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어딘가에 파묻혀 있던 번역글입니다. 파묻혀 있기에는 아깝죠..^^


http://www.lrb.co.uk/webonly/14/11/2008/zize01_.html


Use Your Illusions

Slavoj Žižek

 

Noam Chomsky called for people to vote for Obama ‘without illusions’. I fully share Chomsky’s doubts about the real consequences of Obama’s victory: from a pragmatic perspective, it is quite possible that Obama will make only some minor improvements, turning out to be ‘Bush with a human face’. He will pursue the same basic policies in a more attractive way and thus effectively strengthen the US hegemony, damaged by the catastrophe of the Bush years.

 

노암 촘스키는 사람들에게 '환상 없이' 오바마에게 투표하라고 요청했다. 나는 오바마의 승리의 현실적 귀결에 관한 촘스키의 의심을 전적으로 공유한다: 실용적 관점에서 볼 때, 오바마는 '인간의 얼굴을 한 부시'로 드러나면서 약간의 사소한 개선만을 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동일한 기본적 정책들을 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추구할 것이고 따라서 효과적으로 부시 시절의 재난들에 의해 손상된 미국의 헤게모니를 강화할 것이다. 

 

There is nonetheless something deeply wrong with this reaction – a key dimension is missing from it. Obama’s victory is not just another shift in the eternal parliamentary struggle for a majority, with all the pragmatic calculations and manipulations that involves. It is a sign of something more. This is why an American friend of mine, a hardened leftist with no illusions, cried when the news came of Obama’s victory. Whatever our doubts, for that moment each of us was free and participating in the universal freedom of humanity.

 

그렇지만 이 반응에는 깊숙히 잘못된 어떤 것이 있다 - 그것에는 하나의 핵심적 차원이 결여되어 있다. 오바마의 승리는, 수반되는 모든 실용적 계산들 및 조작들과 더불어, 다수가 되기 위한 영원한 의회 투쟁에서 또 한번의 전환점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 이상의 어떤 것의 신호이다. 이것은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은, 강경 좌파인 내 미국인 친구가 오바마의 승리 소식에 함성을 내질렀던 이유이다. 우리의 의심이 무엇이든, 그 순간 우리 각자는 자유로웠으며 인류의 보편적 자유에 참여하고 있었다.

 

In The Contest of Faculties, Kant asked a simple but difficult question: is there true progress in history? (He meant ethical progress, not just material development.) He concluded that progress cannot be proven, but we can discern signs which indicate that progress is possible. The French Revolution was such a sign, pointing towards the possibility of freedom: the previously unthinkable happened, a whole people fearlessly asserted their freedom and equality. For Kant, even more important than the – often bloody – reality of what went on on the streets of Paris was the enthusiasm that the events in France gave rise to in the eyes of sympathetic observers all around Europe and in places as far away as Haiti, where it triggered another world-historical event: the first revolt by black slaves. Arguably the most sublime moment of the French Revolution occurred when the delegation from Haiti, led by Toussaint l’Ouverture, visited Paris and were enthusiastically received at the Popular Assembly as equals among equals.

 

<능력들의 경연>에서 칸트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역사는 진정 진보하는가? (그는 한갓된 물질적 발전이 아니라 윤리적 진보를 의미했다.) 그는 진보는 증명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진보가 가능하다는 신호들을 식별할 수 있다고결론내렸다. 프랑스 혁명은 그러한 신호, 자유의 가능성의 시사였다: 예전에는 생각할수도 없던 일이 일어났다. 전체 민중이 두려움없이 그들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다. 칸트에게서, 파리의 거리에서 진행되었던 것의 - 종종 유혈적인 - 현실보다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은 프랑스에서의 사건들이 유럽 전체와 아이티같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조차 공감적 관망자들의 눈에 야기시켰던 열광이었다. 아이티에서 그것은 또 하나의 세계사적 사건을 촉발했다: 흑인 노예들에 의한 첫번째 반란. 아마 프랑스 혁명의 가장 숭고한 순간은 투생 오버츄어가 이끈 아이티 대표단이 파리를 방문해 인민의회에서 평등한자들 중의 평등한 자들로서 열광적으로 환영받았을 때 일 것이다.

