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펀드 매니저 필립 피셔의 아들 켄 피셔가 쓴 '시장을 뒤흔든 100명의 거인들'입니다. 제목에서 보이듯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자본 시장에서 활약한 100명의 업적(?)과 인생을 짧게 요약한 책이지요. 여기서 제가 업적 부분에 물음표를 친 것에 주목해주세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중 최소 30프로는 우리가 존경할 만한, 혹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기꾼이고 부패했고 술과 도박, 여자에 빠져 살았던 난봉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이 돈을 벌려는 욕망으로 벌려 놓은 일들이 당시엔 큰 문제를 야기했음에도 결국은 시장의 발전에 기여했거나 교훈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업적이라기보다는 영향이란 단어가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제가 워낙 머리가 나빠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몇가지 인상적인 부분들을 소개해드리죠.

먼저 자본주의 초창기 미국의 시장 풍경을 생생히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린 미국의 시작이 청교도였다는 점을 들어 자본주의 초창기부터 건강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서 접하는 진실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뇌물을 먹이는 건 일상적이었지요. 심지어 수배 영장이 떨어진 인물이 시장의 비호하에 호텔에서 공공연히 거래하고 파티 열고 여자들과 즐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 자체의 힘으로- 때론 대중을 선동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인물들의 등장으로- 오늘날처럼 발전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뉴딜 개혁을 들더군요. 

두번째로는 시장, 혹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가치랄까, 도덕과 결부해서 말하자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투자자 (투기꾼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들의 인생을 보면 크게 두가지 패턴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일 그 자체에서 만족을 얻고 성취하는 타입입니다. 이들은 과정상 실패를 겪더라도 결국은 성공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치와는 거리가 멀고 사생활은 건전하며 가족을 중시하고 투자자에서 은퇴한 뒤로는 기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두번째는 일 자체보다 그 결과를 향유하는 부류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대박을 터트리고 그렇게 얻은 부로  파티를 열고 모델같은 여성들과 요트 위에서 즐기죠. 이들의 끝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필립 피셔가 도덕적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사람들만 골랐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필립 피셔가 내부자 거래나 무문별한 주권 발행, 심지어 뇌물에 이르기까지 당시엔 범죄로 여겨지지 않았다며 변호한다는 점에서 전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도덕적 측면보다 일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분류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당장 우리가 사랑(?)하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좌충우돌로 큰 돈을 모은 투기꾼이요, 막무가내로 몰염치한 데다, 호색가였으며, 주로 이기심의 발로 출세에 매진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성공했다면 성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 

어쨌든 이러한 다양다종한 투기꾼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한가지는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어떤 속성일 겁니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가치지요. 그렇지만 돈에만 몰입하면 버림받습니다. 어찌보면 돈으로 시작해서 어떤 가치-가족,기부등-으로 이뤄지는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는 메카니즘, 그게 자본주의가 번성한 이유가 아닐까요?

그외에도 인터넷만으로 알았던 지식이 부정되는 사례들도 흥미 진진합니다. 가령 로스차일드의 경우 인터넷에선 음모론에 입각해 배후 조종자로 주목받지만 이 책에서 중점을 두는 건 그가 이기는 쪽(산업혁명)에 베팅했기에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개미들의 영웅 제시 리버모어는 결국 실패한 투기꾼으로 평가절하되지요.

또한 수많은 사기꾼들의 역사를 읽으면 왠만한 소설 못지 않게 재밌습니다. 전 인간의 모든 속성이 주식 시장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해왔는데(그렇지만 주식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서. ㅠ ㅠ) 이 책은 그런 제 생각을 확인시켜 주더군요.

그 외에도 우리가 겪은 참여정부 시절을 연상케하는 대목들도 많습니다. 전 이 책에서 나온 인물 중 '로버트 영'에게서 노무현을, 사이러스 이튼을 읽으면서 김대중을 떠올렸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부담스러우면 그 두 사람만  찾아 보시길.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