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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이것이 우리시대의 리얼리즘이다"



<한겨레21>에 연재됐던 '노동OTL'이 제목을 바꿔 책으로 묶여나왔다. 하종강 선생님과 내가 추천사를 썼다. 굳이 2009년 한국기자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동OTL'은 그야말로 2009년 최고의 기획기사 중 하나였다. 웬만해선 이런 얘기 안하는데, 정말 강추다. 아래는 내가 쓴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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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다!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치열하게 그려내는 것이 당대 예술의 정수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누구도 예술에게 그런 주제넘은 요구를 하지 않는다. 문학에도, 영화에도, 음악에도. 그러나 2010년이라는 시점에 만약 아직도 그런 감수성을 위해 비워둔 자리가 있다면 그곳에 <4천원 인생>이 꽂혀야 한다. 이 책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점심 식사 후에 4200원짜리 카푸치노를 마시며 아이폰으로 트위터 하는 노동자는 나오지 않는다. 수백 명 씩 모여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채 일사불란 팔뚝질을 하는 노동자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마트에서, 갈빗집에서, 닭공장에서, 주유소에서 하루 종일 일해 1백만 원 남짓한 돈을 손에 쥐는 노동자들이 나온다. 그/녀들은 가난하며 늘 어딘가 아프고, 그/녀들의 가족도 가난하며 늘 아프다, 그/녀들은 너무 마르거나 너무 뚱뚱하며, 10년 동안 휴일 없이 일하다가 자궁에 종양이 생겨서야 휴가를 얻는, 그런 노동자다. “군대 있을 때 빼면 투표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말하는 영호 씨와 “한 달에 2백만 벌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는 영희 씨는 근로계약서를 썼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용역업체 사장을 “인간적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그/녀들에게 ‘노동조합’은 ‘청와대’만큼이나 현실감이 없는 단어다.

그/녀들은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그래서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순간 외에는 ‘투명인간’ 취급받기 일쑤다. 하지만 사람들은 변기에 앉아있다 문 아래로 쑥 들어오는 대걸레에 매번 까무러치게 놀라며 화를 벌컥 내면서도 이 아주머니들이 얼마를 받고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피로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들을 스쳐지나간다. 마치 어떤 물건 하나가 거기 놓여있다는 듯이. 그런 살풍경을 어느 마트 노동자는 이렇게 썼다. “삶의 피로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어린 아이들만 시선을 허락한다. 그들은 모자 쓰고 앞치마 두른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5m 매대 앞을 오가는 진자 운동을 하루 종일 하다가, 나는 문득 사람의 눈길이 그리워졌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노동문제의 ‘현장‘은 많이 바뀌었다. 과거의 핵심 ‘현장’이 울산과 같은 지역의 대공장이었다면 지금은 수도권의 중소 규모 작업장들, 대형마트, 골프장, 초․중․고․대학교, IT업체,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같은 서비스 영업장이다. 물론 서산의 동희오토처럼 큰 제조업 공장이 이슈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비정규직’이 워낙 급속히,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다보니 ‘현장’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사실상 사회 전체가 노동문제의 현장이 되어버렸다. <4천원 인생>은 ‘한집 걸러 비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  없는 집이 없는’ 2010년 한국의 현실을 생생히 업데이트해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과거 기자시절을 내내 반추할 수밖에 없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자생활의 절반을 ‘불안노동(precarious labor)’의 현장에 있었던 까닭이다. 그 현장은 벼랑으로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용역들과 피 흘리며 싸우는 현장이기도 하지만, 정규직 노조가 회사와 한편이 되어 비정규 노동자를 잘라내는 현장이기도 했다. 또한 말쑥하게 차려입은 자들이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할 법과 제도를 궁리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내가 ‘비정규노동’이라 하지 않고 굳이 ‘불안노동’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첫째,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구분만으로는 만성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오늘날의 노동자들의 처지를 총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불안노동의 전면화를 상징하는 신조어 ‘프리캐리어트(precarious+proletariat 불안노동자)’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데서 알 수 있듯이 비정규노동이라는 용어보다 불안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한국의 현실을 다른 사회에도 보다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불안노동’이라는 말이 물질적 처지 뿐 아니라 실존적 불안에 늘 시달리며 점점 황폐해지는 영혼의 상태까지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세계적 문제라고 해도 OECD 국가 중 한국만큼 이 문제가 심각한 국가는, 단언컨대 없다. “비정규직”이 시대적 화두가 된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성찰과 개선은커녕 갈수록 악화일로다. 특히 생애 첫 취업을 앞둔 20대, 고졸 이하 노동자, 여성, 장애인 등 가장 약한 집단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해왔고 여전히 희생당하고 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한국은 OECD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고 그중에서도 청년세대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나라가 됐다. 출산율 또한 세계최저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개혁정권 10년과 이명박 정부 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국가적 차원에서의 ‘희생양 만들기’였다.

그러나 이 책에 이런 식의 어렵고 추상적인 이야기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희생양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담담히 들려줄 뿐이다. 불안노동의 현장은 그야말로 사연의 바다, 그것도 기막히고 황당한 사연들의 거대한 바다다. 그 사연들을 통해 우리는 ‘희생양들’이 그저 어딘가에서 고생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객관화하다가도 때로 희화화하고, 때로 주체적으로 저항하지만 주류질서에 쉽게 굴복하기도 하는, 모순적이지만 뜨겁게 살아 숨 쉬는 인간임을 새삼스레 발견한다. 그리하여 책을 덮을 때에는 알게 될 테다. 노동의 막장에 내몰린 그/녀들만이 아니라 재벌과 가진 자들의 정부 앞에서 실은 우리 모두가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단지 상품을 구매하는 딱 그 순간에만 겨우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4천원 인생>은 노동자라면, 아니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한다. 하지만 읽고 끝내버려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경험을 공유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평불만을 시끄럽게 늘어놓으시라. 현실을 바꾸는 건 거기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