 

Obama’s victory is a sign of history in the triple Kantian sense of signum rememorativum, demonstrativum, prognosticum. A sign in which the memory of the long past of slavery and the struggle for its abolition reverberates; an event which now demonstrates a change; a hope for future achievements. The scepticism displayed behind closed doors even by many worried progressives – what if, in the privacy of the voting booth, the publicly disavowed racism will re-emerge? – was proved wrong. One of the interesting things about Henry Kissinger, the ultimate cynical Realpolitiker, is how utterly wrong most of his predictions were. When news reached the West of the 1991 anti-Gorbachev military coup, for example, Kissinger immediately accepted the new regime as a fact. It collapsed ignominiously three days later. The paradigmatic cynic tells you confidentially: ‘But don’t you see that it is all really about money/power/sex, that professions of principle or value are just empty phrases which count for nothing?’ What the cynics don’t see is their own naivety, the naivety of their cynical wisdom which ignores the power of illusions.

 

오바마의 승리는 기억함, 입증함, 예언함이라는 삼중적인 칸트적 의미에서 역사의 신호이다: 노예제라는 먼 과거의 기억과 그것의 폐지를 위한 투쟁이 반향하는 신호이다.현재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미래의 성취에 대한 희망이다. 많은 노심초사하는 진보주의자들조차도 닫힌 문 뒤에서 내비쳤던 회의 - 투표실이라는 사적 공간 속에서 공식적으로 부인된 인종주의가 재출현하면 어쩌나 하는 회의 - 는 틀렸던것으로 증명되었다. 궁극의 냉소적 현실정치가인 헨리 키신저의 흥미로운 점들 중 하나는 그의 예측들 대부분이 전적으로 틀렸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1년의 반 고르바초프 군사 쿠데타 소식이 서구에 도달했을 때, 키신저는 즉각 새 체제를 하나의 사실로 승인했다. 그것은 3일 후 굴욕적으로 붕괴했다. 그 전범적인 냉소주의자는 당신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모든 것이 돈/권력/섹스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원칙이나 가치의 공언들은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계산되는 공염불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냉소주의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소박함, 환상의 힘을 무시하는 그들의 냉소적 지혜의 소박함이다.     

 

The reason Obama’s victory generated such enthusiasm is not only that, against all odds, it really happened: it demonstrated the possibility of such a thing happening. The same goes for all great historical ruptures – think of the fall of the Berlin Wall. Although we all knew about the rotten inefficiency of the Communist regimes, we didn’t really believe that they would disintegrate – like Kissinger, we were all victims of cynical pragmatism. Obama’s victory was clearly predictable for at least two weeks before the election, but it was still experienced as a surprise.

 

오바마의 승리가 그러한 열광을 발생시켰던 이유는, 곤란을 무릅쓰고, 그것이 정말로 일어났다는 것 - 그것이 그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동일한 것이 모든 위대한 역사적 단절들에도 해당된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떠올려보라. 우리 모두는 공산주의 체제의 부패와 비효율성에 관해 잘 알고있었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그것들이 해체될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키신저처럼 우리는 모두 냉소적 실용주의의 희생자들이었다. 오바마의 승리는 분명 적어도 선거 이주전부터는 예측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하나의 놀라움으로 경험되었다.     

 

The true battle begins now, after the victory: the battle for what this victory will effectively mean, especially within the context of two other more ominous events: 9/11 and the current financial meltdown, an instance of history repeating itself, the first time as tragedy, the second as comedy. President Bush’s addresses to the American people after 9/11 and the financial meltdown sound like two versions of the same speech. Both times, he evoked the threat to the American way of life and the need for fast and decisive action. Both times, he called for the partial suspension of American values (guarantees to individual freedom, market capitalism) to save those very values. Where does this similarity come from?

