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환경오염, 온난화, 절대적 빈곤같은 전지구적인 문제 뿐만아니라 국내로 한정하면 빈부격차의 심화, 고용없는 성장, 경쟁심화로 인한 푸석푸석해지는 삶의 질, 노동자 권익문제 같은 것도 고질적인 현대사회의 문제점이다(물론 저것들도 사실 공업화된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리고 남북분단으로 인한 외교적인 긴장이 저기에 +되어있다.

진보적인 입장의 사람들 뿐만아니라, 보수적인 사람들, 지식인, 정치인들도 저것들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둘은 저런 문제들에 대하여 다르게 접근한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대개 현상 그 자체를 지금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생각한다. 예를들어 지금 경제성장률이 낮아져서 돈벌기가 어려워지면, 성장동력을 찾고,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개발을 하려 한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구조자체에 문제제기를 한다. 이런저런 논리를 끌어다가, "어차피 이대로는 고성장은 불가능하다. 뭘해도 안될거다. 싹 다 바꿔야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지금 당장 경제가 어렵거나,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보수적인 사람들은 대증요법에 치우치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구조적인 문제에 천착한다. 구조적이고 역사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을 하면 지금의 문제의 근원을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세상이 살기 어려운 이유는 이 세상의 근본 자체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해진다. 그리고 동시에 무거워진다.


3.1절, 815광복절만 되면, 진보적인 사람들은 친일문제에 열광한다. 완성된 국민국가로 광복을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꼬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겁하게 친일한 사람들을 단죄하지 못해서 "나만 잘되면 된다"는 기회주의가 만연하게 되서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모든게 엉망이라는 논리이다.

좌파정당이 자리를 못잡는것도, 개혁정당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도 국가의 시작이 친일을 떨치지 못한 상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정당당한 세력이 계속 핍박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조선시대 서인정권이래로 우리 역사는 개혁세력이, 정의가 승리한 적이 없다고 생각해서, 근본부터 모조리 썩어버렸기 때문에, 지금이 이모양 이꼴이고, 따라서 해결책인 싹 다 갈아엎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어려운 이유도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카드빚 못갚아서, 주식이 폭락해서, 장사가 안되서, 해고당해서, 직장이 없어서 고생하는 이유는, 세계화 때문,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한다. 구조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질서 속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말짱꽝이라고 한다. 해결책은 신자유주의적인 세계질서에 반기를 드는 길뿐이라고 한다.


어떻게 고용을 창출할 것이며, 신수종사업을 어떻게 발견할 것이며, 법적으로 파산자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등등 이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구조적으로 안되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뭘 해보려고 하는 것은 대증적인 요법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개 경제적인 논의, 법적인 논의 등을 하다가 인간본성의 문제로 치닫기도 한다. 경쟁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상호호혜정신보다 인간의 이기심, 탐욕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적인 철학 자체가 문제이고, 이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자체가 폭력적이고 따라서 사고자체를 다 바꾸면, 무언가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논의도 전개한다.


교육문제도 비슷하게 접근한다. 자기 소질을 계발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교육이 참교육인데, 지금 사회는 학생들에게 서열을 강요하고, 공부를 강요하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썩었다고한다. 대학서열을 모조리 철폐해야 한다고 한다. 사교육비 문제, 학생들이 공부에 신음하는 모든 이유는 이 사회가 구조적으로 학벌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질계발을 못하고 쓸데없이 국어영어수학을 공부하게되는 이유, 엄마아빠들이 사교육시키는 이유, 애들이 공부하다 코피쏟고 시든 콩나물처럼 지내는 이유는 전부 이 사회가 학벌사회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런게 한두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대증적으로만 치유하는 것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처방일 수 있다. 정말로 근본적으로 어딘가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손을 대야 하는 것도 원론적으로 옳은 소리다.

그러나 문제를 인식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처방이 필요함을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그러나 대개 우리나라의 진보적인 사람들(전 세계의 진보적인 사람들도 비슷하지만)은 거의 모두가 구조적, 체계적인 사고를 즐겨한다. 뭔가 있어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일수도 있으나, 나는 그들이 그렇게 평생을 사고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복잡하다, 지금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생각해야하고 고려해야할 것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할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이걸 손대면 저기서 뭐라하고, 저기를 손대면 여기서 뭐라하고, 적어도 책임있게 사회를 운영하려면 이쪽 저쪽 다 고려해야하고, 다 배려해줘야하고 그러자면 타협은 필수이다. 행동의 타협뿐만아니라, 사고의 타협, 이념의 타협도 필수다.

그러나 계속해서 무조건 타협만 하는 것은, 본래의 문제해결의 취지와 질적으로 달라지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면서도 이쪽 저쪽 모두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실력이고, 능력이다.

이걸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폭넓은 네트워크가 있어야하며, 지금 현실을 작동시키는 도구들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한다. 정말 어렵다.


그런데, 근본적인 사고는 쉽다. 전부 다 친일파때문이다, 경쟁때문이다, 신자유주의때문이다, 자본주의질서때문이다, 미국때문이다, 삼성때문이다, 인간본성자체가 문제다 등등
친일파 제거하거, 경쟁 없애고, 신자유주의 철폐하고, 자본주의 철폐하고, 미국과 관계 정리하고, 삼성 손보고, 인간본성개조하고...

이러면 현실의 복잡한 문제가 모조리 한꺼번에 해결될것처럼 사고한다.


현장에서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처우문제를 다루고, 수월성교육과 평준화교육의 조화를 위해 고민하고, 파이를 키우는 진보적인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성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현재도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은 근원적, 근본적, 환원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어떤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개선시킬지에 대한 큰 방향을 잡아주는 근본적인 사고방식과, 그것을 현실 속에서 이루어낼 방안을 다듬는 현실적인 사고방식이 균형을 이루어야하는데,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