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을 언급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노동당 계열(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과 민주당 계열(민주당, 국민참여당)에 대한 이야기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그냥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라고 칭하겠다.

 

선거 때마다 한국 운동권에서 비판적 지지라는 말이 떠돈다. 주로 민족해방(NL)파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민주당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을 때 민주노동당에서 양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민주노동당에서도 출마하면 결국 진보적인 유권자의 표를 갉아먹어서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꼴이 되기 때문에 출마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당이 더 진보적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에서 포기하면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더 이득을 볼 것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즉 민주노동당에서도 같이 출마하면 한나라당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주장은 뻔한 진리로 보인다.

 

 

 

이런 주장에 대해 강경론자(후보가 출마해야 하며 사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에서)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거의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응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응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절에 비하면 그 차이가 줄어든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한 일을 보면 명백하다.

 

 

 

나는 강경론자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사실상 전혀 차이가 없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어느 정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며 그 차이가 미국의 민주당-공화당 사이의 차이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노동당이 출마하면 진보 진영에서 잃을 것이 있다는 점 즉 한나라당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출마하기를 바라며 민주노동당이 출마하면 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에 투표한다(물론 민주노동당이 출마하지 않았는데 진보신당이나 사회당이 출마하면 그 당에 투표할 것이다). 나는 한나라당이 당선되는 것보다 민주당이 당선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계속 출마하길 바란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나라당 당선 저지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당선 가능성이 없을 때마다 다른 당에 양보하는 당은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진지한 당으로 인정 받기 어렵다. 자기 스스로 정권을 잡아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자기 편에 가까운 쪽에 꼽사리 껴서 거드는 정도에 만족하는 정당으로 유권자들이 얕잡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유권자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당의 인기가 높아지더라도 더디게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둘째, 그런 식으로 양보하면 구심력 있는 당이 되기 힘들다. 당원들이 힘이 빠진다. 기껏 선거 운동 하려고 모였는데 이번에는 민주당에 양보하기 위해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면 사기가 얼마나 저하되겠는가? 기껏 출마해서 선거 운동을 했는데 민주당에 양보하기 위해 도중에 사퇴한다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첫째 요인과 둘째 요인이 결합되면 좌파 정당의 발전이 어떻게 지지부진해지는지를 20세기 미국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촘스키처럼 상당히 과격한 좌파도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을 찍으라고 호소한다고 한다. 당선 여부만 따진다면 민주노동당에 던진 표는 사표(죽은 표)가 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까지 고려하면 완전히 죽은 표라고 보기는 힘들다.

 

셋째, 이미 민주당은 한국에서 정권을 두 번이나 잡은 적이 있다. 10년 동안 운동권은 민주당 계열 정권과 맞서서 상당히 적대적으로 싸워온 전력이 있다. 그 이유는 두 정권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잡아서 추방했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강력하게 억압했으며, 특히 조직력이 약해서 만만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강력하게 억압했으며, 미국이 이끈 전쟁에 참전하는 등 좌파의 입장에서는 아주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정당에 투표하는 일이 상당히 꺼림칙하다. 왜냐하면 민주당에 투표하는 행위는 한나라당을 막자는 취지를 떠올리게 하기 전에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의미를 일차적으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좌파는 민주당 같은 정당에 절대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히틀러, 스탈린, 일성 정권 같은 무지막지한 독재 체제를 당장 만들려고 하는 세력이 당선될 위험이 있다면 나는 눈 꼭 감고 민주당을 찍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과 거리가 너무나 멀다.

 

 

 

2010-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