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daum.net/tales_of_mistery/470


첫번 동영상이 가사와 어울려요. 조금 스크롤해 내려가면 원문가사와 번역가사가 나와요.
복사를 막아놓았던데, 뭐랄까 참 딱한 마음씨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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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0년대 중반 이래로 아바의 노래를 의식적으로 들으려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바의 노래는 내게 진부하게 맑고 곱고 달콤한 팝의 대명사였고 비틀즈나 카펜터즈 노래들 저 뒤편에 있었다. 하지만 프리스의 추천을 받아 듣게 된 이 곡이 내 가슴을 깊숙이 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이 노래를 언젠가 분명 귀기울여 들어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오래도록 찾아 헤매다 마침내 찾아낸 노래처럼 느낀다.



<케임브리지 대중음악의 이해> 중 4 장

사이먼 프리스,  「팝 음악」 중에서


분명 팝은 단순한 상업주의의 설명처럼 직접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스모키가 한국의 급진적인 학생들에게 부적같은 존재가 되었는가? 왜 어떤 노래들은 우리가 처음 듣는 순간부터 스탠더드가 되는데 그렇게 다르지 않은 다른 노래들은 대중에게 전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가? 확실한 것은 팝이 음악학이나 미학의 관점에서 제대로 분석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노래 자체에 반응을 한다. 하지만 노래 자체는 곧 용도와 기억과 참고 사항들로 둘러싸이게 된다. 일단 팝송이 세상에 나오면 온갖 부류의 것들이 여기에 더해질 수 있다. 바비 빈튼이 자신의 축축한 트랙 Blue Velvet 을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었을때, 그는 과연 그 노래가 데이비드 린치에 의해 사용되어 영원히 위협적인 곡으로 기억될 것을 예상했을까?

예기치 못했던 일이 노래에 일어난다면, 노래 또한 예기치 못했던 효과를 우리에게 준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바의 노래인 The Day Before You Came 은 사랑이 닥치기 전의 삶이 얼마나 따분한 것인지를 단조롭게 기록하는 것으로 사랑의 경이를 묘사한다. 이 곡은 음악의 변용의 위력에 관한 노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아이러니는 남는다. 팝이 우리가 보통 그와 같은 따분함 속에 집어넣는 바로 그 음악이라면, 우리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삶에 대해 느끼는 방식을 바꾸는 것 또한 팝이다. 이런 능력에서 팝은 그 어떤 음악 형식보다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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