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릿말

 (민주주의 - 자유시장) >> 0 ; 시장 참여권이 필요하다 - 제 1편을 잇는 2편을 작성하기 앞서,
 아크로에 낭만 고양이 몇마리 풀겠습니다
  민주 시민권.jpg

                                                                        <fig 1. 민주 시민권은 어떻게 힘을 발휘하게 되었는가>




 2. fig 1.

 폭력 및 위선이 만연하는 곳에선 필연, 용의 꼬리가 군림하기 마련이죠

 그러나 용의 꼬리는 5 pott 의 생산성 밖에 산출해내지 못하므로, 이에 만족하지 못해 아랫광장에서 뛰쳐나온(HSH : Home Sweet Home)
 정치, 경제학적 마이너리티는 민주주의 논리를 회의하게 됩니다

 사실, 부조리도 理이긴 理입니다. 그러나 마이너리티는 보다 더 합리적인 理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조리의 理로부터 脫하여 보다 더 합리적인 理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2차적/ 적극적 권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3. 2차적/ 적극적 권력 행사

 어떻게 해야 권력을 창출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빈틈없는 민주주의 논리가 준비되어야 겠고
 둘째, 민주적 존재들이 스스로의 정치, 경제학적 정체성에 대해 확고해야 겠으며
 셋째, 그들 스스로 능동적, 주체적으로 민주주의 문화/ 정신/ 사회/ 법률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물리적 총이나 칼 따위는 단 한 자루도 필요 없습니다
 저 세가지 조건들이 우주의 순리, 80/20 법칙으로서의 초개적 욕망, 카오스를 만족시키면 역사는 알아서 민주주의가 新 공적 합리로서,
 
 폭력 및 위선 너머 경쟁 및 협력이 320 pott 의 생산성이나 산출토록 할 테니까요 드디어,
 뱀의 머리라 할지라도 용의 꼬리에 주눅들지 않고 어깨피며 당당히 걸어다닐 수 있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어제의 여러분들께서 청춘의 유희에 쏟아도 되셨을 에너지를 저 세가지 조건들에 쏟아주셨기에
 오늘날의 저를 비롯한 무수토록 소심한 뱀의 머리들은, 이렇게 자유로이 인터넷을 통해 비극적 역사에 희극적 낭만을 담아냅니다

 그 낭만의 근원은 오늘날 더이상 그 누구도 터럭조차 의심않는, 견고하기 그지없는 '민주 시민권' 입니다
 (Let's give it a Big Hand ~~~)



4. C'est La Vie

 권력을 창출하여 공적 합리로 나아갔다면, 이를 유지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공적 합리가 종래의 부조리 제 2세로 타락치 않도록 따라서,

 폭력 및 위선을 멀리하고 경쟁 및 협력을 가까이해야 겠죠

 그러나 폭력 및 위선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해서 이내, 64배나 생산성 높은 경쟁 및 협력을 조롱하곤 합니다
 드디어 눈물없이 볼수없는 불의와 정의 間 각축전이 그 서막을 울리나요?

 경쟁 및 협력은 절대로 폭력 및 위선과, 경쟁 및 협력을 할수 없다 분노합니다. '정의의 사도' 라는 뽕氣 빨이 아직 다하지 않았나 봅니다 
 마이너리티로서 '불의' 의 오명을 뒤집어써야만 했던 그때 그 시절을, 벌써 망각 해버렸나요?
 
 미안합니다. 불의와 정의는 지극히 '상대적' 인 개념이죠
 한때의 불의가 오늘의 정의가 되고 오늘의 정의가 내일의 불의가 됩니다



 민주 시민권을 유지하려면 천진난만의 유치원생도 갸우뚱할 '정의의 완장질' 은 집어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폭력 및 위선의 달콤한 유혹보다 더 달콤한 경쟁 및 협력의 유혹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폭력 및 위선, 경쟁 및 협력 이 모두가 우리 '인간' 이 역사를 통해 보여준 天의 얼굴이기 때문이죠
시장 참여권.jpg 

                                                                      <fig 2. 왜 20대는 스펙 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가?>



5. fig 2.

 아무리 천민 자본주의의 부조리가 대놓고 대한민국을 들쑤시면 뭐합니까?

 첫째, 빈틈없는 자유시장 논리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둘째, 자유시장적 존재들이 스스로의 정치, 경제학적 정체성에 대해 확고하지도 않으며
 셋째, 그들 스스로 능동적, 주체적으로 자유시장 문화/ 정신/ 사회/ 법률을 갈고 닦지도 않는데 말이죠



 시장 참여권은 커녕 공적 합리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2차적/ 적극적 권력도 창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권력 유지는 커녕) 권력 창출을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요?



6. 이자(Interest) 는 폭력 및 위선에 대한 위험부담분이다
선진 자본주의.jpg 
 우리 사회엔 아직도 수많은 폭력과 위선이 정당화되고 있다
 심지어 사회적 기초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학교, 기업, 정부 그리고 국가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는 폭력과 위선을 멈춰야 한다 폭력과 위선이 비록,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지라도 멈춰야 한다

 지금의 20대도 알고 있다. 결코 알량한 스펙 따위가 우리들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러나 밖으로 나가도 도무지 경쟁 및 협력을 도모할 만한 괜츈한 곳이 어디하나 없는걸

 OECD 지표들이 지적하듯 아직까지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위선이 정당화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또다른 폭력과 위선을 가장한 '무작정 광장으로 뛰쳐나와 투쟁하라는' 헛똑똑이들의 정치적 게으름에 오히려,
 더 깊은 좌절감과 한숨만 늘어가는 20대들은
 차라리 스펙이, 그나마 폭력과 위선의 위험을 부담할만한 高리의 이자임을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기성세대의 폭력 및 위선의 헤게모니에 대항할만한 최적의 대항 헤게모니가 '스펙' 인 것이다



 50년대의 눈으로/ 80년대의 눈으로 2010년을 바라보지 마라
 늘 그래왔듯 20대의 문제란 개구리 올챙이 적 넘겨짚듯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소심하기 그지없는 20대가 기성세대에게 바라는 단 하나란 그나마,
 스펙경쟁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폭력/ 위선 정당화 구조에 대한 기성세대 스스로의 대범한 성찰이다


비폭력이란 강력하고 정당한 무기로서 상처없이 잘라내며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을 고상하게 만들어 준다.
비폭력은 치료의 검이다.

- Martin Luther King, Jr -

위선은 덕에 대한 악덕의 경의의 표시다
- François de La Rochefoucau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