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진중권 (jjk4682) 조회 : 1882  점수 : 176  날짜 : 2005년11월23일 10시09분


생명윤리와 국수주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가 매매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은 이 사실을 자백하며 “2002년 매매된 난자로 연구를 진행할 때에는 관련법이나 윤리규정이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인체를 대상으로 한 과학연구기준인 ‘헬싱키 선언’은 이미 1964년에 나왔고, 2001년 제정된 ‘의사윤리규정’도 의사가 난자의 매매에 관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사이언스’誌에 논문을 실을 때 황박사는 “16명의 자발적 기증자로부터 난자를 기증받았”으며, “한양대병원 기관윤리위원회의 철저한 검증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결과적으로 황박사는 거짓말을, 기관윤리위는 허위검증을 한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과연 황 박사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기증받은 난자 중에 여성 연구원의 것이 포함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노 이사장의 언급은 모호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이 부분은 황우석 박사가 직접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일로 배아도 생명인가 하는 문제와 구별되는 또 다른 윤리의 영역들이 드러났습니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기술의 개입, 즉 난자의 채취가 여성의 신체에 끼치는 위험이 그 동안 제대로 평가가 됐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돈을 받고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의 상당수가 생계의 위협을 받는 ‘저소득층’이라는 점입니다. 장기의 매매가 이루어질 경우 몸의 일부를 파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 마음에 새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가 황박사의 연구에 대한 질시와 시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은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생명윤리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는 이들을 매국노로 몰아가는 광신적 애국주의도 조국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의 정서와 외국과 다르다는 변명은 그 자체도 바람직스럽지 못할 뿐더러, 국제무대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국수주의적 넋두리에 불과합니다. 인권도 인류보편적 가치라 하는데, 생명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마침 자발적인 난자 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한 난자기증재단이 설립됐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난자기증의 시스템을 확보하고, 거기에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윤리적 검증장치를 갖추어, 이번 일을 생명과학 연구를 위한 안정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