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ittered with. SexyDolphin

                         욕망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야
               진정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주제다
 
                                                                                            - 버드런트 러셀 -

 1.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유물론)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존재를 규정한단 말인가?


 개인 일기장에 휘갈겨도 그만일것을 왜 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원고료도 주지않는 공론장 따위에서 시덥잖은 잘난체를 하고 앉았는가?
 나아가,

 씹고뜯고맛보고즐겨봤자 다음날 아침이면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직행할걸 알면서도 왜 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손에 물묻혀가며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게 되는가?

 이러한 일상적인 질문들에 대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유물론은 그다지 쓸만한 논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똑같은 '존재' 로서의 인간들이라도 개인 일기장에 휘갈기고 말아버리는 족속이 있는가하면 나처럼,
                                                                꼭 공론장에 공언하여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기에 공론장에 입성한다는 '의식' 이 발생한다?
 이것은 필자가 가장 역겨움을 느껴 마지않는 엘리트적 교조주의와 맞물린다

 인간으로 존재하다보면 공론장에 입성할 수도 있고, 개인 일기장에 휘갈기고 말아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나 비단,
 이런 식으로 명제를 전개하라면 필자의 논리적 저급함을 유물론에 전가하는 찌질한 비겁함에 불과할 뿐이다



 과학적 방법론을 추구하는데 있어 유물론은 필시,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철학자원을 지원한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일상적인 질문들에 대해선 즉, 인문학적 질문들 앞에선 미련하게 멍청할 정도로 무력하다



 2. 존재는 욕망의 바로미터(baro-meter) 다
 
 존재를 규정하는 그 무엇을 '욕망' 이라 정의하는 계몽주의적 방법론으로 '욕망' 을 도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의 변화를 통해 그 변화의 추동요인이 '욕망' 이라 추적하는 방법론으로 '욕망' 을 도입한다 이는,

 물질의 엔탈피(H) 의 절댓값은 계량화할 수 없지만
              엔탈피(H) 의 델탓값(ΔH) 은 절대온도(kelvin temp.) 와 절대압력(pres.) 에 의존하는 2변수 함수체계 곧,

 ∂H=∂H(T, P) 로 계량화할 수 있음으로부터 analogy 를 시도하였다

 

 고등학교땐 노래만 불렀다
 2학년때가 절정이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은 언제나 풰밀리들과 학교뒷산 아지트로 노래부르러가는 시간이었으니

 수능치르는 그날 3일직전까지도 정신못차리고 노래만 불렀다
 시쳇말로 꼴좋게, 밑바닥이나 깔아준 잉여인간이 되었다. 수리영역이 5등급 씩이나 나왔으니 받아주는 곳이 없더라 정말로 ... ...

 대학을 가 대학(大學) 을 펼치길 '욕망' 하여 재수를 결심한건 아니었다 다만,
 학벌 자본을 '욕망' 하여 재수를 결심했다. 그것만이 앞으로도 노래할 명분을 지켜낼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1년동안 공부만 했다 그러나,
 대학을 가, 그토록 바라던 노래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3. 욕망이 존재의 변화를 규정한다

 여자들의, 남자들의 찌질한 추궁에 대한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라는 나르시시즘의 찌질함을 심히 공감한다
 이것이 바로, 욕망이 존재의 변화를 거쳐 마침내, 의식으로 표출되는 전형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노래' 를 욕망했었는지 나도 모른다 정말 모른다 아예 모른다
 이유야 달면 얼마든지 달겠다만 언제까지나 꿈보다 해몽이다

 종전의 포스팅들에서 '초개성' 이란 용어를 난잡하게 도입해왔는데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desire 로서의, 욕망의 협의적 용례가 불만족스런 차원에서의 기획이다

 

