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의 의미를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공산주의 체제라는 단어는 너무나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된 사회를 뜻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소련이나 북조선 같은 지독한 독재 국가를 뜻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사회를 뜻한다. 나는 나 나름대로 꿈꾸는 공산주의 사회가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념과 체제의 하이퍼스페이스」와 그 글에 링크된 글을 참조하라.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98

 

나는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들 중 누구의 것이 옳은지를 따지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개념은 정의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누군가 내가 꿈꾸는 사회는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겠다. 자신이 염두에 둔 체제가 어떤 것인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을 뭐라 부르든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엄격히 구분하려고 하지만 나는 거의 동의어로 쓰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공산주의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무슨 공산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인공 지능과 인간 본성의 문제

 

나는 컴퓨터가 인간만큼 똑똑한 강한 인공 지능(strong AI)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논할 때에는 그런 인공 지능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만큼 똑똑한 기계가 있다면 기계가 몽땅 생산하고 인간은 소비만 해도 되는 사회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해 논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기계에게 지배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는 기계에게 지배 당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가? 또는 기계에게 경멸 당하면서 어떻게 버틸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유전 공학으로 또는 수천만 년 동안 인간이 진화해서 인간이 공산주의에 친화적으로 바뀔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런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상태의 인류를 가정하고 논의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안정성

 

공산주의가 가능한가?공산주의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공산주의가 몇 년 동안은 존재할 수 있지만 안정적이지 않아서 곧 다른 체제로 대체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든 사람들이 애를 낳지 않는 체제가 설사 가능하더라도 안정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인간이 불로장생하지 않는 이상 그런 사회는 인구 감소로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행의 문제

 

공산주의 체제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하더라도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공산주의는 가능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예컨대 인간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맹점이 없는 눈이 있는 생명이 진화하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상태의 인간이 그런 식으로 이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강한 의미에서 공산주의는 가능하다라는 주장은 현재 상태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며 공산주의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다.

 

 

 

 

 

여러 가지 입장

 

공산주의에 대한 논의가 수학적으로 엄밀하기는 힘들겠지만 하여튼 수학의 집합 개념을 빌어와 보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회 체제의 집합이 있다고 하자. 이 집합을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집합은 가능한 체제의 집합이다. 다른 집합은 불가능한 체제의 집합이다. 공산주의의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섯 개 정도의 입장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공산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하다. 즉 공산주의 체제가 불가능한 체제의 집합에 속한다는 것이 확실하다.

 

둘째, 공산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하다. 즉 공산주의 체제가 가능한 체제의 집합에 속한다는 것이 확실하다.

 

셋째, 공산주의는 가능할 뿐 아니라 필연적이다. 즉 공산주의 체제가 가능한 체제의 집합에 속할 뿐 아니라 인류가 그런 체제로 이행할 것이 확실하다.

 

넷째, 확신할 수는 없지만 공산주의는 불가능한 것 같다. 즉 공산주의 체제가 불가능한 체제의 집합에 속할 것 같다.

 

다섯째, 확신할 수는 없지만 공산주의는 가능한 것 같다. 즉 공산주의 체제가 가능한 체제의 집합에 속할 것 같다.

 

여섯째, 도통 모르겠다.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강한 주장이다.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강한 주장을 하는 만큼 강력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나는 다섯째 입장이다. 나는 공산주의가 가능한 체제의 집합에 속한다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산주의 불가능론으로 제시된 것들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어떤 것들은 내가 꿈꾸는 공산주의와는 다른 공산주의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얘기다. 어떤 것들은 별로 탄탄한 논리로 보이지 않는다.

 

 

 

 

 

불가능한 이상 추구가 항상 나쁜가?

 

불가능한 이상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허황된 꿈이 오히려 꿈을 꾸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이 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상을 상정하고 그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예컨대 부정부패가 전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부정부패 없는 사회를 이상으로 상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 부정부패가 전혀 없는 사회가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최대한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최대한 공산주의에 가까운 사회를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의 입장은 아니지만 그리 황당한 입장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공산주의 불가능론 1: 인간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가장 사랑 받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인간이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이기적 유전자가 그 근본적인 이유라고 본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남의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가 아니라 자신의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보통 남보다는 자신을, 남의 자식보다는 자신의 자식을 더 챙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현상을 보통 이기적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이타성에만 의존해서 공산주의에 대한 꿈을 키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보통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Utopian socialists, 보통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번역한다)이라고 부른다. 유명한 유토피아 사회주의자가 사회주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거금을 기부할 사람을 찾는 광고를 한 후 카페에서 기다렸더니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그렇게 착하다고 보지는 않은 것 같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설득해서 돈을 얻어내는 방식 대신 자본가에게서 돈을 빼앗아 오는 방식을 선호했다. 돈을 빼앗아 오는 사람들은 노동자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부자인 자본가의 돈을 빼앗아와서 나누어 가지는 것은 이타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이기적 행동에 가깝다. 즉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이타성이 아니라 노동자의 이기성에 기대를 건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와 생각이 많이 다르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점에서는 마르크스에 동의한다. 인간이 아주 이타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하려면 부자들에게서 뭔가를 빼앗아와야 한다.

 

 

 

 

 

공산주의 불가능론 2: 인간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결국 부자가 생길 것이다

 

내가 꿈꾸는 공산주의 사회는 불평등 사회다. 즉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는 사회다. 따라서 이것은 나의 공산주의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없다. 빈부격차가 상당한 사회를 어떻게 공산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고 반론을 제기한다면 나는 그럼 내가 꿈꾸는 사회를 공산주의라고 부르지 말라라고 응수할 것이다. 나는 단어에 목숨 걸지는 않는다.

 

 

 

 

 

공산주의 불가능론 3: 공산주의가 되면 아무도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사회를 표어로 내걸었다. 마르크스가 이런 말을 처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마르크스의 말로 유명하다. 필요에 따라 쓴다의 의미를 냉소적으로 해석하면 일을 안 하고 놀아도 소비에 마음껏 참여할 수 있다가 된다. 물론 총칼을 들이대고 건강한 성인은 반드시 일을 하도록 강제하는 사회를 염두에 두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쓰는 사회는 기여와 소비 사이에 상관 관계가 없는 사회다. 일을 하든 말든, 어려운 일을 하든 쉬운 일을 하든 얼마나 소비할 것인가?와는 상관이 없는 사회다. 쉬울 말로 하면 겁나게 뺑이 치는 사람도 핑핑 노는 사람도 똑같이 소비하는 사회다.

 

마르크스는 이 문제는 상당히 목가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아침에는 막노동을 하고, 저녁에는 시를 쓰는 식의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정신노동자(전문노동자)와 육체노동자(단순노동자) 사이의 차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IQ 연구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려고 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선천적 지능 차이가 없다면 전문가와 막노동꾼 사이의 차이가 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들 전문 노동을 한다면 노동 자체가 재미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 자체가 고역이 아니라 욕망이 되는 사회를 상정했다. 나에게는 이것이 몽상으로 보인다.

 

내가 염두에 둔 공산주의는 불평등 사회이며 노동에 따라 월급을 받는 사회다. 따라서 더 많이 소비하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이 일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자본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10-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