 

진정한 전투는 승리한 후인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승리가 특히 두 개의 다른 불길한 편인 사건들의 맥락 내에서 결국 의미하게 될 것을 위한 전투 말이다: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자신을 반복하는 역사의 사례라고 할, 9/11과 목하 진행중인 금융폭락. 9/11과 금융폭락 후의 부시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은 동일한 연설문의 두 판본처럼 들린다. 두번 다, 그는 미국적 생활방식이 위협받고 있음과 신속하고 결정적인행동을 할 필요가 있음을 환기시켰다. 두번 다, 그는 바로 그 가치들을 구제하기 위한 미국적 가치들(개인 자유의 보장, 시장 자본주의)의 부분적 유보를 요청했다. 이 유사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The fall of the Berlin Wall on 9 November 1989 marked the beginning of the ‘happy 1990s’. According to Francis Fukuyama, liberal democracy had, in principle, won. The era is generally seen as having come to an end on 9/11. However, it seems that the utopia had to die twice: the collapse of the liberal-democratic political utopia on 9/11 did not affect the economic utopia of global market capitalism, which has now come to an end.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행복한 1990년대'의 시작을 알렸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는, 원칙상, 승리했다. 그 시기는 일반적으로 9/11과함께 종식된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그 유토피아는 두 번 죽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9/11로 인한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적 유토피아의 붕괴는 전지구적 시장 자본주의의 경제적 유토피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데, 그것은 이제 종식을 맞고 있다. 

 

The financial meltdown has made it impossible to ignore the blatant irrationality of global capitalism. In the fight against Aids, hunger, lack of water or global warming, we may recognise the urgency of the problem, but there is always time to reflect, to postpone decisions. The main conclusion of the meeting of world leaders in Bali to talk about climate change, hailed as a success, was that they would meet again in two years to continue the talks. But with the financial meltdown, the urgency was unconditional; a sum beyond imagination was immediately found. Saving endangered species, saving the planet from global warming, finding a cure for Aids, saving the starving children . . . All that can wait a bit, but ‘Save the banks!’ is an unconditional imperative which demands and gets immediate action. The panic was absolute. A transnational and non-partisan unity was immediately established, all grudges among world leaders momentarily forgotten in order to avert the catastrophe. (Incidentally, what the much-praised ‘bi-partisanship’ effectively means is that democratic procedures were de facto suspended.) The sublimely enormous sum of money was spent not for some clear ‘real’ task, but in order to ‘restore confidence’ in the markets – i.e. for reasons of belief. Do we need any more proof that Capital is the Real of our lives, the Real whose demands are more absolute than even the most pressing demands of our social and natural reality?

 

금융폭락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확연한 비합리성을 무시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에이즈, 기아, 용수 부족이나 전지구적 온난화에 맞서 싸울 때 우리는 문제의 위급함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언제나 곰곰히 생각해 볼 시간이, 결정을 미룰 시간이 있다. 기후변화에 관해 얘기하기 위한 발리에서의 세계 지도자들의 회합의 주요 결론은, 성공으로 규정되었는데, 얘기를 계속 하기 위해 2년 안에 다시 회합하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폭락의 경우에는 위급함은 무조건적이었다. 상상을 넘어서는 액수는 즉각 확보되었다. 멸종 위기에 빠진 종을 구하기,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에이즈 치료약을 발견하기,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 이 모든 것은 약간이나마 늑장을 부릴 수 있지만 '은행들을 구하라!'는 즉각적 행동을 요구하고 획득하는 무조건적 정언명령이다. 패닉은 절대적이었다. 초국적적이고 비당파적인 통일체가 즉각 결성되었다.세계 지도자들 사이의 모든 원한은 파국을 회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망각되었다.(그런데, 찬양되는 '초당파적 화합'이 결국 의미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절차가 사실상 유보되었다는 것이다.) 막대한 액수의 돈이 어떤 분명한 '현실적' 임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 즉 믿음을 이유로 해 - 쏟아부어졌다.자본이 우리 삶의 실재 (the Real)라는, 그것의 요구들이 우리의 사회적 및 자연적 현실의 가장 급박한 요구들보다 더 절대적인 실재라는 더 이상의 증거는 있을 수 없다.            

