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김준엽의 <장정> 5권을 읽고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차마 읽을 수 없던 책들이 좀 있어서 전역 후에는 그동안 사놓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고 있는데,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죠. 이 책을 읽으면서 이범석 이야기가 나와서 새삼 이범석이란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이범석 생각’이듯이 이범석에 대해 아주 정확한 팩트를 가지고 쓴 글이 아니라, 몇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추측하는 글이니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지적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지나친 비판은 가슴 아픕니다.[…]

 

 철기 이범석. 광복군 2지대 사령관. 해방 후에 조선민족청년단을 이끌고, 초대 국무총리 및 국방부장관을 지낸 사람. 써놓고 보니 정말 화려한 경력이군요. 솔직히 말하면, 역사에 관심은 있어도 그렇게 깊게 알고 있지는 못한 터라 이범석이란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건 고2땐가 고3땐가 그랬습니다. 그때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읽으며 이범석이란 사람을 알게 됐죠.

 

 임정은 일종의 연합정부였기 때문에 사실 내부의 정파 갈등이 상당히 심했고, 장준하를 비롯한, 일본군에서 탈영해 광복군으로 넘어온 청년들은 그런 임정의 현실에 크게 실망하고, 또 분노하죠. 그런 그들 앞에 이범석이 나타나 ‘국내진공작전에 지원할 청년들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던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제안이었겠죠. 당연히 그들에게 있어 이범석은 아주 큰 존재로 부각됐을 겁니다.

 물론 국내진공작전은 실행되기도 전에,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인해 광복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면서 좌절되고 말지만…어쨌든, 사실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의 이범석은 꽤나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해방 후에 이범석이 보인 행각이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범석은 꽤나 정치적 감각이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진공작전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장준하를 ‘해방 후에 쓸 인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국내진공작전에서 빼려는 시도를 했던 것도 그렇고, 분명히 출신상 임정 쪽에 가까운 인물인데 해방 후에 이승만 쪽에 붙었던 것도 그렇고 나름대로 정치적인 감각이 있었던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하긴 임정에 있었는데 이승만에게 붙었던 건 신익희도 이범석 못지 않았던 듯 싶지만.-

 어찌 됐든, 이범석은 해방 후에 ‘국가지상, 민족지상’을 구호로 내건 우익청년단체 조선민족청년단(이하 족청)을 조직합니다. 족청은 나중에, 요새말로 하면 최대 규모의 NGO로 성장하게 되는 커다란 집단이죠. 해방 정국에서는, 제주 4․3사건 당시 강경한 진압으로 유명한 서북청년단을 비롯해 여러 청년단체들이 선봉대 역할을 했는데 이범석의 족청은 유일하게 미군정의 자금지원을 받는 단체기도 했죠.

 이범석은 이런 족청의 힘을 바탕으로 해서 입지를 차근차근 굳힙니다. 초대 국무총리 및 국방부장관을 지낸 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국무총리였다고 해도, 부통령도 허수아비였던 마당에 그에게 얼마나 실권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처음에는 그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몰라도 후에는 미국에서도 이승만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인물로 거론되죠. 부산정치파동에서도 내무부장관으로서 맹활약을 하게 됩니다.

 

 7월 4일, 부산의 피난 국회의사당은 내무부장관 이범석의 밀명을 받은 경찰관들에 의해 포위되고 그 주위를 다시 정체불명의 폭력 시위대가 살벌할 정도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겹겹이 에워쌌다. 자신이 초대 국무총리로 있을 때 외무부장관으로 있던 장택상이 국무총리가 되고 그 밑에 내무부장관으로 들어가는 수모도 불사하고 어떻게든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가 야망을 달성하려고 이성을 잃은 이범석의 눈에는 이승만에 대한 장택상과의 충성 경쟁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박경수, <장준하-민족주의자의 길> 253p 중에서

 

 이런 식으로 이승만에게 충성을 바치며 화려한 시절을 보내던 그는, 결국 이승만에게 배신을 당하게 됩니다. 1952년 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범석은 족청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해서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었으나 이승만의 배신으로 인해 엉뚱한 함태영이 부통령에 당선되고, 이범석은 낙선의 쓴잔을 마시게 되죠. 그리고 1953년 이승만이 ‘특별담화’를 통해 족청계를 숙청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이범석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나름대로 족청도 나름대로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집단인 만큼 반격을 꾀해본 듯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범석이 몰락한 뒤 이승만은 자기 자리를 넘볼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기붕을 2인자의 위치로 끌어들이게 되죠.

