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역사는 있는가?>

 

 

사람에게든, 자연(물질 세계)에게든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 같다.

특별한 사건이나 위험에 직면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평소와 같이 혹은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살아간다. 즉 늘상 하던 대로 산다.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늘 먹는 밥을 먹고, 늘 먹는 방식대로 먹고, 늘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어디 먹는 것만 그렇겠는가.

 

사실 우리는 다니는 길 하나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늘 다니던 길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이 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가 길이라고 잃으면 낭패가 아닌가. 안전하고 편리하니까 하던 대로 하는 것일 게다. 이런 현상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겠지? 진화론자들은 이런 합리적인 이유 때문에 습관 혹은 규칙 대로 사는 식으로 진화해왔다고 주장할 것이리라. 

 

나에겐 세상의 모든 사물을 의심의 눈으로 본 계기가 있다.

나는 인생 길의 한 모퉁이에서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완전히 믿었던 어떤 것으로부터 부정 혹은 거절 당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 계기가 없었다면 나는 오늘과 달리 살고 있을 것이다. 그저 남들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 위험한 상황이 계기가 되어 사물의 본질이 무엇이냐를 깊이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지 물질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 때부터 세상의 모든 고정된 관념을 의심의 눈으로 보았다. 컴퓨터에 비유하여 말하자면, 하드를 완전히 새로이 훠맷해서 올바른 것들만 새로이 저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로 본질적인 것들, 진리에 가까운 것들, 핵심적인 것들만 골라서 담았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회의해 보았다. 그 누구보다도 회의적이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게 있다.

 

인간은 대부분이 세뇌되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타인들이 주장하고 혹은 다른 역사적 기록물에서 주장 되어지는 것들을 내 것 인양 여기고 그것들을 알고 있는 자신을 마치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인줄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 그릇된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타인과 다투고 싸우며 심지어 목숨까지 걸기도 한다.

 

가장 단순하게 참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방법은 다른 곳 혹은 다른 것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어떤 곳에서 공산주의가 잘 돌아가고 있다면, 민주주의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이념 혹은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현실적으로는, 이 세계에서 그렇다고 믿어지는 세계에서 발 딛고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믿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지 하나의 과정적인 이념 혹은 체제라고 간주하고 있을 뿐이다. 미쳤는가, 내가 어떤 불완전한 것을 의심없이 바라보게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 늘 세상을 의심의 눈으로 살펴본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나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철학자가 되었다.

다른 사람 혹은 다른 나라, 또는 그들의 주장, 업적 혹은 합의 등이 어떤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나는 항상 어떤 것의 진실 혹은 참됨은 그것들은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을 한다. 현재의 것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는지, 그리고 내가 정말 모르거나 놓치는 점은 없는지를 깊이깊이 생각해 본다. 

 

이런 관점에서 어떤 것이든 알아보고, 살펴본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하는 선행 행위가 있다.  어떤 것이든 일단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귀를 열고 들어본다. 먼저 믿어나서 나서 차차 의심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부되거나 거절되는 것은 없다. 누구든지 와서 자신의 이야기 해 볼 수는 있는 것이다.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나중에, 또 나의 몫일 뿐이다.

 

역사에 대해서든, 정신 세계에 관해서든, 과학에 대해서든 나는 똑 같이 대한다.

대륙조선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거부하지 않는다. 일단 믿어보고 왜 그렇게 주장하는지, 어떤 근거가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는 나중에 알아보면 되는 것이다. 정신 세계! 우리는 동양에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세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귀를 기울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정신세계가 존재함을 이야기하거나 증명할 수 있겠는가. 과학? 과학은 세계를 보는 하나의 툴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 만능일 수가 없다. 한번 지혜롭게 생각해보라. 과학적이지 않아도 인간 세계는 잘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만능 혹은 유일한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작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대륙조선사,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직 완전하게 믿을 수는 없다.

내가 직접 공부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종윤 선생님의 역사고찰 방법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즉 믿을만하다는 얘기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역사 공부가 지명을 고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책이라 여겨지는 각종 지리서 등에 언급된 내용만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른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역사서에 기록된 지명이 그 지역을 혹은 지역적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가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당연한 것을, 혹시나 하는 의심의 눈으로 보아 이렇듯 많은 연구 결과를 내놓으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수원이라는 내가 사는 지명을 보자.

수원(水原). 이름이 수원이지만 수원에는 수원(水源)이라 할만 한 것들이 많지 않다. 오히려 물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옛부터 지역의 이름을 지을 때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이름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이 없는 곳을 수원이라고 불렀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밤골에 가면 밤나무가 많아야 하듯이 수원에는 물이 많아야만 하는 것이다. 지명고찰은 이런 방식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역사서를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해보니 역사서 있는 지명들은 다 한반도에 있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더라는 결론이다. 오히려 중국에 있는 지명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니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조선이 한반도에 없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 것이 당연하다. 제도권 역사를 믿고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 조선이 중국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대륙조선사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터무니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위와 같이 이치에 맞는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 나도 확실하게 대륙조선사를 믿지는 못한다. 하지만 계속 생각해보고, 의심해보고 또 가능하다면 공부해 볼 것이다. 나중에라도 말이다.

