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식에 대한 단상

 

     등록 : 격암   조회 : 7552  점수 : 1166  날짜 : 20051215 2254

 

들어가는 말

 

새로운 소식들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보통은 이런 변화가 있으면 지켜보고 보다 확실한 것들이 나올 때까지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지금은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제 글을 읽고 격려해주신 분들을 위해서 입니다.

 

게시판에 보면 그들이 승리했다는 듯 떠들며 으쓱이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는 언론의 보도와 새로이 밝혀지는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여태까지의 제 생각을 수정해야할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저는 오히려 더더욱 확신을 가집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지만 당나라와 연합하여 이룬 승리였고 때문에 국토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과연 그게 승리인가 하는 것에 대한 천년을 넘는 의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번 사태는 또 변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나 설사 황우석박사가 100% 잘못했다고 해도 절대로 이렇게 다뤄져서는 안 되는 문제였습니다.

 

황우석을 반대하는 과학자나 방관한 학자들은 어쨌건 학문적 논의를 피디가 파헤치게 만드는 것을 돕거나 방관했습니다. 승리한 사람이 있다고 봅니까? 과학한국의 미래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황우석 교수가 하다가 실패하고 그걸 과학계에서 반박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과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은 한국과학계를 깊이 불신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는 이 소동을 주목하고 한국과학을 깊이 불신하게 될 것입니다. 남은 것은 방송국 피디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과학계뿐입니다.

 

언젠가 제가 반복해 쓴 적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우리는 패배할지 모른다고. 언론과 정치계와 시민운동단체가 모두 이번에 엠비씨의 편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그들은 뭔가를 찾아내고야 말 거라고. 기적적으로 그렇게 안 되는 듯도 보였으나 지금은 그렇게 되가는 듯도 보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광기라는 말을 썼지만 저는 그들의 눈에서 광기를 봅니다. 저는 언젠가 먼훗날에 이 소동이 남기는 것은 윤리의 발전도 과학의 발전도 아닌 엠비씨에 덤비면 죽는다는 교훈뿐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생각에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 황우석 박사데일리서프라이즈

 

민족주의라는 딱지에 대해

 

이번에 아주 자주 나온 말이 민족주의라는 단어였습니다. 저는 이 단어에 대해 글을 하나 썼었습니다만 곧 지웠습니다. 침묵이 값어치 있을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제가 쓴 것은 대충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분배를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을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거듭 반복되어 부정되어 왔다. 그러나 외국의 윤리, 철학, 사회적 기준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우리의 실정에 기반하여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자는 모든 사람들을 민족주의로 부르는 것은 전혀 반론되고 있지 않다."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은 딱지붙이기입니다.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라고 부르고 국익이냐 진실이냐라는 말로 우리들을 요약하는 것도 딱지붙이기입니다.  민족주의라는 말은 낡은 생각 혹은 민족이기주의라는 나쁜 냄새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이끄는 지식인 계층과 기득권계층은 서로 많이 다르면서 같은 게 있습니다. 그건 결국 외국을 따라하자는 겁니다. 외국의 윤리적 논란은 고스란히 우리나라로 수입이 됩니다. 자칭 우익단체는 모임을 가지면 성조기가 나부낍니다. 미국 사람 이상으로 한국 사람이 미국에게 차마 실례되는 말을 할까 두려워합니다.

 

이번에 검증논란도 결국 너도 못 믿겠다 너도 못 믿겠다는 식이 되어 금방 외국에 부탁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이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조선말엽에 이 나라의 선각자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결국 러시아를 따라가자 일본을 따라가자 미국을 따라가자며 나뉘어 있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분배를 너무 무시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골수 민족주의자, 민족제일주의자, 국익지상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국민은 왜 언론이 이런 윤리문제며 과학적 업적에 대한 진실찾기 싸움을 벌여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우리는 국적도 민족도 없는 유령같은 사람들이 자칭 우익세력쪽에 뿐만 아니라 개혁을 말하고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 속에도 아주 많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에 빨갱이 딱지붙이기는 비판받지만 민족주의딱지붙이기는 전혀 비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번 사태가 정녕 과학적 진실에 대한 것이었던가?

 

이번 사태는 첫번째 보도가 나가자마자 실은 황우석교수의 진실여부와 동떨어진 문제가 되었습니다. 핵심적 질문은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간섭하고 보도하고 검증을 추진하고 윤리적 문제를 특정인을 향해 거론하는 것이 허용되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자유를 가지고자 계속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엠비씨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너무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엠비씨를 비판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확신합니다. 이런 식의 연쇄 의혹 폭로식 보도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굳이 누구를 위한다면 그것은 우리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누군가의 기득권을 위한 것뿐입니다. 끝없이 이것을 진실 찾기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럼 앞으로도 한국에서 사이언스 논문이 나올 때마다 그 진실 찾기를 위해 이런 열성을 보여주는지 보겠습니다.

 

엠비씨는 물론 대마불사를 외치던 재벌과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황우석이 죽어야 하는가 엠비씨가 죽어야 하는가. 대마는 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황우석이 엉터리였다면 그걸 키워준 것도 언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적합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절차를 따라 그걸 죽이는 것도 언론입니다.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국민을 미쳤다고 말하는 것도 언론입니다.

 

솔직히 이번 일을 통해 몇몇 부류의 사람들에게 아주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저도 과학자로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에 있는 것보다는 외국이 역시 좋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게 해주는 일들이었습니다.

 

엠비씨는 승리하고 축배를 터뜨릴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축제는 결국 그들 자신만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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