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진중권 (jjk4682) 조회 : 4939  점수 : -192  날짜 : 2005년11월28일 10시59분 

대통령의 우려

노무현 대통령이 MBC 의 광고 중단 사태를 보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네요.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 공포는 이후에도 많은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 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지 모른다.”


인전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상희 대한변리사회 회장도 “큰 틀에서 보면 해당 방송은 잘한 것이며 마땅히 했어야 옳다고 본다”며, “일단 짚고 넘어가지 않을 경우 향후 결정적으로 사안이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기고문에서 “에서 난자기증 문제를 취재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자들의 태도가 위압적이고 협박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의 기자들은 법적 처벌은 물론이고, 윤리적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그렇게 보고를 한 분은 청와대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인데, 이 분은 식물학 전공인데도 황우석 박사의 2004년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이 올라있지요. 연구에서 ‘생명윤리에 관한 자문’을 한 공이라고 합니다.


열 네 개 시민 단체에서는 이 분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네요. 도대체 생명윤리를 어떻게 자문했길래, 연구원들이 난자를 제공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황 박사가 헬싱키 선언이 있는지도 몰랐느냐는 겁니다. 황 박사도 사퇴한 마당에, 정작 엉터리 자문을 한 보좌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얘기죠.


애국주의의 과잉이 조장하는 “사회적 공포”에 대한 대통령의 우려는 합당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과학기술보좌관이 하는 보고가 혹시 그 분이 황박사에게 했다는 생명윤리자문만큼 엉터리는 아닌지 확인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돌아온 광고사태


성난 네티즌들의 항의 전화로 PD 수첩에 대한 광고주들의 광고 철회가 잇따라 12개 중에 11개가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하나도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하네요. 70년대 동아일보 사태를 연상케 합니다.


인터넷에는 그 방송을 만든 PD의 가족사진이 공개되는가 하면, 가족의 생명을 위해하겠다고 협박하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고 하는군요. 사회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과연 온당한지, 강한 의심이 듭니다.


사실 PD 수첩에서 한 일은 원래 한양대와 서울대의 검증기관에서 했어야 할 일입니다. 당시에 검증기관도, 언론매체도, 일반대중도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을 무시했고, 이런 일방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황 박사는 수습의 적기를 놓쳐버렸습니다.


황우석 박사도 기자회견 장에서 진작 사실을 인정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한다”고 한 바 있지요. 문제의 제기자들을 매국노로 몰아 론의 뭇매를 가하면, 앞으로 그 누구도 감히 과학연구의 윤리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도 연구자들이 뒤늦게 “후회” 할 일은 또 발생하겠지요.


황박사의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고, 의학실험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는 정비되어야 하고, 그것을 감시할 검증기관은 객관성과 신뢰성을 회복해야 하고,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의 의식은 강화되어야 하며, 이 모두를 감시할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는 생명윤리 없이 생명과학만 발전시킬 수 없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