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유욕이나 지배욕을 있게 한 자연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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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인간의 모든 소질을 계발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이 항쟁이 궁극적으로 사회의 합법칙적인 질서의 원인이 되는 한에서, 사회 속에서 인간들 상호간의 적대적 대립(Antagonism)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항쟁은 인간의 반사회적인 사회성(ungesellige Geselligkeit)을 의미한다. 즉 끊임없이 사회를 파괴하려고 위협하는 일반적인 저항들과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사회를 이루고 살려는 인간의 성향을 말한다. 더욱이 소질은 분명 인간의 본성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사회화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사회적 상태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인간 이상으로서, 즉 그의 자연적 소질의 발전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은 자신을 개별화하려는, 즉 자신을 고립시키려는 강한 성향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신 속에 단지 자신의 의도대로만 행동하려는 반사회적인 특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저항하는 성향을 갖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으므로 도처에서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을 예측한다. 이 저항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능력을 일깨워 주며, 인간으로 하여금 나태해지려는 성향을 극복하게 하고, 명예욕, 지배욕, 소유욕 등에 의해 행동하게 하여, 그가 함께 어울리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는 그의 동시대인들 가운데서 어떤 지위를 성취하게 해준다.

이렇게 하여 조야함으로부터 본래 인간의 사회적 가치에서 성립하는 문화에로의 최초의 진보가 일어난다. 그때부터 모든 재능들이 점차 개발되고 취미가 형성되며, 계속된 계몽에 의해 도덕적 식별력에 대한 조야한 자연적 소질을 점차로 특정한 실천적 원리들로 변화시킬 수 있고, 그것에 의해 자연적 감정에 의해 함께 뭉친 인간의 사회를 도덕적인 전체로 바꿀 수 있는 사고 방식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 자체로서는 애호될 만한 속성이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기적인 자만에서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저항을 산출하는 그와 같은 반사회성이 없다면, 인간의 모든 재능들은 완전한 조화로움과 만족감 및 서로서로 사랑하는 목가적인 삶 속에서 영원히 꽃피우지 못하고 묻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키우는 양처럼 선한 기질의 사람들은 결코 그러한 가축이 가지는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자신의 존재에 부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성적 자연으로서 그들의 목적을 성취함으로써 창조의 빈 장소를 채워 주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불화라든가 악의적인 경쟁심, 만족할 줄 모르는 소유욕이나 자배욕을 있게 한 자연에 감사할지어다! 이러한 것들이 없이는 인간성 속에 있는 모든 탁월한 자연적 소질 역시 계발되지 못하고 영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조화로움을 원한다. 그렇지만 자연은 인류를 위해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연은 불화를 원한다. 인간은 안락하고 만족스럽게 살고자 한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이 나태함과 수동적인 만족감으로부터 벗어나 노동과 고난 속으로 돌진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러한 노동과 고난으로부터 다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자연적 추진력, 즉 반사회성의 원천과 지속적인 대립의 원천은-그것으로부터 많은 악이 발생하는데- 한편으로 인간의 능력을 새롭게 긴장시켜 주며 결국 자연적 소질을 더 많이 계발시켜 준다. 이리하여 이들은 어떤 현명한 창조자가 부여한 질서를 잘 나타내 주며, 어떤 심술궂은 악마의 손길이 인간이라는 놀라운 작품을 서툴게 다루고 있다거나 시기심으로 망쳐 버리고 있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임마누엘 칸트,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제 4테제.'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29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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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디어법 날치기 사건을 보면서 민주당에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은, '통과를 왜 저지하지 못했는가' 가 아니라, 한나라당의 날치기 시도가 뻔히 예상되는 와중에서, 왜 '날치기 통과 이후'에 대해 당 차원의 어떤 명확한 대처 방안이나 프로세스를 정립하지 못하고 우왕 좌왕하는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날치기 이후 민주당이 보인 행태는 어처구니 없게도 <강도가 뒤에서 쫒아오고 있다는 것을 오래 전에 알아차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도의 '불의의 기습'을 받아 자신의 물건을 빼앗겼다고 말하는 사람의 기묘한 태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반면 한나라당 같은 경우는 박근혜의 후방 교란 작전을 필두로 치밀하게 계획되고 일사 분란하고 과감하게 진행되었으며, 국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집권 여당의 무자비한 힘을 보여주는데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의 카리스마에 충실히 호응하며 자신들의 거수기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다. 

