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부애에 대한 본격적 모델을 만드는 학자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여러 곳에서 접한 단편적인 언급들을 바탕으로 어설프나마 내 생각을 써 볼 생각이다.

 

 

 

근친 결혼이 아니라면 부부는 유전자의 측면에서는 생판 남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부부애는 친족 선택과 무관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애의 진화에 친족 선택의 논리가 작동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며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부부애가 친족 선택과 무관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식 때문이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내의 자식이 남편의 유전적 자식이 아닌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보통 그 비율이 20%를 넘지 않은 듯하다(바람을 아주 많이 피우는 문화권이 없는 것은 아니며 그런 곳에서는 아빠보다는 외삼촌이 아이를 더 돌본다고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Avunculism). 다른 말로 하면, 아내의 자식이 남편의 유전적 자식일 확률이 전체적으로 볼 때 80%가 넘는다. 요컨대 부부는 유전적 자식을 공유한다.

 

부부가 화목해야 그 자식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잘 살아야 자식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인 경우를 들자면, 사냥-채집 사회에서 자식이 갓난 아기일 때 엄마가 죽으면 자식이 살아남을 확률이 극히 낮다.

 

따라서 자식(임신 상태도 포함)이 있을 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무조건적으로 어느 정도 사랑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부부가 유전적으로는 남남이기 때문에 친족 선택의 논리가 직접적으로 작동하지는 않지만 공동의 자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바람을 많이 피울수록 자식이 남의 자식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자식을 덜 사랑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또한 이럴 때에는 아내를 덜 사랑하는 것이 적응적이다. 이것은 자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작동하는 친족 선택의 논리를 생각해 볼 때 당연하다.

 

 

 

부부는 친구이기도 하다. 서로 유전적으로 남남인 사람들이 협동을 하는 사이다. 따라서 상호적 이타성(reciprocal altruism)의 논리가 작동한다. 만약 상대를 등쳐 먹으려는 친구가 있다면 헤어지는 것이 유리하다. 우정은 조건적이다. 친구가 자신을 어느 정도 이상 도와줄 때에만 그 친구를 사귀는 것이 절교하는 것보다 적응적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친족 선택의 논리는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무조건적 사랑이 매우 강력하다. 반면 친구 사이에서는 오직 상호적 이타성의 논리만 작동한다. 따라서 사랑은 항상 조건적이다. 자식이 자신을 배신한다고 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가 자신을 배신하면 보통 절교한다.

 

부부는 친족애와 우정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무조건적 사랑이 어느 정도는 있지만 부모-자식 사이의 사랑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무조건적 사랑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자식을 공유하는 부부는 친구 사이만큼 쉽게 깨지지 않는다. 이것은 부부 사이에서는 상대방이 배신해도 친구 사이보다는 더 많이 용서해준다는 뜻이다.

 

 

 

2010-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