 

Compare the $700 billion spent on stabilising the banking system by the US alone to the $22 billion pledged by richer nations to help poorer nations cope with the food crisis, of which only $2.2 billion has been made available. The blame for the food crisis cannot be put on the usual suspects of corruption, inefficiency or state interventionism. Even Bill Clinton has acknowledged that 'we all blew it, including me,’ by treating food crops as commodities instead of a vital right of the world's poor. Clinton was very clear in blaming not individual states or governments, but the long-term Western policy imposed by the US and European Union and enacted by the World Bank, the IMF and other international institutions. African and Asian countries were pressured into dropping government subsidies for farmers, opening up the way for the best land to be used for more lucrative export crops. The result of such ‘structural adjustments’ was the integration of local agriculture into the global economy: crops were exported, farmers were thrown off their land and pushed into sweat-shops, and poorer countries had to rely more and more on imported food. In this way, they are kept in postcolonial dependence, vulnerable to market fluctuations – soaring grain prices (caused in part by the use of crops for biofuels) have meant starvation in countries from Haiti to Ethiopia.

 

미국 한 나라가 은행 시스템을 안정화하기 위해 쓴 7,000억불을 식량 위기에 대처하도록 빈곤한 나라들에게 부자 나라들 전체가 약속한, 그중 2.2억불만이 실제로 전달되었던, 22억불과 비교해 보라. 식량위기의 책임을 부패, 비효율성 또는 국가개입이라는 유주얼 서스펙트에 돌려서는 안된다. 빌 클린턴조차도 식용 농작물을 세계의 빈곤민들의 생존권 대신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에 의해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그것을 확대시켰다'고 인정했다. 클린턴은 개별국가들이나 정부들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에 의해 부과되고 세계은행, IMF 그리고 다른 국제 기구들에 의해 집행된 장기적인 서구적 정책을 탓한 점에서 매우 통찰력있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나라들은, 최적의 경지가 환금성이 더 큰 수출 농작물을 위해 이용되게 되는 길이 열리도록, 농민들에 대한정부보조금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러한 '구조조정'의 결과는 지역 농업의 전지구적 경제로의 통합이었다: 농작물은 수출되었고 농민들은 그들의 경작지에서 떼어내져 스웨트 샵으로 밀쳐졌다. 가난한 나라들은 점점 더 수입된 식량에 의존해야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포스트식민지적 종속에 처하게 되었다 - (부분적으로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데 곡물을 사용하는 것에 의해서도 야기된) 치솟는 곡물 가격은 아이티에서 이디오피아에 이르는 나라들에서는 아사를 의미했다.  

 

Clinton is right to say that ‘food is not a commodity like others. We should go back to a policy of maximum food self-sufficiency. It is crazy for us to think we can develop countries around the world without increasing their ability to feed themselves.’ There are at least two things to add here. First, developed Western countries have taken great care to maintain their own food self-sufficiency through financial support for their farmers (farm subsidies account for almost half of the entire EU budget). Second, the list of things which are not ‘commodities like others’ is much longer: apart from food (and defence, as all patriots are aware), there are water, energy, the environment, culture, education, health – who will make decisions about these, if they cannot be left to the market? It is here that the question of Communism has to be raised again.

 

클린턴이 '식량은 다른 것들처럼 하나의 상품이 아니다. 우리는 최대 식량자급 정책으로 복귀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 자신을 먹여 살릴 그들의 능력을 증대시키지 않은 채 세계 여러 나라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옳다. 여기에 적어도 두 가지가 덧붙여져야 한다. 첫째, 발전된 서구나라들은 그들의 농민들에 대한 금융보조를 통해 그들 자신의 식량자급을 유지하는데 대단히 신경써 왔다(농민 보조금은 전체 유럽연합 예산의 절반을 차지한다). 둘째, '다른 것들같은 상품들'이 아닌 것들의 목록은 훨씬 더 길다: 음식 (그리고 모든 애국자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국방) 외에도 용수, 에너지, 환경, 문화, 교육, 건강이 있다 - 시장에 맡겨질 수 없다면 누가 이것들에 관한 결정들을 내릴 것인가? 공산주의의 문제가 다시제기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이다.

