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사해서 붙이기만 하면 되니 정말 편하네요. 몇 개 더 남아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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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lrb.co.uk/v00/n03/zize01_.html

 

Don’t Just Do Something, Talk
그저 무언가를 하려만 들지 말고 얘기좀 하라


One of the most striking things about the reaction to the current financial meltdown is that, as one of the participants put it: ‘No one really knows what to do.’ The reason is that expectations are part of the game: how the market reacts to a particular intervention depends not only on how much bankers and traders trust the interventions, but even more on how much they think others will trust them. Keynes compared the stock market to a competition in which the participants have to pick several pretty girls from a hundred photographs: ‘It is not a case of choosing those which, to the best of one’s judgment, are really the prettiest, nor even those which average opinion genuinely thinks the prettiest. We have reached the third degree where we devote our intelligence to anticipating what average opinion expects the average opinion to be.‘ We are forced to make choices without having the knowledge that would enable us to make them; or, as John Gray has put it: ‘We are forced to live as if we were free.’

현재 금융붕괴에 대한 반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들중 하나는 당사자들중 하나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아무도 정말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이유는 기대가 게임의 부분이라는 것이다: 한 특정 개입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얼마나 많은 은행가들과 거래자들이 그 개입을 신뢰하느냐 이상으로 그들이 어느 정도나 다른이들이 그 개입을 신뢰하리라고 믿느냐에도 달려있다. 케인즈는 주식 시장을 100장의 사진을 보고 몇명의 예쁜 소녀들을 골라야만 하는 경쟁에 비교했었다: '그것은 각자가 최선의 판단을 해 정말로 가장 예쁜 소녀들을 골라야 하는 경우도 아니고 평균적 견해가 진정으로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소녀들을 골라야 하는 경우조차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성을 평균적 의견이 평균적 의견이 무엇일 것이라고 기대할지를 예상하는 것에 집중투입해야하는 제3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 우리는 선택들을 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식을 갖지 못하고 선택들을 행해야만 한다; 또는, 존 그레이가 말한 대로: '우리는 마치 우리가 자유로운양 살아야만 한다.'  

Joseph Stiglitz recently wrote that, although there is a growing consensus among economists that any bailout based on Henry Paulson’s plan won’t work, ‘it is impossible for politicians to do nothing in such a crisis. So we may have to pray that an agreement crafted with the toxic mix of special interests, misguided economics and right-wing ideologies that produced the crisis can somehow produce a rescue plan that works – or whose failure doesn’t do too much damage.’ He’s right: since markets are effectively based on beliefs (even beliefs about other people’s beliefs), how the markets react to the bailout depends not only on its real consequences, but on the belief of the markets in the plan’s efficiency. The bailout may work even if it is economically wrong.

조셉 스티글리츠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헨리 폴슨의 게획에 토대한 어느 구제안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의가 증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가들이 그러한 위기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위기를 생산한 특수 이해관심들, 오도되는 경제학 그리고 우익 이데올로기들의 유해 혼합물로 제작된 의견일치가 어떻게든 작동하는 - 또는 실패하더라도 너무 큰 피해를 주지는 않는 - 구제계획을 산출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쓴 바있다. 그는 옳다: 시장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믿음들에 관한 믿음들까지 포함해) 믿음들에 토대해 있기 때문에, 구제안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것의 현실적 귀결들에만이 아니라 그 계획의 효율성에 대한 시장의 믿음에도 달려있다.구제안은 심지어는 그것이 경제적으로 그릇된 것이더라도 작동할 수 있다.        

There is a close similarity between the speeches George W. Bush has given since the crisis began and his addresses to the American people after 9/11. Both times, he evoked the threat to the American way of life and the necessity of fast and decisive action to cope with the danger. Both times, he called for the partial suspension of American values (guarantees of individual freedom, market capitalism) in order to save the same values.