 

 위키백과 사전에 따르면, 그후에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고, 윤보선 유진오 백낙준과 4자 회담을 통해 통합야당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했다는군요. 1960년에 족청계 인사들과 함께 군사정변을 모의했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의외였긴 한데, 그때야 워낙 사회가 혼란스럽고 쿠데타를 계획한 사람들이 많았던 때니까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아마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쿠데타가 일어나긴 했을 거라 봅니다.

 

 사실 그런 이유로 저는 이범석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그는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판단하지만, 해방 후에 정치에 뛰어들면서 변절하고, 타락했다…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타락한 독립운동가의 표상’이랄까요. 한편으론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범석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김준엽의 <장정>을 보니 이범석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오는군요.

 

 그는 험구로서 웬만해서는 남을 존경하지 않고, 임시정부의 요인들에 대해서도 바보니 주정뱅이니 쥐새끼니 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하였지마는 신규식과 김좌진에 대해서만은 말이 모자라서 칭찬을 다 못한다는 태도였다.…말하자면 그는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구별이 심했다고 할 수 있다.…

 철기는 문무를 겸한 인물로서 틈만 있으면 독서를 하였는데 주로 전사에 관한 책이었고, 군략가로서의 나폴레옹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그는 사격과 승마․수렵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방면에 관한 전문가의 지식과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고 붓글씨도 훌륭했으며 어학 재간도 뛰어나 중국어․러시아어․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런데다 OSS와 합작한 다음부터는 또 영어공부에 열중하였다. 그는 술, 담배와 차를 남달리 즐겼으며 중국 요리 만드는 솜씨도 일류였다. 그 솜씨는 그가 때때로 만주나 외몽고에서 왜놈들의 추적을 피하면서 혼자 은닉 수렵생활을 하는 동안에 익힌 것이었다.

 …그는 험악한 고투의 생활을 하는 동안에 우연하게 만난 여성들과의 로맨스를 하나도 감추지 않고 모두 나에게 말해주었다.…그때 나는 철기의 일생이야말로 전쟁(war)과 술(wine)과 여인(woman)으로 수놓은 3w의 전형으로 느꼈다. 그런 동안에 나는 인간으로서의 철기에 날이 갈수록 매료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김준엽, <장정> 171p~173p

 

 이 부분을 보면서 이범석은 아주 다재다능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인간적으로는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감이 넘쳐도 될 정도로 충분히 유능해보이기도 하고.

 특히 붓글씨는, 당대에 손꼽히는 수준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승만이 사망했을 때 영구를 덮을 명정을 쓸 사람으로 지목된 걸 보면...생각해보면 이완용도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죠. 아마 일본 천황이 글씨를 보내달라고 했던가...
 옛날 선조들은 '신언서판'이라 해서 글씨가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로 여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완용이나 이범석을 보면 정말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이런 사람이 그렇게 변절해서 이승만 독재정권의 하수인이 됐다는 게 더 슬퍼집니다. 아니, 설령 정부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해서 신생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더라도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지…의문이군요.

 

 

ps 1. 김준엽 씨는, 광복군의 일원으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대 총장을 지내고, 정권에 의해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됐을 때 총장 퇴진 반대 시위가 일어난 걸로 유명한 분입니다. 1987년 대선 당시에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 3인에게 동시에 국무총리 영입교섭을 받았다는군요. 뭐, 이런 어처구니없이 대단한;;;

 

ps 2. 이승만은 자기 정적이 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정말로 견제가 좀 ‘쩔었던’ 듯 싶습니다. 초대 내각 구성에서 한민당을 완전히 배제한 것도 그렇고, 조봉암도 진보당 사건으로 완전히 날려버리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권력은 없나 봅니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