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더 많이, 더 깊이 알아가면 갈수록 겸손하게 된다.

그만큼 세상은 큰 반면 한 인간으로서 개인은 그만큼 왜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간 존재가 진짜 초래한 존재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잠재능력을 개발하기만 하면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인간의 잠재능력을 더 개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좋을 것이다.

내 아이들이게 조언을 한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

 

대게 사람을 깊이 알면 알수록 실망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오래 사귀면 사귈수록 밑천이 점점 드러나기 마련인데 보통의 사람이라면 금세 바닥을 보인다. 학문적으로 공부를 하지도 않고 인품을 닦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더 훌륭하고 더 지혜로운 분들을 사귀려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 작은 한계 속에서 덧없이 살다가 떠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오랫동안 김종윤 선생님을 만나면서 점점 더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솔직히 학문적인 것은 아직 내가 깊이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위 여부를 잘 모르겠다.

대륙조선사는 우리의 상식과 지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 설명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해도. 또 그 증거를 눈앞에 들여댄다고 해도 여전히 온전히 믿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우리 인식의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역사관인 것이다.

 

<이 사무실에서 12년째 외롭게 연구에 몰두하고 계신다!>

 

나는 그래서 선생님의 학문을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또 그렇다고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보여주시는 증거나 설명은 너무나 이치에 맞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그분의 학문적 성취는 지금이 아니라면 훗날 밝혀질 수도 있겠고, 또 영원히 묻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리는 스스로 자명해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언젠가는 분명히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인에게 역사는 있냐며 묻고 있다! 조선사는 대륙을 배경으로 한 것이란다!>

 

<나 고서 김선욱은, 김종윤 선생님의 인품과 학문 자세를 무척 존경한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철저함이란 무엇인가를, 치밀함이 무엇인가를 배운다.

자료 정리의 철저함과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치밀함에 놀란다.

만일 학문을 하고 연구를 한다면 저렇게 해야만 할 것이라는 모범을 발견한다.

 

사람이 훌륭하고 바르다고 해서 그 학문적 결과까지 자동적으로 옳다고는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편견에 빠질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선생님의 학문하는 진지한 태도를 보고 학문적 성취를 믿고 싶다. 비록 오류에 빠지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렇게 치밀하고 철저하게 따지고 의심하는 분이 실수할 리가 없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론하게 된다.

 

선생님의 자료 정리와 기록 정리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다.

몇십 년을 동안 신문을 스크랩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를 하고 1년 혹은 2년마다 책으로 묶어 보관을 해 두셨다. 그 자료만 해도 양이 엄청나다.

 

<스크랩을 보여주신다. 1년치 혹은 2년치를 묶어서 제책을 해서 보관해 두신다!>

 

그것뿐만 아니다.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의 류비세프처럼은 아닐지라도 몇십 년 동안 일기를 꼬박꼬박 써서 정리를 해 두셨다. 선생님께서 만일 어떤 범죄를 저지르셨다면 그 기록철에 남겨두셨으니까 증거가 될 것이다. 일기라고 해서 좋은 일만 기록하거나, 감정을 적은 것은 아니다. 사건이나 사태 위주로 기록을 하신 것이다. 가령 내가 선생님을 1시간 동안 방문해서 말씀을 나눴다면 그 방문 날짜와 시간을 기록해두시는 것이다. 만일 용건이 있었다면 용건도 기록될 것이다. 이렇게 기록한 일기가 1960대인가부터 기록, 정리, 보관되어 있다.

 

<1961~1963년도 일기책; 이 일을 지금껏 해오시고 계신다!> 

 

<개인의 일기가 철저하게 기록된 개인 역사: 역사 연구할 자질이 이때부터?^^>

 

한번은 선생님께서 일기를 저렇게 보관해 둘 필요가 있을까 회의를 하신 적이 있다.

일본의 어떤 남자가 컴퓨터에 애정 행각이 담긴 자료로 남겨두었다가 들통이 나 혼쭐이 났다고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처럼, 나중에 자식에게라도 흠을 잡힐 수도 있는데 그걸 보관해 두는 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심정을 토로하신 것이다. 이 세상에 한점 부끄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면 십분 그 말씀이 이해가 간다.

 

이렇게 자신의 역사를 솔직하게 기록하고, 철저하게 자료 정리를 하면 공부를 하시는 선생님께서 학문을 연구하는데 실수를 하실까 하는 질문을 해보면 절대 그럴 수가 없다는 판단이 선다. 자신의 실수마저도 솔직하게 고백하는데 학문적인 실수를 고백하지 않으실 리가 없다.

