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독서의 완성은 깨달음이다

 

 

건강, , 사랑은 행복의 3요소

 

 

 

나는 20011009일 이후 병원이나 약국에 가지 않았다. 그 때 이후 단 한번도 병원에서 진찰을 받거나 처방전을 받거나 하지 않았다. 또 한약뿐만 아니라 몸에 좋다는 것 건강식품이나 강장식품 등 - 은 일체 다 거부했다. 그만큼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몸이 한번도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심한 목 감기, 편도선염, 감기 몸살, 심한 기침으로 고생을 꽤 했다. 일년에 한 두 번은 앓았다. 그러나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자연치유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훌륭한 인술을 가진 스승과 같은 분을 만난 후 독서를 통해서 건강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건강 공부를 하면서 인간은 본래 자연치유력이 있으며, 몸이 치유가 되는 것은 그 치유력에 의한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나 약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결국은 환자 스스로가 치유하는 것이다. 몸이 아픈 이후로 건강에 관한 다양한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간 본래의 자연치유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지금도 건강에 관한 책을 꾸준하게 읽고 있다. 화장실에서 읽는 책은 건강 분야로 정해서 읽는다. 앞으로도 평생 건강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공부를 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명에 관한 것인 만큼 본인이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나는 몸이 몹시 아팠으나 병원이나 한의원에 전혀 가지 않고 치료한 경험이 있다.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그간 배우고 깨달은 건강 원리가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는 참 진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충분히 공부를 하지 않아 기존의 지식만이 옳다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개인적인 경험을 밝혀 본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서울 양재동에서 방문 영업을 하다가 훌륭한 의술을 가진 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 선생님과의 만남이 지속되면서 좋은 책을 추천 받기도 했다. 그 중에는 건강에 관한 책도 있었다. 하지만 만남의 초기부터 건강에 관한 책을 읽지는 못 했다. 의학이나 건강 분야는 전문가나 하는 공부려니 생각했고, 교육이나 깨달음과 같은 당시 내게 시급했던 분야에 관심이 컸기 때문에 바로 추천해 주신 책을 읽지는 못했다. 그런데 2003년 겨울 어느 날 저녁부터 오른쪽 안면신경마비가 왔는데, 그것을 계기로 건강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으면서 공부를 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인연이 있는가 보다.

 

갑자기 몸이 아프면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오후에 기수련을 좀 하고 나서 저녁을 먹는데 느낌이 이상하였다. 밥알이 잇몸 사이에 끼는 것이었다. 오른쪽 얼굴 반쪽이 제대로 통제가 안 되었다. 이를 닦고 나서 입안을 헹구려고 물을 오물오물하는데 물이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가만히 느껴보니 오른쪽 얼굴이 약간 마비가 된 것이었다. 그 날은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엔 증세가 더 심해졌다. 오른쪽 눈까지 시려왔다. 말을 해도 말이 잘 안 되고, 웃으려고 해도 웃는 얼굴 모습이 일그러져 보였다. 오른쪽 얼굴이 얼얼하면서 마비된 느낌이 들었다. 정신은 멀쩡한데도 몸이 제대로 말을 안 들으니 약간의 두려움도 생겼다. 완전한 믿음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증거로 삼으려고 동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멀쩡했을 때의 모습>

 

<입이 돌아가고 나서의 모습>

 

이 병은 한의학에서는 구안와사라고 한다. 그 병이 올만한 이유가 없는데 나를 찾아왔다. 당시 나는 기 수련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수련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명현 현상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었다. 2001 10월경부터 명상을 하는 선배님을 만나면서 기수련을 하고 있었다. 기수련을 하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은 인간과 우주는 대단히 신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가 치유력 혹은 자기 면역력이라는 것이 있어서 스스로의 병을 충분히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아가 우주는 그 원리가 사랑이기에 자연히 인간을 잘 살 수 있도록 돌본다는 것이다. 이런 대우주의 섭리에 따라서 인간이 치유하려고 한다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준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우주가 인간을 치유해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원리를 굳게 믿고 있었다.

