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역주의는 크게 3가지 측면으로 나눠진다. 첫째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것으로 사회적 차별을 당하는 인권의 측면이 있고, 두번째는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경제적 비효율의 측면이 있고, 세번째는 정치인이 자신의 실력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높거나 낮은 평가를 받아서 정치의 현실 적합성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에 대해서는 진보개혁진영 모두가 대체로 견해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바로 세번째다. 정치인의 자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자가 별 어려움 없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거나, 그런 자에게 형편없는 스코어로 분루를 삼키게 만드는 지역주의의 마법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 세번째 측면에 대한 제 세력간 견해의 불일치가 바로 작금의 유빠 - 난닝구 논쟁의 숨은 배경이고, 진보개혁세력이 쉽사리 힘을 모으지 못하게 하는 덫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행복한 정치인의 순서가 존재하는 특이한 나라다. 행복한 정치인이란, 실력에 비해 국민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국민의 평가는 물론 선거에서의 득표율이다. 아마도 가장 행복한 정치인은 뭐니 뭐니해도 영남에 기반을 둔 한나라당 정치인들이겠다. 그들은 오로지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내는 능력만 갖추면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행복한 정치인은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들이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실력에 비해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단지 영남의 한나라당 정치인들과 다른게 있다면, 그러한 성공을 쉽사리 자기 실력이라고 주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타 지역의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실력에 비해 비교적 공정한 평가를 받음으로써,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다. 그 다음은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이다. 대부분 실력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지역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영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들이다. 절대로 자기 고향에서는 정치인으로서 성공할 수 없는, 한국의 정치인들중에서 가장 불쌍한 그들을 영남 비주류라고 부른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이규혁이라는 노장 선수가 그랬다던가? 안되는 줄 알면서도 도전해야 한다는 게 가장 슬펐다고. 어쩌면 영남 비주류 정치인들은 바로 그런 비극을 숙명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한나라당을 거부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모든 부당한 차별과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들을 향한 영남인들의 무심하고 냉혹한 칼날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2년 후에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될 희대의 정치적 슈퍼스타조차도 그 칼날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빈 공터에서 쓸쓸히 외면받아야 했다. 이유는 그저 자기 고향에서 호남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가 된 죄 밖에는 없었다. 

호남은 그런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차별당해본 사람만이 차별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 한국 사회가 차별해버린 호남은 그래서 한국 정치가 차별해버린 그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었다. 또한 영남비주류를 베어버리는 영남인들의 냉혹한 칼날은 사실 그들이 아니라 호남을 향해 휘두르는 칼날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호남은 영남비주류들을 자신들을 대신해 고난을 받는 자들로 여겼고, 그 불행을 보상해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노무현이 광주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렇게 호남과 영남 비주류가 손을 잡자 모든 개혁세력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그것이 바로 2002년 노풍의 정체였고, 한국 정치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영남비주류는 어쩐일인지 호남의 깊은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한나라당의 집권이 호남인들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몽준을 마음에 두며 흔들렸던 호남을 서운해했다. 호남은 자신들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그저 한나라당이 싫었을 뿐이라고 손 내밀었던 호남을 모욕했다. 그래도 호남은 그들을 믿었고, 권력까지 만들어 주었다. 

또한 영남비주류들은, 호남의 행복한 정치인들과 호남 그 자체를 구별하지 못했다. 호남의 지지를 받아 호의호식하는 일부 정신나간 정치인들을, 차별받는 호남과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호남의 지지가 아니라 고향의 환대라고 여겼다. 그렇게 고향의 환대를 받기 위해 호남이 내밀었던 손을 씻어버리고, 마침내 분당으로 치달았다. 그래도 호남은 여전히 그들을 지지했고, 탄핵에서 구해냈다. 그런데도 그들은 쉽사리 풀어버린 손을 다시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향의 환대가 아니라 정권까지 빼앗기는 최악의 결과였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집나간 탕자가 되어 호남의 조바심을 조롱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호남의 잘못도 있었다. 호남의 지지에 편승한 얼빠지고 나태한 정치인들을 매섭게 추궁하지 못했고, 너그러웠다. 그들이 선출직으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각종 임명직과 이권까지 넘보는 탐욕을 부리는 것에 대해 따끔하게 견제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 임명직들은 본인들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줘야 했다. 타 지역의 개혁세력들과 진보세력들에게 양보하라고 압력을 넣어야 했고, 그럼으로써 영남비주류들이 마음놓고 자기 고향에서 도전할 수 있도록 뒷심이 되어주어야 했다. 영남비주류같은 소수자들에게 주어지는 특혜를 배아파 하는 일부 양심 불량한 호남의 정치인들을 더 아프게 야단쳐야 했다. 그것이 호남의 정신이고, 차별당하는 자들의 올바른 연대였다고 믿는다. 

그러나 집나간 탕자들에 대한 면죄부는 여기까지이다. 만약 유시민에게 1%라도 올바른 점이 있다면, 그가 호남의 그런 과도한 너그러움을 지적한 딱 그것 뿐일게다. 그러나 그 무엇이 되었든, 집안에서 했어야 했다. 호남의 지지를 받아 따뜻하게 놀고 먹는 일부 욕심많고 나태한 정치인들을 호남에 고발하고, 심판해주시라 요청해야 했다. 호남을 믿고서 그리했어야 한다. 호남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래도 내 자식들이라고 탄핵당한 그들을 구해낸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나는 더 이상 국참당이 저지르는 분열의 정치를 용서하기 힘들다. 호남이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은 부산의 공터에서 목터져라 영남의 지역주의를 폭로하던 노무현이지, 뛰쳐나가서 호남을 향해 협박의 공작을 하는 지금의 유시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그들을 기다린다. 그가 몰고 다니는 철없는 빠들을 기다린다. 지금이라도 백의종군하고 돌아오면 버선발로 반겨줄 것이다. 그러면 기꺼이 그들의 편이 되어, 호남의 지지를 볼모로 무능과 나태에 빠져 정신못차리는 자들을 도태시키는데 미약한 힘을 보태겠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서 늘 진보의 편이었던 호남의 정신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전체 진보개혁진영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80년대 민중을 위해 낮은 곳에서 헌신하던 그 수많은 노동자들과 학생들을 기억하고, 87년 그 때 독재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던 그 날을 기억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을 바꾸던 날을 기억하고, 변화를 열망하던 2002년의 그 날들을 기억하고, 탄핵에 맞서 정의를 지켜내던 그 날을 기억한다. 지금 밑바닥을 향해 가고 있지만, 나는 그런 날이 다시는 안오리라 절망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꿈을 다시 꾸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들은 너무도 분명하다. 분열을 외치는 자들을 증오하고, 국민의 땀과 눈물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자들을 증오하고,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나태하고 무능으로 때우는 자들을 증오해야 할 일이다. 

그 꿈을 당신들도 꾼다면, 모든 분열주의자들, 특히 유시민과 그 지지자들은 지금 그 곳에 있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