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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을 쓴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데, 이걸 어느 정도 분량으로 어느 정도 수준으로 쓰면 되는지가 고민이다. 너무 자세하게 쓰자고 하면 읽는 사람도 지치고 쓰는 사람도 지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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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가 상원의원에 출마하려고 했을 때, 그는 민주당 경선 후보 6명 중에 가장 늦게 등록한 후보였다. 정치적인 지명도도 그렇게 높지 않았고, 경쟁상대인 다른 이들에 비하여 내세울만한 지지기반이 있지도 않았다. 시카고 대학에서 헌법학을 강의하고 그 근처 하이드 파크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인기가 있었고, 흑인이기에 흑인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지만, 2003년까지 오바마는 그저그런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에 불과했다. 민주당의 흑인 현직 하원의원 선배 자리를 두고 도전했다가 패하고 원한을 사기도 하고, 총기 규제 관련 법 통과를 앞두고 고향인 하와이로 휴가를 갔다가 표결에 참석하지 않아 정치적으로 몰매를 맞기도 했었다. (물론 이것은 오바마의 딸이 고열로 아팠기 때문에 딸 곁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주 상원의원 내내 함께 해 온 댄 쇼몬은 떠나겠노라고 밝혀서 선거를 지휘할 사람은 찾아야 할 처지였다.

 

 잘 생기고, 지적이며, 상품성과 잠재력이 있는 오바마였지만,

 

 이 당시까지는 아직 가능성만 있을 뿐, 현실적으로 정치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거기다 경선에서 맞붙을 경쟁 상대들도 만만치 않았다.

 

 먼저 경선에서 가장 먼저 등록한 댄 하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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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 하인스는 노트르담 대학에서 정보통신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정보 통신은 번역이 틀릴 수도 있다.) 그리고 카톨릭계이자 시카고에 위치한 로욜라 대학 시카고 캠퍼스에서 로스쿨을 마쳤다. 시카고, 일리노이에 깊게 뿌리내린 토박이었으며, 아버지대부터 일리노이에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오바마가 성인이 되어서 일리노이에 흘러 들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역 기반은 댄 하인스가 훨씬 더 탄탄한 입장이었다.

 

 댄 하인스의 아버지는 주요 민주당 지지층인 노동조합과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일리노이 주에 있는 거의 모든 노동조합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댄 하인스가 주 검사관으로서 청구서만을 들여다 보고 있던 가운데, 버락 오바마는 주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노조에게 더욱 밀접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오바마가 쌓아 두었던 이러한 경력 때문에 일리노이 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10만명 이상의 회원이 있는 '서비스 노조 국제연맹'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SEIU) 은 전체 노동조합의 지지와 반대로 버락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서비스 노조 국제연맹은 대부분의 백인 노동조합ㄱ과는 다르게 더 젊고, 인종적으로도 다양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서 오바마는 시카고 교사 조합, 미국 주총연맹, 구와 시의 근로자 단체로부터도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댄 하인스는 쿡 카운티 행정위원회 흑인 회장인 존 스트로저의 지지를 얻어내면서 오바마가 흑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반격했지만, 실상은 존 스트로저 역시 댄 하인스의 아버지인 토마스 하인스와의 오랜 우정 때문에 댄 하인스를 지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의 한 부분을 기억하는가? 댄 하인스의 아버지와의 우정 때문에 오바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이 존 스트로저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댄 하인스의 기반은 탄탄했다. 초중반 동안 버락 오바마의 지지율은 댄 하인스에게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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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한 명 더.

 

 블래어 헐은 증권 거래인으로서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자산가였다. 하지만 그는 라스베가스의 도박장에서 블랙잭으로 2만5000달러의 판돈을 딴 후 증권거래회사를 차려서 증권 거래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과 이혼한 전처와의 문제 등이 소문으로 퍼져 있었고, 이 때문에 후에 오바마의 상원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를 진두 지휘했던 데이비드 액셀로드는 블래어 헐의 선거를 맡는 것을 포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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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린턴의 딕 모리스, 부시의 칼 로브가 있다면 오바마에게는 데이비드 액셀로드가 있었다. 데이비드 액셀로드가 이 당시 전국 정치에서 이름 높은 정치 컨설턴트였던 반면에, 오바마 대통령은 이 당시만 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햇병아리 정치가에 불과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무능한 사람이었다. 데이비드 액셀로드가 자신의 후보를 정하기 이전에 헐을 면담하면서

 

 "왜 의원이 되려고 하나?"

 

 라고 묻자 블래어 헐은

 

 "상원의원이 되면 좋아 보이지 않나요?"

 

 라고 대답했다.

 

 유권자들을 대하는 방식이나 언론을 대하는 방식.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데에 굉장히 미숙했으며, 숫기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넘쳐나는 재산으로 최고의 선거 참모들을 꾸려나갔으며, 무제한에 가까운 광고와 표지판, 플랫카드를 일리노이 주 전역에 퍼뜨릴 수는 있었다. 이 와중에 헐은 일단 50달러를 주고 바람잡이 부대를 고용하기도 했는데, 웃기는 것은 버락 오바마의 아내인 미셸 오바마의 친척 중에 이 바람잡이 부대 중 하나로 일한 사람도 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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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오바마 현 미합중국 영부인. 프린스턴 대학을 나오고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수도국에서 근무하는 블루 칼라 노동자였다. 아버지는 그나마 많은 봉급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친척 모두가 중산층에 속하지는 않는게 당연하다.)

 

 

 거기다가 블래어 헐의 선거 캠프는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못 했다. 헐은 가장 많은 급여를 주면서 선거 참모들을 끌어 모았는데, 돈이 너무 넘친 나머지 한 가지 업무마다 두 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두 명의 여론 조사원, 두 명의 홍보 책임자, 두 명의 선거운동 책임자같이 말이다. 때문에 전략 회의를 할 때마다 너무 잦은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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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는 본인은 개신교인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 모든 동물을 암수로 짝을 지어 태우라고 했듯이, 블래어 헐은 자신의 모든 선거 캠프 인력을 둘씩 짝을 지어서 꾸려놓았다.)

 

 하지만 헐의 광고는 효력이 있었다. 헐이 연설도 제대로 못 하면서 여기저기를 바람잡이 부대를 몰고 돌아다니면서 연극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면서 시청시간대나 광고 횟수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광고를 퍼뜨릴 수 있는 여력이 되는 블래어 헐의 재력이 위력을 발휘했다.

 

 블래어 헐은 댄 하인스를 제치고 최초로 지지율 30%에 도달하였으며, 상당 기간 이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