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통계 따위를 수집할 일도 좀 생기고 있고 간혹 흥미로운 블로그도 둘러보고 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진 편이지만, 원래 저는 컴퓨터와 그리 친한 족속은 아닙니다. 고로, PC게임과도 별로 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게임 기기를 사서 하는 게임은 일단 그 게임기를 살 바에야 그 가격만큼의 책을 사는 게 훨씬 얻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PC게임보다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쪽은 뭐 태어나서 통틀어 한두 번쯤 해 봤었나.. 휴대폰 게임은 원래 깔려 있는 스도쿠만 가끔 하고요.

그나마 제가 뭔가 게임다운 게임을 한다고 하면 PC게임을 할 때인데, 할 시간 자체가 별로 없었는데다가 제가 워낙 이런 걸로는 손재주가 없는지라 상당한 피지컬(반응 속도, 손가락 이동 속도, 동체시력 등)이 필요한 것들은 잘 못해요. 또 온라인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그 커뮤니티성이 최종적으로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고 생각하는지라 애초부터 건드릴 생각을 안 했죠. 캐주얼 게임 같은 건 해 봐야 남는 게 별로 없어서 할 필요가 없고요.. 이런 식으로 가지를 잘라 나가다 보면, 결국 남은 종류는 피지컬이 별로 필요하지 않고 주로 계획을 짜고 머리를 쓰는 경영시뮬레이션류나 일부 전략시뮬레이션류 정도입니다. 좀 지난 게임이지만 전자에서 유명한 예를 들자면 '캐피탈리즘'같은 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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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자의 경우, 주로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RTS류를 떠올리신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일단 이런 걸 하기엔 저한테 피지컬 문제가 있습니다. 더구나 무엇보다, 전 판타지적 요소가 강하거나 전투 쪽으로 지나치게 편중된 류의 게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면서 플레이어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만족감은, 게임 속에서 현실적인 지표들이 얼마나 잘 반영되어 있고 게임상에 구축된 수학적 모델이 플레이어가 조작한 변화의 추이에 어떻게 반응해 나가는지를 관찰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역시 좀 지난 게임이지만 가끔 흥미롭게 하는 경우의 예를 들자면, '슈퍼파워 2' 같은 경우가 있지요. 여담인데, 사실 이 게임은 어떤 국가로 하든(2001년 시점에서 대부분의 국가를 고를 수 있습니다) 일당독재 체제로 전환한 후에 관세 80% 정도와 소득세 89.9%를 먹인 후 공동시장 조약을 적절히 맺고 기다리기만 하면 경제가 유럽 수준 이상으로 오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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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제가 군사적인 목표가 주가 되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좀 필요할 것 같네요. 우선, 저는 어떤 전투 상황을 사실적으로 시뮬레이트하는 것 자체는 반기는 입장입니다. 게임상에 구현된 그래픽 기술에 대해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최근 출시된 게임들의 기술적 수준은 거의 영화에 비견될 수준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마 게임과 영화가 영상적 구현 능력에서 차이가 없게 된다면, 일단 엔터테인먼트 기능에서는 단방향의 참여만이 가능한 후자보다 애초에 쌍방향 참여를 염두에 두고 제작되는 전자의 경우가 원리상으로는 우세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다루는 주제의 차이나 카메라워크 등에서의 표현 기법 차이 등이 존재할 수 있으니, 어디까지나 다른 조건이 동일함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긴 해도 말이지요.

또, 저의 경우 엔터테인먼트 기능보다는 시뮬레이션 본연의 기능, 즉 어떤 관념적 세계의 수학적 정밀묘사라는 측면에 무게를 두는데, 영화의 경우 이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게임보다 부족하죠. 이상의 두 가지 이유에서, 어떤 상황에 대해서 다른 조건이 동일하고 완전하게 중립적인 묘사가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때 저는 적어도 상당하는 영화만큼은 그 상황을 묘사한 게임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다만 여기에 '서사'라는 측면이 개재되기 시작하면 좀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영화보다 즐기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큰 게임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대중성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 같습니다. 게임의 경우, 그 주제로 깊이 있는 철학적 물음이나 고차원적인 과학 이론을 끼워 넣게 되면 그에 비례해서 즉각 판매량이 떨어지는 형태로 시장의 반응이 오겠지요. 상대적으로 영화는 이런 측면을 담아내더라도 일정 수준의 매니아층 선호는 얻어낼 수 있는 반면에 말이죠. '예술 영화'라는 개념은 분명 상식 수준으로 널리 쓰이지만, '예술 게임'이라는 개념은 아직 없거나 있더라도 널리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게임으로써 예술에 접근하려 할 때는 엔터테인먼트 면에서는 분명히 유리했던 '쌍방향 참여'의 구조가 오히려 발목을 잡게 되는 거죠.

특히, 전쟁을 주제로 한 게임은 어느 정도 일방적인 정치적 정향을 굉장히 단순화시켜 반복 강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이 저에게는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이 됩니다. 이게 제가 전쟁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예로 <C&C 레드얼럿>이라는 유명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타이틀이 있는데, 위와 같은 게임 제작의 딜레마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임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게임은 전통적인 대체 역사물의 공식을 따라서, 1차 대전 후 히틀러가 집권하지 않고 나중에 1950년까지 시간이 흐르다가 군비를 갖춰 초강대국이 된 구 소련이 전 세계를 상대로 세계 전쟁을 일으킨다는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원래 개발진들은 나치를 게임에 등장시키려 했지만 그리해서 쓸데없이 게임이 진지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그냥 범용 악의 축으로 써먹기 좋은 소련으로 대체를 한 거지요. 

이 타이틀이 인기를 얻어 최근에는 3편까지 나왔는데, 관련 정보에 의하면 갈수록 막 나가는 개그 컨셉(...)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뭐 그거야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사 측면에서 좀 진지하게 접근하면서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아이템들을 끼워 넣었더라면 괜찮은 하드 SF 대체 역사물이 하나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 게임의 삽입곡은 상당히 유명한데, 특히 다음 두 곡이 그렇죠.





저는 이 두 곡이, 현대 소비문화의 거대한 용광로가 된 미국이 '건드려도 별 탈 없을 과거의 마귀 대왕'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소비하고 있는지를―그것도 상당히 웃기는 방식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풍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걸고 넘어질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요. 어차피 원 게임 자체의 스토리가 개그로 가고 있는 것 같으니 풍자 같은 건 사실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도 하고요.

물론 이런 사례를 일반화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나름대로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방식으로 스토리 라인을 짜는 게임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게임 스토리의 주제가 현실적,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군사적 접근이 될 경우 어느 정도 '그 머리 아픈 정치성'을 제거하는 데에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플레이어의 감정 이입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대체역사물에서는 이런 현상이 도드라지는 것 같고요..


p.s.
사실 컴퓨터 게임을 고차원적 정치 교육(!)에 사용하려는 시도 역시 훨씬 이전에 있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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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라질 유대 놈들을 다 때려잡으면 게임 속 헤즈볼라 고위 지도자께서 칭찬해 주시는 이런 바람직한 게임..어?

p.s.2.
헐, 자고 일어나니 이 글이 메인에 와 있군요. 딴 건 그렇다 쳐도 이 글은 별 생각 없이 제 감상만 두서없이 나열한 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