 

The cover story in Time magazine on 5 June 2006 was ‘The Deadliest War in the World’ – a detailed account of the political violence that has killed four million people in Congo over the last decade. None of the usual humanitarian uproar followed, just a couple of readers’ letters. Time picked the wrong victim: it should have stuck to Muslim women or Tibetan monks. The death of a Palestinian child, not to mention an Israeli or an American, is worth thousands more column inches than the death of a nameless Congolese. Why? On 30 October, Associated Press reported that Laurent Nkunda, the rebel general besieging Congo's eastern provincial capital Goma, has said he wants direct talks with the government about his objections to a billion-dollar deal giving China access to the country's vast mineral riches in exchange for a railway and highway. Neo-colonialist problems aside, this deal poses a vital threat to the interests of local warlords, since it would create the infrastructural base for the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as a functioning united state.

 

2006년 6월 5일자 타임 매거진의 커버 스토리는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쟁' 이었다. 그것은 지난 10여년간 콩고에서 4백만명을 죽게했던 정치적 폭력에 대한 상세한 기사였다. 아무런 통상적인 인도주의 소동도 뒤따르지 않았다. 단지 몇명의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왔을 뿐이다. 타임은 희생자를 잘못 골랐다: 타임은 무슬림 여성들이나 티베트 승려들에 매달려야 했다. 한 이스라엘인이나 미국인은 물론이고 한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죽음도 이름없는 한 콩고인의 죽음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기사거리이다. 왜 그럴까? 10월 30일 연합통신은 콩고의 동부 지역 수도 고마를 포위하고 있는 반군 장군 로렌트 느쿤다가 철도와 고속도로를 대가로 받고 콩고의 막대한 광물 보고에 대한 접근권을 중국에게 주는 1억불 상당의 거래에 대한 그의 반대와 관련해 정부와 직접 얘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신식민주의 문제들은 차치하고라도, 이 거래는 지역 군벌들에게 치명적 위협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잘 기능하는 통일국가로서의 콩고 민주공화국을 위한 하부구조적 토대를 창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In 2001, a UN investigation into the illegal exploitation of natural resources in Congo found that the conflict in the country is mainly about access to, control of and trade in five key minerals: coltan, diamonds, copper, cobalt and gold. According to this investigation, the exploitation of Congo's natural resources by local warlords and foreign armies was ‘systematic and systemic’. Rwanda's army made at least $250 million in 18 months by selling coltan, which is used in cellphones and laptops. The report concluded that the permanent civil war and disintegration of Congo ‘has created a “win-win” situation for all belligerents. The only loser in this huge business venture is the Congolese people.’ Beneath the façade of ethnic warfare, we thus discern the contours of global capitalism.

 

2001년, 콩고에서의 불법적인 자연자원 개발에 대한 한 UN 조사는 콩고에서의 갈등이 주로 다섯 가지의 핵심 광물들에로의 접근권, 그 광물들의 거래, 그 광물들의 통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콜탄,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그리고 금. 이 조사에 따르면, 지역 군벌들과 외국군대에 의한 콩고의 자연자원 개발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다. 르완다 군은 18개월 동안 휴대폰과 랩톱에 사용되는 콜탄을 판매하는 것에 의해 적어도 2.5억불을 벌었다.보고서는 콩고의 영구적인 내전과 해체상태는 '모든교전 당사자들을 위해 "윈-윈" 상황을 창출했다. 이 거대한 비즈니스 벤처에서 유일한패자는 콩고 민중이다'라고 결론내렸다. 따라서 우리는 종족 분쟁의 이면에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윤곽을 식별하게 된다.  

 

Among the greatest exploiters are Rwandan Tutsis, the victims of the genocide 14 years ago. Earlier this year, the Rwandan government published documents that demonstrated the Mitterrand administration’s complicity in the genocide: France supported the Hutu plan for the takeover, even supplying them with arms, in order to regain influence at the expense of the anglophone Tutsis. France’s outright dismissal of the accusations as totally unfounded was, to say the least, itself unfounded. Bringing Mitterrand to the Hague tribunal, even posthumously, would cross a fateful line, for the first time bringing to trial a leading Western politician who pretended to act as a protector of freedom, democracy and human rights.