조지 부시가 위기가 시작된 이래 해왔던 발언들과 9/11 이후 미국 국민들에게 했던 연설들 사이에는 뚜렷한 유사성이 있다. 두 시기 모두 그는 미국적 생활방식의 위기와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하고 결정적인 조치를 행할 필요를 환기시켰다. 두 시기 모두 그는 미국적 가치들(개인 자유의 보증, 시장 자본주의)을 구원하기 위해 미국적 가치들의 부분적 유보를 요청했다.  

Faced with a disaster over which we have no real influence, people will often say, stupidly, ‘Don’t just talk, do something!’ Perhaps, lately, we have been doing too much. Maybe it is time to step back, think and say the right thing. True, we often talk about doing something instead of actually doing it – but sometimes we do things in order to avoid talking and thinking about them. Like quickly throwing $700 billion at a problem instead of reflecting on how it came about.

아무런 실질적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재난에 직면해서 사람들은 종종, 어리석게도, '말만하지 말고 무엇인가 하라!'고말하곤 한다. 아마 우리는 최근에 너무 많은 것을 해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는 물러서서 곰곰히 생각해보고 올바른것을 말해야할 시기일 지도 모른다. 실로, 우리는 종종 실제로 행동을 하지는 않고 대신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관해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가 무엇인가들을 행하는 것은 그것들에 관해 얘기하고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그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고 한 문제에 7천억불을 신속하게 투입하는 것이 그렇다.    

On 23 September, the Republican senator Jim Bunning called the US Treasury’s plan for the biggest financial bailout since the Great Depression ‘un-American’:

Someone must take those losses. We can either let the people who made bad decisions bear the consequences of their actions, or we can spread that pain to others. And that is exactly what the Secretary proposes to do: take Wall Street’s pain and spread it to the taxpayers . . . This massive bailout is not the solution, it is financial socialism, and it is un-American.

9월 23일 공화당 상원의원 짐 버닝은 대공황 이래 최대 금융구제를 위한 미국 재무부의 계획을 '비 미국적'이라고 불렀다:

누군가가 그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틀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의 귀결을 감수하도록 할 수 있거나 아니면 그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분담시킬 수 있다. 장관이 제안하는 것은 정확히 후자이다: 그것은 월 스트리트의 고통을 가져와서 납세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 이 거대 구제안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금융 사회주의이다. 그것은 비미국적이다.  
  
Bunning was the first publicly to give the reasoning behind the GOP revolt against the bailout plan, which climaxed in its rejection on 29 September. The resistance was formulated in terms of ‘class warfare’, Wall Street against Main Street: why should we help those responsible (‘Wall Street’) and let ordinary borrowers (on ‘Main Street’) pay the price for it? Is this not a clear case of what economists call ‘moral hazard’? This is the risk that someone will behave immorally because insurance, the law or some other agency protects them against any loss that his behaviour might cause: if I am insured against fire, for example, I might take fewer fire precautions (or even burn down my premises if they are losing me money). The same goes for big banks, which are protected against big losses yet able to retain their profits.

버닝은 구제안에 대한 공화당의 반대 배후에 있는 논리를 공식적으로 제시한 첫번때 인물이었다. 그 거부는 9월 29일 구제안 거부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저항은 메인 스트리트 대 월 스트리트 라는 '계급 전쟁'의 견지에서 정식화되었다: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이들('월 스트리트')를 도와서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보통 대출자들이 그것의 대가를 지불하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모럴 해저드'라고 부르는 것의 분명한 사례가 아닌가? 보증, 법이나 어떤 다른 작인이 나의 행태가 초래할 수도 있는 어떤 손실로부터도 나를 보호해준다면 나는 비도덕적으로 행동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화재 보험에 가입해 있다면, 나는 화재 예방에 별로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심지어는 증서들로 인해 금전적 손해를 보고 있다면 증서들을 불태울 수도 있다). 동일한 것이 막대한 손실의 위험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면서 여전히 이윤을유지할 수 있는 거대 은행들에도 해당된다.          

