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예전에 출판 관련 서적들을 뒤지면서 비유럽 언어 중 나름대로 그 언어를 통해 학술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언어를 찾아 보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요,(여기서 유럽 언어란 말 그대로 유럽의 언어, 즉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루마니아어, 네덜란드어… 등을 가리킵니다) 한국어로 된 출판 관련 서적은 주로 한국어 출판물에 관한 정보에만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흥미로운 결과를 얻지는 못했었지요. 영문 서적은 뭐부터 뒤져야 할지 몰라서 광범위한 조사를 못 했고요..

그나마 쓸만한 정보를 얻었던 경우가 예전에 제가 했었던 포스팅에서처럼 각국 도서관 장서량을 조사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지요. 사실 그 정도 정보를 얻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특히 동남아시아권 도서관의 장서 정보는 영문 서적에도 잘 나타나 있지 않고 웹상에도 잘 공개되어 있질 않아서 말이죠. 어쨌든 그 도서관 장서량 통계에 따르면 동남아권 주요 언어들 중에서(베트남어, 태국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크메르어. 필리핀어나 라오어, 버마어는 자료를 찾기가 어려워서..) 그나마 태국어 정도가 가장 해당 언어로 출판된 도서의 양이 많은 듯합니다. 또 상대적으로 자료를 얻기 쉬운 투르크어권 국가들의 도서관을 비교해 보면, 터키에서 쓰는 현대 터키어로 된 도서의 양이 대략 가장 많은 수준인 듯하네요.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 두 언어에 대해 간략하게 적어 보려고 하는데요.. 뭐 학술 연구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거창한 건 아니고.. 이 두 언어로 번역된 주요 번역물들의 현황에 대해 간략하게 쓸 것입니다. 시간상 폭넓은 주제를 포괄하진 못할 것 같고, 기초 학문 분야를 중심으로 조금씩 할당해 보죠.(단, 태국의 경우에는 출랄롱꼰 대학의 도서관 사이트(출랄리넷)와 출랄롱꼰 대학 출판부를 중심으로 검색을 했기 때문에 출랄롱꼰 대학 도서관에 없는 번역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터키의 경우는 이스탄불 대학 도서관 카탈로그 서비스를 중심으로 찾았습니다) 이학계 학문의 경우, 주로 학부 수준의 교과서를 중심으로 찾아 보았습니다.

여기서 기초 학문을 중심으로 하는 이유는,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대략 100만 권 급의 도서관을 가진 언어라면, 당장 국가가 굴러가고 사업을 하는 데 급히 필요한 의학, 공학, 상경계 학문에 대해서는 전문 연구서까지는 아니더라도 학부생이 4년 동안 쓸 교재 정도는 웬만큼 그 언어로 나와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스탄불 공대를 중심으로 한 터키의 공학 수준이나, 마히돈 대학을 중심으로 한 태국의 의학 수준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실제로 대략 검색만 해 봐도 이쪽 분야에 대해서는 해당 두 언어로 많은 자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0. 기독교 성서 : 신약 및 구약.
그냥 역사적 가치를 생각해서 끼워 넣었고, 딱히 검색해 볼 필요도 없이 둘 다 번역본이 있습니다. 당장 제가 터키어, 태국어판 성서를 pdf 파일로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까요. 태국어 성서가 유명한 킹 제임스판에서 중역한 것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_-;; 참고로 『꾸란』도 둘 다 있습니다. 특히 터키어의 경우는 없는 게 이상하지요. 왠지 이 경우도 제가 둘 다 가지고 있군요.


1.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과 칼 마르크스, 『자본』.
서양의 대륙철학에 관한 연구가 웬만큼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정도는 필수겠지요. 터키어로는 물론 번역본이 존재합니다.(뿐만 아니라, 터키의 경우 아랍어 번역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고대, 중세 철학 전반에 대한 번역본 및 연구서 사정은 상당히 충실합니다) 터키어 위키백과의 'Immauel Kant' 항목을 보면 웬만한 칸트의 서적은 번역이 되어 있는 것 같군요. 반면 태국어의 경우, 출랄리넷이나 출랄롱꼰 대학 출판부 사이트를 뒤져 보아도 번역본이 없습니다.(칸트의 이름은 태국어판 위키에서 참조) 다만 태국 저자가 쓴 윤리학 서적들에 몇 절이 할당되는 경우는 있군요. 출랄롱꼰 대학 철학과 등을 둘러보면, 태국의 철학 연구에서는 전반적으로 교수진들이 미국 출신인 경우가 많아서 분석철학이 강한 것 같습니다. 동양철학, 특히 인도철학과 불교철학의 영향력도 전통적으로 센 듯.