 

역사 공부를 위해서 김종윤 선생님께서는 중국여행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실제 연구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답사를 하지 않으실 수 없던 것이리라. 이번에는 실크로드를 탐사하는 여행을 하신다고 한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행이라는데 그 연세에 감당하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김종윤 선생님께서는 사람의 사귐에 있어서 신의를 바탕으로 하시는 것 같다.  

한번 맺은 인연은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아름답게 가꿔나가시는 것 같다. 그게 우리나라 사람들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과의 사귐에서도 그러신 것 같다. 그렇게 귀중한 인연이 열분 정도가 되신다고 한다. 그분들과 인연을 소재로 해서 글을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의 그 소망이 이뤄지실지는 모르겠다. 우연히 몇분에 관한 말씀을 들게 되었는데 참 아름다운 만남이 틀림없어 보인다. 

 

오래 전에 상해로 답사 여행을 다니러 가셨다가 아름다운 인연을 맺었다고 하신다. 그것은...

상해에서 어느 유적지에 들렸는데 한 무리의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단다. 그 중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긴 머리를 가진 젊은 여성이 눈에 띄어 엉겁결에 몰래 사진을 찍으셨는데 그걸 들켜서 혼이 나셨단다. 그 여성이 왜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사진을 함부로 찍느냐고 다그처서 몹시 난처하셨단다. 긴 머리가 치렁치렁 땅에 닿을 정도가 되어 하도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며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쉽게 용서를 해주지 않아서 가이드가 나서서 이야기도 하고, 중재를 섰단다. 결국 사진을 인화해서 한 장을 아가씨에게 보내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하니 어찌보면 좀 우습기도 한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아가씨 주소를 알게 되어 사진을 보내 주었으며, 나중에 책을 내신 후에는 책도 한권을 보내주셨단다. 그 뒤로 그 아가씨네 가족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그 중국 아가씨는 일년에 몇 번씩 안부를 묻곤 한단다. 그렇게 한 10여 년 인연을 맺고 계시다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만남이 아닌가 싶다. 그 아가씨 가족들이 선생님을 삼촌으로 모시고 싶다고 청하였지만, 그건 아니다 싶어 허락을 하지 않으셨다지만 얼마나 신뢰를 했으면 그렇게까지 부탁을 하였을까 싶다. 선생님께서 그 동안 받았던 엽서 중 몇통을 꺼내서 보여주셨다.

 

 

 

<무릇 인간 관계는 신의를 바탕으로 해서 오래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나도 다시 펜팔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러웠다!>

(거, 누구 없습니까? 이런 구닥다리 사귐을 해 보실...^^)

 

 

나도 전에 펜팔을 해 보아서 선생님의 심정이 어떤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국적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만 서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관계를 지속하며 사귀는 것은 하나의 미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중국에 다니러 가셨을 때, 또 상해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 중국인 아가씨의 성이 김씨이고 학교 선생님이라는데 상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사는 모양이었다. 김 선생님께서 상해에 가신다고 하니까 일부러 상해까지 나와서 만나게 되었단다. 가족을 대표한 언니까지 대동해서 함께 만나셨단다. 상해에는 김선생님께서 서점에서 알게 되어 사귀게 된 중국 남성분이 한 분 계신데, 그날 저녁 때는, 세 팀이 함께 만나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고 한다. 얘기를 듣기만 해도 부럽기 그지 없다.

 

오늘날 우리의 만남은 지나치게 단속적이고 또 너무 얕은 만남이 되는 것 같다.

잇속이 있어야만 만나고, 그런 인연이어야 얼마간이라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아주 깨어지기 쉬운 만남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만났다가 금방 헤어지기도 하고 또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오래오래 가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전자 통신 매체가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예의를 갖춰 안부 인사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은 까마득히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하긴 나 자신도 편지를 주고 받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좀 멀리 떨어지게 되면,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릴 상황이 못되면 나도 철마다 선생님께 안부 편지를 보내게 될까?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수기 편지 쓰는 것을 잃어버려 나중에 편지 한장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리미리 잊지 않도록 연습을 해둘까. 다시 펜팔이라도 해 볼까?

 

과연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을 한민족답게 만드는 점은 무엇일까. 중국 사람 혹은 일본 사람, 그리고 미국 사람들에게 우리 한민족은 이런 민족입니다 하고 내세울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과연 그런 것을 갖고 있기는 한 것일까.

 

 

<오래 전에  중국에 갔다가 만리장성을 돌아보고 많은 생각을 했었다>

(너른 세상에 나가서야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축구 경기 응원에서 붉은 악마처럼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단합 혹은 단결력이 바로 우리가 갖고 있는 고유한 민족성일까? 아니면 골프 혹은 양궁 등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보이는 뛰어난 집중력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민족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게 했던 예절 혹은 예의가 하나의 자랑할만한 민족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을 들어 다른 민족, 국가와는 차별적인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에게 과연 그런 것이 있었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신에게 자랑할 만한 개인의 역사는 있는가? 당신이 내세우고 싶은 민족적 자랑거리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모두 잃은 것은 아닐까?

 

 

 

 

2010. 5. 21.     01:17

 

 

 

 

자신과 민족의 참역사를 찾아 탐사여행을 떠나보는 고서

김선욱

 

 

 

 

[출처]: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358&mode=read&premode=list&page=1&ftype=&fval=&backdepth=&seq=7&num=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