That the criticism of the bailout plan came from conservative Republicans as well as the left should make us think. What left and right share in this case is their contempt for big speculators and corporate managers who profit from risky decisions but are protected from failures by ‘golden parachutes’. In this respect, the Enron scandal of January 2002 can be interpreted as an ironic commentary on the notion of a risk society. Thousands of employees who lost their jobs and savings were certainly exposed to risk, and had little choice in the matter. However, the top managers, who knew about the risk and also had the opportunity to intervene in the situation, minimised their exposure by cashing in their stocks and options before the bankruptcy. So while it is true that we live in a society that demands risky choices, it is one in which the powerful do the choosing, while others do the risking.

구제계획에 대한 비판이 좌파로부터만이 아니라 보수적 공화당원들로부터도 왔다는 것은 우리를 생각하게 해야만 한다. 이 경우 좌파와 우파가 공유하는 것은 위험이 큰 결정들로부터 이윤을 얻지만 '황금 낙하산'에 의해 실패로부터 보호받는거대 투기자들과 기업 매니저들에 대한 경멸이다. 이 점에서, 2002년 1월의 엔론 스캔들은 위험사회 관념에 대한 아이러니한 논평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직장과 저금을 상실한 수천의 피고용인들은 확실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사태에서 거의 아무런 선택권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위험에 관해 알고 있었고 또한 그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도 지녔던 최상층 매니저들은 파산 전에 그들의 주식과 옵션들을 현금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위험노출을 최소화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험한 선택들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권력자들은 선택을 행하는 반면 다른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사회이다.    

If the bailout plan really is a ‘socialist’ measure, it is a very peculiar one: a ‘socialist’ measure whose aim is to help not the poor but the rich, not those who borrow but those who lend. ‘Socialism’ is OK, it seems, when it serves to save capitalism. But what if ‘moral hazard’ is inscribed in the fundamental structure of capitalism? The problem is that there is no way to separate the welfare of Main Street from that of Wall Street. Their relationship is non-transitive: what is good for Wall Street isn’t necessarily good for Main Street, but Main Street can’t thrive if Wall Street isn’t doing well – and this asymmetry gives an a priori advantage to Wall Street.

구제안이 정말로 '사회주의적' 조치라면, 그것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빈자가 아니라 부자를, 빌린 이들이 아니라 빌려준이들을 돕는 것이 목표인 '사회주의'적 조치가 되는 셈이니 말이다. 자본주의를 구원하는데 봉사한다면, '사회주의'도 OK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럴 해저드'는 자본주의의 근본구조 속에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문제는 메인 스트리트의 복지를 월 스트리트의 복지로부터 분리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쌍방적이지 않다: 월 스트리트에 좋은 것이 반드시 메인 스트리트에 좋지는 않지만, 월 스트리트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면 메인 스트리트도 번영할 수 없다 - 이 비대칭성은 월 스트리트에 선험적 잇점을 부여한다.    

The standard ‘trickle-down’ argument against redistribution (through progressive taxation etc) is that instead of making the poor richer, it makes the rich poorer. However, this apparently anti-interventionist attitude actually contains an argument for the current state intervention: although we all want the poor to get better, it is counter-productive to help them directly, since they are not the dynamic and productive element; the only intervention needed is to help the rich get richer, and then the profits will automatically spread down to the poor. Throw enough money at Wall Street, and it will eventually trickle down to Main Street. If you want people to have money to build, don’t give it to them directly, help those who are lending it to them. This is the only way to create genuine prosperity – otherwise, the state is merely distributing money to the needy at the expense of those who create wealth.

(누진적 과세 등등을 통한) 재분배에 대한 표준적인 반대논변인 '파급효과설'은 그것이 빈자를 부자로 만드는 대신 부자를 빈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외양상 반개입주의적인 태도는 실제로는 현재의 국가 개입에 대한 찬성논변을 포함하고 있다: 비록 우리 모두 빈자가 더 잘살게 되기를 바라지만, 빈자는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빈자를 직접 돕는 것은 반생산적이다. 필요로 되는 유일한 개입은 부자가 더 부자가 되게 돕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윤이 자동적으로 빈자에게로 확산될 것이다. 충분한 돈을 월 스트리트에 투입하면 그것은 결국 메인 스트리트로 파급될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벌기를 원한다면, 돈을 그들에게 직접 주지 말고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들을 도와라. 이것이 진정한 번영을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다. 달리 한다면, 국가는 한갓 부를 창출하는 이들을 희생시켜 궁핍한 이들에게 돈을 분배하고 있는 것 뿐이다.        