 

안면신경마비가 있은 지 3일 후에 우연히 신경외과의원을 운영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말을 조금밖에 하지 않으면서 표가 나지 않게 조심했는데도 친구는 바로 알아챘다. 역시 전문가였다. 친구는 당장 진찰을 받으라고 강권을 하였다. 만일 시기를 놓치면 큰일날 것이라며 겁을 많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기수련을 하고 있다면서 원인을 알아보고 나서 다음에 다시 들린다는 말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났었다.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절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굳게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의사든 한의사든 소위 말하는 의료 전문가에 맡기지 않고 내 스스로 치료를 할 생각이었다. 인간과 우주의 존재 원리가 사랑이라면 반드시 낫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 때 내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도를 추구하는 것이었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목숨보다도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이 진리의 길인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우주의 존재 원리가 사랑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작은 두려움에 포기를 한다면 다가올 어떤 다른 고통에도 쉽게 굴복하고 말 것이기에, 도의 추구는 끝나버린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작은 육체적 고통에 굴복하고 정신적인 죽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차라리 생명을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목적은 깨달음을 얻고 도를 완성하는 것이기에 절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일절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만큼 나의 각오는 비장했다.

 

그런데 주위의 걱정과 반대는 참으로 심각했다. 집에서는 물론 친구나 지인들까지 당장 치료를 받으라며 걱정을 많이 했다. 아내는 심하게 걱정을 하면서 병원에 가라고 난리를 쳤다.  여동생들까지도 하소연을 하면서 말렸다. 나는 무소의 뿔처럼 강하게 밀어붙였다.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내 자신이 믿는 바 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었지만 주의 사람들의 애정 어린 걱정과 간섭도 참으로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무리 강한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을 지켜낼 수 있게끔 주위에서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몸이 아픈 것보다 내 소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경과가 좋았다. 구안와사를 앓았던 사람에게 얘기 들어보니 완전히 낫기에는 몇 달이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22일째 되는 날 벌써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수련을 하면서 지냈는데 말이다. 마침 기록을 해 둔 것이 있어 옮겨 적어본다.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표현하면, 처음 보는 사람은 잘 모를 정도고, 가만히 있으면 아는 사람도 자세히 살펴보아도 표가 나지 않을 정도로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오른쪽 안면이 약간 마비된 기운이 느껴진다. 이마의 주름살이 전에는 왼쪽만 생겼는데, 오늘은 눈썹을 치켜올리면 오른쪽에도 주름살이 확실하게 표가 난다. 입은 웃을 때도 양쪽 입꼬리가 동일하게 올라간다. 웃을 때도 심하게 일그러졌었는데 상당히 좋아진 편이다. 하지만 아직 얘기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는 오른쪽을 움직이는 것이 부담이 간다. 웃어도 오른쪽 입의 치아가 다 보이지 않고 왼쪽으로 입꼬리가 많이 올라간다.

 

점점 더 상태가 좋아졌다. 하지만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문제였다. 아직 오른쪽 씹는 기능이 회복되지 않아서 가끔 혀를 깨물어 피가 났다. 한번은 정말 혀를 많이 깨물었는지 피가 많이 나서 고생을 했다. 인터넷 모임의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 있어 옮겨적어 본다.

 

