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시는 분은 없겠지만 여기 초기에 글을 죽올렷다가 반응도 없고 공감대도 생기지 않아서 떠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인터넷에는 특별히 마음에 드는 좋은 게시판도 없기 때문에 언젠가 부터 가끔 와서 구경은 했습니다. 잘되어가는지 어디로 발전해 가는지 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구경이 점점 좀 '변태'적으로 변했달까요. 특정 아이디의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팬은 팬인데 너무나 의견이 다르고 억지가 많아서 거의 희극으로 보이더군요. 그래서 언젠가 부터 그 아이디를 가진 분이 또 무슨 이야기를 했나 하고 구경하는 재미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물론 여기 계신분들은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사이트를 발전시켜 오신 것이겠지만 제 개인적입장에서는 씁슬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이건지 저건지 알수 없엇던 아크로가 점점 더 모양을 갖춰간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뭐가 되었건 안티적 글을 희극으로 구경하러 오는 것이외에는 그다지 개인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물론 제가 좀더 열심히 읽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결론은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글을 쓰고 소감을 밝히는 것은 매우 조심스런 일입니다. 내가 더 잘났으니 한수 가르쳐주겠다라는 이미지를 피하려고 노력해야 하니까요. 저 잘나지 못했습니다. 잘났다면 제가 나서서 더 좋은 공감대를 가지는 집단을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다른 분들을 감화시키서 제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이끌수 있었겠죠. 잘나지 못해서 그러지 못하고 그렇게 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구경한 값을 치루는 심정으로 제 인상을 몇자만 남기겠습니다. 기분나쁘실지 모르지만 그럼 그냠 무시해 주십시요. 하고 싶은 말은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너무 현학적이기만 한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 계신분들의 배경을 잘 모릅니다만 별로 넓은 경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책만 읽어서 어려운 단어를 경험없이 나열한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을 구하거나 사회를 개혁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과연 몇분이나 후배나 친구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적절한 조언을 해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질적 문제에 이르러 자기나름의 적절한 가치판단이 가능한가 하는것입니다. 

저는 과학자로 훈련받고 일해왔습니다. 과학을 하는 것과 과학적 지식을 가지는 것은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실은 아주 크게 다릅니다. 과학동아류, 재미있는 과학상식류의 책을 읽어대면 인류역사상의 과학적 이론들에 대해 종횡무진 이야기를 줄줄이 재미있게 할수 있습니다. 특정 주제가 아니면 잘 모르는 과학자보다 더 잘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대중서는 100년을 읽어도 과학자체에 도달하기 힘듭니다. 쉬뢰딩거 방정식 한줄 풀어보지 않고 양자역학에 대해 철학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 아무리 많이 들어봐야 그 사람의 지식은 매우 매우 매우 잘못된 것이기 쉽습니다. 

대중과학서를 줄줄이 읽고 지식을 쌓은 분들이 서로 모여서 즐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과학을 하는 사람을 대체할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미술평론가가 미술가를 대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철학적 이론적 그림의 일부분은 그리는데 그 그림은 최소한 자기 머리안에서는 완결되어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부속품만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완성된 자전거가 부품만 있는 제트기보다 우월합니다. 

둘째는 제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무식한 탓일수도 있지만 저로서는 아크로의 중심적 입장이 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여기 계신분들은 서프라이즈같은 사이트를 무시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지금의 서프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프는 시작할때 친 노무현 사이트라는 것을 공표하고 거기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성공의 열쇠였습니다. 괜히 존재하지 않는 중립을 천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똑같이 누구를 지지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뭐가되었든 어떤 정체성이 될만한 것에 대한 것이 있고 그안에서 논의를 해야 뭐가 되도 될거라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은 서프같은 곳이 그렇게 친노를 단언함으로서 무조건 지지를 하는 자기폐쇄적 사이트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건 어느정도 옳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문제는 과소평가하거나 외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신뢰는 항상 사실에만 근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표현하기 어렵고 정량화하기 어려운 직관적 느낌에 더 많이 근거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무현을 지지하며 노무현 시대에 비하면 이명박 시대는 정말 살기 싫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가 난 그렇지 않다고 할때 수치로 싸워봐야 결국 흙탕물 싸움만 됩니다. 어느정도는 바람직하지만 세세히 파봐야 감정의 골만 깊어질뿐입니다. 누구를 신뢰하는가, 가지고 있는 지식, 철학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정체성이 부정확한 장소는 대개 제 개인적으로는 가장 비호감적인 사람이 차지하더군요. 남의 감정에 대해 무관심하고 논리적 일관성따위는 전혀 없으며 부지런하고 부끄럼을 모르는 분들이 결국 끝까지 남아서 점점 대세가 되더라는 말입니다. 논의라는게 뭐 금방 흙탕물이 되니까 흙탕물에 잘사는 물고기가 살아남는 거지요.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오늘은 그저 몇자 쓰고 싶어 글을 남깁니다.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