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의 결말

 

     등록 : 격암   조회 : 5618  점수 : 950  날짜 : 2005122 2300

 

 

 흘러다니는 소리들을 보면 황우석 사태의 결말은 어느 정도 뻔하다. 나는 그 이상이 있기를 바라지만 그걸 바라지 않는 사람이 한반도에 넘쳐나니까.

 

일단 엠비씨는 황우석의 연구를 개그를 계속하면서 파고 들거다. 그리고 언젠가는 뭔가 하나 건지겠지. 실은 지금도 건졌지 않은가. 150만원을 줬다던가 연구원에게 난자를 받았다던가.

 

사람들이 무식하던지 아니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던지 너무나 확실한 사실을 언론은 말하지 않고 있다. 황우석의 연구가 흑백논리로 거짓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과학하는 사람이면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발표된지 이토록 시간이 지났고 황우석이 세미나를 얼마나 많이 했으며 다녀간 사람이며 관련된 연구원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 실체도 없는 것을 가지고 버티나. 과학계에 거짓발표로 유명해진 경우도 있지만 그건 옛날이거나 관련 연구자의 수가 극소수이거나 한경우다. 황우석교수의 경우는 전혀 말이 안된다. 황우석교수가 무슨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사기꾼이 아니라면 그렇다.

 

그러나 파고 파면 어떤 특정한 사안에서 황우석이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어떤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걸 발견하면 엠비씨는 펄쩍 뛰면서 '그렇지!'를 외치겠지.

 

다시말해 뭔가 비밀이 있다고 해도 그 비밀이란 연구의 진실과 윤리성이 100% 0%냐의 비밀이 아니라 100% 99%냐 혹은 99.99%냐의 논쟁이라는 거다. 그러나 물론 엠비씨같은 놈들은 옳으냐 그르냐의 논의로 밀어부쳐 역시 이제까지의 모든 소동은 가치있는 것이었고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나올 것이다.

 

문제는 이나라에는 비판의 자유로 먹고 사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이건 간섭할 자유고 삥뜯을 자유다. 내가 흠짐내고 내가 물고 뜯기 시작하면 판이 다 뒤집어진다.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나한테 고분고분해라는 태도로 먹고사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시장통에서 상인들에게 돈 뜯고 사는 조폭과 다를게 없는 놈들이며 이런 놈들 중에는 물론 정치가들도 있다.

 

그들의 여의봉이 소위 말해 비판의 자유며 진실의 추구다. 그런데 일방적 진실의 추구지. 과학계의 진실추구는 엠비씨가 하지만 엠비씨의 진실추구는 누가하나. 아무도 안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언론과 정치권과 공권력은 권력을 획득한다. 남을 간섭하고 비판하지만 간섭하고 비판당하지 않을 권리로 말이다. 이들은 다똑같은 주제를 중얼거린다. 성역없는 진실추구다. 물론 이들은 독재자들에게는 건드릴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우리사회의 재계며 정계의 권력들에게는 빌빌대고 있다. 그들은 만만한자만 골라서 진실을 추구한다.

 

이들은 엠비씨를 감싼다. 이건 동업자의식이다. 언론도 민노당도 진보사회단체도 진중권도 엠비씨를 감싼다. 그들이 가지는 권력의 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성역에 우리들의 여의봉에 제한을 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몇년 후가 된다고 하자.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기분이 가라앉은 후에 돌아본다고 하자. 이번사태가 한국과학발전에 도움이 된다던가. 한국사회의 윤리의식을 고양했다던가하는 것이 결론일 것 같은가. 천만에 남는 것은 하나다. 엠비씨에 덤비는 놈은 죽는다. 국익이고 국민감정이고 과학발전이고 개인의 평생의 꿈이 깨지는 것이고 상관할 것이 없다. 언론에게 덤비지 말라. 이거다. 이거 하나만 남는다.

 

매우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미래는 국민의 의지가 엠비씨를 굴복시키고 이런 말도 안되는 헛짓은 용납 안된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지만 적은 강대하다. 더구나 아군들이라고 불리는 자들 중에도 그 비판할 권리를 성역으로 가지고 싶어하는 자들이 많다. 오마이뉴스도 프레시안도 그렇지 않은가. 진중권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아마 단기적으로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세상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누군가가 켕기는게 있지만 억지를 부린일은 반드시 더 커다랗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여 언론의 구조개혁이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언론은 더더욱 강해질 것이고 그 시대가 되면 반드시 같은 논리로 누군가가 엠비씨를 프레시안과 민노당과 진보를 외치는 사회단체들을 검증하려고 할것이다. 물론 진중권의 진실도 추구하겠지. 그것도 다 진실추구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잔뜩 의혹을 터뜨리고 당신들에게 해명할 의무가 있다고 할것이며 파고 파서 뭔가 하나라도 잡으면 그 모든 소동은 역시 값어치 있는 것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 와중에 당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정말 온당한 정의인지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 모두가 망할 때까지. 비판할 자유. 진리를 추구할 자유는 모두에게 있다. 그렇지 않은가. 두고 봐라. 몇년이 지나지 않아. 너희들만의 소유인 것 같은 정보의 창구가 우리의 손에도 들리게 될테니.