 

얼마 전에도 선생님을 찾았더니 글을 쓰고 계셨다.

무슨 글을 쓰시냐고 여쭤보았더니 전에 펴냈던 책에 고칠 것이 있어서 정리하신다고 했다. 사실 선생님께서는 건강의 여의치 않아 이제는 글을 잘 쓰시지 못한다. 내가 인생론에 관한 글을 써보라고 권유를 할 때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라며 말끝을 흐리신다. 그럴 때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리고 책을 쓰려면 역사에 관한 것을 먼저 마무리 해야 한다며 못내 아쉬워하신다. 대신이라도 집필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후 늦게 찾아뵜더니, 수담은 안하시고, 바삐 글을 쓰고 계셨다!>

 

<원고지에 직접 쓰시는데, 원고지도 틀린 곳은 종이를 오려붙이셔 교정을 하신다!>

 

<선생님께서 그동안 뼈내신 책들이다! 나는 언제 이 만큼 책을 낼 수 있을까?>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얘기하다 연구를 하셨다며 이 책을 보여주셨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이 부족한 책이라며 솔직히 고백을 하신다! 그 말씀에!>

 

 

한번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내 책에 있는 작은 실수 혹은 잘못을 그냥 두고 넘어간다고 해도 누가 알겠냐?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양식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꼭 고쳐내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머리말에는 솔직히 실수를 고백하시는 글도 넣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때, , 이 분이야말로 정말 공부하는 학자로구나! 하는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선생님께서 자신의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못하시는 강직한 분이셨다.     

 

<과연 누가 있어 선생님의 연구를 이어받을 것인가? 후학이 없어 쓸쓸해 하신다!>

 

<이 많은 역사적 사실들, 고서가 선생님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까 매우 우려가 된다!>

 

김종윤 선생님께서 1940년생이시니까 올해 71세인데, 건강이 좋진 않으시다.

할 일이 있으셔도 건강 때문에 하지 못하시는 걸 보고, 건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평생에 걸쳐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잘 관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은가.

 

괜히 마음이 쓰이는 것은, 내가 건강 공부를 많이 했지만 좀 보살펴드리지 못하는 점이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내심 선생님께서 역사책도 원하시는 만큼 더 내시고, 인생에 관한 에세이까지 한 권 남기시면 좋을 텐데 하고 기원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김종윤 선생님께서는 학문뿐만 아니라 인생과 자연에 대한 문리를 두루 통달하신듯 싶다. 그게 인간의 역사를 공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다. 또한 인생 철학이 깊디 깊으시다. 그렇지만 자신의 생각이 오늘날에도 맞을지는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말씀을 하신다.  

 

책을 읽고 많이 공부를 하는 것 못지 않게 사물의 이치를 두루 꿰찰 수 있는 지혜를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 싶다. 요즘 사람들은 전문가시대라고 해서 자기 분야 하나만을 깊이 파면서 자신이 최고의 지식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어떤 이들은 자기하는 학문만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것을 보지 못해서 나오는 어리석은 소치이다. 어떻게 자기만 똑똑하겠는가. 세상에 지혜로운 이가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다른 것에는 눈감는 말과 다르지 않다. 편협한 지식이라는 소리이다. 많이 안다고,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큰 위험에 빠진다. 교만해지고 거만해질 뿐만 아니라 안하무인이 된다. 제가 제일 잘났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과 그들의 학문을 무시한다. 이것은 분명 학문을 하고 깨달음의 길을 걷는데 당연히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자 현상인 것이다. 한 고개 넘으면 다른 고개가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더 높은 산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산을 넘고 나도 또 더 높은 산이 있기 마련인데.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 선생님과 같이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학식을 갖추고 있지만, 자연과 인간에 대해 두루 깊이 천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분이 사회의 은은한 등불이 되어야 할 것이리라.

 

선생님의 학문을 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내 서재의 이 책은, 네게 부끄럽지 않을 너의 역사는 있냐고 묻는듯 하다!>

 

나는 나 자신의 역사를 바로 쓰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며 살고 있다.

 

 

 

 

 

2010. 5. 15.     12:39

 

 

김종윤 선생님과의 만남을 조용히 되돌이켜 보는 고서

김 선욱

 

 

 

[출처]: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358&mode=read&premode=list&page=1&ftype=&fval=&backdepth=&seq=6&num=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