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사상 유례없는 졸필을 보게 되실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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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구에 비행접시가 떨어졌고 이로부터 외계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지구 역사상 유례가 없던 대사건이었으며, 최초로 외계인의 존재가 입증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지구인의 외계인에 대한 호기심 이상으로, 이 외계인은 지구에 대한 호기심이 강렬했다. 그는 우주 여행중에 우연히 불시착했거나, 차원 이동 제어 장치에 오류가 생겨 흘러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또한 숱한 SF영화가 묘사하는 것처럼, 지구를 정복하기 위한 전초 단계로 여행선을 런칭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꾸준한 관찰과 연구를 통해 지구에 지적 생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규명한 이후, 또다시 오랜 기간 동안 치밀한 계획을 작성하여 마침내 지구까지 다다르게 된 것이다.
아무튼, 한 명의 행성간 대사격(?)인 이 외계인은, 지구인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지구의 역사와 문화, 지구인의 과학 체계를 접하고, 호기심어린 눈망울로 지구인의 지식을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외계인은 다시 고향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정중히 '지구인 방식'으로 악수를 나눈 그는, 자신의 연구가 모종의 결실을 맺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며 작은 금속 막대를 하나 꺼내들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지구인들이 물었다. 외계인은 미소를 지으며(외계인이 어떻게 웃는지는 솔직히 상상을 해 보지 못했다) 말했다. '이것은 당신들이 내게 알려준 모든 지식이 담긴 자료입니다'
지구인들은 놀랐다. 과연 외계인은 어느 수준의 집적도를 가진 저장 매체를 가지고 있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저 조그만 막대에 담을 수 있냐고... 외계인은 대답했다.
'우선, 나는 당신들의 모든 지식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이를 정수로 변환하였습니다. 다시, 나는 이 정수를 서로 소 관계인 두 정수 a, b(단 a<b)로 나누었구요. 마지막으로 이 막대의 길이를 1이라고 가정했을 때, 정확히 a/b가 되는 지점에 금을 그어 표시를 해 둡니다. 내가 고향 별로 가서 이 막대를 판독 장치에 밀어넣으면, 판독 장치를 금새 모든 지식을 우리의 언어로 해석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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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토막은, 제가 중학교 시절 읽었던 '이야기 패러독스'의 한 대목을 제 멋대로 각색한 내용입니다.
원자의 최소 크기라던가, 기타 판독 장치의 정확성 따위는 집어치우고, 수학적으로 외계인이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이 방식은 완벽히 암호화-복호화가 가능한 함수이며, 그 원리도 무척 간단합니다.
이야기 패러독스는 중-고등학생 정도의 논리력을 가진 학생이 읽기에 말랑말랑하고 재미있는 토픽이 많은 좋은 책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이 장에는 더 엽기적인 저장 방법도 나옵니다.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를 단 두 개의 상수만으로 정의해 버리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가상의 머신 M은 기억 장치 속에 파이(π)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혹은 순식간의 속도로 파이를 계산하는 기계일 수도 있구요....
아무튼 파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수의 배치를 갖는 구간이 반드시 하나 이상 존재한다고 합니다. 200만자리 언저리였나... 에서는 7이 연속적으로 7개 발견되는 구간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지식 체계가 문자열 텍스트라면, 이를 정수로 변환하는 작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정수로 변환이 되었다면, 파이 속에서 그 숫자에 해당하는 구간을 찾아서 시작점과 끝점만 기록하면 되는 것입니다. 데이터를 재생할 때는 시작 구간으로 달려가 끝 구간까지의 숫자만 읽어서 다시 문자로 변환하면 됩니다. 참 쉽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러한 저장 방식을 채택하는 저장 매체나 기계에 대해서 실제로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아니, 어떤 이는 제가 애석해하는 사실 자체를 가지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언젠가는....'이란 조건을 달아도 이런 비웃음이 멈추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강하게 구속되어 있는 물리 세계의 법칙이 현실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덕하님 글에 대한 댓글에서 여러번 언급하였듯이, 제가 튜링-머신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하고 있다고 자신은 못 합니다. 저는 튜링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몇몇 분들보다 더 저열한 이해를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소극적 AI를 응용한 주제로 졸업 논문을 쓴 학부생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제가 만든 과제는, 경험에 의한 학습으로 특정 파일의 확장자를 추론해내는 엔진이었습니다.)