3.

앞서 제시한 칸트의 보편사 이념 제 4 테제는 맑스와 대립사관과 니체의 초월사관이 보편사적인 관점 하에서 융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칸트의 통찰은 유적인 존재로서의 인류의 보편사가 펼쳐지는 큰 무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크게 보아 칸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끊임없이 타자와 적대하고, 나아가 타자를 파괴하려는 반 사회적인 성향은 사회적으로 확립된 질서에 긴장을 부여한다. 이러한 긴장은 타자에 대한 자기 자신의 적대적인 투기, 즉 자기 투기적인 저항을 낳는다. 이러한 인간의 저항은 사회 자체를 공격한다. 

   2)  저항을 산출하는 이러한 '반사회적 사회성'은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역설적으로 사회적인 삶 속에 고여 있는 인간의 자질과 능력에 발전에의 긴장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인류 전체가 자연적 상태에서 사회적, 도덕적 문화 상태로 '돌파'해 나가기 위해서 인간의 이기심과 저항적 공격성에 기초한 상호 불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4.                                                                                                                                                                  

 위 논리를 기준으로 보자면, 한국 사회의 '보수'의 대명사인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 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불리한 사회와 그 사회의 질서를 끊임없이 깨뜨리려고 한다. 인간 본성의 내부에 반사회적인 사회성이 꿈틀대는 것처럼, 한국의 보수 집단 속에 내재된 그 반사회적인 사회성은 곧장 자기 투기적 공격성으로 전화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 보다는 자신의 공격적인 본능에 더 충실한데, 왜냐하면 자기 이익에 충실한 자의 전술과 수단은 합리적으로 설명 할 수 있지만, 본연의 공격 본능에 기초한 행동은 합리적 설명의 틀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무현의 자결을 초래한 보수 관료, 정치, 언론, 검찰 집단의 동물적인 공격성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동적인, 즉 기존의 제도와 정치적 상태를 타파하는데 가장 거리낌이 없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 세력은, 역설적으로 바로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이 가진 반사회적인 사회성은 자신의 지배하에 들어간, 자신에 비판적인 신민들의 정치적인 자유를 억압하고, 자신이 선거를 통해 획득한, 법제도의 공무 집행 담당자들에 대한 지배권을 자신의 반대 세력을 비토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로 사용하며,  나아가 지배 세력의 집단적인 야만을 막기 위한 고안된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제도 그 자체를 부수는 데에서 절정을 이룬다. 권력 쟁출과 자기 의사의 관철을 위해 포장된 도구적 민주주의관은 이명박과 조중동, 그리고 한나라당을 관통하는 가장 중심적인 특성인 것이다.  
 
 5.

한나라당이 이번에 보여준 애니멀 스피릿은 한 집단의 반사회적인 사회성이 그 집단의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지휘와 결합되었을 때 어떻게  강력하게 표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 개의 질문이 제기된다. 1) 그렇다면 그 반대편의 포지셔닝은? 2) 칸트의 문제 의식으로 돌아가서, 집단 차원에서 표출되는 반사회적 사회성이, 한 사회의 기존의 문화적 규범 상태에 과부하를 걸고, 나아가 그 상태 자체를 다른 상태로 전이 시킬 수 있는가? 즉, 한나라당의 작태는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의 시계를 10년 전, 아니 20 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대립 되는 정치 세력의 저항성과 정치 의식을 각성 시킴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를 역설적으로 한 단계 더 위로 올려 놓는 계기로 작용할 것인가?

6. 

  명예욕, 소유욕, 지배욕을 통해 사회 속에서 인간이 역설적으로 자기 지배욕구를 가진 도덕적 주체로 올라 선다는 것,  나아가 개체 속에 내재된 사회 파괴적인 저항성을 통해 정체된 사회의 문화적, 정치적 상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 칸트의 메세지를 추적해 들어가다보면 규범 속에서 사는 자가 아니라, 자기 욕구 속에서 사는 자가 진실로 규범적인 주체라는 점에 다다르게 된다. 이것은 지배욕구에 충실한 상대적 다수 집단의 횡포에 대해 무기력했던 상대적 소수의 집단이, 왜 전투의 패배 이후에도 갈피를 못 잡고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들은 자신의 반사회적인 사회성, 즉 자신의 지배 욕구와 투쟁 욕구에 충실하지 않은 결과, 역설적으로 규범의 진공 상태라는 자기 함정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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