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가 메인에 좌파스러운 글들로 폭주하면서, 저를 극좌 내지는 평등주의자가 아닌가 판단하는 분들이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나는 시장주의자가 맞으니 부디 그런 의심은 거두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도 좌파스러운 글을 올리게되어서 아무래도 그런 선입견에 대한 심적 부담이 사알짝 들어서 서두부터 사족을 달았습니다.

'시장의 실패'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 사용해서 유행했던 말이지요. 저는 그런 '시장의 실패'라는 말과 별도로 '시장의 구멍'이라는 개념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시장에는 자체의 논리로는 메꿔지지 않는 어떤 구멍들이 뚤려있다는 뜻이지요.

우선 '시장의 구멍'이라는 개념은 제가 공부가 짧은 탓으로, 그동안 접했던 경제학 서적에는 보지 못했고, 오로지 저 혼자 생각해내고 사용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따라서 이 것을 자칫 연구와 논의를 거친 공식적인 개념으로 오해하시고 다른 곳에서 사용하신다면 아마도 망신을 당하실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해 드립니다.  

시장의 구멍의 예를 하나 들어보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가령 산업재해예방비와 산재보상비중 산재보상비가 더 쌀 때, 시장의 논리는 산재보상비를 선택하게 되는 현상을 예로 들겠습니다. 실례로 이런 것입니다. 조선소가 배를 한척 수주할 때, 수주액 산출자료에는 소위 '산재사망보상비'가 포함되는데, 이 비용은 배를 건조하다 노동자가 사고로 죽었을 때 그 보상비입니다. 보통 배 한척당 평균 사망자가 근거로 제시됩니다. 80년대, 현대나 대우조선소에서 배 한척당 3명이 죽고, 그래서 당시 1인당 사망보상비 천만원 도합 3천만원의 보상비가 책정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 천만원이면 아마 3년치 임금이었던가 그럴건데 기억에 의존해 쓰는 것이니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암튼 여기서부터 시장의 논리가 적용됩니다. 견적산출팀의 책상머리에서 산재를 줄이기위한 비용과 산재보상비의 크기가 비교되고 결정됩니다. 만약 배 한척당 산재예방비용이 3천만원이 넘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시장 논리에 의해 거부됩니다. 예방비를 들여 산재를 줄이기보다는, 산재보상비를 지급하는 쪽이 훨씬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배 한척당 3명 이하가 죽으면 본전 혹은 보상비 흑자이고, 그 이상이 죽으면 적자입니다. 바로 사람의 목숨마저 비용으로 계산되고, 상품의 가격으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설사 그 비용이 적자가 나더라도, 보통 몇백억씩하는 배의 전체 가격에는 흔적도 안남을 미미한 금액이기 때문에 선주쪽이나 조선소 경영진이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정치권 리베이트, 전두환 상납금이 수주가의 5%니 뭐니 흥청망청 개판칠 때인데 설사 3명 이상이 죽어서 비용이 조금 오버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말이지요. 80년대 한국의 조선소나 건축현장에서 왜 그렇게 부상 사망사고가 빈발했었는지를 비로소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조선소나 건축현장처럼 목숨걸고 일해야하는 기업이 산재 사망자 1명을 줄이려면, 보상비보다 몇배나 더 큰 예방비를 지출해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손을 들어 주십시오. 사람의 목숨도 상품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오른손을, 경제원리 시장원리 따지지말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최대한 사망자가 줄어들수 있도록 산재예방에 투자하게끔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왼손을 드십시오. 아쉽게도 왼손을 드시는 분들은 이제부터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저와 동급의 좌파 빨갱이가 되신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경우에도 시장 원리를 끝까지 지켜서, 기업 활동에 함부로 개입하지 말고 저절로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칭 하이에키안 또는 신자유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는 그 분들의 주장이 맞다고 봅니다. 위 산재보상비 문제는 전두환 각하의 명령이 아니라 정말로 시장안에서 저절로 해결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87년 한국에서 대형조선소에 강성 노조가 들어서게 되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귀족노조라고 질타를 받는 현중노조와 대우조선노조가 바로 그들입니다.

