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님이 최근 '우생학이 나쁜 것인가' http://acro.pe.kr/zbxe/?document_srl=15076 에 대한 제목으로 포스팅을 해주셨는데요. 이 포스팅이 과학의 가치 중립성과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관련하여 여러 생각해 볼 거리를 마련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사회자팀은 이 테마에 대한 논의의 폭과 깊이를 더 확장시켜 보자는 의미에서 김우재님의 포스팅을 근거로 따름 토론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먼저 김우재님의 견해의 첫 단초는 다음과 같이 정리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레닌과 엥겔스, 즉 사회주의 진영의 논리에 따르면, 과학의 가치 중립성 자체가 부르주아적 관념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의 본질에 대한 레닌과 엥겔스의 오해일 뿐이다.


과학의 가치 중립성 테제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은 어떻게 보면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혁 시키는 것이 철학자, 즉 과학자들의 임무'라고 한 맑스의 언급과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즉, 현실의 변혁과 개선을 위한 수단이 과학이라고 한다면, 바꾸어 말해 현실의 변혁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그것에 무능한 과학은 '부르주아 과학'으로서 배척되어야 합니다.

우선 여기에는 리센코 주의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리센코는 1920년대 자신의 새로운 재배 농법으로 소련 농생명공학계에 지도적인 인사로 등장한 빈농 출신의 소련의 관제 농경제학자, 농업학자 였으며, 철저한 스탈린주의자습니다. 리센코는 1926년에 1850년대부터 이미 알려져 있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던 밀 재배 방법을 자신이 개발한 것인 양 포장하여, 자신의 개량 농법으로 인해 밀 수확량이 종래의 두 세배 이상 증가하였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집단 농장화 정책으로 인한 식량 생산량의 심각한 저하와 민중들의 극심한 기근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던 소련 당국은 리센코를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스타 과학자로 선전하기에 이릅니다. 리센코는 당시 모건의 초파리 연구로 혁신적인 발전의 시기를 맞고 있었던 유전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초파리에만 관심을 가진 부르주아 사이비 과학자들'이라고 맹렬히 비난하게 됩니다. 우생학은 나찌 독일의 민족 우월주의 정책의 과학적인 기반을 마련해 주는 학문이었고, '유전자라는 고정된 인자가 인간의 본성을 결정한다'는 사상이 '물질적, 경제적 조건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 역시 바뀔 수 있다'는 사회주의 사상과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유전학은 스탈린 지배하의 소련의 교조적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됩니다. 1936년에서 1940년 사이에, 리센코의 부추김에 의해서 소련의 수많은 지도적인 유전학자들이 처형 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러나 김우재님은 레닌과 엥겔스의 과학의 가치 중립성 테제 비판을 다시 비판하면서, 과학의 가치 중립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 과학(자들)이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수단(주체)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지만, 그들(즉 레닌과 엥겔스)은 그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김우재님은 나아가 자연 과학이 이데올로기적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 과학의 발견물이 아닌, 자연과학의 방법론에 대한 분석과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2) 자연과학은 이데올로기적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에 대한 분석과 적용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사실 매우 논쟁적이면서, 매우 흥미로운 주장입니다. 김우재님은 자연과학의 가치 중립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자연과학이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특정 이데올로기의 실현에 기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시는 것 같습니다. 김우재님은 우생학과 리센코 주의, 그리고 원자폭탄 제조의 시발점이 되었던 맨하탄 계획을 예로 들면서, 이 세 가지가 자연과학자들이 '자연 과학의 가치 중립성'이라는 테제로 움츠러 들게 만든 원인이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이 세 가지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자연과학의 결과물들이 남용거나 특정 자연 과학 자체가 탄압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편으로 자연 과학을 정치적인 탄압으로부터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으로부터의 면제를 가능케 하는 교리로 이해된 '자연 과학의 가치 중립성 테제는 자연과학자들에게 자신의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이론적 근거로 종종 원용되어 왔습니다. 이렇게 이해된 자연 과학의 가치 중립성 테제에 따르면, 예를 들어 '오펜 하이머나 엔리코 페르미, 그리고 나아가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서 원폭으로 희생된 수만명의 일본 국민의 희생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독일의 희곡 작가인 뒤렌마트의 '물리학자들'이라는 희곡에는 끊임없는 과학적인 호기심으로 인해 인류 전체에 재앙을 끼칠 수도 있는 위험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한 물리학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복제양 돌리를 만든 영국의 월마트 박사나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만약 과학적인 진실성의 토대하에 지금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그 사례들을 통해 새로운 과학 기술을 발견하고 진전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은, 인류의 미래의 가능성에 잠재적인 해악을 가져올지, 기여를 가져올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연구들에 대해 어떤 사회적 책임도 지지 않는가라는, 근본적으로 철학적인 의문이 제기됩니다.

3) 과학적 발견물이 사회에 함부로 적용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사람은 바보다. 과학적인 발견물은 사회에 적용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 문제는 과학적 발견물을 사회에 적용하는 방식인데, 이것은 과학적 방법론에 익숙한 과학자들에 의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과학자들은 과학적 발견물의 적용 방법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전문가로서 발언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더 이상 과학적 방법론의 가치 중립 테제에 따라 과학의 적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이 문제는 과학적 방법론의 가치 중립성과, 과학적 발견물을 사회에 적용하는 방법, 그리고 그 두 가지에 대한 과학자의 입장과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의 파악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의 원폭 투하의 희생자들에 대해, 원폭 투하의 명령을 수행한 B29의 조종사가 희생자들에 대해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처럼, 오펜 하이머와 페르미, 그리고 아인슈타인 역시도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가 (혹은, 원폭 제조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원폭 투하에 참여한 조종사와 본질적으로 같은 수준의 책임만 지는 것인가) ? 만약 과학적 방법론의 가치 중립성 테제를 받아들인다면, 가치 중립적인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과학적 발견물의 사회적인 사용에 대한 해악과 부작용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는 면제되는 것인가?

ii) 김우재님의 주장대로, 과학적 발견물의 사회적 사용에 대해서 과학적 방법론에 능통한 과학자들이 주도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과학적 방법론의 가치 중립성 테제와는 과연 양립하지 않는 것인가? 그와 반대로, 과학적 방법론의 가치 중립성을 받아들이는 과학자는, 논리 필연적으로 과학적 발견물의 사회적 사용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는 것인가? 

이 두 가지 문제 의식에 대해 회원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김우재님은  사회자팀이 김우재님의 견해를 오해한 부분이나, 이해가 부족한 부분, 더 첨가되어야 할 부분을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주장 중 더 해명될 필요가 있어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