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영어 diet와 한국어 다이어트의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여기에서는 그냥 살 빼기라는 뜻으로 썼다.

 

나는 다이어트와 관련된 생리학 문헌이나 진화 심리학 문헌을 거의 보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나중에 학술적으로 완성도를 높여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인간은 물에 뜨는가?

 

침팬지는 수영을 배우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물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아마 인간과 침팬지의 최근 공동 조상도 침팬지처럼 물보다 무거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물에 뜰 수 있을 정도로 지방이 많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을까?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침팬지는 나무 위에서 많이 지내는 반면 인간은 주로 땅에서 산다. 무거우면 나무에서 떨어지기 쉬울 것이다. 나무에서 떨어질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지방을 더 축적해도 상대적으로 손해를 덜 보았을 것이다.

 

둘째, 침팬지는 열대 우림에서 거의 초식을 하고 산다. 반면 우리 조상들은 사바나에서 살게 되었으며 침팬지보다 육식에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따라서 음식을 구하지 못하는 일이 침팬지에 비해 더 많았을 것이다. 굶주림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지방을 더 많이 축적해서 이득을 볼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비만이 생기는 이유는?

 

진화 심리학자들은 현대 문명국에 비만 인구가 상당히 많은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한다.

 

첫째, 과거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육체적인 운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현대인 중에는 하루 종일 책상에서 앉아서 일하며 차를 타고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다.

 

둘째, 과거에는 장기간 먹을 것이 풍족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선진 산업국에는 극빈층을 제외하면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셋째, 현대에는 아이스크림, 초콜릿, 콜라, 피자와 같이 열량이 매우 높은 식품들이 널려 있다. 위가 차서 생기는 포만감이 식욕을 조절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인데 열량이 높은 식품을 포만감이 생길 때까지 먹으면 과거 사냥-채집 사회보다 훨씬 많은 열량을 섭취하게 된다.

 

요컨대, 과거와 현재의 환경 차이 때문에 비만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지방 축적 메커니즘이 과거의 환경에 맞게 조율되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는 오작동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존하는 사냥-채집 사회에는 비만 인구가 극히 적거나 없다(비만의 기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이런 설명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인다.

 

 어느 정도 이상 뚱뚱하다면 더 이상 지방을 축적하지 말라는 식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만약 그런 메커니즘이 있다면 아무리 먹고 아무리 운동을 안 해도 어느 정도 이상 뚱뚱해지지 않을 것 같다. 인간에게는 그런 메커니즘이 없는 것일까? 없다면 왜 없는 것일까? 있다면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고도 비만 인구가 상당히 많은 것일까?

 

어쩌면 과거에는 비만의 위험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그런 메커니즘이 필요 없어서 진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대인이 과거와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메커니즘이 있긴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살이 찌면 남자가 배가 나오나?

 

살이 찌는 방식에 남녀 차이가 있다. 살이 찌면 몸 전체가 불어나기는 하지만 남자는 상대적으로 배가 더 나온다. 즉 남자는 배에 지방을 더 많이 축적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가 왜 배에 지방을 주로 축적하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여자가 배에 지방을 주로 축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긴 하다. 배가 나오면 임신한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임신하면 짝짓기 시장에 인기가 떨어진다. 어쩌면 이 이유 때문에 여자가 온몸에 지방을 더 분산해서 축적하는지 모른다.

 

 

 

 

 

선진 산업국에서는 날씬한 사람을 선호하나: 풍요의 수준과 몸매 선호

 

기근의 시기에는 굶주림의 위협이 크다. 반면 풍요의 시기에는 비만의 위협이 크다. 따라서 기근의 시기에는 어느 정도 풍만한 여자를 선호하고 풍요의 시기에는 어느 정도 날씬한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적응적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풍요의 정도와 몸매 선호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날씬함에 대한 집착은 그런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쳐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문화적 유행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설명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지방 축적 메커니즘이 과거 환경에 맞춰 설계되었기 때문에 현대에는 지나치게 뚱뚱한 사람이 많다. 마찬가지로 몸매 선호 메커니즘이 과거 환경에 맞춰 설계되었기 때문에 현대에는 지나치게 마른 사람을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풍요로울수록 마른 몸매를 선호하라는 식의 프로그램은 과거의 풍요의 정도에 맞추어 조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래가 없는 정도로 풍요로워지니까 현대인이 지나치게 마른 몸매를 선호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요 현상

 

무작정 굶어서 살을 빼면 조만간 요요 현상 때문에 원래 몸무게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량-에너지 보존 법칙을 고려해 볼 때 결국 요요 현상도 많이 먹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무작정 굶은 사람은 나중에 많이 먹게 되는 것일까?