* 파급효과설: 대기업에의 재정적 우대는 중소기업이나 소비자에게 파급효과를 준다는 설

It is all too easy to dismiss this line of reasoning as a hypocritical defence of the rich. The problem is that as long as we are stuck with capitalism, there is a truth in it: the collapse of Wall Street really will hit ordinary workers. That is why the Democrats who supported the bailout were not being inconsistent with their leftist leanings. They would fairly be called inconsistent only if we accept the premise of Republican populists that capitalism and the free market economy are a popular, working-class affair, while state interventions are an upper-class strategy to exploit hard-working ordinary people.

이 논법을 부자에 대한 위선적 방어로 기각하는 것은 너무 쉽다. 문제는 우리가 자본주의에 걸려 있는 한, 그 논법에 일말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의 붕괴는 정말로 보통의 노동자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다. 그것이 구제안을 지지했던 민주당원들이 그들의 좌파적 성향에 일관적이지 못했던 것이 아닌 이유이다. 그들이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이 유일하게 올바른 경우는 그들이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경제가 민중적이고 노동계급적인 것인 반면 국가 개입은 열심히 일하는 보통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한 상층계급의 전략이라는 공화당 민중주의자들의 전제를 승인할 때이다.    

There is nothing new in strong state interventions into the banking system and the economy in general. The meltdown itself is the result of such an intervention: when, in 2001, the dotcom bubble burst, it was decided to make it easier to get credit in order to redirect growth into housing. Indeed, political decisions are responsible for the texture of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 in general. A couple of years ago, a CNN report on Mali described the reality of the international ‘free market’. The two pillars of the Mali economy are cotton in the south and cattle in the north, and both are in trouble because of the way that Western powers violate the same rules that they impose so brutally on Third World nations. Mali produces cotton of the highest quality, but the US government spends more money to support its cotton farmers than the entire state budget of Mali, so it is small wonder that Mali can’t compete. In the north, the European Union is the culprit: the EU subsidises every single cow to the tune of five hundred euros a year. The Mali minister for the economy said: we don’t need your help or advice or lectures on the beneficial effects of abolishing excessive state regulations; just, please, stick to your own rules about the free market and our troubles will be over. Where are the Republican defenders of the free market here? Nowhere, because the collapse of Mali is the consequence of what it means for the US to put ‘our country first’.

은행 시스템과 경제 일반에 대한 강력한 국가개입에는 아무런 새로운 것도 없다. 붕괴 자체가 그러한 개입의 결과이다: 2001년 닷컴 거품이 터졌을 때, 성장의 방향을 주택으로 돌리기 위해 신용대출을 더 쉽게 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실로,정치적 결정들이 국제 경제관계 일반의 성격(결, texture)에 책임있다. 재작년, 말리에 대한 한 CNN 리포트가 국제 '자유시장'의 현실을 묘사했다. 말리 경제의 두 기둥은 남부의 면과 북부의 목우였는데, 둘 모두 서구열강들이 그들이 그토록무자비하게 제3세계 나라들에게 부과하는 바로 그 규칙들을 위반하는 방식 때문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말리는 최고품질의 면을 생산하지만 미국 정부는 말리 전체 국가 예산보다도 더 많은 돈을 미국의 면 농업자들을 보조하는데 썼다. 그 결과 말리가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던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북부에서는 유럽 연합이 범죄자이다: 유럽 연합은 소 한마리당 매년 500유로에 달하는 거금을 보조해 준다. 말리 경제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과도한 국가 규제들을 폐지하는 것의 이익효과들에 대한 당신들의 조언이나 충고나 강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들이, 제발 청하건데, 자유시장에 관한 당신 자신의 규칙들을 고수하기만 하면 우리의 위기는 종식될 것입니다. 공화당의 자유시장 옹호자들은 여기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리의 붕괴는 미국이 '우리 나라가 먼저'라고 말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의 귀결이기 때문입니다.'    