『자본』을 소개하는 이유는.. 먼저 다음 인용구를 보시지요:

…특히 이 사상의 위력은 마르크스 사상이 아랍어로 정확하게 표현된 것에서 증명되었다. …
- 앨버트 후라니, 『아랍인의 역사』, 심산, 2010, 682쪽.

… 4. 마르크스주의자 학파
 찟 푸미싹("쏨싸마이 씨쑤트라판"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였음) 중심 학파로 … 싸릿 정부는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사형에 처하였으나 … 1973년(10월 학생의거)~1976년(10월 군부쿠데타)의 약 3년간 태국 내에서 대학생들과 신진 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호응을 받았다. 군사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의 금지에 의해, 또 이와 유사한 학파, 예를 들어 정치경제학파의 출현으로 인해 이 학파에 대한 호응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 6. 정치경제학파
 태국 역사연구에서 가장 늦게 시작된 이 그룹은 마르크스주의자 학파들이 사용하는 방법론을 사용하나, 경제적 측면을 최우선적으로 살피며 부차적으로 정치적 측면을 연구한다. 이들은 … 쭐라롱껀대학교 경제학대학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 있다.
- 김영애, 『태국사』, 한국외대출판부, 2002, 18-19쪽.

근현대 이슬람계 정치세력 중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지닌 이슬람 사회주의자들의 지적 영향력과, 터키 좌파 진영에서 이들의 파급 효과를 고려할 때 터키에서 마르크스의 번역 현황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태국의 경우는, 김영애 교수의 『태국사』에서 소개하는 6개 주요 태국 역사학파 중 2개의 전통이 마르크시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만 소개해도 충분하겠지요.

터키어로는 『자본』이 상당히 널리 퍼져서, 현재는 인터넷에서 공짜로 읽는 것도 가능합니다.(1 2 3) 반면 태국의 경우 C. J. Reynolds의 1983년 논문에 따르면 1983년까지는 태국어 번역본이 없었다고 합니다. 허나 지금은 번역본이 있군요.(링크)


2. 20세기 초의 유명한 서양 문인들 약간 : 사르트르, 카프카, 조이스.
그냥 영어, 프랑스어, 독어권에서 생각나는 대로 한 명씩 뽑았습니다. 제가 문학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한데.. 어쨌든 현대 서양 문학 연구를 하려면 이 정도는 번역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카프카의 경우는 90년대에 베트남어 번역이 나왔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게 생각나서.. 먼저 터키어의 경우 세 명 모두 주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된 것 같습니다. 당장 위키백과만 좀 훑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 그런데 조이스의 경우 『율리시즈』 번역은 있는데 『피네건의 경야』는 없네요. 좀 재미있는 사실인데 터키어로 『지혜의 일곱 기둥』 번역이 있습니다. 터키 사람들은 이걸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반면 태국어는, 사르트르의 경우 철학서는 거의 번역되지 않은 것 같고(관련 개설서는 있습니다), 문학서는 한두 권쯤. 카프카의 경우 『변신』은 번역되어 있는데 그 외에는 안 보이네요. 조이스는 『율리시즈』, 『피네건의 경야』 번역은 없고 『더블린 사람들』 및 한 권이 더 번역되어 있군요.


3. 20세기의 인도권, 동아시아 작가들 : 타고르 외, 중/일.
동시에 비교할 수 있는 작가로는 타고르를 뽑았습니다. 동양 작가군 번역 현황에서는 2의 상황과 역전이 일어나는데, 이 경우는 태국어 번역이 월등히 많습니다. 같은 인도 문화권인 타고르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요. 터키어의 타고르 번역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꽤 적은 편입니다.

또, 태국이 일본 문화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서 일본 작가들의 태국어 번역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추리소설류나 최근에 나오는 라이트노벨류까지 번역이 되고 있으니까요. 유명한 고전 작가를 한 명만 들어 보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어느 정도 번역되어 있는 듯. 하지만 고전 번역은 많지 않고 주로 번역의 중심은 현대 작가들이네요.중국 소설은 고전 소설인 삼국지 등은 오래 전부터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으며(태국 문학사에서 『삼국지』번역은 상당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근현대 중국 작가들도 많이 번역이 되고 있네요.

