 유시민 또는 야당을 지지하는 아니면 이명박을 반대하는 숨은 표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저렇게 숨은 표 또는 마음을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부동표들은 사소한 요인으로도 대거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습니다. 유시민을 지지해야 해? 이렇게 갈등하던 유권자들이 심상정 사퇴를 계기로 "그래, 심상정도 유시민 밀어준다잖아..." 이렇게 자신을 설득할 명분을 갖게 된다는 얘기지요.
 
부동표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설득할 명분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번 심상정 사퇴는 이들에게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상당히 매력적인 떡밥일 수 있습니다.

유시민이 이번에 떨어진다 해도 진보신당 심상정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야권 단일후보로 옹립된 경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자산이 됩니다. 사기꾼 정치인이 좀더 질기게 정치생명을 유지해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지요. 만일 당선이라도 된다면 차기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야권 후보로서 대표성을 갖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저는 정말 차라리 박근혜를 지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 기분 나쁜 것...

이번 심상정의 사퇴가 솔직히 말해 조직적, 이론적 뒷받침이 없이 이루어진 행동이라는 겁니다. 진보신당 차원의 결정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 진보진영이나 야권 차원의 명분도 없는 결정입니다. 지금 유시민에 대한 지지는 철저하게 국참 그리고 민주당 내 노뽕 맞은 무리들의 요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보신당의 대표주자인 심상정이 이런 요구에 '마지못해' 응해야 할 이유가 뭘까요?

진보세력의 중도개혁 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역사가 꽤 길지요.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에 대한 NL의 지지일 텐데, 과연 정치적 의미나 정치인 개인의 중량감 이런 모든  것을 갖고 따져볼 때 과연 심상정의 유시민 지지가 김대중에 대한 NL의 비판적 지지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내가 보기엔 말도 안되는 비교입니다.

이 점에서 하나의 의혹이 제기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유시민과 심상정이 같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학창 시절에 안면이 있는 사이입니다. 심상정 개인이야 양보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범 서울대 운동권의 호소와 압박이 있었다면 그거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만 더 거론하고 마치겠습니다.

저 역시 진보신당 좋아하지 않고, 소위 진보 성향의 친구들이 과거에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 씹기에 주력한, 범 영패진영의 한 갈래라고 보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이라는 간판 자체가 이렇게 싸구려로 취급되는 것이 합당한가... 그런 의문입니다.

진보진영... 그동안 비판적 지지 요구에 시달릴만큼 시달렸습니다.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 중도사퇴 전문 정당입니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건강한 모습이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민주당은 누가 봐도 제대로 자신의 포지션을 잡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과거 절박한 정권교체의 요구가 있을 때에도 진보진영이 이렇게 쉽게 비판적 지지를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쩐지 입맛이 씁니다.

아군이건 적군이건 또는 경쟁진영이건... 자식의 색깔을 잃고 타락한 모습은 일단 보기에 불쾌합니다. 그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죠.

그래서 저는 심상정의 사퇴가 불쾌합니다. 짜증이 납니다. 그동안 심상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만큼 비판할 기회도 없었지만... 이제는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그래, 니 그릇이 그 정도니 어쩌겠니? 이제 그만 하고 주제에 맞게 집에 가서 살림이나 해라."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