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위기와 김대중 정권의 등장

 

김영삼 정권 말에 한국은 커다란 외환 위기로 경제가 많이 침체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가장 큰 경기 침체였던 것 같다. 그 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적어도 초창기에는 운동권과 노동계가 시위와 파업을 어느 정도 자제했다. 민주당 계열이 한나라당 계열에 비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운동권의 다수를 차지하던 NL 계열에서는 비판적 지지라는 이름으로 상당히 노골적으로 민주당 계열을 지지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을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또는 자본가 계급)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위기의 시기에 노동자 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김대중 정권을 세웠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설명을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다. 한국의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만이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부 또는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런 식의 설명을 내 놓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있었던 것 같다.

 

 

 

 

 

진화 생물학자들의 의인화

 

이기적 유전자, 유전자의 이해관계라는 표현을 보면 유전자에게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진화 생물학자들이 쓴 여러 문장들을 얼핏 보면 유전자가 욕망을 품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무언가 수를 쓰는 것처럼 묘사한 것 같다.

 

이런 문장들을 본 어떤 사람들은 사회생물학자나 진화 심리학자들이 유전자가 욕망을 품고 있다고 믿을 만큼 바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진화 심리학자는 즉시 반발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개체군 유전학(population genetics)의 명제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개체의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를 높이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더 잘 복제되어서 결국 그런 방향으로 개체군이 진화한다는 뜻일 뿐이라는 것이다.

 

개체군 유전학을 충분히 배운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의인화해도 헷갈리지 않는다. 이것은 컴퓨터 하드웨어와 프로그래밍을 충분히 배운 사람이 컴퓨터, 컴퓨터의 부품, 프로그램, 프로그램의 부품(procedure, function)을 의인화해도 헷갈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의 컴퓨터의 능력을 심하게 과대평가하는 일반인들은 가끔 그런 표현 때문에 헷갈릴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몇 문장들만 떼어 놓고 일반인이 읽는다면 유전자에게 욕망이 있는 걸로 오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 진화론자들이 의인화하는 표현을 쓸 때에는 사실은 이런 뜻이다라는 식으로 의인화하지 않는 표현으로 풀어 쓸 때가 많다. 어쨌든 『이기적 유전자』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은 사람은 그런 식으로 오해할 리가 없는데도 그런 비판이 반복되는 이유는 비판자들이 제목만 읽었기 때문이거나 상대적으로 쉬운 그 책을 읽기에도 머리가 너무 나쁘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 가능성: 자본가들의 욕망

 

자본(또는 자본가 계급)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김대중을 내세웠다라는 말이 어쩌면 이런 뜻인지도 모른다. 개별 자본가들 다수가 김대중을 내세우면 운동권이 좀 잠잠해져서 위기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겠군이라고 생각해서 김대중이 당선되도록 노력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개별 자본가들 다수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자본가 계급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말해도 그리 틀린 표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자본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말한다고 해도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봐줄 만하다.

 

하지만 당시의 개별 자본가들 다수는 한나라당 계열을 지지했다. 그리고 대자본가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 조중동도 한나라당 계열이 당선되도록 애썼다. 따라서 자본가 계급이 김대중이 당선되도록 노력했다는 말은 이상하다. 자본가 계급 구성원 다수는 한나라당 계열의 당선을 위해 노력했는데 자본가 계급은 민주당 계열의 당선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

 

자본주의가 들어선 이후로 자본가 계급 다수가 보수 정권보다 개혁 정권을 더 지지했던 때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다. 따라서 엉터리 기능론은 아니다.

 

 

 

 

 

자본의 ?

 

과연 한국에서 자본이 김대중을 당선되도록 했다는 설명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당시 자본가 계급 구성원 다수가 김대중이 당선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본의 신이 있어서 자본가 계급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본주의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애썼다는 말인가? 그래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신이 파라오의 마음을 조작해서 유대인이 이집트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도록 했듯이 자본의 신이 유권자들의 생각을 조작해서 김대중이 당선될 만큼 많이 김대중에게 투표하도록 했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에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신학에 의존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뜻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냥 횡설수설이다. 그들은 외환 위기라는 상황과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운동권이 시위와 파업을 자제했다는 사실을 대충 엮어서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자본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라는 표현에는 분명히 의도 개념이 들어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운동권이 시위와 파업을 자제한 것은 효과일 뿐이다. 의도(기능)와 효과를 헷갈린 것이다. 이것은 기능론적 사회학자들이 의도와 효과를 헷갈리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이 문제를 엉터리 기능론이 사회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라는 글에서 다룬 적이 있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319

 

 

 

 

 

2010-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