 

아마 식욕이 더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식욕이 더 강해진 것일까? 그럴 듯한 설명이 하나 있다. 의식의 수준에서는 자신이 굶는 이유가 다이어트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무의식의 수준에서는 기근의 시기이기 때문에 굶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기근의 시기에 더 강력한 식욕을 발휘하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근의 시기에는 소화 기관이 더 강력하게 작동해서 먹은 것을 더 잘 소화하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근의 시기에는 더 게으름을 부리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근의 시기에는 신진 대사 속도를 낮추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근의 시기에는 지방을 악착 같이 축적하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모든 것이 요요 현상으로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굶어서 살을 빼려고 하는가?

 

살을 빼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운동을 해서 빼는 방식. 체질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보통 이렇게 빼려면 운동을 엄청나게 많이 해야 한다. 운동 중독이 되면 살을 뺄 수는 있지만 무리해서 운동하면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둘째, 무작정 굶어서 빼는 방식. 단기적으로는 극적인 효과를 거두지만 결국 요요 현상 때문에 원위치로 돌아온다. 물론 의지가 엄청 강한 사람이라면 엄청난 배고픔을 장기간 견디겠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건강에도 아주 해롭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써 봐서 실패하면서도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한다.

 

셋째, 약간 덜 먹고 꾸준히 적당히 운동하는 방식. 이것이 전문가가 추천하는 방식이며 성공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살을 뺄 수 있는 가장 가망성 있는 방식일 뿐 아니라 건강에도 이롭다. 지금은 이런 지식이 많이 퍼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방식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넷째, 운동은 안 하지만 약간 덜 먹는 방법. 무작정 굶는 것보다는 건강에도 좋고 성공률도 높다.

 

왜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굶으려고 할까? 어떤 사람은 조금 적게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방식이 훨씬 더 가망성이 높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진짜로 운동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정말로 의지가 너무 강해서 무작정 굶는 방식으로도 살을 잘 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운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의지가 강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거식증 환자들은 굶는 방식으로 살 빼기에 성공(?)한다.

 

위에서 나열한 것들을 고려해 봐도 무작정 굶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 같다. 나는 무작정 굶는 것과 도박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드라마 <올인>의 주인공인 프로 도박사 차민수 씨와 같은 특수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도박을 해서 장기적으로 돈을 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도박에 중독되어 있다.

 

도박을 하면 장기적으로는 돈을 잃지만 단기적으로는 큰 돈을 딸 때가 있다. 왜냐하면 바둑과 같은 게임과는 달리 우연이 상당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횡재를 할 때 큰 기쁨을 맛보게 되며 도박 중독자들은 이런 기쁨에 중독되는 것 같다. 무작정 굶어서 살을 빼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한 달이 5kg 이상 몸무게가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되며 거기에서 큰 기쁨을 얻을 것이다. 도박이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도 결국 자신이 그렇게 살다가는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쾌락 메커니즘의 의견은 다르다. 이와 비슷한 일종의 다이어트 중독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운동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인 반면 굶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기 때문에 편해 보인다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배고픔의 고통은 만만치 않다. 에너지를 얻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배고플 때 만만치 않은 고통을 느끼도록 인간이 설계되었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굶어본 사람은 그 고통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가만히 있다고 다 편한 것은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죽도록 얻어 맞는 것을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지는 이유는?

 

인간의 지방 축적 메커니즘은 과거 환경에 맞추어 설계되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운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리모콘 누르기 운동만 하는 현대 환경에서는 지방 축적 메커니즘이 오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현대인이 살이 찌는 이유도 운동을 안 하고 살 빼기가 매우 어려운 이유도 그런 오작동 때문일지 모른다. 언어 발달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어느 정도 이상 입력될 필요가 있듯이 지방이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지방 축적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운동이라는 입력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2010-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