혀를 깨물어 죽을 뻔 했습니다. 어제 점심을 먹다가, 과자를 먼저 먹었는데 그만 혀를 깨물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피가 많이 안 나는 것 같아서 과자를 다 먹고 컵라면까지 먹고 났는데 그 때부터 피가 나기 시작하더니 거짓말 보태 줄줄 흐르는 게 아닙니까! 참 난감했습니다. 서울역 신청사 대합실을 지나서 고객에게 갔다가 돌아오도록 계속해서 피가 나서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약품에도 기대자 말자고 결심을 하여 서울역 대합실에 의자에 앉아 기수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대형 TV가 있어 탄핵 관련 뉴스가 벌처럼 앵앵거리며 흘러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들쑤셔 놓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냥 기수련을 하느냐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말았지요. 1 30분 가량부터 4시까지 의자에 기대어 수련을 하는데 참 잘 되더군요. 집에서는 거의 누워서 수련을 하는데 앉아서 하는데 기운이 팍팍 잘 돌더군요. 느낌상 피가 이거 피가 멎겠구나 싶었는데, 4시경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을 하기 위해 자세를 풀고 혀를 느껴보니 피가 멎은 것 같더라구요. 화장실에 가서 확인을 해 보니 역시 피는 멎었더군요. 혀를 깨물고 죽어야 할 사람들이 많은 날이라서 제가 대신 혀를 깨물었는지 참 피를 많이 본 날이었습니다. (2004. 3. 14.)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병은 몇 개월 후에 다 나았다. 그 때 몸이 아프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다. 내 믿는 바 소신을 굳게 지켜서 깨달음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었다. 결국 내 자신이 스스로 치유를 해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얼굴의 좌우 균형된 움직임이 그렇게 완벽한 동작을 만들어낸다는 것에 새삼스레 놀랐다. 음식을 씹는 행위라든가, 두 눈을 깜빡이는 동작이나, 환하게 웃는 움직임 등이 얼굴 양쪽의 부위가 조화롭게 움직여지는 것에 의해서 완벽하게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약간의 부조화로 인해서 환하게 웃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도 없게 만들었다. 눈을 깜빡이지 못 하니까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눈의 각막이 마르지 않도록 촉촉하게 유지할 수도 없었다. 아주 작은 부조화가 눈을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일들이었지만 그런 일상적인 것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 자체가 무한한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이 예쁘고 안 예쁘고가 문제가 아니라 얼굴 양쪽의 근육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진정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우리는 코가 조금 낮네, 눈이 작네, 입술이 얇네 어쩌네 하면서 각종 성형수술로 얼굴을 예쁘게 꾸미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새로운 눈으로 그런 현상을 바라보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노릇인 것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그저 움직여주는 신체를 갖는 것 자체만도 커다란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키가 작지만 사지가 멀쩡하고, 얼굴이 예쁘지는 않지만 건강미가 있는 것이, 머리가 희지만 머리카락이 많은 것이, 높이가 낮지만 입을 닫고 있어도 숨을 쉴 수 있는 코가 붙어있는 것 자체만도 커다란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실한 이빨이라도 있는 것이, 복스럽지는 않지만 제 위치에 붙어 있는 귀가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조금 더 확대해보면 다른 모든 것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세끼 밥은 먹고 사는 것도, 모아 놓은 돈이 없지만 빚이 없는 것이, 빚이 있지만 많이 않은 것이, 아니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도 크나큰 축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나아가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감사하게 느껴질 것이다. 눈이 있어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을 관찰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이요, 여러 사람들이 있어서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느끼다 보면 우주 만물에 대해서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갑자기 몸이 아프게 되면서 건강에 관한 책을 많이 보았다. 자연 치유력으로 내 스스로 몸을 고치는 한편 다양한 책을 보면서 건강의 원리, 병의 치유 원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 이후로 건강에 관한 책을 꾸준하게 읽고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책을 읽고, 훌륭한 분들께 배워서 깨달은 바를 실천에 옮겼다. 자연치유력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어쩌면 크다고 할 수 있는 시련을 극복하면서 더 깊은 깨달음을 얻고 진리에 한발 더 다가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더욱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 뒤로도 심하게 아픈 적이 있지만 의사나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치유를 하고 있다. 작년에도 심한 기침과 가래로 고생을 했다. 서너 달이나 계속되었다. 끝끝내 버티니까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좀 지나치다 싶겠지만 이렇게 해서 2001109일 이후 단 한번도 병원이나 약국 혹은 한의원에도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평생 가지 않을 각오이다.

 

