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키가 핸디캡인지 여부를 묻는 제목이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황당할 것이다. 작은 키가 핸디캡이라는 이야기는 흔히 하지만 (최홍만 씨처럼 엄청나게 큰 경우를 제외하면) 큰 키가 핸디캡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이 글은 너무 커서 여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균보다 어느 정도 커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핸디캡은 이스라엘 진화 생물학자인 Amotz Zahavi(אמוץ זהבי)1975년에 발표한 논문 Mate selection - a selection for a handicap」에서 제시한 핸디캡 원리(handicap principle)의 핸디캡을 뜻한다. 나는 「핸디캡 원리(version 0.2)」라는 글에서 핸디캡 원리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306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수컷 공작의 크고 화려한 꼬리는 생존에는 방해가 되지만 즉 핸디캡이지만 번식(짝짓기)에는 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암컷들이 크고 화려한 꼬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핸디캡 원리에 따르면 암컷들이 그런 꼬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핸디캡이기 때문이다. 인간 여자들이 키가 어느 정도 큰 남자를 선호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여자들이 큰 키를 좋아하는 이유도 핸디캡이기 때문이 아닐까? 일부 남자들이 키가 큰 이유는 그것이 핸디캡임에도 불구하고 짝짓기에서 이득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이 내가 이 글의 제목에서 던진 질문의 의미다.

 

엄밀히 말해서 핸디캡 원리는 생존에는 방해가 되고 짝짓기에는 도움이 되는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핸디캡 원리에서 핵심적인 구분은 생존과 짝짓기가 아니라 직접적 이득과 간접적 이득이다. 여기서 간접적 이득이란 신호를 통한 이득을 말한다. 수컷 공작은 크고 화려한 꼬리를 뽐냄으로써 자신의 우월하다는 신호를 암컷에게 보낸다. 그런 신호를 받은 암컷이 짝짓기를 해 준다면 이로써 간접적으로 이득을 얻는다.

 

이런 간접적 이득이 짝짓기에서만 생길 것이라고 보면 안 된다. 어떤 수컷 동물의 화려한 특성을 같은 종의 다른 수컷 동물도 본다. 다른 수컷도 화려함을 뽐내는 수컷이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러면 화려한 수컷은 지위가 높아질 것이다. 지위가 높으면 먹을 것을 두고 경쟁을 할 때 이득을 챙길 수 있으며 이것은 생존에 도움이 된다.

 

보통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 때문에 포식자에게 더 잘 잡혀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단정해서는 안 된다. 포식자가 더 화려한 수컷이 더 건강할 것이며 따라서 더 잡아 먹기 힘들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다른 수컷을 잡아먹으려고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늑대 같은 포식자는 보통 뜀뛰기(stotting)를 하는 가젤 대신 뜀뛰기를 하지 않는 가젤을 뒤쫓는다. 수컷이 화려한 꼬리를 뽐냄으로써 암컷으로부터는 짝짓기를 얻는다는 점은 잘 입증되었다. 하지만 화려한 꼬리를 뽐냄으로써 같은 종의 수컷으로부터는 존경을 얻고 포식자가 쫓아오기를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국가가 부유해지면 평균 키가 상당히 커진다. 이것은 영양 상태에 따라 키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즉 더 잘 먹을수록 더 크게 발달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있는 듯하다. 키 조절 메커니즘은 아마 좋은 유전자(good gene)가 있으면 키가 더 크도록 할 것이다. 수컷 공작이 자신의 유전자 상태와 영양 상태 등을 고려하여 유전자가 좋을수록 그리고 영양 상태가 좋을수록 더 크고 화려한 꼬리를 발달시키듯이 인간 남자도 자신의 유전자 상태와 영양 상태 등을 고려하여 유전자가 좋을수록 그리고 영양 상태가 좋을수록 더 키가 큰 방향으로 발달한다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크고 화려한 꼬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얻을 것은 거의 없는 반면 신호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을 것이 많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반면 큰 키의 경우에는 양 방향 모두를 통해서 얻을 것이 많아 보인다. 남자가 키가 크면 그 자체가 신호로써 작동하여 남자들로부터 존경을 얻고 여자들로부터 섹시하다는 평가를 얻는다. 즉 간접적으로 얻을 것이 많다. 또한 키가 크면 다른 남자와 육탄전을 벌일 때나 다른 동물을 사냥할 때나 다른 동물이 자신을 사냥하려는 것을 막을 때 도움이 된다. 즉 직접적으로 얻을 것도 많아 보인다.

 

핸디캡 원리에 따르면 직접적으로는 손해를 보아야 핸디캡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수컷 공작의 꼬리든 인간의 큰 키든 손해를 보는 측면이 있다. 더 크고 화려한 꼬리 또는 더 큰 키를 발달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원이 든다. 수컷 공작의 꼬리의 경우에는 더 화려하고 커짐으로써 직접적으로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명백해 보인다. 그래서 진화 생물학자들은 별 생각 없이 핸디캡이라고 규정한다. 반면 인간의 큰 키의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얻을 것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정량 분석을 해야 한다. 큰 키를 통해 직접적으로 얻는 것이 더 많은가? 아니면 그에 비해 큰 키를 유지하는 데 드는 생리적 비용이 더 많은가? 만약 생리적 비용이 더 많다면 큰 키를 핸디캡 원리로 설명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문제는 당장 이런 정량 분석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에 있다.

 

만약 큰 키를 유지하기 위한 생리적 비용보다 큰 키를 통해 직접적으로 얻는 것이 더 많다면 핸디캡 원리를 인간 남자의 키에 적용할 수 없나? 이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핸디캡 원리를 좋아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특성 중 몇 가지를 핸디캡 원리를 적용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남자와 여자의 긴 머리카락, 남자의 긴 수염, 여자의 큰 유방, 여자의 잘록한 허리 등은 신호의 가치 말고는 일생 도움이 안 되어 보이기 때문에 핸디캡의 후보로 인정 받고 있다. 반면 남자의 큰 키를 핸디캡 원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없는 것 같다(적어도 나는 그런 것을 본 기억이 없다).

 

 

 

201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