What all this indicates is that the market is never neutral: its operations are always regulated by political decisions. The real dilemma is not ‘state intervention or not?’ but ‘what kind of state intervention?’ And this is true politics: the struggle to define the conditions that govern our lives. The debate about the bailout deals with decisions about the fundamental features of our social and economic life, even mobilising the ghost of class struggle. As with many truly political issues, this one is non-partisan. There is no ‘objective’ expert position that should simply be applied: one has to take a political decision.

이것이 가리키는 것 모두는 시장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의 작동은 언제나 정치적 결정들에 의해 조절된다. 진짜 딜레마는 '국가 개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국가개입이냐?'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정치이다: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조건들을 규정하려는 투쟁. 구제안에 관한 논쟁은, 계급투쟁의 유령을 동원하기까지 하면서, 우리의 사회적 및 경제적 생활의 근본적 면모들에 간한 결정들을 다룬다. 많은 진짜 정치적인 쟁점들과 마찬가지로, 이 쟁점도 당파적이다. 단순히 적용되기만 하면 되는 '객관적인' 전문가 입장은 없다: 우리는 하나의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 'non-partisan'은 오자인듯
    
On 24 September, John McCain suspended his campaign and went to Washington, proclaiming that it was time to put aside party differences. Was this gesture really a sign of his readiness to end partisan politics in order to deal with the real problems that concern us all? Definitely not: it was a ‘Mr McCain goes to Washington’ moment. Politics is precisely the struggle to define the ‘neutral’ terrain, which is why McCain’s proposal to reach across party lines was pure political posturing, a partisan politics in the guise of non-partisanship, a desperate attempt to impose his position as universal-apolitical. What is even worse than ‘partisan politics’ is a partisan politics that tries to mask itself as non-partisan: by imposing itself as the voice of the Whole, such a politics reduces its opponents by making them agents of particular interests.

9월 24일, 존 멕케인은 유세를 중단하고 당파 차이를 밀쳐둘 때라고 선언하면서 워싱턴으로 갔다. 이 제스처가 정말 그에게 우리모두가 연루되어 있는 현실적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당파적 정치를 끝낼 용의가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맥케인씨 워싱턴에 가다'가 될 하나의 기회였다. '중립적' 영토를 규정하기 위한 투쟁, 바로 그것이 정치이다. 그것이 당 노선들을 가로지르자는 맥케인의 제안이 순수하게 정치적인 자세인 이유, 비당파성으로 위장한당파적 정치인 이유, 그의 입장을 보편적-몰정치적인 것으로 부과하려는 필사적 시도인 이유이다. '당파적 정치'보다 훨씬 나쁜 것이 그 자신을 당파적이지 않은 것으로 은폐하려 하는 당파적 정치이다: 그것은 그 자신을 전체의 목소리로 부과한다. 그러한 정치는 반대자들을 특수한 이해관심의 대리인들로 만드는 것에 의해 반대자들을 약화시킨다.  

This is why Obama was right to reject McCain’s call to postpone the first presidential debate and to point out that the meltdown makes a political debate about how the two candidates would handle the crisis all the more urgent. In the 1992 election, Clinton won with the motto ‘It’s the economy, stupid!’ The Democrats need to get a new message across: ‘It’s the POLITICAL economy, stupid!’ The US doesn’t need less politics, it needs more.

이것이 오바마가 첫번째 후보 토론을 연기하자는 맥케인의 제안을 거부하고 붕괴는 어떻게 그 두 후보가 그 위기를 다룰것인가에 관한 정치적 토론을 더 긴급한 것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던 것이 옳았던 이유이다. 1992년 선거에서, 클린턴은 '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라는 모토로 승리를 거두었다. 민주당원들은 새로운 메시지를 건넬 필요가 있다: '문제는 정치경제야, 이 멍청아.' 미국은 정치를 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국은 정치를 더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