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 복지국가론의 핵심 논리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핵심 논리는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에 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4월 10일 내일신문 [NGO 칼럼] ‘역동적 복지국가와 재원 조달’에서 이렇게 썼다.

 

 

“역동적 복지국가는 가난한 일부 계층을 선별하여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차별 없이 양질의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중산층을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삶의 안정성과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보편적 복지다.

이에 더해, 보육 교육 평생교육 건강서비스 등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적극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온 국민을 유능하고 창의적이게끔 하는 것, 즉 인적자본을 크게 확충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적극적 복지다. 이것이 보편주의에 근거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핵심 논리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세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산층, 고소득층, 대기업이 주로 세금을 걷자(내자)는 주장이 뒤따른다.

 

“우리 국민의 약 50%만 소득세를 낸다. 소득세를 내는 모든 국민들은 누진적 방식으로 세금을 더 내자. 그래서 선진국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소득세의 비중을 높여나가자. 기업도 선진국 수준으로 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 이를 ‘사회복지’를 위한 조세라 칭하고, 이 돈으로 국민 모두가 양질의 복지를 누릴 수 있게 하자. 중산층, 고소득층, 대기업이 주로 세금을 더 내게 하고, 복지 혜택은 온 국민이 누리게 해야 한다”

 

이로부터 역동적 복지국가의 기본 정신은 국가(공공부문)에 더 많은 자원(세금, 인력 등)을 집중시켜-조세부담률이나 국민부담률(조세+사회보험)을 올려- 개인과 가족에 대해 국가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의 강력한 재분배 기능을 통해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이같이 평등하고 안정적인 사회가 산업 인력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고,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확충, 강화하여 더욱 역동적인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한편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핵심이 ‘보편주의 복지’다 보니 불가피하게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가 주된 공격=차별화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그 가장 좋은 예가 최근에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초중등학교 무상급식을 둘러싼 갈등이다. 이상이는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국가 복지는 선별된 복지 수혜자들만의 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최근 이러한 흐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빈부를 가리지 않고 학생 모두에게 보편적 권리로서 무상급식을 제공하겠다는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보편주의 정책이 중산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다”

 

공동의 컨센서스

GDP대비 한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너무 낮다는 것, (자민당 정권 하의 일본처럼) 토건 사업에 할당 되는 재정이 너무 크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비전.철학에 동의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모호했다고 평가되는 김대중 정부(생산적 복지)와 노무현 정부(참여복지? 비전2030?)도 공유하였다. 아마 양식이 있는 보수주의자들조차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도로, 교량, 경로당, 문화관을 지어야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지역 유권자들의 등쌀에 실제 예산 편성 과정에서는 진보, 보수를 떠나서 자신의 지역구의 토건 예산을 늘리려 혈안이 되겠지만.......어쨌든 지금 한국은 복지지출을 더 많이 늘리고, 토건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선별적 복지주의자조차 공유하는 컨센서스이기에 역동적 복지국가의 핵심 논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핵심 논리에 대해서는 다양한 층위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가 있다. 철학적으로는 (칼럼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한국 사회의 모순부조리의 핵심을 ‘민생 불안’ 및 ‘양극화’로 보고, 이것이 ‘승자독식의 삭막한 경쟁지상주의・시장만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와 잔여주의 복지제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시각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비판적으로 검토 할 생각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철학적 문제

또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개인(가족)-시민사회나 공동체-시장(소비자 선택권 및 심판권)-국가(공공부문) 간의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성장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냐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개인 및 가족이 짊어진 각종 위험(실업, 재해, 질환, 노령 등)과 부담(교육, 육아 등)을 국가와 사회가 더 많이 나눠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위험, 부담의 사회화는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국가 복지 전무, 가족/친족/마을 복지 과도한 의존) 탈피를 위해서도 절실하고, 고도성장에 기반한 괜찮은 일자리 창출이 한계에 도달해서도 절실하고, 문명사적 추세인 세계화, 지식정보화(과학기술혁명), 자유화, 시장화(소비자 선택권 및 심판권의 강화) 등으로 인해 인간의 수명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의 수명이 짧아지고, 특히 상품, 기술, 작업장, 기업, 산업의 변화, 부침, 탄생, 소멸이 빠르고 격렬하기 때문에도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미국을 포함한 그 어떤 문명국가도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노동시장의 유연화 및 안정화 정책’, ‘금융 유동성 및 안정성 강화 정책’,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 중시 정책’ 등을 피해서 경제사회 정책을 필수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소비자 선택권 및 심판권의 강화는 세계화, 지식정보화(과학기술혁명)처럼 거의 자연사적 흐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돈이든, 정보든, 사람이든, 권능이든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에 할당하는 것 역시 거스럴 수 없는 흐름일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이 그 자원을 가장 잘 배분하면 시장에(완전 경쟁 시장이나 관리된 경쟁시장에), 국가가 잘하면 국가에(중앙정부가 잘하면 중앙정부에, 지방정부가 잘하면 지방정부에, 공기업이 잘하면 공기업에), 자발성과 호혜성이 작동하는 시민사회가 잘하면 시민사회(NGO, 교회, 반관반민의 제3섹트.......)