이렇게 건강 원리를 배우고 익히는데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건강의 원리를 안다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건강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 만큼 우리는 개개인 모두가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사와 같은 전문가에게 맡겨버리고 전혀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위험한 생각이다. 생명과 건강의 원리를 배우길 포기하면서 건강이 점점 더 상품화되어 가고 있다. 나는 건강에 대해서만큼은 기본적인 원리는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소중한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지키지 못하는 건강을 누가 지켜줄 수 있겠는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우리는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다투면서 살아가고 있다. 또 행복한 사람보다도 불행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인간 존재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 존재와 우주의 원리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다.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육을 통해서 오랜 기간 동안 배움의 길을 걷지만 단순 지식을 배우는데 그치고 만다. 학교를 마친 뒤에는 전혀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린 너무나 무지하다. 정작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은 하나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학교 과정에서 배우지 못했다면 스스로 배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행복한 인생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배움의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스승을 만나서 배우면 좋겠지만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엔 스승다운 스승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스승을 만날 행운도 거의 없다. 또 스승을 만나는 행운을 얻더라도 타인을 통해서 배우기에는 자신이 너무 잘 났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을 능력이 없다. 경험을 통해서 배우기에는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육체적 안락을 쫓도록 스스로를 길들여 왔다. 그 습관을 끊고 스스로 성장의 길을 걷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이미 진리를 담고 있는 책들이 거의 다 나와 있다. 단지 손을 뻗어 책을 집어 들면 된다. 배움을 통해서 점점 더 큰 깨달음을 얻고 진리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힘이 많이 부족하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 그런 훈련을 쌓지도 못했고, 사회에 나와서도 배움의 기회가 없으니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만 반응하고 행동한다. 즉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기를 바라지만 감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나치게 감정적일 때 우리는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지 못하면 감정적인 논쟁과 다툼에만 매달리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정싸움의 희생자가 되는지 주위를 둘러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 다 좋다. 시간 때우는 재미, 배움의 즐거움, 호기심 충족, 정보의 입수나 지식의 획득, 지혜나 깨달음을 추구 등 다양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이든 개인에게 있어서 유용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온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행복한 삶에 꼭 필요한 지식들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 존재와 그를 둘러싼 환경인 우주의 원리에 대한 배움일 수 밖에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배움의 길이 바로 진리 추구이며 깨달음을 얻는 길이다.

 

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는가. 전쟁과 전염병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혹은 관계 속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수천 년의 동안의 학문과 지혜가 축적되어 있는데도 인류는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개개인이 스스로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단으로서 혹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동물처럼 살다 보니 위대하고 소중한 인간 존재인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사니까 엉터리 지도자들에게 속기도 하고 동물처럼 집단의식에 빠져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사회적 동물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책을 통해서 깨어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교활한 위정자들에 기만당 해 왔는지는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라는 아전인수격 해석에서도 알 수 있다. 책 전체의 내용이 아닌 일부 구절만을 인용해서 호도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에 의해 처형될지라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진정한 철인이었던 것이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인식의 지평이 얼마나 크게  넓어지고, 정확한 지식을 얼마나 많이 얻을 수 있는지를 알면 독서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책을 읽는 능력도 거저 얻을 수는 없다. 독서가 처음부터 쉽지는 않다. 훈련이 필요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도 있다. 스스로 생각해보지도 않는 사람이 생각을 하려니 골치도 아프다.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나 문장도 나온다. 하지만 조금씩 인내를 갖고 노력하다 보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쉬운 책부터 손에 잡고 읽어보자.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나 하는 일과 관련된 책을 보면 된다. 독서력이 향상되면서 점차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인생에 필요한 부분에 대한 공부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독서는 등산을 하면서 느끼는 경험과 같다. 처음 산에 발을 들여놓고 숲 속을 뚫고 지나거나 얕은 언덕을 오를 때는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다.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안 간다. 겨우 숲 속의 나무들 밖에 식별할 수 없다. 점점 높이 오를수록 더 많은 것을 더 멀리까지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나의 위치가 객관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이렇게 등산 초기에는 그저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고, 자연을 가까이 하는 즐거움도 얻게 된다. 독서도 그렇다. 감정을 자극하는 것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모르던 것을 아는 즐거움도 맛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재미에만 빠져 있게 되면 더 큰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만다.

 

등산의 목적은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힘들게 꼭대기까지 오를 필요가 있냐며 행위 자체에 목적을 두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코 나쁘지 않다. 얼마든지 유익하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서서 세상을 굽어보며 느끼는 희열은 결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독서를 하더라도 점차 수준을 높여가서 다양한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 독서의 완성은 결국 나를 알고 세상을 아는 깨달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글은 2007년 봄에 쓴 글입니다!>
<사진 하나는 참고를 위해서 남겨둡니다!>

[출처] :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D0216&mode=read&premode=list&page=2&ftype=&fval=&backdepth=&seq=26&num=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