상대적으로 동아시아권 작가들의 터키어 번역은 얼마 되지 않네요. 상당한 유명세가 있는 작가들, 그것도 주로 현대 작가들만 뽑아서 번역하는 것 같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같은. 하지만 문화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랍어/페르시아어권 작가들의 번역물은 많습니다. 다만 양적으로 따지면 이들보다 서양 작가들 작품에 주로 번역의 무게를 두는 듯.


4. 역사서들
일단 양 언어로 된 자국사 연구는 상당히 진척된 편이니 이에 대해서는 코멘트할 것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이 외에, 역사서들의 번역은 일괄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데, 태국어의 경우 예컨대 카의 번역은 부분적으로 되어 있고, 기번이나 몸젠은 인용은 많이 되는데 번역은 없는 식입니다. 상대적으로 서양 역사서들은 터키어 번역이 충실하고, 인도/동아시아 역사서들은 태국어 번역이 충실한 정도.


5. 수학, 물리학 계통의 교과서들(분과는 위키 및 한국 대학의 교과목표 참조)
(i) 해석기하학, 미적분학, 해석학, 선형대수학, 기초적인 수리통계학, 집합론, 정수론, 일반물리학 등 초급 교재
양 언어 모두 충실합니다.

(ii) 수학 : 추상대수학
터키어로는 서너 권 정도 있고, 태국어로는 상당히 충실한 편입니다.

(iii) 수학: 위상수학
태국어로 된 교재는 약간 있고, 터키어로는 상당히 충실한 편이며 일부 대학원 연구서(대수적 위상수학 등)까지 있습니다.

(iv) 수학 : 미분기하학
태국어로 된 교재는 없으며, 터키어로는 충실하진 않지만 두세 권쯤 있습니다.

(v) 물리학 : 역학류
양쪽 모두 공학적인 측면에서의 역학류 교재는 상당히 충실하며, 물리학 쪽에서 쓰는 듯한 역학이나 양자역학 교재도 부족하진 않은 듯.

(vi) 물리학 : 전자기학
터키어 교재는 한두 권 정도로 얼마 없군요. 반면 태국어 교재는 양적으론 상당히 많습니다.

(vii) 물리학 : 통계역학
태국어 교재는 두어 권 정도 있습니다. 터키어 교재는 단 한 권.

(viii) 물리학 : 광학
태국어 교재는 없는 듯하고, 터키어 교재는 충실합니다.


6. 화학, 생물학 계통의 교과서들
이 경우는 의학서 번역에 밀접하게 연관된 분야이기 때문에 대체로 위의 수학, 물리학 계통보다 훨씬 번역 사정이 좋은 것 같네요. 딱히 항목을 나누지 않아도 될 정도군요. 일단 태국어로라면 웬만한 학부 서적들 정도는 풍족하게 다 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터키어의 경우 무기화학 서적이 두어 권 정도밖에 없는 등 상대적으로 열악하긴 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것 같네요.

여담인데,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등 도킨스 서적의 번역이 터키어로 거의 다 되어 있습니다.(참고) 제가 알기로, 터키에도 무신론자는 꽤 많아요. 투르크계 이슬람교도 다수 국가(터키, 아제르바이잔 같은)들은 종교적 의식도 상대적으로 엄격하지 않고 나이롱 신자들이 많아서 그러거니 말거니 하나 봅니다. 특히 터키의 경우 전통 시대 오스만 제국에서 법학파 중 가장 진보적인 하나피파가 득세한 영향도 좀 있고요. ...근데 신기하게 태국어로는 도킨스 책들의 번역이 없군요. 출랄롱콘대 도서관에는 영어판 책들은 있는데, 저자 목록에 태국어로 '리처드'라고 검색해 보니 도킨스가 없네요.



이 외에 언어학이나 몇몇 사회과학 쪽도 조사를 하려 했는데 귀찮아져 버렸습니다. -_-;; 그냥 스킵. 참고로, 조사하면서 알게 된 건데 태국의 경우 SF소설이 상당히 인기인 것 같네요. SF소설이 소설류에 많이 보여서.. 만화 시장의 경우는 태국의 경우 일본계 번역만화가 인기인 반면(자생적인 만화는 거의 아동용에 한정) 터키의 경우 프랑스계 번역만화가 인기인 것 같네요. 터키 만화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만, 터키 애니메이션은 요새 조금씩 선전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