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의 성격과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본 사람은 다음의 것들에 대해 동의할 것이다. 노동법은 우선 '시민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시민법이 아니라 노동력이 불평등하게 판매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완하는 사회법이라는 것과, 둘째로 그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투쟁이 있었지만, 사실은 노동법을 만드는 것이 자본에게는 장기적으로 이익이다라는 바탕위에서 탄생한 법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법에 대하여 시민법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애초에 노동법이 만들어진 취지 자체를 모르는 난센스이거나 그 법이 제정될 당시의 합의 정신을 망각하는 반칙일 뿐이다.

어찌 보면 노동법은 하이에크 이하 신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애용하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이다.  노동3권이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의 헌법에 명시되거나 천부 인권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그 권리행사를 국가가 법률의 형태로 보장하는 것은 괜히 그러는게 아니다. 시장경제에 대한 보장이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핵심기제이듯이 노동법의 준수 또한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기제이다. 

(이글에서 말하는 노동법이란 '노동법의 정신'을 추상화한 표현이니 독자들은 '현실의 노동법'과 혼동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물론 한국의 노동법이 한국 사회 노동자들의 자체적인 투쟁에 의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미국에 의해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라서 이런 주장은 사실 어폐가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 과정 참여,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 한국의 노동자들도 비로소 그 법을 누릴 자격을 충분히 획득했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필자의 주장이 마냥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하이에크류의 이단적인 시장원리주의가 자신들의 사상과 모순되는 주장을 하면서 노동법이라는 자생적 질서를 노동 탄압이라는 인위적 질서로 뒤집으려 시도하고, 대처와 레이건등이 그런 주장을 현실정치에 적용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현실의 노동법은 이제 껍데기만 남고, 애초 그것들이 만들어져야 했던 어떤 정신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때문에 이제 역사는 다시 20세기초 노동법이 만들어지던 당시로 돌아가 역사의 과정을 다시금 도돌이표처럼 밟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사정은 훨씬 더 열악하다. 헌법 33조는 이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사문화된 조항이 되었고 노동3권은 완벽하게 무력화되었다. 즉 대한민국은 이제 실제적으로 노동법이 없는 자본주의 국가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히 19세기스러운 투쟁과 탄압의 아비규환이다. 역사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정확히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쌍용차 노조에 쏟아지는 여러 비난의 논리들은 이미 19세기 당시에도 유행하던 것들이었다. 당시에도 노동조합과 파업은 자본이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숙련공들의 사치(?)였고, 당연히 그들은 비숙련공들의 피를 빠는 귀족들로 묘사되었다. 숙련공들이 무서워 투자를 못하겠으니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모두 그들 책임이라는 자본의 엄살도 지금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달라진 것은, 당시에는 그런 주장들을 일명 보수파라는 사람들이 주로 해댔지만, 이제는 소위 좌파라는 사람들도 그 논리에 승복한다는 것이다. 이윤을 위해 역사마저 되돌려버리는 자본주의의 힘은 그래서 무섭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무력화된 노동법의 정신이 다시 되살아나려면, 인류가 20세기초에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다시금 반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당시보다 더 지난하고 힘든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분명한 것은 쌍용자동차 노조의 싸움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고, 외부에서 수입되어 공짜로 누리던 노동법을 진정 우리의 노동법으로 만들기위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