 배가 고프기에 빵을 욕망하는가? 착각의 넌센스다
 빵집 아가씨가 섹시해서 (배가 땡땡히 불러도) 빵을 욕망한다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욕망의 근원에 대한 해석은 이토록, 착각의 넌센스다
 이것이 바로, 초개성이다. 이유를 달자면 밑도끝도 없으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독재와 민주화의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독재는 욕망의 근원에 대해 기필코 '정답' 을 내리고야 만다

 권력 독점을 욕망한다 공언하면 도덕적 권위를 욕망하지 못하여, 국민으로부터의 비난은 철따라 땋노은 당상이니, 
 애꿎은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에 그 욕망의 근원을 뒤집어씌운다

 그러면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은 국민과 함께 1/n 로 배분될테니
 앗싸리~ 권력을 지켜내면서도 '선정의 도덕성' 까지 욕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민주화는 욕망 자체를 우주의 초개적 순리로 환원한다

 소유를 욕망하든,
 사유를 욕망하든,
 죽음을 욕망하든 니 꼴리는 대로다

 욕망의 거부할수 없는 무한한 경우의 수는, 우주의 초개적 순리이기에 다만,
 욕망 자체가 순리라면 곧, 욕망과 욕망 간에는 결코 '위계화' 가 성립될 수 없다 
 
위대한 우주가 사람 가려가며 욕망을 배분하겠는가? 
                                             곧, 만인평등사상이 민주화로부터 발산하는 '진보' 다

 민주화 세계에선 내가 하면 로맨스, 너가 하면 불륜을 외치는 자는 따라서, 
 자신의 욕망조차 보호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욕망에 대한 보호를 포기하는 것이다

 
 
4. 욕망의 초개성 - 유유상종, 자업자득

 정치인들은 아마 모를테다
 질질짜며 착한척, 여린척 그러다, 좀 까졌다 싶은 敵치인들을 비난/ 비판하면 국민들이 알아서

 '와~ 정의롭기 그지없네. 우리네도 저분을 닮아보세 으쌰으쌰' 그러나 실상은,
 '와~ 정의의 사도 납셨네. 어디 어디까지 망가지나 구경이나 해볼까?' 
 


 욕망의 근원은 도무지 알수 없더라도 최소, 무엇을 욕망하는지는 알수 있다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게 되어 그러나, 그 욕망의 근원이란 알수없음을 또한 알게 되면

 결코 분노하지 않게된다

 너나 나나 나나 너나
 초개적 욕망으로부터 규정된 非-초개적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우주가 선물하는 '내려놓음. 무소유' 다 또한,
 인신공격의 오류다

 cf) 춤출 무舞/ 트일 소疎/ you 유 : 너와 춤을 추며 나와 너가 트이다

 쟈는 벤츠를 욕망하고
 쟈는 남자의 통장잔고를 욕망하고
 쟈는 도덕성을 욕망하고

 아! 나는 이걸 욕망하고 너는 그걸 욕망하네? 그런가 보고 그런가 보다
 자! 분노할 일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만약, 아직도 분노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 간의 위계성/ 우월성까지도 욕망하려는 나르시시즘을 향한 또다른 욕망이다



5. 퇴보와 진보

 욕망을 존재의 변화로 희구하는 자유를 보호하는 역사 속에서만이 진보는 필연, 전진한다
 빈부격차/ 신분제도는 욕망의 위계화가 낳은 퇴보적 존재다

 진정, 모든 사람들이 부자와 귀족만을 욕망하는가?
 물론 그렇다고, 빈자와 천민을 욕망하진 않지만 또한, 부자와 귀족만을 욕망하는 것도 아니다

 빈부/ 귀천의 이분법적 지평과 동떨어진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여기고 저기다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은 욕망과 욕망 간의 위계화를 경계하여 독재를 지워내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욕망에 대해 이제그만 부끄러말고 당당히 표현하고 함께 이야기하여 너그럽게 감싸는 민주화에 대한 욕망이다

 그만 좀 싸우자
 보채지 않아도 언젠간 다 뒈지게 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