 

유선 전화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국이 정보화를 추진할 때, 유선전화망을 보편화시켜놓고 나서 무선전화망을 깔지 않는 것처럼, 전근대성이 그득한 한국도 신자유주의가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낡은 복지국가 단계’를 거쳐서 현대적 복지국가로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낡은 복지국가의 창조적 캐치업 전략과 더불어 유럽 복지국가들의 최신 흐름-소비자의 선택권과 심판권, 시민사회의 역할 강화 등-의 창조적 수용 전략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이렇듯 중요한 고민과 논점을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로 축소하고 호도해 버린다.

 

선별주의 복지 vs 보편주의 복지가 주 전선이 맞는가?

사실 선별주의 보편주의 논쟁이 있기 훨씬 전부터 한국의 의료보험은 보편주의를 취해 왔다.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내고, 필요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딸린 식구가 10명이라도 1명만 벌면 1명이 낸 보험료로 10명이 혜택을 받는다. 1년에 몇 십만원을 낸 사람이 몇억원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적게 내고 많이 이용한다고 눈치 줄 수도 없고, 눈치 주는 병의원도, 의사도 없다. 사실 한국 의료보험은 말이 보험이지 거의 세금과 다를바 없다. 공적의료 보장율을 2005년 61.8%에서 2006년 64.3%로 2.5%p를 올린 ‘입원환자 식대’에 대한 보장정책을 펼칠 때도 잘사는 사람은 밥 값을 내게 해야 한다는 시비를 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보편적 복지가 시대의 대세라고 강변하는 사람이 맹위를 떨치는 지금도, 아무리 무주택자라 하더라도 부부합산 연봉 1~2억에, 금융자산이 수십억이 되는 가구가 시프트 주택을 분양받는 현실에 대해서는 부당하다고 성토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용돈 연금이라지만 기초노령연금을 세금을 엄청 많이 낸 이건희, 정몽구는 못받고, 노인의 60% 또는 70% 정도만 받는 (선별주의적) 현실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성토하는 사람이 없다. 김문수와 일부 한나라당 의원의 무식한 대처-예컨대 기초노령연금처럼 70%나 80%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겠다고 했다면 선별로 인한 모멸감 얘기는 들어갔을 것이다-로 인해 초중학교 급식 문제가 보편주의 vs 선별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켜버렸지만, 실제 한나라당 지자체 장이 많은 경북, 경남 등지에서는 이미 100%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대엽 시장이 재임하고 있는 성남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요컨대 한나라당이 선별적 복지주의로 무장하여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집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무상급식등 복지 강화 논리가 이렇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은 4대강 예산이 20~30조원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면, 그래서 무상급식으로 인해 깎아야 할 예산이 4대강 예산이 아닌 다른 어떤 예산이었다면  무상급식 논쟁은 지금처럼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교육 이나 복지 분야에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가 많아서 무상급식 문제가 그리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별주의 복지 vs 보편주의 복지를 주전선으로 삼기에는, 복지가 절실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복지를 제공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너무나 넓다. 오늘(4월14일)자 한겨레 신문에는 2009년 10월 기준,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863만명 가운데 501만명(58%)이 연금을 내지 못하는 ‘납부예외자’라는 기사가 그 단적인 예다.

