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으로 이슬람 세계에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해도, 제가 이슬람 문화권에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당장은 깊이 있게 공부를 할 여건도 되지 않아 그저 관심사 따라 이것저것 줏대 없이 옮겨다니기만 하다 보니 요즘 기초가 엉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파다 보니 자꾸 헷갈리는 부분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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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이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잠깐 훑었는데, 이런 대목이 있더라구요.

여기에 또 하나의 결정적 문제가 있다. 지금 유대인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아쉬케나짐 유대인들은 8세기 카자르(Khazar) 왕국을 세웠던 터키계 카자르인의 후손이다. 그 옛날 바빌로니아와 로마제국에 정복당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유대인 디아스포라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유대인들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141쪽)


이 부분을 읽고 순간적으로 '어?' 했습니다. 비슷한 주장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하던 걸 한때 역사 카페 돌아다니던 시절에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이쪽에 관한 제 지식은 그다지 넓어진 것이 없지만, 여하튼 뭔가 좀 아니다 싶었습니다. 딱 이 부분만 빼면 위 책은 개인적으론 현장감도 충실하고 꽤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시온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좋은데, 그렇다고 너무 멀리 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요. 이 주장은 144쪽 정도까지 이어집니다.

… 분명한 것은 지난날 로마에 반기를 들었다가 흩어졌던 때 유대인들의 후손이 나치 학살에 희생된 이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치 학살에 희생된 유대인들의 선조가 살던 카자르 지방은 지금의 남러시아 초원지대의 옛 이름이다. 8세기 무렵 그곳에는 카자르족(터키계 사람들)이 왕국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740년 무렵 카자르 왕국의 불란(Bulan) 왕은 유대교를 국교로 삼기로 결정하고 자신이 다스리던 국민들을 유대교로 집단 개종시켰다. (142쪽)
 … 그렇게 유대교를 받아들인 카자르 왕국은 10세기 말 슬라브족의 침략을 받고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 뒤 아시아로부터 몽고족이 유럽으로 침략해 들어오자 카자르인들은 지금의 독일과 폴란드 등 동유럽 쪽으로 옮겨갔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 250만 명의 유대인이 살게 된 것도 그런 사정에서 비롯됐다. 터키계인 카자르족의 후손인 이들은 아쉬케나짐 유대인들이라 불린다. (143쪽)
 … 시오니즘의 주창자들이 허구적인 디아스포라 신화를 만들어 토착민들에게 들이댄 셈이다. (144쪽)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리 역사를 깊게 공부하지도 않았고, 지역 이해의 기반 정도로만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전하게 될까 봐 이 주장이 옳다 그르다 하는 식으로 단언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이런 식의 극단적인 주장은 일부 아랍 반시온주의자들이나 러시아 스킨헤드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 따위나 하던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글을 굳이 써 올리는 것도, 혹시 관련 역사에 관해 자세히 알고 계시는 분이 계신다면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해서입니다.

당장 '카자르'라고 불리는 종족은, 제가 이희수 교수의 『터키사』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201쪽) 페르시아 측에서 '하자르(Khazar)'로 불리던 투르크계 종족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란사를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보통 '카자르 왕조'라고 번역되는 근대 이란의 투르크계 왕조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이 두 카자르가 동계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쨌든 이 이름이 페르시아 측에서 캅카스 지방의 투르크 민족을 지칭하는 말인 것은 맞는 듯합니다. 

이어서, 역시 『터키사』에 따르면, 하자르 왕국 역시 실존한 왕국이고, 불란 왕의 개종도 역사적인 실제 사건인 것은 맞지요. 하자르 왕국은 대략 서쪽으로 비잔틴 제국, 남쪽으로 이슬람 제국, 동쪽으로 돌궐 제국이라는 막강한 세 세력권의 사이에 있던 국가였습니다. 유대교(206쪽의 설명에 따르면 카라임파)를 받아들인 것은 정치적 균형추 역할과 더불어 동쪽의 돌궐과의 차별화 등을 위해 내린 선택이었고요. 다만 이 책에서는 '하자르 카간 불란이 유대교로 개종했다'고 나와 있는데, 이는 위의 책에서와 같이 '국교로 받아들였다'는 식의 설명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더구나 고대 세계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지대한 역할을 고려할 때 왕만 정치적 이유로 개종한다고 국민들이 전부 따라 개종한다는 식의 설명은 저에겐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이는군요. 곧 망해 버렸으니 게르만족처럼 계속 눌러앉아 살아서 종교의식이 숙성될 시간도 별로 없었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아슈케나짐=하자르설은 어떨까 해서 뒤져 봤는데, 일단 제가 가지고 있거나 알고 있는 문헌 범위에는 관련 내용이 없었습니다. 다만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위키백과의 하자르 항목에 보면(Khazars) 관련 내용이 있는데(해당 문서 12.2절 참조), 이에 따르면 이런 주장은 대체로 근거가 없는 내용이고 아랍권의 학자를 포함해 진지한 학자들은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고 반대측 학자가 한 말이 인용되어 있네요. 그 아래에는 DNA 검사에 대한 근거(**)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또, 아슈케나짐 관련 문서들을 찾아 보면 '일부 하자르 기원'인 것은 인정하지만, '다수 하자르 기원'은 강경하게 부정하는 것 같네요. 그러니 당장 위키백과만 가지고 보면 위의 주장이 얼토당토않은 소리 같긴 한데 말이지요.. 혹시 확실히 정리해주실 분 안 계실까요?



* 위의 책에 따르면, 터키어로 사바르(Sabar)라고 불리는 종족의 하위 분파인 세멘데르(Semender)와 벨렌제르(Belenjer)가 주축이 되어 여러 군소 투르크족들이 섞여 하자르 종족을 구성했다고 합니다.

** 좀 자세히 말하자면, 아슈케나짐의 DNA에서 일부 하자르의 '흔적(vestige)' 정도는 인정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아슈케나짐=하자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강경 부정과 일부 긍정 사이에서 조금씩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