 

가장 큰 개발자들 중에는 14년전의 제노사이드의 희생자인 르완다 투치족이 있다. 이번해 초, 르완다 정부는 미테랑 정부가 제노사이드에 연루되어 있음을입증하는 문서를출간했다: 프랑스는 영어를 사용하는 투치족을 희생시키고 영향력을 재획득하기 위해 정부전복을 위한 후투족의 계획을 지원했으며 심지어는 무기까지 제공했다. 프랑스는 즉각 전혀 근거없다고 그 비난을 기각했지만, 최소한만 말해도, 그 기각 자체는 근거가 없다. 비록 사후에라도 미테랑을 헤이그 재판소로 데려가는 것은 결정적 선을 넘는것이 될텐데,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의 보호자로 행동하는 체 했던 한 지도적 서구 정치인을 처음으로 재판소로 데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There has been in recent weeks an extraordinary mobilisation of the ruling ideology to combat the threats to the current order. The French neoliberal economist Guy Sorman, for example, recently said in an interview in Argentina that ‘this crisis will be short enough.’ By saying this, Sorman is fulfilling the basic ideological demand with regard to the financial meltdown: renormalise the situation. As he puts it elsewhere, ‘this ceaseless replacement of the old with the new – driven by technical innovation and entrepreneurialism, itself encouraged by good economic policies – brings prosperity, though those displaced by the process, who find their jobs made redundant, can understandably object to it.’ (This renormalisation coexists with its opposite: the panic raised by the authorities in order to make the public ready to accept the proposed – obviously unjust – solution as inevitable.) Sorman admits that the market is full of irrational behaviour, but is quick to add that ‘it would be preposterous to use behavioral economics to justify restoring excessive state regulations. After all, the state is no more rational than the individual, and its actions can have enormously destructive consequences.’ He goes on:

 

최근 몇 주 동안 현행 질서에 대한 위협과 맞서 싸우기 위해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대적인 동원이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가이 소르망은 최근 아르헨티나에서의 한 인터뷰에서 '이 위기는 곧 끝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소르망은 금융폭락에 관련시켜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요구를 실행하고있다: 상황을 재정상화하라. 그가 다른 곳에서도 말했듯이, '기술적 혁신과 기업가정신 - 이것들은 좋은 경제정책에 의해 고무되는데 -  에 의해 추동되는 새것에 의한 낡은 것의이 쉼없는 대체는 번영을 가져온다. 비록 그들의 일자리가 쓸모없게 된, 그 과정에 의해 축출된 이들은 아마 그것에 반대하겠지만 말이다.' (이 재정상화는 그것의 대립물 - 공중으로 하여금 제안된, 명백히 부정의한 해결책을 불가피한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당국들이 야기하는 패닉과 공존한다.) 소르망은 시장이 비합리적 행태로 가득차 있음을 인정하지만 재빨리 '과도한 국가 규제들로 복귀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행동 경제학을 이용하는 것은 터무니 없을 것이다. 결국, 국가는 개인보다 더 합리적이지 않으며 그것의 행동들은 막대한 파괴적 귀결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An essential task of democratic governments and opinion makers when confronting economic cycles and political pressure is to secure and protect the system that has served humanity so well, and not to change it for the worse on the pretext of its imperfection. Still, this lesson is doubtless one of the hardest to translate into language that public opinion will accept. The best of all possible economic systems is indeed imperfect. Whatever the truths uncovered by economic science, the free market is finally only the reflection of human nature, itself hardly perfectible.

 

경제적 주기순환과 정치적 압력에 직면할 때 민주주의적 정부와 여론 조성자들의 필수적 과제는 인류에 그토록 잘 봉사해 왔던 시스템을 안전하게 하고 보하는 것이다. 그것의 불완전함을 구실로 더 나쁜 것으로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럼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이 교훈은 공중 여론이 승인할만한 언어로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교훈들 중 하나이다. 가능한 경제 체제들 중 최상의 체제는 실로 불완전하다. 경제학이 밝혀낸 진리가 무엇이든간에,자유시장은 최종적으로 유일하게, 그 자체도 거의완전하다고 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을 반영한 것이다.  

 

Rarely was the function of ideology described in clearer terms: to defend the existing system against any serious critique, legitimising it as a direct expression of human nature.

 

이데올로기의 기능이 이보다 더 분명한 용어들로 기술되기는 힘들 것이다: 어떤 심각한 비판에 대해서도 현존 시스템을 방어하라. 그것을 인간 본성의 직접적 표현으로 정당화하라. 

