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튜어디스는 거의 한결같이 젊고,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잘 빠졌나? 이런 질문을 하면 그것은 남자가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는 진화 심리학자가 꼭 나온다. 그러면 진화 심리학의 생물학 결정론이 외모 차별 없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날려 버린다고 씩씩거리는 사람이 꼭 나온다. 그러면 진화 심리학자는 설명은 정당화가 아니라고 곧바로 반박할 것이다.

 

나 역시 설명은 정당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설사 어떤 과학 명제가 사악한 정책이나 제도나 관습을 정당화한다 하더라도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그 과학 명제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 명제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과학의 교권의 기준 즉 일관성의 문제에 시비를 걸거나 실증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부닥쳤을 때 진화 심리학은 생물학 결정론이 아니라면서 빠져나가려는 진화 심리학자도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진화 심리학은 생물학 결정론이다. 라플라스(현재 상태의 우주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나 아인슈타인(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이 염두에 둔 절대적 결정론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정론이다.

 

인간 본성론을 이야기하면서 생물학 결정론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빠져나가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어느 정도 결정된 것이 아니라면 인간 본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열 개이고, 눈이 두 개이고, 심장이 하나인 것은 인간 본성이며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절대적 결정론은 아니기 때문에 가끔 손가락이 열 개가 아닌 사람이 태어나기도 하고 나중에 사고를 당해서 손가락을 잃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결정론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음에 대한 생물학 결정론은 육체에 대한 생물학 결정론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만약 남자가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도록 자연 선택에 설계되었다면 즉 그런 남자의 특성이 인간 본성이라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인간을 망가뜨리지 않고 인간 본성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논의의 편의상 남자가 젊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스튜어디스는 항상 젊고, 예쁘고, 잘 빠진 여자만 하게 될 것인가? 인간 본성이 생물학 결정론이라면 결국 사회 제도나 관습 등은 필연인가? 예쁜 스튜어디스는 인류의 숙명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 본성에 대한 위의 명제는 심리적 메커니즘의 수준에 대한 명제다. 즉 남자에게는 젊고 예쁜 여자를 선호하도록 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주장이다. 행동의 수준에서 고찰하는 것과 심리적 메커니즘의 수준에서 고찰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나의 행동에 여러 심리적 메커니즘들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다.

 

 

 

편의상 세상에 두 개의 항공사만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항공사 A는 현재의 절대다수 항공사처럼 스튜어디스가 몽땅 젊고, 예쁘고, 잘 빠진 여자다. 항공사 B는 스튜어디스를 뽑을 때 순전히 능력과 인간성만 보고 뽑는다. 따라서 젊은 여자도 있고, 나이 든 여자도 있고, 예쁜 여자도 있고, 못 생긴 여자도 있고, 잘 빠진 여자도 있고, 뚱뚱한 여자도 있다. 이 때 남자는 어느 항공사를 선택할 것인가?

 

만약 남자의 뇌 속에 오직 예쁜 여자 선호 메커니즘만 있다면 남자는 항공사 A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에서 인기가 있는 것 중 하나가 대량 모듈성(massive modularity) 테제라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뇌 속에는 수백, 수천 개의 모듈(부품)이 있다는 얘기다.

 

온갖 심리적 메커니즘들이 남자의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첫째, 예쁜 여자 선호 메커니즘이 발동하여 남자가 항공사 A를 선택하도록 영향을 끼친다.

 

둘째, 항공사 B예쁜 몸매를 원하십니까? 외모 차별 없는 사회를 원하십니까?라는 문구를 넣은 TV 광고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남자는 도덕 정신이 투철하여 그래, 외모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며 항공사 B를 선택할 것이다. 여기서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도덕성과 관련된 메커니즘들이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떠올려도 될 것이다.

 

어떤 남자에게 딸이 있는데 몹시 못생겼다고 하자. 그 남자는 내 못생긴 딸을 위해서라도 외모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하자고 중얼거리며 B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진화 심리학자들이 자식 사랑 메커니즘이 선천적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떠올려도 될 것이다.

 

셋째, 이성애자인 남자에게 애인이나 아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애인이나 남편이 젊고 예쁜 여자가 시중을 들어주는 비행기를 타는 것을 좋아할까? 아니다. 만약 모든 비행사의 스튜어디스가 젊고 예쁘다면 여자로서 질투를 하더라도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자가용 몰고 제주도로 출장 갔다 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항공사 B도 있는 사회에서 여자는 애인이나 남편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다. 만약 여자가 남편 대신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경우에는 어느 쪽을 예약할지 뻔하다. 여기에서 질투 메커니즘이 선천적 인간 본성이라는 진화 심리학자들의 얘기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항공사 A만 이용하는 것이 남들에게 들통나면 그 남자는 속물로 낙인 찍힐 수 있다. 저 인간은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외모 차별을 없애자고 열변을 토하면서 비행기 탈 때는 예쁜 여자 있는 항공사만 이용하네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압력이 강하면 남자들은 남의 시선 때문에 항공사 B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평판에 신경을 쓰도록 진화했다고 보는 진화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뇌 속에서는 수 많은 메커니즘들이 아주 복잡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에는 수십억 개의 뇌들이 상호작용하고 있다. 물론 뇌에는 무생물, 여러 종의 생물, 인간, 기계 등에서 비롯하는 온갖 것들이 입력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미리 예측하기는 너무 어렵다. 적어도 예쁜 여자 선호 메커니즘 하나에서 출발하여 남자가 항공사 A를 선택하는 것은 필연이다라는 명제를 산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한 생물학 결정론이 스튜어디스의 얼굴과 몸매에 대한 숙명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10-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