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천안함 합동조사반의 발표 이후 인터넷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슬렁슬렁 다녀봤는데, 약간 충격을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반응도 꽤 있긴 하지만 아고라 등 '소문난' 곳에 주로 집중돼 있고, 이글루나 서프 같은 곳만 해도 이번 발표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나마 '합리적인 내용'으로 평가해주는 분위기가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이글루는 저런 분위기가 오히려 더 주류인 것 같고, 서프는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인정하는 것 같고.

내가 이런 평가까지 할 주제는 못되지만 솔까말 대가리에 뭣 좀 들었다는 부류일수록 정치적 입장 떠나서 좀 쿨하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것 같다. 그 시각은 '이명박 정부가 미워도 이번 발표는 특별히 잘못된 부분을 찾아낼 수 없고 나름대로 과학적인 근거도 있으니 그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반면 단순무식 맨주먹 붉은피에 가진 것이라곤 넘쳐나는 시간과 키보드 두드릴 분노와 오기, 증오밖에 남아있지 않은 이른바 루저들이 목이 터져라고 '천안함 발표는 사기'라며 짖어대는(?) 분위기다.

이쯤 되면 이거 승부는 이미 결정된 거다. 지금이야 뭣 모르고 덩달아서 분위기에 휩쓸려 천안함 발표는 사기라며 흥분하는 사람들도  좀 있으면 대충 눈치까고 슬금슬금 발 뺄 가능성이 높다. '가방끈'으로 상징되는 지식과 교육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이 있다. 특히 그 위력과 영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뚜렷하게 현실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 사회에서 가장 똑똑한 친구들이 선택하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은 포괄적인 측면에서 매우 현명한 투자 전략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천안함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포지셔닝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는 약간 자신없는 목소리긴 하지만 "천안함 사기론에서는 발을 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충고를 할만한 타이밍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말해놓고 나서도 나는 개운치가 않다. 천안함은 과연 이걸로 다 끝난 걸까? 이렇게 정리하고 잊어도 되는 것일까?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지성을 근거를 강조하는 쿨가이(?)들의 태도를 보면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수긍할 수도 없고, 납득도 되지 않는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러기가 싫다.

스켈렙 아해들이 쓰기 좋아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게 인지부조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늙다리 빨갱이 출신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쿨가이들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도저히 흉내도 못낸다는 점에서' 심지어 존경스러운 생각까지 들기도 하지만 결코 공감이 가지도 않고, 전혀 감동스럽지가 않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숱한 증거와 논란을 보면서도 내가 그런 내용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이 없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인정한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그것들 때문에 나는 쿨가이들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먼저 논의 과정의 폐쇄성과 폭압성이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과 세종시에 대한 논의조차 금지켰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단 하루도 잠잠한 적이 없었던 4대강 사업 이슈와 올해 들어 총리 임명에까지 영향을 주었던 세종시 사업조차 논의할 수 없다면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시킨다는 얘기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부분만 검토해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는 '근원적으로' 자격 미달일 수밖에 없다고 나는 판단한다. 아니,  국민들이 국정 현안에 대한 논의나 비판, 평가를 하는 것조차도 강제로 금지시키는 정권이 하는 발표를 어떻게 믿는다는 말이냐? 정부의 이런 태도가 천안함 사건의 경우에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으며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야당 등이 요구하는 정보 공개에 대해 정부측이 전혀 응하지 않았다는 것도 동일한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이다.

국제조사단이라는 명칭답게 호주와 스웨덴 등 여러나라 전문가들이 참여했으니 그 발표의 권위를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맞다. 나도 그런 걸 인정할 줄 아는 게 이른바 근대화고 선진화고 좀 오버하자면 '국격 상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제조사단의 권위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정 전반에 걸친 개방과 원칙 준수라는 '바탕'과 결합하지 못한다면 그건 의미가 없다.
 
아니 국민들의 기본적인 국정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 놈들이 몇 명 되지도 않고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전문가들을 '요리'하지 않고 그냥 쿨하게 대해줄 것이라고 어떻게 믿는다는 말인가? 이명박 정부 관료들이 외국 전문가들을 정말 그렇게 쿨하게 대했다 해도 그 이전의 절차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자격 미달이다. 국민들에게 믿어달라고 들이밀 자격 자체가 없다는 얘기이다.

천안함 침몰의 객관적인 팩트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팩트에 접근하고 이해하는 인간의 노력과 인지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어느 누구도 "내가 말하는 것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직 "가장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의해서 이러한 판단이 가장 객관적 팩트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진술만이 유효하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천안함 발표는 먼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라는 대전제부터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전제가 없으면 그 다음의 조건 즉,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초등학교 수준의 상식만 갖고도 판단할 수 있는 명제이다.

천안함 조사의 절차적인 민주성이나 정보 공개 등이 정부측 발표의 신뢰성에 관한 문제라면 이 발표가 불러올 파장은 이 발표의 '목적성'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이번 발표가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이명박은 천안함 발표 이후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립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러가지 수식어를 동원하지만 간단히 말해 "전쟁도 할 수 있다"는 노골적인 선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 정부의 천안함 발표가 한반도 문제를 어떤 식으로 끌고가려는 의도에 기여하는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번 천안함 발표로 가장 이득을 보는 쪽이 누구인지 따져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명박의 의도를 단순히 지방선거용으로 파악하는 시각이 많은데, 나는 매우 위험하고 안일한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천안함 사태의 파장은 단순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질서의 근본적인 재편과 그 연장선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봉쇄 및 제어 전략과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미국의 의도와 계획이 개입되어 있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객관적인 현실이 그러한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천안함 사태의 여파로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환이 무효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명박조차 받아들이기를 주저했던 PSI 수용은 이미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전작권 반환도 무효화될 가능성이 크다. 전쟁 공포 속에서 보수세력들은 학수고대하던 '빨갱이 사냥'의 무제한 라이센스를 허용해달라고 짖어대고 있다. 이 모든 사태는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목적은 결국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한 봉쇄망 구축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일차적 목표는 북한의 궤멸이라고 생각한다.

오바마 정부에 대해서 기대를 품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은데, 착각하지 말자. 1980년 광주학살을 승인해준 것이 진보적이라던 미국의 카터 정부였다. 내가 보기에 미국과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총자본의 위기가 고조되면 노동자와 민중들의 좀더 자발적인 희생을 요구하기 위해 약간 진보적인 성향의 지도자를 앞에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카터와 오바마, 김대중과 노무현 아닌가 생각해본다. 오바마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민중의 생명 따위는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 정부의 이번 천안함 발표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야. 그러니 받아들여야 해"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가?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No"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상황에서 천안함 사태의 증거와 정황을 하나하나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에게 좀더 노력해달라고 부탁할 부분이고,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좀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천안함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절차를 공격하고, 정부의 이번 천안함 발표가 가져올 끔찍한 결과를 폭로해야 한다. 민주당과 진보개혁 진영은 여기에 주력해야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파성 또는 정파성이다. 자질구레한 팩트에 얽매이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 즉 진보개혁 진영 전체의 전진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도 보자는 애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