 

황우석 사태의 결말은 이미 나와있다. 그건 욕심많은 자들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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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pd수첩에 대한 이야기를 몇편썼습니다. 제가 요즘엔 별로 흥분하는 일이 없었는데 솔직히 말해 엠비씨의 행동을 보면 몸이 떨리고 숨이 가빠오고 눈물이 나려고 하더군요.

 

엠비씨라고 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그저 피디 하나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딱 보면 또 특유의 패거리 문화가 등장하더군요. 싸울 때 싸우더라도 내부에서 싸우고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무조건 감싸준다는 문화말입니다. 피디들이 연합해서 피디수첩을 감싸고 이제 엠비씨 전체가 어떡하면 체면 손상 안 당하고 넘어갈까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언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말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일치단결해서 그들은 아무 말이나 다해도 진실보도라는 이름 뒤에서 잘먹고 잘살수 있다고 고고하게 말하더군요. 딱 잘라 말하는 겁니다. 국익이냐 진실이냐.

 

이건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피디의 한탕주의식 황색저널리즘이고 과학자를 웃기게 아는 사회적 분위기의 결과입니다. 그럼 그걸 누가 방송 전에 말리던가 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자유가 무제한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문제로 점점 문제가 전이되었습니다. 이제 언론인들은 죽든살든 여기서 밀리면 우리는 할말 맘대로 못하고 살게 된다며 일치단결이 된것같습니다. 말로 먹고살고 윤리, 법전좋아하는 사람들이 일치단결이 됩니다. 그게 그들의 밥줄이고 권력이니까요.

 

그래서 국민의 90%가 미친짓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자존심을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자존심 지켜줘야 합니까? 그래서 다음번에도 같은 짓을 저질러도 분노를 삭히면서 술이나 마셔야 합니까? 그리고 그들이 들이닥쳐서 이거니 저거니 물어보고 질문하면 행여나 방송으로 두들겨 맞아 인생 종칠까봐 상전으로 모셔야 합니까? 황우석교수같은 사람이 이렇게 되는데 보통의 과학자들이 방송국 피디를 만나려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만나야 할거같습니다. 좀 잘못 보이면 큰일이 아닙니까.

 

아직도 우리는 장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윤리 따지고 법전따지는 분들은 입을 자유롭게 놀리고 실험실이나 기계 만지는 사람들은 입닥치고 일이나 하는 그런 시대말입니다. 철학이나 사상계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이 엠비씨가 방송을 어떻게 하네 엠비씨가 썩었네하고 말해도 엠비씨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공돌이나 과학자가 그런 발언을 하면 펄펄 뛸 겁니다. 현실적으로 이건희에 대한 보도는 조심스럽게 내고 길가는 무명인 이야기는 가볍게 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연 엠비씨는 황우석이라는 인물은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거론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봤을까요. 왜 황우석은 정계의 거물이나 재계의 거물에 비해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인물일까요.

 

여전히 한국사람들은 과학이나 공학은 괴상한 인간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과학적 연구를 통해 얻은 합리적 생각이 현실에서는 도움이 안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게 얼마나 웃기는 현실입니까. 과학이 아니면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살면서 과학적 합리주의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말 입니다.

 

정약용같은 우리의 선조 선비들은 단순히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위한 기중기를 설계하기도 한 공학자 였습니다. 농서를 편집하는 것도 선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지성이라 함은 과학이나 공학과는 동떨어진 것이 되었습니다. 정신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수리한다던가 인터넷을 좋아하고 과학실험을 하고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 스승은 전화도 잘 안들어오는 곳에서 문명의 이기와는 동떨어지게 사는 그런 사람, 비디오도 잘틀지 못하는 기계치, 그런 사람이 정신적 스승의 이미지입니다. 기술과 과학에서 멀어질수록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잠재된 한은 없는 것같다가도 터져 나오면 홍수가 됩니다. 전에 한번 이공계처우 문제가 크게 화제가 되었다가 사그라든 적이 있습니다.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해 온것은 군인과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재계의 인물이었습니다.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장영실은 천민이고 말할 자유가 없고 온갖 규제를 받으며 죽도록 일하다가 좀 잘못하면 바로 버려지는 신세인 겁니다. 자기들의 언론자유를 침해받으면 세상이 떠나 갈듯이 징징대는 언론들이 과연 과학기술자들의 한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잠재된 한은 훨씬 훨씬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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