하지만 튜링 머신이 수학적으로는 이상적인 기계일지언정, 물리적/공학적으로 구현 불가능한 레벨의 기계라는 믿음은 굳건합니다.
아까 소개한 '외계인 데이터 저장법'이 실제로 구현되기 전까지는, 튜링 머신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인 '무한한 state'마저도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인간의 뇌가 튜링 기계임이 입증되는 순간이, 유물론의 대부분을 깨끗이 포기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가 무한한 state를 유한한 공간 안에서 구현하는 존재라면, 그야말로 초월적이거나 비과학적인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비결정적 튜링 기계가 결정적 튜링 기계로 대치될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의 두개골 안에 들어있는 사과 남짓 크기의 신경 조직은 어떻게 해서 CPU와 같은 결정적, 제한적 튜링 기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속도를 가지는가?
저 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가 튜링 기계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 중 일부는 이러한 모순점 때문에라도 감정적으로 인간의 뇌가 튜링 기계가 아닐 것임을 추측하고 있을 것이라 감히 짐작해 봅니다.
물론, 지능은 초월적인 신이 준 것이라 기계가 절대 흉내낼 수 없다는 주장도 여전히 있으며, 각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중에서 그 비율은 훨씬 더 높을 것입니다. 하지만 덕하님이 여러 번 강조하셨듯, 이들은 '링 밖에 있는' 존재입니다. 현재의 담론에서 링 밖에 있는 주장들까지 끌어들여서 면박을 주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이론상의 문제와 실용화의 문제는 다른 담론이다... 라고 덕하님은 주장하고 계십니다.
저 또한 이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수학적 이론과는 별도로, 물리학적 이론이 곧 '실용화'인 것도 아니며,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종종 공돌이들은 이 수학적 이론과 물리학적 이론, 공학적 이론과 실용적 분야를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에 따라서 덕하님과의 담론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어줍짢은 설명으로 혼동을 가중시키지 않았나... 라는 책임 의식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덕하님 이하 여러 분들이 소개한 방법론 중에서, 결국 '무한'이 개입되지 않고 해결 가능한 모델링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실용적 담론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유한한 수의 계산에 의해 모델링이 가능한 기제가 하나도 설명되지 않은 가운데 단순히 수학적 관념을 대입하여 AI 구현이 가능하네 마네 하는 것은, 분석적이라기보다는 감상적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반대로 수학적으로 거짓임이 입증되는 경우는, 물리학 레벨이고 자시고 따질 것도 없겠죠.
하지만 인간의 뇌가 튜링 기계가 아니라는 명제가 참임을 가정할 때, 튜링 기계로 인간의 뇌를 따라잡을 수 없음이 진화론이나 유물론을 공격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컴의 면도날로, 인간의 뇌가 튜링 기계일 것이라는 추측을 제거하겠습니다. 그 쪽이 설명이 쉬우니까요.
아무튼 요는, 근래의 담론에서 예시되었던 그러한 모델링으로부터 탈피하는 것, 그리고 뇌의 작동 기제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이 가능한 데서 강한 인공지능이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데 제 믿음을 걸겠습니다.
무어의 법칙이나, 딥 블루가 체스로 인간 챔피언을 이기는 것은 강한 AI로 발돋음하는 한 단편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뇌가 튜링 기계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유보하겠습니다.
모르는 걸 안다고 우기면 그것은 사기니까요 (다시 말해, 저도 모릅니다 -_-;;)

끗. 허접한 졸필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정)2010년 4월 25일 오후 1시 26분에 서툰 표현 하나를 수정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