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오마담 님이 인용하신 셰익스피어의 구절과 노래를 듣고
저도 'Full fathom five'에 대해서 포스팅한 것이 있었는데 창고를
뒤져보니 보이길래 올려보네요.




호기심이라는 건 일단 생겨나면 결과에 만족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떤 식의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제 홀로 사그라지는 일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에스비에스 방송국은 호기심이 풀어지면 당장 천국이라도 보장할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호기심 천국'이란 프로를 만들어 냈겠으며, 판도라는
순간의 호기심을 참지 못해 오날날 우리에게 요 모냥 요 꼴의 만 가지 고통을
턱 하니 안겨 주었겠는가.


이전 세기를 살던 사람에게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거였다면, 무한 정보의
인터넷 세대에게 호기심이란 건 손목의 근육 조직을 야금야금 잠식해가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다.

뭔 말이냐면 작은 호기심 하나 충족 시키려고 마우스를 열라 클릭 클락 클릭 클락..
하다가 손목에 압박 붕대 싸매는 신세가 되었다는 얘기다. 툴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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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사진은 가끔 찾는 이웃의 블로그에서 본 사진이다.  처음에 저걸 볼 땐
속으로 '머리 치워 머리' 란 소리가 절로 나오드만,  이내 정 중앙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뒷통수를 치운다고 예상 못 한 어떤 새로운 이미지가 '나 여깄수'
하고 나타날 것 같지도 않고,

굳이 전체를 다 보지 않아도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그 부분을 채워넣을 수
있을 것 같거니와 그마저도 귀찮으면 나머지 부분을 살짝 떼어내서 땜빵해도
아무도 못 알아 챌 거란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한눈에 잭슨 폴록이란 미국 사람의 솜씨란걸 알겠는데, 족히 전체 면적의
1/4를 넘게 차지 할 것 같은 가려진 부분에 대한 호기심도 가볍게 해치웠구만,
왜 갑자기 저 누무 베라처묵을 사진 속 그림에 붙어 있는 제목이 뭘까 하는
호기심에 발목, 아니 손목 잡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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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똑똑하다는 '몰루는 건 몰라 아는 건 또 내가 알지롱'표 네이버 검색기를
돌리고~ 돌리고~ 해도 찾아내지 못한걸 바다 건너 누군가 한 귀퉁이에 올린
걸 물경 세 시간의 단기 집중적인 웹서핑을 통해 찾아낸 게 위 그림이다.

찾고 보니 그림의 제목은 엉뚱하게도 '무지개'다. 허기사 자세히 보면 중간 아래
부분에 무지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모종의 이미지가 있기는 하다. -,.-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세 시간이나 걸렸냐굽쇼? 상상해 보시라. 이거뜰
속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는 여리디여린 이지님의 손목을. 눈물 나지 않는가?
눈에서 진물 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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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vender Mist No. 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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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8
1949
Oil, enamel, and aluminum paint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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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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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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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mmering Substance
1946


잭슨 폴록 씨는 마흔네 살에 거리를 무한 질주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저 세상
으로 갈 때까지 며칠이고 취해 있거나 땡깡 부리거나 그도 지겨우면  내 도록
이런 그림만 그려(?)댔단다.  황동규 시인은 '기억이 지워지면'이란 시 속에서 


   ................
  기억 지워진 자리에
  물감을 뿌리리
  잭슨 폴록이 거나하게 취해 걸으며
  듬뿍 적신 솔로 신나게 뿌린
  우연의 물감을.
  솔에서 떠나면서도 인연 채 끊지 못해
  긴 줄 멈칫멈칫 그리는 지옥도 만들고,
  점 하나 잘못 떨어져
  일순 황홀한 천국도 되는,
  무지개 채 지워지지 않은
  눈물 방울
  싱그럽게.  



라고 표현해 놨던데 위 그림들을 보면서 동의하게 되시는지?  동의 못하겠다
굽쇼? 그럼 하나만 더 봅쎄다. 아래 그림은 원본과 부분 상세화가 같이 돌아 다니
는게 있길래 같이 가져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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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fathom five

제목은 대충 해석해서 다섯 길 아래로 읽혀지는데 대체 그림의 어디 부분에서
제목을 이끌어내야 하는가? 아니 그 전에 다섯 길 아래라는 게 대체 뭐란 말인
가? 이런 건 상상만으로 대충 때려잡아 빈칸을 채워넣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건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열길 물 속'이라는 구절을 외국인들이 그들
말로 직역한다고 해서 그 은유적 의미를 절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Full fathom five thy father lies;   다섯 길 속 그대의 아버지가 잠들어 있지
Of his bones are coral made;    그의 뼈는 산호가 되었고
Those are pearls that were his eyes:  그의 눈이었던 것은 지금은 진주야
Nothing of him that doth fade 그의 것이었던 건 아무 것도 사그라지지 않고
But doth suffer a sea-change      대신에 바다속에서 변해간다네
Into something rich and strange.  귀하고 독특한 어떤 것으로

- Tempest, Act 1, sc. 2



위 인용구는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중 일부분인데 여기에 full fathom five
라는 구절이 나온다. 옆에는 대략 내 식대로 해석해 봤다.
아래 스토아가 부르고 있는 아리엘 송은 역시 템페스트 속의 요정에 관한
것이다.



Stoa - Ariel's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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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딥따 큰 그림으로 보자. 상상되지 않는가? 아쿠아 불루와 검푸른 심연
의 소용돌이와,  주황 색의 산호와 무지개를 품고있는 진주와 폭풍에 난파하는
배와 마법사와 그의 어여쁜 딸과 요정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잭슨 폴록이 거나하게 취해 걸으며 듬뿍 적신 솔로 신나게 뿌린 우연의 물감
을. 솔에서 떠나면서도 인연 채 끊지 못해 긴 줄 멈칫멈칫 그리는 지옥도 만들
고, 점 하나 잘못 떨어져 일순 황홀한 천국도 되는..

시인의 표현에 처음 고개를 끄떡 끄떡하게 만들었던 게 나에게는 이 그림이었다.





마지막으로 얘기하나만 더, Norman Rockwell이라는 화가 겸 대중잡지의
삽화를 그리던 유명한 화가가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리던
이였는데, 제목은 Girl with Black Eye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소녀'가 되겠다.
 
이런 풍을 저 짝일 하는 이들은 사실주의 기법이라 부르더만.  재미난 그림은
그 아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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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을 안 해 봤으니 확실치는 않으나 내게는 뒷모습을 보이는 저이가 화가
자신으로 읽힌다. 뭐 화상(畵商)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긴하나 어쨌든...
보이는  그림의 마지막 세대를 고지식할 정도로 충실하게 뚜벅뚜벅  걸었던
화가가 보이지 않는 그림의 시대 문을 활짝 열어젖힌 이의 그림 앞에 서 있는
거다.  지금

그는 어떤 느낌일까? 그건 당혹감일까? 아니면 새로운 세대에 대한 호기심?

어떤 이들은 터무니없이 유명해진 폴록 씨류를 대표하는 '보이지 않는 그림'에
대한 비판이라는 숨은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그림이라고 보던데 글쎄다. 내게
는 자기 세계를 후회 없이 뚜렷하게 견지하고 걸어온 이의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보이는데 뭐 아님 말고 헤헤.

"평범한것은 지루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호기심과 감지력을 잃게될 때 그
때  비로소 지치게 되는 것이다."  ㅡ Norman Rock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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