 

It is unlikely that the financial meltdown of 2008 will function as a blessing in disguise, the awakening from a dream, the sobering reminder that we live in the reality of global capitalism. It all depends on how it will be symbolised, on what ideological interpretation or story will impose itself and determine the general perception of the crisis. When the normal run of things is traumatically interrupted, the field is open for a ‘discursive’ ideological competition. In Germany in the late 1920s, Hitler won the competition to determine which narrative would explain the reasons for the crisis of the Weimar Republic and the way out of it; in France in 1940 Maréchal Pétain’s narrative won in the contest to find the reasons for the French defeat. Consequently, to put it in old-fashioned Marxist terms, the main task of the ruling ideology in the present crisis is to impose a narrative that will not put the blame for the meltdown on the global capitalist system as such, but on its deviations – lax regulation, the corruption of big financial institutions etc.

 

2008년의 금융폭락이 위장되어 있는 축복으로, 꿈으로부터의 각성으로, 우리가 전지구적 자본주의 현실에 살고 있다는 정신번쩍 들게하는 주의로 기능할 것 같지는 않다. 그것 모두는 어떻게 그것이 상징화되느냐에, 어떤 이데올로기적 해석이나 스토리가 관철되어 위기에 대한 일반적 지각을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태의 정상적 운행이 외상적으로 단절될 때, '담론적인' 이데올로기적 경합의 장이 열린다. 1920년대 말 독일에서 히틀러는 어떤 내러티브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위기에 대한 이유와 그것으로부터의 출구를 설명해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경합에서 승리들 거두었다. 1940년에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의 패배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려는 경합에서 마레샬 페탱의 내러티브가 승리를 거두었다. 결국, 구식의 마르크스주의적 용어들로 말하자면, 현행의 위기상황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요임무는 금융폭락의 책임을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이탈들에 - 느슨한 규제, 거대 금융기구들의 부패 등등에 돌리는 내러티브를 부과하는 것이다.   

 

Against this tendency, one should insist on the key question: which ‘flaw’ of the system as such opens up the possibility for such crises and collapses? The first thing to bear in mind here is that the origin of the crisis is a ‘benevolent’ one: after the dotcom bubble burst in 2001, the decision reached across party lines was to facilitate real estate investments in order to keep the economy going and prevent recession – today’s meltdown is the price for the US having avoided a recession seven years ago.

 

이 경향에 맞서서, 우리는 핵심적 의문을 강조해야 한다: 시스템 자체의 어떤 '결함'이 그러한 위기들과 붕괴들의 가능성을 낳는가? 여기서 제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위기의 기원에 '좋은 뜻'이 있다는 것이다: 2001년 닷컴 버블이 터지자 내려진 초당파적 결정은 경제를 계속 굴러가게 하고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부동산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즉 오늘날의 금융폭락은 미국이 7년전 경기침체를 회피했던 것에 대한 대가이다. 

 

The danger is thus that the predominant narrative of the meltdown won’t be the one that awakes us from a dream, but the one that will enable us to continue to dream. And it is here that we should start to worry: not only about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meltdown, but about the obvious temptation to reinvigorate the ‘war on terror’ and US interventionism in order to keep the economy running. Nothing was decided with Obama’s victory, but it widens our freedom and thereby the scope of our decisions. No matter what happens, it will remain a sign of hope in our otherwise dark times, a sign that the last word does not belong to realistic cynics, from the left or the right.

 

그렇다면 위험은 금융폭락에 대한 지배적 내러티브가 우리를 꿈으로부터 깨어나게 할 내러티브가 아니라 우리가 계속 꿈꾸는 것을 가능하게 할 내러티브라는 것이다. 우리의 걱정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걱정은 금융폭락의 경제적 귀결에 대한것만이 아니라 경제를 돌아가게 하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과 미국 개입주의를 재활성화하려는 유혹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승리와 동시에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따라서 우리의 결정들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무슨일이 생기든, 그것은 그렇지 않으면 어둡기만 한 우리의 시대에 희망의 신호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 말이 좌파든 우파든 현실주의적 냉소주의자에게 속하지 않는 신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