 

한편 사실상 보편주의를 취하고 있는 의료보험은 ‘사회주의와 독점대기업의 모순의 중첩’이 일어나고 있다.(http://www.goodpol.net/inquiry/statistics.board/entry/55)

 

이 글에도 썼지만 자세와 생활 습관이 아주 나빠도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기에는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성장이 멈추면 심각한 질병을 앓는다. 나는 그 동안 비용 대비 효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한국의 의료보험도 심각한 질병이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경 국민의료비가 GDP대비 10.2%로 OECD 평균을 추월하고, 2024년엔 16.1%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그 예고편이라고 할 수있다. (그런데 이 도표를 내 놓은 쪽의 문제 진단과 해결책은 납득하기 어렵다.)

  

어쨌든 한국 보건의료시스템의 문제는 보편주의라는 도깨비 방망이로 해결 할 수 없는, 아니 그런 철학과 방법으로 인해 더 악화된 심각한 문제가 여러개 있다. 이는 오래지 않아 참여정부를 괴롭힌 부동산 문제 만큼 심각한 문제로 부상할 것이다.

 

 

한편 선별주의에 의해 운용되는 공공임대 주택과 기초생활보호제도도 광범위한 차상위 계층 문제도 있고,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과도한 특권,특혜(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86가지고 알려져 있다) 조정 문제도 있다.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고, 더 많은 사람(복지 비용 염출자들)이 지지하는 복지시스템을 위해서다.

                  

다시 세금 문제

그리고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주요한 지주인 세금 문제도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단적으로 중산층, 고소득층, 대기업이 주로 내는 세금, 즉 소득세와 법인세를 과연 얼마나 더 걷을 수 있는지, 그 세금으로 얼마나 더 큰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국세 징수 상황( 단위: 조원)

                                                      

2009년 실적금액 기준 소득세는 34조4천억원, 법인세 35조3천억원이 걷혔다. 문제는 이 소득세의 90%는 부과대상자의 10%가 냈다는 사실이다. 법인세는 더하다. 이것은 북유럽 복지국가와 엄청나게 다른 구조이다.

 

그리고 개인에게 제공되는 복지의 수준은 복지 수요자의 숫자에 반비례한다. 이 복지 수요자가 공식 실업자 100만명이라면 연간 필요한 실업수당은 100만명*연간 1000만원(1인당 GDP의 50%, 월 88만원도 안되지만)=10조원이다. 그런데 한국은 실업수당이 보편적으로 주어진다면 비경제활동인구에 숨어있는 사실상 실업자와 사실상 실업자인 영세자영업자와 무급가족 종사자 등이 튀어나와서 최소한 500만명 이상은 실업수당을 받는 대열에 줄을 설 것이다.

 

보편적 복지주의, 누구를 향해 쏘는 총인가?

요컨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사회적 최소한을 높여야 한다는 것, 광범위한 복지 사각지대를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는 것, 토건 재정을 복지, 교육, 문화 재정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등은 참여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합리적 보수까지 광범위한 공동전선을 펼 수 있다. 그리고 복지 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현재 복지 시스템과 공공부문-재정을 늘리면 그 운용권자가 된다-의 합리화도 절실하다. 사실 '무상'의 문제점은 거의 같은 개념이지만 어감이 전혀 다른 '공짜'라는 말로 바꿔보면 어렴풋이 알 수있다. 공짜교육, 공짜의료 어떤가? 과연 교육과 의료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어떻게 채워줄 수있을까? 마찬가지로 보편주의의 문제점은 거의 같은 개념이지만 어감이 전혀 다른 '무차별적, 획일적, 일률적'이라는 말로 바꿔보면 알 수있다. 사실 한국이 자랑하는 국민건강보험은 지금 이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한국 사회의 모순 부조리의 핵심도 제대로 못 짚었고, 복지 문제의 핵심도 제대로 짚지 못했다. 거칠게 보면 보편적 복지주의라는 깃발로, 선별주의와 차별화를 강조하다 보니 복지 강화 전선에 복무할 아군(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복지 정책과 뉴민주당 플랜 등)들에게 총질을 해댄다고 할 수있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로망이 되어 버린 공공부문 노조 및 그 종사자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현 복지 시스템과 공공부문의 심각한 모순부조리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복지강화 전선, 증세 전선을 약화시키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정말 보편적 복지주의는 아군을 향해 쏘는 총이거나 적이 있지도 않는 허공을 향해 쏘는 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