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왔다가 올라와있는 김대호 소장님의 듀나게시판 시국좌담회 녹취록을 뒤늦게 읽었습니다. 소감을 몇자 써보고 싶어졌는데 결국 여기다 남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더군요. 그래서 몇자 더 써봅니다.

제가 그 글을 읽으며 거듭 상기한 단어가 있다면 계몽주의라는 단어였습니다. 일단 토론 전반부는 도대체 신자유주의란게 뭔가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는데 보기 나름에 따라서 그 의미를 찾을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매우 허무한 토론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자유주의란 개념이 도움이 되나 안되나라는 주제는 좋은 토론 주제일수도 있으나 어찌보면 억지로 만들어 낸 허상을 깨기위해 허상을 논하는 것이며 상당수 국민들은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별로 많이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토론자들과 김대호 소장님의 토론에서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는 일종의 과학적 합리주의를 소박하게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과거의 사례를 어떤 틀에 맞춰 관념화하고 수치비교로 동일화해서 인과론을 적용하는 것이지요. 과거에 이러저러했으니까 이런 것이다. 또하나는 일종의 관념의 역사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러저러한 개념과 논의는 이러저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봐야 한다. 

이 모두 쓸모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허망한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회과학이 진짜 과학이 될수 있는가 라던가 카오스 이론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나이 지긋한 분들중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일이 그렇게 머리로 되는줄 알아. 하고 외칠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적 태도는 일단 엄밀한 정의에서 시작되죠. 그래서 그 토론은 그렇게 지리하게 각 단어의 의미한 무엇인가하는 것으로 자꾸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정의는 항상 애매모호하고 더구나 엄밀한 정의를 도입해도 과연 우리가 경제 사회현상을 얼마나 합리주의적으로 볼수 있는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없어 보였습니다. 유럽에서 이러저러했고 미국도 이러저러했으니까 이럴꺼야 라는 식의 서투른 과학주의가 아닐까요. 

더구나 그 모델의 단순함은 상당히 1차원적이었습니다. 즉 진보와 보수를 잇는 1차원적인 잣대로 왼쪽이 좀더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혹은 반대고 하는 식입니다. 이 세상 사는 방식이 1차원이 아닌데요. 그런 식으로 무슨 답이 나올까요. 

계몽주의는 결국 사람들을 꽁꽁 옭아매어 살기 힘들게 만듭니다. 그 토론회에 나온 사람들이 맘대로 세상을 꾸민다면 계몽주의의 실패가 그대로 답습되지 않을까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하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당이 정책의 조합으로 이룩된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거야 말로 이익단체죠. 각자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면 공동체가 안됩니다. 공동체가 아니라면 진보니 뭐니하는 말은 참으로 허망한 일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전부 논리로 되는 것도 아니죠. 

김대호 소장은 이런 비판의 늪에서 가끔씩 도약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런 차원을 넘어서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편타당성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겠지요. 그 토론은 희망을 주고 재미도 있게 들은 것이지만 왜 세상의 개혁이 이렇게 느린가를 잘 보여주는 토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토론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들리더군요. 기계공들의 합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