당시의 노조 설립 과정은 정말로 치열했고 과격했고, 나라를 결딴낼듯이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승리한 뒤에야 비로소 '인간 목숨의 상품화'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때문에 과연 신자유주의는 위대한 이론입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골치아픈 문제가 가만히 내버려두니 신기하게도 저절로 해결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노동조합의 그 투쟁은 시장에 대한 규제일까요 아니면 하이에크가 소리높이 주장하던 '시장의 자생적 질서'가 맞을까요? 저는 단연코 후자라고 봅니다. 때문에 이 논리를 부정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모두 사이비이며, 제가 정통입니다. 농담아니고 진짜입니다.  

시장의 구멍은 이런 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가령 과학에 대한 투자입니다. 분명히 가치가 존재하지만, 시장에서 화폐로 교환될 수 없는 가치들이 존재하는데 과학이 그 대표적입니다. 특히 기초과학들은 시장적 효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굳이 그 시장적 가치를 논한다면 일반의 호기심충족비 정도가 될텐데 그 크기가 과학자들을 먹여살릴 정도로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초파리의 사회성에 대한 지식을 누가 시장에서 돈주고 사겠습니까? 때문에 한국처럼 시장원리주의가 팽배한 나라에서 이공계가 홀대받는 것은 극히 당연합니다. 그들이 본업이 아닌 교육노동에 종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정말로 과학의 가치가 시장이 결정한만큼 작을까요? 만약 맞다면 시장에서 살아남은 과학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가 될텐데 정말 그런지 궁금합니다. 과학의 가치가 제대로 측정되지 못하는 이 구멍은 과연 어떻게 메꿔야 할까요? 이것도 시장의 자생적 질서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시장의 구멍은 또 있습니다. 바로 경제학에서 거품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어떤 원인입니다. 아시다시피 특정 상품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이자율보다 높은 추세로 오르는 경향이 있고, 그 상품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된다는 요건만 충족되면 반드시 거품이 발생합니다. 이때 그 상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조차 기꺼이 차익을 노리고 사게 되는데, 그것을 바로 투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공황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튜울립이 그랬고, 대공황 당시의 주식이 그랬고, 서브프라임 사태의 미국 주택이 그랬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과정어디에도 시장 원리로 따졌을때 아무런 논리적 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특정 상품이 이자율 이상으로 오르는 추세가 발생하면 경보를 울려야하고, 필요없는 사람들이 그 상품을 사기 시작했을 때 규제가 들어가야 할텐데, 시장원리주의자들은 아마도 좌파적 시장 개입이라며 길길이 날뛸 것입니다. 결국 이런 거품도 시장이 해결하게 놔두어야 할까요? 하긴 이제 아무리 튜울립값이 오른다고 해도 사재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주식이 아무리 치솟는다해도 함부로 배팅하지 않게 되었고, 서브프라임식의 주택 거래는 아마도 다시는 시도되지 않겠지요. 그럼 거품을 일으키는 시장의 구멍은 오직 시행착오를 겪은 이후의 각자의 경험에만 의지해서 메울 수 있을까요? 

이렇듯 시장은 실패를 일으킬 수 있는 어떤 구멍들이 숭숭 뚤려 있는 시스템인 것이 분명합니다. 최근의 경제위기는 시장에 그런 구멍은 없다거나, 있다 해도 가만 놔두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사람들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정부의 개입도 세금도 복지도 시민단체도 노동조합도 심지어 민주주의 조차도 모두 시장을 오염시키는 악일뿐이며, 오직 경제 성장에 맞추어 적정량의 화폐만 공급해주면 모두가 해피한 세상이 된다는 환상에 빠진 바로 그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장의 구멍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들은 시장 자체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시장의 실패를 막기위한 인간의 활동으로만 메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장 경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진정으로 인간의 번영과 행복을 위한 도구로 기능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 사회는 하이에크가 갈파한대로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할지 몰라도, 최소한 구멍을 발견해서 수선을 할 정도의 지능은 갖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멍을 메우는 것은 위에 제가 예시한 것처럼, 노동조합일수도 있고, 정부가 될 수도 있고, 시민단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비정규직법 사태와 쌍용자동차 사태 역시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어떤 커다란 시장의 구멍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한국의 노동자들을 오로지 '희생과 봉사 정신에 충만한 강철의 노동자'로 만들어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파시즘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